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은 닫히지만, 마지막 장은 아직 쓰이지 않았습니다.”
The doors may be closing, but the final chapter has not been written.
2024년 5월 25일, 미국 대학야구의 한 장면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NCAA DIII 소속팀인 버밍햄-서던(Birmingham-Southern College)이 데니슨과의 3판 2선승제 슈퍼리저널 2경기에서 7-6으로 승리해 400개에 가까운 DIII 학교 중 최강을 가리는 챔피언십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까지만 보면 평범한 대학야구처럼 보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버밍햄-서던을 응원한 이유가 있다. 버밍햄-서던은 지난 5월 31일에 공식적으로 폐교 절차를 밟았기 때문이다.
문 닫은 학교와 명장의 부임, 그리고 마지막 여정의 시작
1856년 개교한 학교는 21세기 들어와서 심각한 재정난에 허덕였다. 예산 남용으로 인해 재무관리에 문제가 발생했고, 수천 명에 달하던 재학생 수는 천 명 밑으로 내려왔다. 학교 이사회는 존속을 위해 앨러배마 주 의회에 재정지원을 요청하는 등 생존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했지만, 최종적으로 폐교를 결정했다. 당장 학교부터가 재정난에 허덕이는 상황. 버밍햄-서던의 체육부 역시 계속된 부침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1949년 신설되었던 야구부 역시 2년 만에 운영을 중단했다 1966년에 다시 살아나는 등 고난을 겪어야만 했다.
이렇게 힘든 와중에도 버밍햄-서던이 강팀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잰 와이스버그 감독의 힘이 있었다. 와이즈버그는 14년간 DI에서도 명문인 켄터키에서 선수와 코치로 활동했던 이다. 와이즈버그는 2006년 버밍햄-서던 제11대 감독으로 부임 후 팀을 강팀으로 끌어올렸다. 2019년에는 프로그램 사상 최초로 DIII 챔피언십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 채프먼에게 패해 아쉽게 준우승했다.
< 2024년 5월 30일 팀을 지도하는 잰 와이스버그 감독 >
2024년 3월, 버밍햄-서던은 고전하고 있었다. 13승 10패로 5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시즌 초반의 동력을 잃은 채 최근 14경기에서 9패를 기록했다. 성적도 신통치 않은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3월 26일, 와이즈버그는 팀 미팅을 소집해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전한다. 학교가 5월 31일에 문을 닫는다는 소식.
그러나 선수들은 오히려 이러한 소식에 고무됐고 투지에 불탔다. 팀워크를 발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란 인식이 퍼지자, 선수들은 각성했다. 남은 16경기에서 14승 2패란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한다. 비록 소속 컨퍼런스인 SAA 토너먼트에서는 2연패를 기록하며 조기에 탈락했지만, 27승 14패를 기록한 덕분에 19팀만 받을 수 있는 60강 전국 토너먼트 초청장을 NCAA로부터 받을 수 있었다.
60강에 초청받은 버밍햄-서던은 3번 시드로 트랜실바니아가 주관하는 4개팀 1조 더블엘리미네이션 방식의 렉싱턴 리저널에 합류했다. 5월 17일 트랜실바니아 상대로 치른 1경기에서 21:7로 대승을 거둔 버밍햄-서던은 승자전에서 스팔딩을 4:2로 꺾으며 리저널 결승전에 선착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패자조에서 살아서 올라온 트란실바니아를 5:2로 다시 한번 꺾으며 다음 단계인 슈퍼리저널에 진출했다.
상한 치킨 알프레도는 위험해
도입부에서 설명했듯이 버밍햄-서던은 5월 24일과 25일 열린 슈퍼리저널에서 데니슨을 상대로 2연승 하며 여덟 팀이 우승을 노리고 맞붙는 DIII 챔피언십에 진출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정말 극적이었다. 3판 2선승제의 첫 경기는 선발투수인 3학년 우완 드레이크 라로시의 완투와 타선의 폭발로 쉽게 이겼다. 그러나 그날 저녁 숙소에서 먹은 저녁이 문제를 일으켰다. 선수단 3분의 1에게서 식중독 증상이 나타났다. 일부 선수는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했다.
< 팀의 마무리 투수인 2학년 좌완 찰리 혼과 주전 3루수인 4학년 미치 오스틴. 식중독으로 인해 경기 전 링거를 꽂고 경기를 준비했다 >
< 팀의 핵심 불펜 중 하나인 1학년 우완 제이콥 필즈. 식중독으로 인해 경기 전 링거를 꽂고 시합을 준비했다 >
2경기 선발 투수로 나설 예정이었던 4학년 우완 조시 리어센은 팀의 핵심 불펜 투수들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자기가 최소한 7이닝은 던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7이닝에서 아웃 단 하나 부족한 6.2이닝을 3실점으로 막았다. 링거를 꽂고 경기장에 나타난 1학년 우완 제이콥 필즈와 2학년 좌완 찰리 혼이 각각 2이닝과 0.1이닝을 정리하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 데니슨과의 슈퍼리저널 2차전에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고 뛰어나오는 버밍햄-서던 선수들 >
망한 학교의 마지막 유산인 야구부가 믿기지 않는 연승으로 전국대회에 진출한 것도 모자라 그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악재를 견뎌냈다는 소식이 미국 전역에 전달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버밍햄-서던 야구부 39명의 선수와 3명의 코치진이 쓰고 있던 이야기의 마지막 장은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모두의 염원을 모아: 시민들의 응원이 담긴 비행기 티켓
막상 전국 8강엔 들었지만,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전국대회가 열리는 장소까지 이동하는 일이었다. 버밍햄-서던이 있는 앨러배마주 버밍햄과 DIII 챔피언십이 열리는 오하이호주 이스트레이크와의 거리는 무려 728마일. km로는 1,170km에 달하며, 버스로 쉬지 않고 빠르게 달려도 11시간이나 걸린다. 물론 버밍햄-서던 선수단은 장시간 여행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버밍햄-서던이라는 이름을 달고 우승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잡으러 버스에 올라탈 준비를 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버밍햄-서던의 마지막 도전을 응원하며 선수단에 뜻밖의 선물을 전달했다. 학교가 망해버린 상황에서 각종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버밍햄의 한 사교모임은 미국의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고펀드미를 통해 모금 활동을 시작했고, 애초 목표치였던 $100,000를 초과하는 $110,000의 기부금이 모였다. 이 돈은 버밍햄-서던이 마지막 경기를 치를 때까지 필요한 경비와 선수들과 관계자들의 미래를 지원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한편 앨러배마주가 공인한 주 내 유일한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인 포치 크릭 인디언은 버밍햄-서던 야구부가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25,000을 기부했다. 그 덕분에 선수단은 이스트레이크까지 가는 전세기를 탈 수 있게 됐다. 포치 크릭 인디언은 공동체를 결합하고 탁월함과 팀워크, 인내심에 영감을 주는 스포츠의 힘을 믿는다면서, 버밍햄 남부와 앨러배마주를 대표하는 버밍햄-서던 야구부를 응원하기 위해 기부한다고 밝혔다.
재정적으로 풍족한 명문 DI 학교 선수단의 경우 항상 전세기를 타고 이동하기에, 원정 경기를 위해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어색한 일이 아니다. 혹은 D1 공군사관학교처럼 C-17 글로브마스터 수송기를 타고 이동하는 팀도 있다. 그러나 DIII, 게다가 재정 위기를 겪는 학교의 운동부에게 전세기는 사치였다. 아무리 먼 거리라도 버스로 이동했다. 하지만 너그러운 기부자 덕분에 버밍햄-서던 선수들은 평생 잊지 못할 원정길에 나설 수 있었다.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학교를 떠난 그들은 ‘겨우’ 4시간 만에 결전의 장소인 이스트레이크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전세기 탑승을 기다리는 버밍햄-서던 선수단 >
끝나지 않은 이야기
전국대회 8강의 첫 경기가 열린 날은 학교가 폐교되는 날인 5월 31일이었다. 그러나 버밍햄-서던은 막판 추격에도 불구하고 1차전에서 살베이 레지나를 상대로 5:7로 패배하고 만다. 그래도 2번 패배해야 탈락하는 더블엘리미네이션 방식으로 챔피언십이 치러지기 때문에 학교가 사라진 다음날인 6월 1일 패자조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이제부턴 정말 없는 학교를 대표하는 팀이 되었다.
탈락 위기 앞에서 마주한 팀은 랜돌프-메이컨. 버밍햄-서던은 경기 초반 4득점 하며 앞서갔으나 7회초 동점을, 그리고 8회초 3실점 하면서 7-4로 끌려갔다. 그러나 8회말 공격에서 곧바로 3점을 만회하며 경기를 끝까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버밍햄-서던은 9회초 2사 2루 위기를 맞았지만 실점 없이 막고 끝내기 기회를 노렸다.
선두타자인 4학년 내야수 앤드류 더튼이 볼넷을 얻어 출루했다. 그리고 타석에는 1회말 2점 홈런을 쳐서 더튼과 함께 홈 플레이트를 밟았던 3학년 1루수 잭슨 웹스터가 섰다. 초구 헛스윙, 2구 파울을 친 웹스터는 불리한 카운트에서 가운데 몰린 변화구를 놓치지 않았다. 좌익수를 단번에 멈추게 만드는 대형 타구가 나오며 버밍햄-서던은 한 경기를 더 할 수 있게 되었다. 버밍햄-서던을 응원하기 위해 이스트레이크의 클래식 파크를 찾은 백여 명의 팬과 선수단은 광란의 도가니에 빠졌다. 현장을 중계하던 캐스터는 연신 자신이 본 광경을 믿을 수 없다고 감탄했다.
< 끝내기 홈런이 나온 후 화면에 잡힌 한 팬의 ‘죽은 대학의 사회’라는 치어풀 >
돌아오는 길은 낭만 있게, 추억이 깃든 버스와 함께
그러나 기적은 거기까지였다. 버밍햄-서던은 6월 2일 열린 위스콘신 화이트워터 캠퍼스와의 최종전에서는 경기 막판 연속 실점에 끝내기 홈런까지 맞으며 10-11로 패배하며 그들의 마지막 여정을 마감해야만 했다.
< 경기 후 경기장을 방문한 팬들에게 인사하는 버밍햄-서던 야구부 >
아쉽지만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와야 했던 버밍햄-서던 선수단과 코치진에게 시민들은 돌아오는 길에도 전세기로 올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선수단과 코치진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 대신, 평소 자신들이 이용하던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반나절 이상 걸리는 고된 길이 예정되었지만, 모두가 그 순간을 즐기고자 했다. 웹스터는 자신들을 응원하기 위해 이스트레이크까지 먼 길을 달려 찾아온 가족과 동문이 있어서 행복했다면서 팀 동료들과 헤어지기 전에 누릴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을 즐겁게 보냈다고 말했다.
와이스버그 감독의 아들이자 버밍햄-서던에서 후보 선수로 뛴 3학년 유틸리티 JT 와이스버그는 경기가 팽팽해진 순간 승리나 패배에 대한 생각보다 동료들과 하루만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3주 동안 경험한 순간들이 챔피언이 되는 것보다 더 소중하다고 덧붙였다.
< 마지막 버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버밍햄-서던 선수단 >
6월 3일 밤 10시 40분. 선수단이 이제는 문이 닫혀버린 학교로 돌아왔을 때, 그들을 환영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아무도 폐교에 사전 허가 없이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 관계자가 남긴 버밍햄-서던 야구부의 마지막 모습에는 아쉬움과 즐거움이 함께 묻어나왔다.
인생은 고통과 불확실이 함께 한다
버스에 내려 와이스버그 감독은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소회를 밝혔다. 와이스버그 감독은 선수들이 버밍햄-서던의 마지막 여정을 거치면서 인생에서 사필귀정의 정신을 배운 점이 가장 큰 교훈이라고 답했다. 그는 인생은 고통과 불확실함이 항상 곁에 있기 때문에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계획을 잘 세우고 그 길을 잘 따라간다면 결국 잘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버밍햄-서던의 ‘마지막’ 선수들과 코치들은 아직 자신들의 미래를 정하지 못했다. 웹스터는 인터뷰에서 당분간은 새로운 자리를 찾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고, 와이스버그 역시 다음 자리를 정하지 못했다.
버밍햄-서던은 학교 측의 방만한 경영으로 선수들과 코치진에게 절망을 안겨줬지만, 정작 그러한 절망의 당사자였던 선수단과 코치진은 스스로를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버밍햄-서던의 일원으로 아무나 할 수 없는 도전을 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자기 자리에서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
버밍햄-서던의 이야기는 폐교 직전의 학교를 동아리 활동으로 구해낸 만화 이야기와는 다르게 비극으로 끝났지만, 많은 사람에게 잔잔한 감동과 영감을 줬다. 이들의 이야기는 탑스에 의해 한정판 야구 카드로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머지 않아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상영될 예정이다. 오래오래 기억될 이야기가 탄생한 것이다.
P.s. 2024년 .340/.435/.515 49경기 200타수 68안타 7홈런 42타점을 기록한 더튼 선수는 2025년 동생인 새뮤얼 더튼과 함께 앨러배마에 있는 D1 명문 중 하나인 오번으로 전학해 선수 생활을 이어갈 예정이다.
참고 = Denison Sports Network, NCAA, AP News, BSC Athletics, AL.com, ESPN, GoFundMe, Old Row Sports, ABC 33/40, Birmingham Watch, 나무위키, Topps
야구공작소 이금강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송준형, 전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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