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키 로키의 험난한 MLB 적응기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가윤 >

2023년 WBC에서 오타니 쇼헤이 다음으로 화제를 모은 선수는 바로 사사키 로키였다. 최고 102마일에 달하는 패스트볼과 준수한 슬라이더, 그리고 터무니없이 위력적인 스플리터의 조합은 전 세계 야구팬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2년 후 2025년 오프시즌, 사사키는 포스팅 제도를 통해 다저스와 국제 유망주 계약을 맺으며 MLB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다수의 매체들은 그를 전체 1위 유망주로 극찬하며 기대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러나 현재까지 사사키의 투구는 그가 보여준 최고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25.1이닝 동안 3.55의 ERA는 꽤나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매우 많은 볼넷과 적은 삼진, 그리고 그로 인한 5점대의 부진한 세부 지표들은 높은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예전만 못한 포심

사사키는 2024시즌 NPB에서 기대보다 부진한 성적을 냈다. 주요한 요인은 포심의 스터프 감퇴였다. 2023시즌보다 익스텐션은 증가했지만 구속과 무브먼트 모두 후퇴한 포심은 헛스윙을 유도해 내지 못했다.

< NPB 시절 포심 (단위 : 마일, 인치) >

이전에 비해 퇴보한 2024시즌의 포심 무브먼트는 여전히 MLB 평균 포심 무브먼트(IVB 15.7인치, HB 7.7인치) 이상이다. 그러나 MLB에 비해 솔기의 높이가 더 높은 NPB의 공인구는 더 큰 항력 계수를 가진다. 이로 인해 NPB의 공인구는 더 많은 무브먼트를 생성하는 데 유리하다. 따라서 해당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두 리그의 무브먼트 수치를 일대일로 비교해서는 안 된다.

일부 분석가들은 사사키의 2024시즌 포심 무브먼트를 MLB 환경에 대입하면 매우 부정적인 무브먼트로 변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남겼다. 그리고 그러한 우려는 단순한 기우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 MLB 환경에서의 예상 포심 스펙과 실제 포심 스펙 (단위 : 마일, 인치) >

< 포심 성적과 구종 내 백분위* >

* xwOBAcon: 컨택 된 타구의 xwOBA

* Stuff+: 투구의 로케이션을 무시하고 물리적 특성만으로 구위를 측정해 수치화한 지표

사사키의 포심은 MLB에서도 여전히 빠른 축에 속한다. 96.4마일의 평균 구속은 MLB 선발 투수 중 상위 12%에 이른다. 그러나 포심에서 찾을 수 있는 긍정적인 요인은 그것뿐이다.

< 포심의 실제 무브먼트와 예상되는 무브먼트 영역* 비교 >

* 산포된 점들이 실제 무브먼트, 반투명으로 채색된 영역이 예상되는 무브먼트 영역이다.

사사키의 포심은 그의 릴리즈 포인트, 익스텐션, 그리고 초기 궤적으로 예상되는 무브먼트보다 애매하게 낮은 수직 무브먼트를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의 포심은 예상보다 높은 수직 무브먼트로 헛스윙을 유도하지도, 예상을 크게 벗어나는 수평 무브먼트로 타구질을 억제하지도 못한다. 전형적인 ‘데드 존1‘ 패스트볼이다.

데드 존 패스트볼을 극복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 방법은 극도로 빠른 구속이다. 물론 사사키의 포심 역시 매우 빠른 편이다. 그리고 7.1피트의 긴 익스텐션은 타자가 느끼는 체감 구속을 약간 더 올려준다. 그러나 평균 99마일에 미치지 못하는 현재의 포심으로는 구속 하나만으로 데드 존을 벗어날 수 없다.

< 97마일 패스트볼과 99마일 패스트볼의 무브먼트별 Stuff+ >

두 번째 방법은 독자적인 릴리즈 특성과 입사 각도를 활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사키의 높은 릴리즈 포인트(상위 24%)와 낮은 포심 로케이션(loLoc%2 하위 8%)은 평평한 VAA3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올 시즌 그의 포심 VAA -5.4°는 MLB 하위 6%에 해당한다.

 

진정한 ‘유니콘’ 스플리터, 그러나…?

MLB 진출 전부터 사사키의 스플리터는 누구에게나 전 세계 최고의 구종 중 하나로 손꼽혔다. 베이스볼 아메리카와 MLB 파이프라인은 스플리터에 20-80 스케일에서 만점인 80점을 부여하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포심과는 정반대로, 사사키의 스플리터는 타자에게 예측을 불허하는 독특한 무브먼트를 특징으로 한다. NPB 시절부터 타 스플리터와 궤를 달리하던 개성적인 무브먼트는 MLB 공인구를 만나 더욱 독창적으로 변화했다.

< 스플리터의 실제 무브먼트와 예상되는 무브먼트 영역 비교 >

510회의 스플리터 RPM은 올 시즌 리그의 모든 구종 중 가장 낮은 수치다. 극도로 낮은 회전수와 탑스핀에 가까운 회전 방향의 조합은 독보적인 무브먼트를 생성한다. 사사키의 팔 각도가 평균보다 높은 편임을 고려했을 때 -4.5인치의 낮은 IVB는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15인치를 넘는 넓은 좌우 무브먼트 폭은 타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가히 고속 너클볼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 스플리터 성적과 구종 내 백분위 >

*PutAway% –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던진 공들 중 결과가 삼진으로 이어진 공의 비율

그러나 스플리터는 명성에 비해 저조한 실적을 거뒀다. Whiff%는 평균보다 높았으나 타자들은 존 밖으로 빠져나가는 스플리터에 쉽사리 배트를 내지 않았다. 그 결과 사사키는 많은 볼넷과 적은 삼진을 기록했다.

< 스플리터 피치 차트 >

문제는 사사키 본인도 자신의 스플리터를 제대로 제어할 수 없다는 점이다. 피치 차트에서 우타자 기준 몸쪽으로 크게 벗어나는 공들이 눈에 띈다. 사사키는 전체 스플리터 중 35.8%를 붉은색으로 표시된 구역에 투구했다. 그리고 타자들은 해당 구역의 스플리터 48구 중 단 두 번 배트를 휘둘렀으며, 그중 헛스윙은 단 한 번 뿐이었다.

3분의 1이 넘는 스플리터를 사실상 버리는 것이다. NPB 시절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해당 투구들을 제외한 스플리터의 통계는 본래의 명성에 가깝게 확실히 개선된 모습을 보인다.

< 붉은색 구역을 제외한 스플리터의 성적 >

스플리터는 본디부터 불안정하기로 악명 높은 구종이다. 공인구의 변화가 스플리터를 구사하는 감각에 악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높다. 사사키의 최우선 과제는 MLB 공인구에 적응해 최대한 일관적인 스플리터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다.

 

최악은 면한 슬라이더, 하지만 딱 거기까지

사사키는 서드 피치로 스위퍼성 슬라이더를 던진다. 단독으로 놓고 봤을 때 매력적인 구종은 아니다. 리그 평균 우투수 스위퍼와 거의 동일한 구속이지만 수평으로 2.7인치 더 적게 꺾인다. Stuff+ 등 대부분의 스터프 모델은 평균을 밑도는 평가를 내렸다. MLB 하위 1%의 슬라이더 RPM은 구종의 포텐셜을 제한한다.

< 슬라이더 성적과 구종 내 백분위 1 >

반면 지금까지의 슬라이더 성과는 그리 나쁘지 않다. 많은 헛스윙을 유도해 내지는 못했지만 포심과 스플리터 두 가지 구종에만 매몰된 타자들을 상대로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그러나 이 이상으로 구사율을 크게 높이기는 어렵다. 평균 이하의 스터프와 난사에 가까운 커맨드의 조합은 높은 구사율에서도 지금과 동등한 위력으로 작동할 수 없다.

< 슬라이더 성적과 구종 내 백분위 2* >

* Location+: 투구의 물리적 특성을 무시하고 볼 카운트와 구종에 기반해 투수가 적절한 곳에 투구했는지를 평가해 수치화한 지표

 

스트라이크 피치를 찾아라

사사키는 올 시즌 포심으로 허용한 피안타 11개를 모두 동등하거나 불리한 카운트에서 허용했다. 해당 카운트에서의 포심 구사율 63.5%는 모든 선발 투수 중 3번째로 높은 수치다. 타자들이 포심에만 집중하지 못하게 할 또 다른 스트라이크 피치가 필요하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방안은 싱커 장착이다. 포심을 보호하기 위해 싱커를 같이 던지는 전략은 리그에 하나의 유행처럼 자리 잡았다. 싱커 자체로 위력적인 구종이어야만 할 필요는 없다. 포심과 같은 구속에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만 해도 된다. 다양한 선택지는 포심을 더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다. 또한 사사키의 긴 익스텐션과 빠른 구속은 포심과 싱커 간에 보다 긴 피칭 터널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그런 용도의 싱커를 좌타자에게도 동일하게 사용할 수는 없다. 싱커는 같은 손 타자 상대로는 효과적이지만, 반대 손 타자 상대로는 최악의 구종에 가깝다. 대부분의 투수들은 반대 손 타자에게 싱커를 던지기를 꺼려한다.

 

이때 고려해 볼 만한 선택지는 커터다. 커터는 여러 패스트볼 중 가장 플래툰 중립적인 구종이다. 우타자 상대 싱커의 역할을 좌타자 상대 커터로 대체할 수 있다. Pronation(회내) 성향을 가진 사사키가 순수한 스터프 측면에서 우수한 커터를 던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싱커와 마찬가지로 포심의 보조 용도로 사용할 뿐이므로 별다른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커터는 브릿지 피치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브릿지 피치란 주요 패스트볼과 변화구가 구속이나 무브먼트에서 큰 차이를 보일 때 그 중간에서 둘을 연결해 줄 수 있는 구종을 일컫는 용어다. 사사키의 포심은 스플리터나 슬라이더와 구속과 무브먼트 양측 모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90마일 초반대 커터의 추가는 그 구멍을 메꿔줄 수 있다.

< 커터 장착 시 아스널 예상도 >

그러나 변형 패스트볼 장착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두 변화구의 심각하게 낮은 Strike%는 여전히 카운트를 잡기 위한 패스트볼 사용을 강제한다. 싱커와 커터 역시 헛스윙 유도에 적합한 구종은 아니다. 이로 인해 2스트라이크 상황에 도달하기 전에 많은 인플레이 타구가 발생하게 된다. 사사키가 저조한 삼진률을 기록한 주요 이유는 그대로인 것이다. 원할 때 스트라이크를 잡을 수 있는 변화구가 필요하다.

 

자이로 슬라이더 장착은 이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자이로 슬라이더는 기존의 스위퍼성 슬라이더와 달리 회전 효율이 매우 낮다. 따라서 사사키의 선천적인 낮은 회전수로 인한 불이익을 최소화할 수 있다. Pronation(회내) 성향을 가진 사사키가 큰 수평 무브먼트를 만들어 내기 위해 너무 많은 구속을 희생할 필요도 없다. 또한 더 작은 무브먼트는 더 일관적인 커맨드를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로건 길버트는 좋은 예시다. 

< 24길버트 vs 사사키 비교 >

사사키와 길버트는 매우 많은 특성을 공유한다. 차이점은 길버트가 리그에서 손꼽히는 자이로 슬라이더를 구사한다는 것이다. 길버트의 슬라이더는 매우 높은 Strike%와 Zone%를 기록한다. 덕분에 카운트의 유불리를 가리지 않고 전천후로 사용되며 스트라이크 피치와 결정구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길버트의 슬라이더 수준까지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준수한 자이로 슬라이더를 장착할 수 있다면 사사키의 피칭 퀄리티는 한 단계 더 발전할 것이다.

 

포심을 더 위로

앞서 언급한 대로, 사사키의 포심은 릴리즈 포인트로부터 평평한 VAA를 생성하기 불리한 조건을 갖췄다. 그러나 그러한 포심도 하이존에 던져야 더 많은 헛스윙을 유도할 수 있다.

사사키는 2024시즌 NPB에서 MLB 평균 대비 낮은 포심 로케이션을 형성했다. 이 성향은 올 시즌 MLB 데뷔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포심이 최대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보다 더 높은 위치에 로케이션을 형성해야 한다. NPB 시절보다 낙폭이 더 커진 스플리터는 포심 로케이션이 더 높아져도 충분한 피칭 터널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 좌 = 4월 19일 이전 포심 로케이션, 우 = 4월 19일 경기 포심 로케이션 >

4월 19일 경기 종료 후 사사키는 이번 등판에서는 제구에 집중했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남겼다. 실제로 해당 경기의 포심 로케이션은 이전보다 더 높게 형성됐다. 이 인터뷰가 포심의 새로운 로케이션 높이를 의미한다고 확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면 긍정적인 시도임은 분명하다.

 

마치며

현재의 사사키가 과거의 자신과 다른 투수임은 분명하다. 지금의 모습이 그의 최고 상태라는 주장에 동의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예전의 폭발적인 모습을 다시는 그대로 재현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장 곡선을 그렸더라도,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열려있다.

다저스는 압도적인 투수 뎁스를 갖추고 있다. 그가 철저한 관리 속에서 MLB에 적응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다. 사사키가 최선의 조건 속에서 다시 한번 자신의 포텐을 터트릴 수 있길 기대해 본다.

 

참조 = Baseball America, Baseball Savant, Baseball Prospectus, Pitcherlist, Pitch Leaderboard v7, @jacklambert__, @srbrown70, @LanceBroz

야구공작소 정승환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장호재, 도상현,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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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데드 존 : 타자의 예상대로 움직여 큰 피해를 허용하기 쉬운 무브먼트 영역이다. 구체적인 영역대는 투수의 릴리즈 특성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2. loLoc% : 낮은 로케이션 비율
  3. VAA : 수직 입사 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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