강속구 시대의 진정한 금강불괴, 아롤디스 채프먼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수연 >

2020년대 메이저리그는 그야말로 강속구의 시대이다. 평균 구속이 2008년 시속 91.8마일(147.8km/h)에서 2024년 현재에는 시속 94.2마일(151.6km/h)로 급증했다. 그뿐만 아니라 꿈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시속 100마일(161km/h)의 강속구를 구사할 수 있는 선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한편 이러한 구속 상승은 투수에게 매우 치명적이고 1년 이상의 재활이 필요한 어깨 회전근, 팔꿈치 내측 인대(Ulnar collateral ligament, 이하 팔꿈치 인대) 부상 건수가 급증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투수들이 던지는 구속이 높아질수록 팔꿈치에 가해지는 부하가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팔꿈치 내측 인대 재건 수술(일명 토미 존 서저리)을 받은 투수들의 비율이 2000년대에 비해 2010년대에 급증했다. 2023년을 기준으로는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35퍼센트가 팔꿈치 내측 인대 재건 수술(토미 존 서저리)을 받은 이력이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 실험에 참가한 투수들이 자신이 던지는 공의 구속을 변화시키며 팔꿈치에 가해지는 부하를 측정하여 각각 색깔 있는 선으로 나타낸 후, 이를 모아 굵은 선으로 평균화한 것 >

위 그림을 보면, 모든 투수들에게서 자신이 던지는 공의 구속을 높일수록 팔꿈치에 가해지는 부하가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반면 구속이 높음에도 구속이 낮은 투수보다 팔꿈치에 가해지는 부하가 적은 투수도 존재한다.

 

최근 들어 일명 쿠바 미사일(Cuban missile), 아롤디스 채프먼의 내구성이 주목받고 있다. 채프먼은 풀타임을 소화하기 시작한 2011년부터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리그 최고의 강속구 투수로 군림했다. 그는 현재 37살의 나이에도 전성기 시절의 구속을 유지하며 맹활약하고 있다. (2025시즌 싱커 평균 구속 시속 99.5마일)

그럼에도 그는 어깨, 팔꿈치에 염증이 있어 단기간 부상자 명단에 등재된 것을 제외하고는 해당 부위에 수술을 받지 않고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2011시즌 어깨 염증으로 15일 부상자 명단, 2017시즌 어깨 회전근 불편함으로 10일 부상자 명단, 2021시즌 팔꿈치 염증으로 10일 부상자 명단)

채프먼이 선수 생활 내내 시속 100마일이 넘는 강속구를 던지며 부상을 입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그 실마리 중 일부를 그의 신체와 피칭 메카닉에서 찾을 수 있다.

< 뉴욕 양키스에서 쫓겨나듯 떠나며 커리어의 위기를 맞이했던 채프먼. 이후 잃어버린 구속과 구위를 되찾으며 2025시즌에는 전성기를 방불케 하는 활약 중이다. >

 

<1> 강도 높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얻은 엄청난 근육

채프먼은 커리어를 거치며 강도 높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몸을 단련해 왔다. 2025시즌 현재에는 데뷔 시즌(2010시즌)보다 무려 50파운드(약 22.7kg)의 몸무게 증량에 성공했다. 증가한 근육량은 채프먼이 다른 투수들보다 공에 더 많은 힘을 가해 강속구를 뿌리기 용이하게끔 만들었다.

< SNS에 업로드되고 큰 화제가 된 바 있는 아롤디스 채프먼의 사진. 보디빌더를 연상케 하는 팔 근육이 금강불괴에 가까운 내구성에 기여했다. >

웨이트 트레이닝은 그가 팔꿈치 인대에 심각한 부상을 입지 않도록 하는 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투수가 팔을 휘두르는 과정에서는 팔꿈치 인대가 버틸 수 있는 한도(약 35N∙m) 이상의 토크*가 팔꿈치에 가해진다. 이때 아래팔(전완)의 근육이 팔꿈치 인대에 가해지는 토크를 분산시켜 인대의 손상을 방지한다.

* 토크: 물체를 회전시키려는 힘의 정도를 나타내는 물리량. 토크가 클수록 물체를 강하게 회전시킬 수 있으며, 주로 N∙m의 단위를 사용.

아래팔의 근력이 뒷받침되지 않거나 아래팔 근육에 손상이 가해진 채 투구를 진행하면 팔꿈치에 가해지는 토크가 팔꿈치 인대에 직접 가해진다. 이로 인해 팔꿈치 인대가 부상의 위험성에 더 자주 노출된다.

채프먼은 보디빌더를 방불케 하는 두께의 아래팔 근육을 키우며 강인한 내구성의 팔꿈치와 강속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 팔꿈치 내측 인대와 이를 안정화하는 아래팔 근육 >

 

<2> 극한의 신체 활용도

하체와 몸통의 활용도를 높이면 팔꿈치 인대와 어깨 관절에 작은 토크를 가한 채 높은 구속의 공을 뿌릴 수 있다. 아롤디스 채프먼은 타고난 신체 조건을 십분 활용하여 치명적인 부상 없이 강속구를 던질 수 있었다.

  • 뛰어난 하체 메카닉

채프먼의 신장은 약 193cm로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평균 신장(192cm)과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키에 비해 압도적으로 긴 다리를 갖고 있다. 이를 활용해 긴 스트라이드와 익스텐션을 확보하여 포수 쪽으로 남들보다 훨씬 빠르게 전진할 수 있다. 이는 디딤발 착지 이후에 몸통의 빠른 회전을 만들어내기에 유리한 요소이다.

< 애런 저지와 채프먼이 하이파이브 하는 모습. 10cm에 달하는 키 차이에도 채프먼의 다리 길이가 애런 저지의 다리 길이와 거의 비슷하다. >

채프먼의 하체 활용도는 와인드업 이후 힙 힌지(Hip hinge)*에서도 매우 돋보인다. 채프먼은 뒤로 완전히 걸터앉은 듯한 자세로 강한 힙 힌지를 수행한다. 하체가 지면을 강하게 누르게 하여 강한 추진력을 얻는다. 그뿐만 아니라 몸통을 2루 방향으로 뒤틀며 엉덩이 근육을 최대로 활성화하여 하체의 활용도를 끌어올린다.

* 힙 힌지: 엉덩이를 뒤로 뺀 채 고관절을 경첩처럼 굽히는 동작. 동작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엉덩이, 뒷다리(햄스트링) 근육이 강하게 활성화된다.

< 힙 힌치 동작의 정석. 마치 뒤에 걸터앉는 것처럼 엉덩이를 뒤로한 채 무릎은 발보다 앞으로 나가지 않게 하는 것이 포인트이다. >

커리어 후반부에는 힙 힌지 동작을 더 강한 강도로 수행하여 세월의 흐름을 이겨내고 있다. 이러한 하체 활용도는 팔꿈치와 어깨에 큰 부하가 가해지지 않고도 높은 구속을 낼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 아롤디스 채프먼의 2021시즌(왼쪽), 2025시즌(오른쪽)의 모습. 2025시즌에는 뒤로 더 걸터앉고 상체를 더 2루 쪽으로 틀며(양어깨가 더 2루 쪽으로 향하고 있다.) 하체의 활용도를 늘리는 모습이다. >

  • 비현실적인 몸통 유연성에 기반한 엄청난 상·하체 분리

자신의 신체 조건 하에서 강한 상·하체 분리*을 만들어 내는 것은 높은 구속을 만들어내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채프먼은 엄청난 몸통 유연성을 바탕으로 매우 강력한 상·하체 분리를 만들어 내며 몸통 회전의 활용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린다.

* 상·하체 분리: 골반(엉덩이)이 회전한 채 어깨를 비롯한 상체는 거의 회전하지 않아 발생한 몸통 근육의 꼬임. 야구, 투창 등의 종목에서 빠른 몸통 회전을 일으키기 위해 강한 상·하체 분리가 필요하다고 알려짐. 골반과 어깨가 회전한 각도 차이로 상·하체 분리를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음.

< 우투수의 디딤발이 땅에 닿는 순간 투수를 위에서 본 모습 >

위 그림을 보면, 골반(엉덩이)은 포수 쪽으로 회전하고 상체는 골반보다 적게 회전하여 상·하체 분리가 나타난다. 어깨를 이은 선(shoulder line)과 골반의 양 끝을 이은 선(Hip line)이 이루는 각(상·하체 분리각)을 통해 상·하체 분리의 정도를 직관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 각이 클수록 상·하체 분리가 많이 일어난다.

채프먼의 디딤발이 지면에 닿는 순간의 모습을 관찰하면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골반은 포수 쪽으로 한껏 회전한 채 어깨를 비롯한 상체는 1루 방향을 향하고 있어 높은 수준의 상·하체 분리각(Hip-Shoulder separation angle)을 만들어 내고 있다.

< 아롤디스 채프먼의 디딤발이 지면에 완전히 착지한 순간의 모습 >

일반적으로 채프먼과 같이 하체가 길고 상체가 짧은 유형의 선수는 높은 수준의 상·하체 분리각을 만들기 불리하다. 채프먼의 상체가 얼마나 유연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상체 유연성은 이후에 강한 몸통 회전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로 인해 어깨 관절에 큰 토크를 가하지 않고도 팔에 강한 회전을 가하여 구속을 높일 수 있다.

 

결론

채프먼은 축복받은 신체 조건과 유연성과 엄청난 강도의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갈고닦은 근력, 37살인 현재까지도 본인의 별명(Cuban missile)에 걸맞은 공을 뿌리고 있다. 그는 축복받은 신체 조건에 만족하지 않고 피나는 노력을 쏟아부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이 시대의 진정한 ‘금강불괴’ 아롤디스 채프먼의 앞으로의 행적을 주목해 보자.

 

참고 = https://armoredheat.com/blogs/news/how-to-protect-your-ucl?srsltid=AfmBOoou14b0MKeRxFAiJWiQsKwiH8SrWiYx9lq_CRz0t1bqHSpB0UP, Searching for Tommy John: Sizing up the key culprits in MLB’s elbow injury epidemic

야구공작소 조승택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도상현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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