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도 시장이다(3) – 야구장에서 야구만 보고 가실 겁니까?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서한 >

2023년 11월 24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렸다. 당시 허구연 KBO 총재는 스포츠계의 문제점으로 청소년기 적은 스포츠 활동, 스포츠 산업화, 그리고 국외로 유출되는 자금(관련글) 등 세 가지를 꼽았다.

이 중 스포츠 산업화에 집중해서 논의를 진행해 보자. 스포츠가 산업화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3, 4차 산업과 같이 산업을 분류할 때는 기술 발전이 기준이 된다. 기술 발전은 새로운 상품을 의미하고, 새로운 상품은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의미한다. 이처럼 스포츠가 산업화되면 스포츠 시장에서 새로운 상품이 생긴다. 상품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수익은 산업이 발전하는데 좋은 촉매가 된다.

이전 연재에서 산업화 흐름에 변화한 스폰서십, 구장 명명권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번에는 복합용도개발을 한 야구장에 대해 알아보자.

 

야구장은 야구만 보는 곳인가?

텍사스 지역은 여름에 매우 덥다. 한 시간을 달려와서 야구만 보고 가기에는 팬들이 느끼는 기회비용이 컸다. 팬 동원력을 높이기 위해 구장을 방문할 이유를 추가로 제공할 필요가 있었다. 2015, 2016년 마침 좋은 성적을 낸 텍사스 레인저스는 Cordish Company의 지원으로 Texas Live!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Texas Live!는 여러 행사를 위해 탈바꿈할 수 있는 돔구장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복합단지를 추구했다. 식당가, 공연장, 일일 행사장뿐만 아니라 호텔이나 주거 시설까지 갖췄다. 사무 공간도 마련되어 지역 경기 부흥에 도움을 주었고, 팬들도 한 시간의 이동이 아깝지 않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 Texas Live! 내부 모습 >

우리나라는 미국에 비해 땅도 작고 대중교통이 잘 되어 있는데 굳이 이런 부분을 고려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미국과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베이스볼 드림파크는 대전 구도심에 위치할 예정이다. 부지 문제로 골머리를 앓다가 접근성이 문제인 현재의 홈구장 바로 옆에 지어진다. 이처럼 좁은 국가에서 야구장을 짓기 위한 넓은 부지와 접근성을 모두 충족한 장소를 구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만일 넓은 부지를 찾기 위해 접근성을 포기하는 결정을 한다면 장거리를 달려오는 팬에게 야구장을 찾을 이유를 추가로 제공해야 한다. 이 해답은 Texas Live!와 같은 복합용도개발이다. 야구장을 이제는 야구보는 공간으로 인식해야 한다.

 

복합용도개발(mixed-use development)이란?

복합용도개발은 도시 계획과 관련된 단어다. 주거, 상업, 문화, 교통, 사무 을 하나의 건물 또는 거리에 위치시키는 것을 말한다. 과거에는 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모든 시설이 가까운 거리에 위치할 수 밖에 없었다. 교통이 발달하면서 주거 가능 범위가 늘어났고 잠시 복합용도개발은 잊혀졌다. 하지만 다양한 수요를 한 장소에서 동시에 해결하는 욕구가 늘면서 다양한 시설과 기능을 한 건물이나 거리에 모아 편의성을 높이는 복합용도개발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 트라야누스 시장 전경. 복합용도개발의 최초 사례로 불리는 고대 로마의 트라야누스 시장은 많은 가게와 주거 공간을 한 건물에 두었다 >

야구장에 이 개념을 적용해 보면 어떨까? 티켓, 음식(concession), 주차, 머천다이즈 등으로 수익을 창출했던 전통적인 방법과 달리 복합단지를 만들어 비스포츠 요인에서 수익 창출의 기회를 찾는 이다. 야구장을 시즌뿐만 아닌 365일 내내 사람들의 방문지(destination)로 인식하게끔 하는 것이 수익 창출의 시작이다.

야구장에 적용되는 복합용도개발은 출퇴근, 등하교 등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스포츠 공간’이라는 새로운 사회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팬에게 심어주는 것이 핵심이다. 스포츠를 통해 일상생활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을 선사하면 팬들은 자유를 느끼기 위해 야구장을 더 찾을 것이다. 팬들은 야구장의 분위기를 느끼고, 쇼핑을 하고, 공연도 보고, 다른 팬들과 함께 술도 한잔 하면서 다양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복합용도개발은 이론적으로 완벽하다. 하나가 쓰러지면 차례차례 쓰러지는 도미노처럼 복합용도개발을 하면 연쇄적인 효과가 생긴다. 락인효과(lock-in)로 유동 인구의 체류시간이 늘고, 주차, 티켓, 식사, 숙박 등 부가적인 비용을 지출할 기회가 늘어나며, 늘어난 매출은 새로운 야구 문화나 해당 지역의 발전을 위한 기금으로 쓰이면서 순환하는 발전 모형을 만들 수 있다. 

 

메이저리그의 구장은?

복합용도개발 개념을 적용하는 것은 새로운 발상이 아니다. 이미 몇 가지 사례가 있다.

  1.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Atlanta Braves)

야구장 최초 복합용도개발 사례다. 홈구장인 트루이스트 파크(Truist Park) 옆에 복합엔터테인먼트 단지인 배터리 애틀랜타(The Battery Atlanta)가 있다. 야구 경기 전후로, 또는 야구 경기가 없는 날에도 사람들은 이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Coca Cola Roxy 라는 공연장에서 음악이나 코미디 공연을 보기도 하고 스테이크를 썰며 와인을 즐기기도 한다. 게다가 야구장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수영장에서 놀면서 루프탑 바에서 운치를 즐긴다.

구장 관리를 위해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기도 했다. 가령 Comcast는 구장에 비디오, 음성, 인터넷 네트워크 등 최첨단 기술을 제공하고 반대급부로 배터리 애틀란타에 9층 높이의 사무실을 얻었다.

야구장과 복합단지를 결합하는 프로젝트는 팬뿐만 아니라 기업도 유인하여 지역을 활성화한다. 부동산의 가치가 상승하고, 기업 입주로 일자리도 창출되며 구단의 수익성에도 도움이 된다.

  1.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San Diego Padres)

복합용도개발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는 다른 장소는 홈구장인 펫코 파크(Petco Park)다. 일반적으로는 야구장과 함께 들어설 주변 쇼핑몰, 호텔 등 복합 단지를 동시에 계획한다. 반면 펫코 파크 주변은 구장 완공 이후 인접한 이스트 빌리지에 ‘도시계획’의 이름으로 복합단지를 조성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도시계획의 결과, 14,000개의 오피스가 생기고 15,000개의 주거 공간이 마련되었다.

펫코 파크 주변 Gaslamp 다운타운에서는 경기 전후로 술을 마시기도 한다. 티켓이 없는 사람은 다운타운 식당에서 경기를 관람하기도 한다. 외야 뒤쪽에는 갤러거 광장(Gallagher Square)이 있어 경기장 내부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청라돔도 뒤처지지 않는다

우리나라 야구장은 다양한 먹거리, 응원 문화 등 특색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하지만 야구 경기가 끝나면 다수의 팬들은 집에 가기 바쁘다. 평일에는 다음 날 출근 문제가 있더라도 주말만큼은 팬을 경기장 주변에 머물게 할 방법은 없을까? 우리나라 야구장 특색을 유지하는 동시에 경기 전후 문화를 미국의 장점을 차용해 보자는 것이다.

< 셀레브레이션 에비뉴 조감도. 셀레브레이션 에비뉴는 구단과 선수 모습이 담긴 화면으로 둘러싸여 있다 >

야구팬에게 ‘청라돔’으로 알려진 스타필드 청라 계획이 그렇다. 신세계그룹이 운영하는 복합쇼핑몰인 스타필드와 야구장이 함께 들어선다. 야구장에 복합용도개발 개념을 잘 적용한 국내 사례다. 야구장은 공연장 용도도 고려하여 설계된다. 야구장 뷰를 가진 국내최초의 호텔도 마련한다.

국내 구단은 기업과의 연계성이 크기 때문에 팬은 곧 모기업의 충성 고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신세계그룹 정용진 회장은 ‘유통업의 경쟁상대는 야구장’이라고 언급한 적 있다. 셀레브레이션 에비뉴를 거닐다 보면 야구단의 구성원이 된 듯한, 혹은 다른 팬들과 감정을 공유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이는 구단과 구장, 그리고 스타필드의 일체성을 강조하여 경쟁상대의 주 고객을 신세계의 고객으로 포섭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이처럼 구단 운영과 모기업의 쇼핑몰 사업을 연계하여 설계한 복합시설은 구단 홍보, 팬 만족을 넘어 구단 적자 운영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결정이다.

 

모델은 항상 성공적인가?

텍사스 레인저스의 팬 동원율은 Texas Live!가 개장한 2018년 이후 크게 달라지지 않고 오직 2023년 우승 시즌에만 크게 뛰었다. 이를 근거로 복합용도개발의 효과를 의심할 수 있다.

하지만 팬 동원율이 다는 아니다. (관련글) 관중 수가 줄어도 인당 소비를 늘리면서 구단 측에서 경제적인 이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합용도개발로 고차원의 가치를 관중에게 제공하고 가치에 걸맞는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팬 동원율을 유지했다는 것만으로도 투자는 성공적일 수 있다.

신선한 새로움이나 과감한 투자를 통해서 일상생활에서 독립된 스포츠 커뮤니티, 즉 새로운 사회로의 도피를 팬들이 느끼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자체, 구단, 모기업 모두가 모두를 즐겁게 하는 야구장 환경을 어떻게 구성할 지 열린 마음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은 바로 지금이다.

 

야구공작소 유승우 칼럼니스트

참고 = Texas Live!

에디터= 야구공작소 조훈희, 민경훈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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