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20세 청년 백상호를 만나러

<조지 메이슨 대학교 홈구장 스퓔러 필드에 심은 산딸나무 아래 세워진 故백상호 선수 팻말>

글에 앞서 귀중한 시간을 내어 멀리서 찾아와주신 백상호 선수 부모님과 저를 따뜻하게 반겨준 조지 메이슨의 감독 숀 캠프와 Director of Baseball Operation 카일 다름스테드에게 마음 깊게 사의를 표합니다.

안녕하세요, 칼럼니스트 이금강입니다. 2024년 말에 발행된 글 “메이저리그를 꿈꾸던, 영원한 20세 청년 백상호”와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같은 제목의 유튜브 영상을 읽고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시에 앞으로도 많은 분께 감동을 줄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정진하게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혹시 아직 故백상호 선수의 이야기를 보지 못하신 분께서는 첨부된 링크를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4월 4일, 백상호의 등번호 44와 맞춤인 날에 백상호의 모교 조지 메이슨 대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이날 조지 메이슨은 현재 제가 살고 있는 세인트루이스와 홈 경기를 치를 예정이었습니다. 저는 주저하지 않고 조지 메이슨이 있는 페어팩스 카운티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약했습니다. 

조지 메이슨을 방문하는 당일, 백상호의 부모님과 식사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처음엔 꺼내기 쉽지 않은 과거를 다시 언급하다 보니 저의 연락을 조심스럽게 대하셨습니다. 그래도 백상호를 많은 사람들이 기억했으면 한다는 저의 취지를 감사히 이해하셨습니다. 부모님 모두 백상호를 기리는 글과 영상을 보셨다며, 특히 댓글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번 기회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지난 글에서 담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백상호의 미국 야구 도전기는 절대 쉽지 않았습니다. 백상호 가족이 정착한 메릴랜드주의 솔즈리는 부모님의 표현으로는 섬 같은 동네로, 멀리서 온 이방인에게 친절한 동네는 아녔습니다. 백상호는 동네에서 야구하는 유일한 동양인이자 덩치가 크지 않은 외부인이었습니다. 팀에 간신히 합류할 수 있었지만, 그의 재능을 시샘하거나 이유 없이 꺼리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백상호는 그들 사이에서 “상”이라는 자신의 한국 이름을 꿋꿋하게 지켜가며 자신만의 야구와 친화력으로 주변을 가꿔갔습니다. 하나둘 백상호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늘어났습니다. 유쾌하고 긍정적인, 그리고 스스로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백상호였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지난 글에서 백상호 아버님이 이주 직후 아들이 계속 좋아하는 야구를 할 수 있도록 자전거를 타고 팀을 찾아다닌 이야기를 썼습니다. 그런 아버님의 노력은 백상호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더욱 커졌습니다. 체구가 보통의 미국 선수보다 작았던 백상호는 종이와 숫자로만 보면 눈에 띄는 선수가 아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님은 백상호가 대학에서도 야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큰 결심을 합니다. 백상호와 함께 자신의 픽업트럭을 몰아 전국 각지 대학교에서 열리는 여름 야구 캠프에 참석한 것입니다. 대학 감독과 코치가 백상호를 직접 볼 수 있도록. 

그런 노력과 희생 덕분에 백상호는 조지 메이슨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현 조지 메이슨의 감독이자 전직 메이저리거인 숀 캠프는 백상호의 투구를 보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당시 투수코치였던 캠프는 학교 캠프에 참석한 유일한 동양인 아버지에게 달려가 열정적으로 백상호의 장단점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조지 메이슨으로 데려오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백상호에 대해 그렇게 강한 관심을 보여준 코치는 캠프가 유일했다고 합니다. 백상호에게도 조지 메이슨은 집과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우수한 학교이기에 훌륭한 선택지였습니다.

< 조지 메이슨의 홈구장 스퓔러 필드. 조지 메이슨의 색깔 청록색과 금색, 그리고 천연 잔디와 담장 뒤 숲이 우아하게 어울리는 구장이다. >

조지 메이슨이 세인트루이스를 7-5로 이기고 난 후 캠프 감독으로부터 백상호와 있었던 몇 가지 일화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 글에서 타자들이 타격 연습할 때 백상호가 공을 잡으러 다녔다는 이야기를 썼습니다. 캠프는 백상호가 단순하게 공을 받는 걸 떠나서 담장 밖으로 나간 공까지 회수하고 다녔다고 말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 번은 나무 위로 올라가 도마뱀이 옷에 붙었는지도 모른 채 돌아오고, 다른 한 번은 물에 빠진 공을 건지려다가 모자와 유니폼이 다 젖어버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캠프에게 정말 묻고 싶었던 질문, 백상호 이후 아직도 비어 있는 팀의 44번에 관해 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단호하고 확실했습니다. 그 번호는 언제까지나 백상호의 것이라고. 지금 경기장에는 그의 번호 44번과 그의 이름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지 메이슨 라커룸에는 그의 44번 유니폼과 그를 기리는 기념패가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캠프는 새로운 라커룸이 만들어지면 백상호와 44번을 기념하는 공간을 꼭 만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저는 캠프 감독에게 감사하다고 여러 번 말했습니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이역만리에 떨어진 곳에 와 홀로 야구했던 한국인이 조지 메이슨처럼 역사 깊은 학교에서 영구결번 대우를 받는다는 사실이 감동이었습니다. 백상호가 조지 메이슨에 있었던 시간이 길진 않았지만, 그가 얼마나 팀에 에너지를 불어넣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 2022년 백상호를 기리기 위해 조지 메이슨 대학교에서 심은 산딸나무. 이제는 제법 자라나 새로운 봄을 맞고 있었다. > 

 

이번 여행을 통해 다시 한번 백상호가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던, 그리고 모두에게 사랑을 나눠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를 기리는 기념수 앞에 세워진 푯말에 있는 문구 ‘훌륭한 야구 선수, 그리고 더 훌륭한 친구’라는 말은 그를 묘사하는 정확한 표현이었던 것이죠. 

백상호는 영원한 스무 살로 남아있습니다. 그가 보여준 긍정적인 에너지와 야구에 대한 열정이 야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훈훈하고 따뜻한 야구 이야기로 오래오래 기억되기를 기원합니다.

 

야구공작소 이금강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도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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