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사회적 역할⑬ 은퇴 선수 지원, 이제는 한국 야구의 사회공헌으로 上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범수 >

이전 시리즈에서는 한국 야구에서 사회공헌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기부 압박’이 아니라, 구단-리그-팬이 함께 참여하고 선수들의 활동은 공식적으로 기록·공개해 팬들과 공유하는 환경 조성이 우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회공헌은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이를 알리고 지속 가능한 문화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은 이러한 환경을 구축하고 있지만, 한국 야구는 사회공헌을 선수 개인의 몫으로만 돌리고 있었다.

그러나 사회공헌이 단순히 현역 선수들의 기부나 봉사활동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은퇴 선수들이 새로운 길을 찾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돕는 것 또한 중요한 사회적 책임이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프로야구 선수들이 은퇴 후 어떻게 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받고 있는지를 다룬다. 특히 NPB와 비교해 KBO가 어떤 점에서 부족하며, 야구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를 살펴본다.

 

KBO는 왜 은퇴 선수 지원을 사회공헌으로 보지 않는가?

많은 팬들은 프로야구 선수들의 은퇴 이후까지 신경 써야 하는지 의문을 가진다. 혹자는 “선수들은 현역 시절 충분히 많은 돈을 벌지 않았나?”, “은퇴 후에는 알아서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질문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일반적인 은퇴 연령은 30대 초반으로, 이후 살아가야 할 인생이 수십 년 더 남아 있다.

문제는 KBO가 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세컨드 커리어 지원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프로야구(NPB)는 이 문제를 인식하고 적극적인 지원책을 펼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은퇴 선수들이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을 강요당하고 있다. 과연 이대로 괜찮은가?

 

KBO의 은퇴 선수 지원 실태 – 각자도생을 강요받는 현실

KBO는 은퇴 선수 지원을 위한 실질적인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지 않다. 선수들이 유니폼을 벗는 순간, 그들의 미래는 철저히 개인의 몫이 된다. 일부 구단에서는 간헐적으로 은퇴 선수들을 프런트 직원이나 스카우트로 채용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체계적인 지원이 아니라 운 좋은 선수의 개별적인 선택에 불과하다. 

창업을 원하는 은퇴 선수들을 위한 지원 역시 부족하다. 창업은 선수들이 은퇴 후 가장 많이 선택하는 길 중 하나지만, 성공 확률이 극히 낮다. 실제로 많은 선수들이 스포츠용품점, 헬스장, 식당 등을 운영하다가 실패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 야구는 창업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멘토링이나 실질적인 교육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결국 은퇴 선수들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에 내몰리고 있다.

 

준비 없는 세컨드 커리어가 불러온 비극 – 故 이병훈의 사례

LG 트윈스 외야수였던 故 이병훈 선수는 은퇴 후 치킨집을 창업했지만, 사업 실패로 인해 수억 원의 빚을 지고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방송을 통해 은퇴 후 겪은 경제적·심리적 고통을 털어놓으며 야구계의 구조적 무관심을 지적했다. 이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사례는 단순한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준비 없이 사회에 내몰린 은퇴 선수들의 현실을 드러낸다.

 

은퇴 선수들이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하는 현실 – 심수창의 사례

2021년 유튜브를 시작한 심수창은 2023년부터 ‘크보졸업생’ 채널을 운영하며 은퇴 선수들의 현실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그는 단순한 개인 콘텐츠 제작을 넘어 은퇴 선수들의 세컨드 커리어를 지원하고 그들의 삶을 조명하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심수창은 직접 사회인 야구팀 ‘리터너즈’를 운영한다. 은퇴 선수들이 새로운 무대에서 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근황특공대’라는 콘텐츠에서는 기존 미디어들이 다루지 않는 은퇴 후 선수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를 공개한다. 야구팬들이 은퇴 선수들의 현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본래 KBO가 해야 할 역할이다. 그러나 한국 야구는 선수들의 은퇴 이후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은퇴 선수들이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근황특공대, 은퇴 후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운영하는 김경언>

 

NPB의 은퇴 선수 지원 – 철저한 시스템과 구단별 전략

일본 프로야구(NPB)는 은퇴 선수들의 세컨드 커리어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라, 선수들이 은퇴 후에도 안정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종합적인 지원체계다.

이 지원 체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eCareer NEXTFIELD’ 프로그램이다. 이는 일본프로야구선수회(이하 ‘NPBPA’)가 운영하는 취업 지원 프로그램으로, 은퇴 선수들에게 새로운 직업을 찾을 기회를 제공한다. 이를 위해 900개 이상의 기업과 협력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특히 스포츠 관련 직종뿐만 아니라 IT, 마케팅, 영업, 교육 등 일반 기업에서도 선수들의 경험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NPBPA는 은퇴 선수들의 일반 기업 취업을 적극 지원하며 900개 이상의 기업과 협력해 실질적인 취업 기회를 제공한다. 단순히 ‘교육을 제공했다’는 형식적인 성과가 아니다. 실제 취업까지 연결되는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KBO와는 그 결이 다르다.

또한 NPB는 매년 ‘NEW BALL’이라는 세컨드 커리어 관련 매거진을 발행해 은퇴 선수들에게 다양한 진로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매거진에는 성공적으로 사회에 정착한 전직 선수들의 인터뷰와 함께, 구체적인 취업 정보, 산업 트렌드, 경제 관리 팁 등이 포함되어 있어 은퇴 선수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더 나아가 NPB는 일본 일부 대학과 협력하여 은퇴 선수들에게 학업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학비 면제 또는 감면 혜택을 통해 선수들이 대학에 진학하여 새로운 분야를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를 통해 교육을 받은 선수들은 지도자 과정, 스포츠 행정, 경영,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롭게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이 모든 지원은 단순한 홍보성 이벤트가 아니라, 선수들이 은퇴 후에도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커리어 지원 체계로 자리 잡고 있다.

<은퇴 후 자동차 판매원으로 활동하는 전 치바롯데 마린즈 요시다 유타 NEW BALL 인터뷰>

 

일본의 각 구단들도 자체적으로 은퇴 선수들을 위한 지원을 마련하고 있다.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AcroBats’라는 자회사를 통해 은퇴 선수들이 스포츠 산업 내에서 경력을 이어갈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지원을 제공한다. 선수들은 이 회사를 통해 스포츠 매니지먼트, 트레이닝, 이벤트 운영 등 다양한 직군에서 일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또한 구단 프런트, 스카우트, 코칭스태프 등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내부 연계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AcroBats는 야구에 국한되지 않고, J리그(축구)와 B리그(농구)의 은퇴 선수들까지 지원 대상을 확장하고 있다. 이는 야구계에서 출발한 은퇴 지원 모델이 다른 종목으로 확산돼 일본 전체 스포츠 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19년 설립된 ‘AcroBats’의 첫 계약선수이자 후쿠오카 지역 야구 해설자, 자신의 이름이 붙은 라디오 방송 DJ를 맡은 셋츠 타다시(우)>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일본 최대 신문사 중 하나인 요미우리 신문이 모기업이다. 그만큼 은퇴 선수들이 미디어 업계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한다. 구단은 자체 스포츠 미디어 및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선수들이 스포츠 기자, 방송 해설자, 칼럼니스트 등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교육과 연계 기회를 제공한다.

한신 타이거즈는 구단의 전통과 강한 팬덤을 활용하여 은퇴 선수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 은퇴 선수들이 유소년 야구 지도자로 활동할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을 마련했다. 지역 사회 공헌 활동과 연계하여 야구 보급 및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한 구단의 공식 행사와 홍보 활동에도 은퇴 선수를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지속적인 연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

히로시마 도요 카프는 ‘지역 밀착형’ 구단이라는 특성을 살려 은퇴 선수들이 지역 스포츠 활성화와 청소년 야구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히로시마에서는 ‘구단에서 뛰었던 선수라면 지역에 남아 있는 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은퇴 선수 지원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 구단은 유소년 야구 지도자로 활동할 수 있도록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역 스포츠 이벤트 및 홍보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지역 기업과 협력하여 은퇴 선수들이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지원하며, 이를 통해 지속 가능한 커리어를 구축하도록 돕고 있다.

주니치 드래곤즈는 나고야 지역을 중심으로 은퇴 선수들의 사회 진출을 지원하고 있다. 지역 기업 및 경제 단체와 협력해 다양한 취업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 은퇴 선수들이 일반 기업에서도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스포츠 관련 직종뿐만 아니라 경영, 마케팅, 공공기관 등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맞춤형 교육과 취업 지원을 제공한다. 또한 나고야 지역의 구단 스폰서 기업과 연계한 인턴십 및 정규직 전환 기회를 마련해, 은퇴 선수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세컨드 커리어 지원제도로 나고야 전문학교에 입학해 유도정복사1 국가자격시험을 준비하는 전 주니치 드래곤즈 아지로 타쿠마>

 

일본 구단들은 은퇴 선수들이 단순히 코치나 해설자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러한 시스템 덕분에 일본에서는 은퇴 선수들이 지도자, 해설자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에서도 성공적으로 제2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있다.

한국 야구도 형식적인 지원에 그치지 않고, 은퇴 선수들이 사회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고 기여할 수 있도록 돕는 진정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쳐야 한다. 지금까지 은퇴 선수들은 각자 도생하며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지만, 야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사회적 가치가 있는 산업이다. 은퇴 선수들이 성공적으로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프로야구가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사회로 환원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이제라도 한국 야구는 이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많은 은퇴 선수들이 방황하게 될 것이다. 지속 가능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리그가 되기 위해서는 은퇴 선수 지원도 그 일환이 되어야 한다.

일본과 달리 한국은 병역 의무로 인해 다수의 선수가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프로에 진입하는 구조다. 이는 커리어의 시작을 빠르게 열어주지만, 동시에 은퇴 후 선택할 수 있는 진로의 폭을 제한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대학 교육이나 외부 사회 경험 없이 야구에만 전념한 선수들은, 이른 시기에 커리어가 끝날 경우 사회로의 연착륙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은퇴 후의 삶에 대한 책임을 오직 선수 개인에게만 떠넘기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 이제는 야구계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그 책임을 나누어야 할 때다.

 

참고 = 한국은퇴프로야구선수협회, NPB, 일본프로야구선수회, 크보졸업생, 소프트뱅크 호크스, 학교법인세무이학원, 겐다이 미디어, MBN, 착한 자본의 탄생(김경식 저), Gratton, Chris; Preuss, Holger (2008). ISO26000(국제표준화기구 사회적책임 표준), etc.

야구공작소 천태인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강상민, 야구공작소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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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도정복사: 접골원이나 접골원에서 주로 골절, 탈구, 염좌, 타박상 등의 부상을 치료하는 의료 기술직으로, 한국의 물리치료사와 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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