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 = FixaHive.com >
지난 10월, 허구연 KBO 총재는 2023 국정감사에 출석해 다양한 질의에 응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허 총재는 짧은 답변 중 스포츠토토 활성화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일단 화제는 모았다. 도박 문화에 보수적인 한국 사회 시선에도 KBO 총재가 총대를 멘 덕분이다.
그렇다면 허 총재가 언급했듯이 스포츠도박에 대한 규제가 완화된다면 야구계, 그리고 스포츠산업 전반에 어떤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혹은 스포츠도박의 활성화가 많은 문제점을 가져오지는 않을까? 허 총재가 간단하게 설명하고 넘어간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자.
메이저리그의 스포츠도박 도입 배경
스포츠 산업의 메카인 미국에서 스포츠도박이 활성화된 시점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18년 전까지 미국은 원칙적으로 스포츠 베팅을 불법으로 취급했다(미 전역에서 4개 주만 허용). 미국이 스포츠 베팅을 전면 합법화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지나치게 큰 시장 규모로 인해 승부조작의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특히 메이저리그는 ‘블랙삭스 스캔들’을 비롯한 여러 승부조작 사건을 겪은 바 있다. (블랙삭스 스캔들을 아시나요?)
그런데 2018년 5월,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국가가 스포츠도박을 허가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인 ‘프로·아마추어 스포츠 보호법(PASPA)’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후 각 주마다 스포츠도박 허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됐다.
스포츠도박 사업이 허용되자 미국 내 여러 구단과 사무국은 합법 스포츠도박 업체와 계약을 맺고 광고, 혹은 구장 내에 스포츠도박 소매창구(Sportsbook이라 일컫는 발권 창구)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구단들에 앞서 가장 먼저 스포츠도박 업체에 공식 로고와 경기 데이터 등을 제공하고 수익 일부를 가져가는 계약을 맺었다. 이후 시카고 컵스가 홈구장 리글리 필드에 메이저리그 사상 처음으로 ‘스포츠 도박 창구’를 설치하는 계약을 맺으면서 다른 팀들도 스포츠도박 업체를 유치하기 시작했다.
< 2023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7차전 중계 화면에 등장한 스포츠도박 관련 지표 >
메이저리그 야구장에서 베팅을 즐기는 방법
그렇다면 야구장에 설치된 스포츠도박 창구는 어떻게 즐길 수 있을까? 메이저리그 팀 중 스포츠도박 소매업장 설치를 가장 먼저 계약한 곳은 컵스의 리글리 필드였지만, 실제 운영을 처음 시작한 곳인 워싱턴의 내셔널스 파크 운영 방식을 살펴보자.
< 내셔널스 파크 내 스포츠도박 창구 >
내셔널스 파크에서 운영되는 스포츠도박 창구는 사진 속 오프라인 창구와, 휴대폰으로 접속할 수 있는 모바일 창구로 나뉜다. 스포츠 바 형태로 된 오프라인 창구에서는 키오스크를 통해 농구, 야구, 미식축구, 하키, 축구 등 다양한 종목에 각 경기 시작 직전까지 베팅할 수 있다.
모바일 창구의 경우, 구단과 계약을 맺은 스포츠도박 업체가 전용 모바일 앱을 통해 야구장을 기준으로 일정 구역 내에서 베팅할 수 있게 설정했다. 해당 모바일 앱은 내셔널스 파크가 위치한 워싱턴 D.C. 전역에서 접속할 수 있지만, 베팅은 내셔널스 파크로부터 두 블록 내에서만 가능하다.
또한 내셔널스 파크 인근에서 제공되는 모바일 베팅은 다양한 베팅 옵션(초구 스트라이크 유무 등)을 경기 중에 제공하면서 경기가 시작되면 베팅을 하지 못하는 오프라인 창구와 차별점을 둔다.
스포츠도박 활성화가 불러온 파급 효과
다만 도박 시장이 커지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프로 스포츠 선수들의 도박 참여는 불허됨에도 지난해 4월 미국프로축구(NFL) 소속 선수 다섯 명이 NFL 경기에 베팅한 혐의로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불법 스포츠도박 억제 측면에서는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포츠도박이 허용되기 전인 2017년, 미국 게임 협회는 미국 내에서 불법 스포츠도박에 매년 약 1,500억 달러가 베팅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후 스포츠도박이 허용된 뒤 발표된 2019년 자료에 따르면 합법 스포츠 베팅이 가능한 주에서 불법 마권업자에 대한 평균 지출이 25% 감소한 반면, 합법 온라인 및 모바일 베팅 지출은 1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링크)
같은 보도자료에서 미국 게임 협회 회장인 빌 밀러는 “규제된 모바일 서비스와 경쟁력 있는 배당률 등 불법 (스포츠도박) 시장보다 편리한 대안을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이 스포츠도박 참가자들이 합법적인 베팅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핵심입니다.”라고 설명했다. 합법 스포츠도박으로 이용자들을 유도하려면 불법 스포츠도박 업체에 뒤처지지 않는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시사점
아마추어 경기에도 베팅을 허가하는 등 미국과 메이저리그의 사례가 완벽하게 긍정적인 면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정 수준의 규제 완화를 통해 합법 스포츠도박을 활성화함으로써 불법 스포츠도박 시장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이러한 점은 불법 스포츠도박이 사회 문제로 떠오른 국내에서도 고려할 가치가 있다.
국내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국내에서 적발된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의 수는 중복을 제외하고 1,895개로 나타났다. 하지만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는 그 특성상 직접적인 피해자가 없는 범죄의 성격을 띠어 통계에 집계되지 않는 범죄의 암수가 큰 규모로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2022 사행산업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재작년 합법 스포츠토토의 매출액은 약 5조 8천억 원이었다. 이에 반해 불법 스포츠도박의 추정 규모는 약 21조 1천억 원으로 약 3.6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 스포츠토토와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의 운영방식 차이 >
‘불법 스포츠토토를 선택하는 이유와 경험적 의미 탐색’ 연구에 따르면, 불법 스포츠도박에 참가하는 이유로는 단순한 재밋거리, 무(無)제약성, 해외사이트의 이점 등이 제시됐다.
단순한 재밋거리란, 불법 스포츠도박의 특성에 기반해 빠른 속도로 이뤄지는 도박 과정에서 합법 스포츠토토에 비해 흥미의 차이가 크다는 뜻이다. 스포츠토토 야구 종목의 경우 단일 경기 구매를 일부 지원하는 프로토 승부식을 제외하면, 최소 2경기~최대 14경기, 혹은 한 경기의 홈런 여부 및 최종 점수까지 예측해야 한다. 난이도가 높고 경기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에 비해 불법 스포츠도박의 경우 초구 스트라이크 유무 등 경기 중에도 다양하고 직관적인 게임을 제공해 흥미가 높다고 설명한다.
또한 도박 과열, 과몰입 방지를 위해 여러 제약이 걸린 합법 스포츠토토에 비해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는 설정 가능한 배당금이 높고 참가를 위한 제약이 적다. 그 덕분에 원하는 만큼 쉽게 베팅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이용하는 이유로 꼽혔다. 접근성이 좋다는 온라인 합법 베팅 사이트 ‘베트맨’도 원칙적으로 데스크탑 PC로만 베팅할 수 있다. 휴대폰으로 참가하기 쉬운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에 비해 접근성이 떨어진다.
국내 불법 스포츠도박 업체의 장점 대부분은 앞서 설명한 내셔널스 파크의 모바일 베팅 시스템이 가진 특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도 개선을 통해 국내 프로스포츠 경기장에서도 베팅에 참여할 수 있다면 불법 스포츠도박 시장을 억제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보인다.
실제로 코로나19가 대유행하던 2021년, 경륜과 경정 종목은 법률 개정을 통해 모바일로도 체육진흥투표권 구입이 가능해졌다. 이때 단일 경주 베팅 한도는 50%로 축소됐으나 접근성이 개선된 덕분인지 2022년 경륜·경정 종목 스포츠투표권 매출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스포츠토토가 지향하는 ‘소액으로 건전하게’의 모토에도 한 걸음 가까워진 결과다.
제언
도박 업체와 스폰서십 계약 또는 경기 데이터를 제공하면서 직접 수익을 올리는 미국의 구단 및 사무국과 국내 사정은 다르다. 한국 스포츠토토는 체육진흥투표권의 상금 환급금과 위탁운영비를 제외한 수익금(매출액의 30% 내외)을 ‘국민체육진흥기금’으로 편성한다. 과거에는 프로스포츠 종목별 판매 비중에 따라 각 경기 주최단체에 직접 배분했다. 그러나 2014년부터는 국민체육진흥기금으로 편성해 프로스포츠 주관 단체뿐만 아니라 프로스포츠가 활성화되지 않은 종목까지 지원하고 있다. 2020년 기준 주최단체지원금으로 편성된 약 1,567억 원 중 약 362억 원이 스포츠투표권을 발행하지 않는 비발행대상종목을 지원하는 데 쓰였다.
또한 2021년 기준 국민체육진흥기금(1조 7,594억 원)의 약 90.7%는 체육진흥투표권(1조 5,958억 원) 수익으로 조성됐다. 국내 합법 스포츠도박 시장의 3배가 넘는 불법 스포츠도박 자금을 제도권으로 흡수한다면 아직 재정 자립이 어려운 프로스포츠 업계를 비롯해 금전적인 지원이 절실한 국내 체육계 전반에도 큰 도움이 될 여지가 보인다.
승부조작, 도박 중독 등 다양한 문제가 우려되는 스포츠도박의 활성화는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대만, 일본, 미국, 그리고 우리나라 야구계는 불법 스포츠도박으로 인해 많은 홍역을 치렀다. 이로 인해 국내에서 사행산업은 터부시되는 경향이 크다.
그러나 단순히 꺼려진다는 이유로 음지를 외면한다면 불법 스포츠도박 시장이 계속해서 국내 스포츠산업을 갉아먹으며 성장하는 것을 방관하는 것과 같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의 수요를 줄여야 한다. 즉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의 이용자들이 합법 스포츠토토로 전환할 충분한 동기를 사행산업 운영 주체가 제공해야 한다고 본다. 스포츠도박에 대해 보수적으로 접근했던 미국의 사례를 교과서 삼아, 국내에서도 건전한 스포츠도박 활성화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오가길 바란다.
참고 = MLB.com, 미국 게임 협회, 스포츠토토코리아,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이정래, 홍지영, “불법 스포츠토토를 선택하는 이유와 경험적 의미 탐색.” 한국체육학회지.
야구공작소 김민준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도상현, 전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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