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LB 마지막 물푸레나무 방망이 사용자 조이 보토. 좌측의 방망이가 그가 15년 동안 사용한 루이빌 슬러거 M356 모델이다. 출처 = Red Reporter >
2024년 8월 21일, MLB를 호령한 그리고 전국적으로 존경을 받은 스타 하나가 은퇴를 선언했다. 21세기 신시내티 레즈의 상징인 조이 보토는 SNS를 통해 선수 생활을 마친다고 밝혔다. 보토는 지난 2023년 은퇴 경기라고 모두가 짐작한 경기에서 초반 퇴장당했다. 그해 보토와 레즈의 계약이 종료됐다. 마지막이 아쉬워서였는지 보토는 고향인 토론토에서 마지막 기회를 노렸지만, MLB 복귀는 9월이 다가올 때까지 이뤄지지 못했다.
보토는 추신수와 함께 레즈에서 “토끼” 유니폼을 함께 입었던 선수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 역시 올해를 끝으로 선수 생활을 정리한다. 비록 함께 뛴 건 1년뿐이지만, 추신수는 보토에게 인내심을 비롯해 많은 것을 배웠다며 그와의 추억을 기억했다. 추신수의 말처럼 보토는 공을 가장 잘 보는 선수의 대명사였다. 통산 1,365개의 볼넷과 0.409의 출루율, 타석당 평균 4.07개의 투구를 기록했다. ‘선구안 하면 보토’로 연결될 정도였다.
보토의 은퇴는 단순히 인기 선수의 사라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의 은퇴는 MLB 역사에서 아주 오랫동안 사용된 장비이자 1941년 조 디마지오의 56경기 연속 안타, 1961년 로저 마리스의 61홈런, 1998년 마크 맥과이어의 70홈런과 함께 한 장비의 종언을 뜻했다. 바로 물푸레나무 방망이이다. 2023년 MLB에서 일부 선수가 단풍나무 방망이를 주로 쓰되 물푸레나무 방망이를 가끔 썼기도 했지만, 물푸레나무 방망이만 사용한 선수는 보토가 유일했다.
야구의 시작과 함께
물푸레나무는 초창기 야구 때부터 주목받았다. 야구가 태어났을 당시엔 각 선수가 알아서 자유로운 형태의 방망이를 만들어 가져왔었다. 벚나무, 밤나무, 포플러나무, 히코리나무 등 다양한 목재가 야구 방망이 재료로 사용된 가운데 크리켓채의 주재료인 버드나무도 잠깐 인기를 끌었었다. 원통형과 평면 방망이가 모두 사용됐으나 원통형 방망이가 공을 더 멀리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지금과 유사한 모양의 방망이가 주류가 됐다.
그러나 1870년대에 들어서며 물푸레나무와 히코리나무로 재료가 좁혀지기 시작했다. 두 나무는 말과 마차를 연결하는 쳇대의 재료로 사용됐었는데, 사용하지 않는 마차의 쳇대를 가지고 타격한 선수들의 성과가 우수하게 나왔다. 한편 마차를 대신할 운송수단이 확대되면서 자연스럽게 쳇대를 전보다 덜 생산하게 됐다. 스팔딩(Spalding)은 결이 올바르고 잘 건조됐으며 2차림에서 자라난 물푸레나무 쳇대를 중고로 10만 개나 매입한다는 광고를 게시하기도 했다.
< 1900년 루이빌 슬러거 방망이 광고. 최고 등급인 루이빌 슬러거 등급부터 청소년용인 루이빌 슬러거 주니어까지 모두 물푸레나무로 방망이를 만들었다. 출처 = KeyMan Collectibles >
단단하면서 가볍다, 물푸레나무 방망이 전성기
물푸레나무 방망이가 떠오르게 된 결정적인 배경에는 지금의 루이빌 슬러거(Louisville Slugger)를 만든 존 힐러릭(John Hillerich)이 있었다. 1884년 힐러릭은 루이빌 이클립스에서 슬럼프를 겪던 강타자 피트 브라우닝이 자신의 방망이를 부러트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힐러릭은 그를 위해 새로운 배트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브라우닝을 부친의 제재소로 초청한 힐러릭은 미국물푸레나무(White ash)를 사용한 새로운 배트를 제공했다. 그리고 다음날 브라우닝은 새 배트로 3타수 3안타를 기록했다. 브라우닝의 새로운 배트는 다른 팀에도 입소문이 돌았고, 힐러릭 제재소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방망이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단단하지만 아주 무거운 히코리나무를 사용한 방망이와 달리 물푸레나무 방망이는 적당히 튼튼하지만 훨씬 가볍고 동시에 유연한 점이 특징이었다. 예를 들어서 같은 모양의 히코리나무 배트의 무게가 42온스 나갈 때 물푸레나무 방망이는 33온스밖에 나가지 않았다.
거기에 미국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나무였다. 따라서 재료 수급 차원에서도 어렵지 않았다. 그래도 데드볼 시대까진 히코리나무 방망이를 사용하는 선수가 많았다. 그러나 라이브볼 시대에 들어오면서 그리고 빠른 스윙 속도를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무거운 방망이의 시대가 저물었다. 2001년 루이빌 슬러거가 생산한 방망이 95%가 물푸레나무 방망이였다. 그렇게 물푸레나무는 야구가 태생부터 21세기에 들어설 때까지 야구에 있어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재료였다.
< 베리 본즈가 사용한 Sam Bat의 R2K1 모델. 34인치 31.8온스의 단풍나무 방망이이다. 출처 = Sam Bat. >
홈런왕의 단풍나무, 트렌드를 바꾸다
그러나 2002년 전설적인 타자 하나로 인해 흐름이 바뀌었다. 물푸레나무가 대세였던 흐름이 단풍나무로 바뀌었다. 베리 본즈는 1999년 시즌 중반부터 물푸레나무 방망이에서 단풍나무 방망이로 전환했다. 그리고 2001년 34인치 32온스 단풍나무 방망이를 사용한 본즈는 단일 시즌 최다 홈런인 73개와 단일 시즌 최고 장타율 0.863을 기록한다. 우리가 이제는 본즈의 기록에 별을 달아 표시하고 있지만, 그와 함께 뛴 선수들은 본즈의 방망이에도 주목한 것이다.
단풍나무는 물푸레나무보다 더 단단한 재료지만 그로 인해 무거웠다. 모양을 같게 하면 당연히 무게가 더 나갔으며, 무게를 줄이자니 어딘가를 얇게 만들어야 했다. 아무나 사용하기 어려운 재료였다. 더 나아가 물푸레나무와 달리 단풍나무는 결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방망이의 결에 맞게 공을 쳐야 방망이가 공을 더 버텨낼 뿐만이 아니라 공을 더 멀리 보낼 수 있다. 하지만 단풍나무는 양질의 목재를 찾아 방망이 원목으로 손질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자연스럽게 MLB에서 부러진 방망이 숫자가 많아졌다. 공에 이상하게 맞아도 선명한 결 따라 조금씩 파여나가는 물푸레나무 방망이와 달리 단풍나무 방망이는 공에 잘못 맞으면 처참하게 부러졌다. 그로 인해 선수, 심판 그리고 관중까지 부러진 방망이로 다치는 사례가 속출했다. 결국 MLB 사무국은 단풍나무 방망이가 덜 부러지는 방법은 연구했고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목재의 결을 확인하는 잉크 닷 시험(Ink dot test)이다.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본즈가 괴물과 같은 시즌을 보낸 지 단 7년 만에 MLB 선수의 절반가량이, 2017년에는 75%가량이 단풍나무 방망이를 사용했다. 루이빌 슬러거의 2021년 방망이 생산 비중은 87%가 단풍나무, 12%가 자작나무로 바뀌었다. 20년 만에 물푸레나무의 비중은 95%에서 1%로 줄었다. 물푸레나무 방망이의 시대가 저물었다.
< 호리비단벌레. 출처 = University of Maryland Extension >
환경 파괴의 나비효과
물푸레나무 방망이 시대의 종언을 가속화한 것은 아시아에서 넘어온 한 벌레였다. 호리비단벌레(Emerald Ash Borer) 혹은 EAB로 불리는 쌀알 크기의 초록색의 아름다운 딱정벌레목의 벌레는 어느 순간 어떠한 이유로 미국에 넘어왔다. 디트로이트 인근의 물푸레나무 숲이 고사하는 현상을 연구한 미시건 주립대의 데보라 맥컬러 교수는 2002년 호리비단벌레가 물푸레나무 숲을 파괴하는 주범이라고 발표했다. 미시건 외 펜실베이니아와 뉴욕 등 동부에서 발견됐던 호리비단벌레는 이제 남부 텍사스나 서부 오리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물푸레나무 방망이 전성기 시절 루이빌 슬러거는 연간 약 80만 자루의 방망이를 생산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생산량이 약 30만 자루에 그친다. 단풍나무 방망이의 인기 그리고 단풍나무의 대체재인 자작나무 방망이 시장이 커지는 만큼 물푸레나무 방망이의 입지는 좁아지고 있다.
EAB로 예전처럼 높은 품질의 물푸레나무 원목을 구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루이빌 슬러거는 고급 물푸레나무 방망이를 생산하지 않는 점을 인정했다. 대신 단풍나무 방망이보다 물푸레나무 방망이가 가격이 저렴하기에 청소년 야구에서나 호신용 혹은 분장용 소도구로는 수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조이 보토만을 위한 마루치의 JV19-A. 보토의 상징인 루이빌 슬러거 M356과 모양과 무게가 완전 똑같다. 출처 = The Athletic >
최후의 사용자 보토
보토는 2021년까지 루이빌 슬러거의 34인치 32온스 M356 방망이를 사용했다. M356 모델은 시애틀 매리너스의 명예의 전당 타자 에드가 마르티네스가 1995년 0.356의 타율을 기록한 것을 기념해 만들어진 검정 페인트로 두 번 칠해진 방망이다. 신시내티에 있는 자기 집에 방망이 전용 보관고를 설치한 보토는 2021년까지 자신의 상징과 같은 이 방망이 모델만 사용했다. MLB에서만 무려 8,128타석을 M356과 함께했다.
그러나 2021년 보토는 방망이 품질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배럴에 균열이 생기고 조각이 떨어져나왔다. 호리비단벌레의 영향이 보토에게 미친 것이다. 보토는 M356의 제조사인 루이빌 슬러거에 새로운 방망이를 주문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거절이었다. 루이빌 슬러거는 자기가 예전처럼 양질의 물푸레나무 목재를 구할 수 없다고 이실직고했다.
그렇게 보토는 전국의 방망이 제조사와 연락하며 물푸레나무 방망이를 찾았다. 다행히 마루치가 보토가 만족할 만한 재료를 보유했다. 보토는 마루치가 보유한 마지막 최고등급 물푸레나무 목재를 모두 구매했다. 그리고 마루치는 보토를 위해 M356과 완전 똑같은 50~70자루의 방망이를 JV19-A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보토에게 전달했다.
완벽한 물푸레나무 한 그루로부터 약 30자루의 방망이가 나오는 점을 고려할 때, 보토가 만족할 만한 마루치의 재고 역시 많아 봐야 세 그루에 그쳤다. 그 정도로 미국에서 물푸레나무 상황은 심각했다. 보토는 디 애슬레틱과의 인터뷰에서 자기가 은퇴할 때까지 이 배트를 다 쓰지 않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 2022년 보토는 하키 퍽 노브 방망이를 사용해 17경기 68타석 동안 .143/.294/.161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그리고 다시 자기가 사용하던 보통의 방망이로 돌아갔다. 출처 = The Athletic>
이와 별도로 마루치와 보토는 타격감 회복을 위해 하키 퍽 모양의 노브를 사용한 배트도 만들어 시험해 봤다. 물론 재료는 물푸레나무였다. 그러나 그 시험은 20경기도 가지 못했다. 더 빠른 스윙 속도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하키 퍽 노브 방망이였다. 그러나 겨울에 마루치 연구소에서, 그리고 시범경기에서 시험했을 때와 달리 실전에서는 보토와 궁합이 맞지 않았다. 보토는 자신이 공을 인지하는 것과 자신의 스윙이 평소처럼 이어지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사라지는 것 또한 역사가 될 것이다
물론 당장 내일이라도 보토의 의지를 계승해 물푸레나무 방망이만 사용하는 선수가 MLB에 등장할 수 있다. 하지만 삼림 파괴로 인해 재료 수급이 어렵고 더 빠른 타구 속도를 추구하는 현대 야구의 경향으로 인해 물푸레나무 방망이의 부활은 당분간 이뤄지긴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물푸레나무 방망이를 썼거나 단풍나무와 잘 맞지 않는 선수들은 그 둘의 절충안인 자작나무 방망이로 갈아탔다.
보토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만약 물푸레나무 방망이가 쓰이지 않는 추세가 앞으로 몇 년 동안 이어진다면 언젠간 보토가 사용한 마지막 방망이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것이 분명하다. 보토가 자기 창고에 보관한 배트를 남김없이 부러트리지 않는 이상에야 말이다.
전술했듯이 120년 넘는 기간 물푸레나무 배트는 MLB에서 사용되며 굴지의 기록과 함께했다. 그리고 2024년 (MLB 기록으로만 보면 2023년) 물푸레나무는 큰 무대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이것이 잠깐의 이별일지 아니면 영원한 안녕일지 지켜보는 것도 재밌으리라.
참고 = MLB, Red Reporter, 스포츠조선, KeyMan Collectibles, Baseball Reference, Sam Bat, University of Maryland Extension, The Athletic, The New York Times, SABR, Inside Hook, Steve the Ump, MSU Today, Deadspin
야구공작소 이금강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익명, 전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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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B가 미국으로 넘어가지 않았다면 물푸레나무 방망이를 더 오래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자연 생태계의 파괴인 걸까요, 아니면 자연스러운 흐름 중 일부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