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버 제도, 선수들은 동의했는가?(1) – 현재의 웨이버 제도가 최선인가?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서한 >

일반적인 취업 준비생은 희망 기업을 골라 지원해 입사를 노린다. 드래프트로 프로 무대에 들어오는 선수들은 어떨까? 원하는 회사에 입사 의사를 표현할 수 없을뿐더러 가장 실력이 출중한 인재가 가장 성적이 좋지 않은 직장으로 가게 되구조다. 이처럼 선수는 처음부터 직업 선택의 자유나 각종 권리를 박탈당하고 리그에 들어오게 된다. 

심지어 자유가 박탈당한 선수는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구단을 떠나게 될 수도 있다. KBO가 규정한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팀은 선수를 웨이버 공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웨이버 공시는 리그 내 선수들의 움직임과 팀의 구단 운영에 요긴하게 쓰이는 제도다.

KBO리그의 웨이버 제도를 들여다보면 규정 해석만으로는 선수 권익이 침해될 여지가 있다. 또한 타 리그 제도와 비교해 보면 KBO리그 웨이버 제도의 선수 권익 보호법에 대한 혜안을 얻을 수 있다. KBO리그 웨이버 제도의 규정은 어떠한가? 해당 제도가 침해할 수 있는 선수 권익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웨이버 공시란?

2023 KBO 야구 규약 제93조는 구단이 참가활동기간 중 구단의 사정과 선수의 상병으로 소속 선수와의 선수 계약을 해지하거나 포기하고자 하는 경우 야구 규약의 절차(제94조, 제95조)에 따라 다른 구단에 당해 선수계약을 양수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이는 선수에 대한 ‘권리포기’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구단이 소속 선수와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서한 >

KBO리그 웨이버 제도는 웨이버 공시 후 7일 이내에 위 일러스트의 세 가지 옵션 중 하나의 상황은 만족하게 된다. 어느 팀으로든 이적하게 되면 선수에 대한 권리와 의무가 이전된다. 즉 전 소속 구단과 맺은 선수의 계약조건이 그대로 양수 구단으로 넘어간다. 연봉과 계약기간, 부수비용 등은 그대로 양수 구단이 모두 책임져야 한다.

이 절차는 KBO 규약의 제89조 양도의 공시 규정을 따른다. 또한 웨이버를 거부해서 임의해지 선수가 되면 잔여 연봉을 보장받지 못한다. (야구 프로스포츠 표준계약서 제7조 제5항) 무엇보다도 웨이버 공시는 선수와 상의가 없더라도 구단이 총재에게 일방적으로 신청하면 시작된다. (2023 KBO 야구 규약 제94조 제1항)

 

웨이버 제도는 왜 필요할까?

모든 프로 스포츠 리그는 구단 간 균형을 유지하면서 팀 간 실력 차를 줄이고 동시에 리그의 수준을 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흔히 스포츠 리그는 수익 공유(revenue sharing)와 샐러리 캡(salary cap)으로 소위 돈 많은 팀 간의 치킨 게임을 방지하고 그렇지 않은 팀과의 격차가 너무 커지지 않게끔 유도한다. 경기의 흥미를 유지해야 하는 스포츠 리그 특성상 구단과 선수의 계약은 많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웨이버 공시는 이런 연유 아래 구단에 주어진 일방적인 계약 해지권이다. 선수의 부상, 기량, 사생활 등으로 구단의 수준이나 이미지가 저하되는 상황을 몇 년간 방치할 수는 없기에 사무국이 구단에 제공한 게 웨이버 공시다. 또한 선수 입장에서도 구단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즉시 실직하는 것이 아닌 다른 팀에 의사를 묻고 다시 야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절차로 이용되기도 한다.

 

웨이버 제도의 실현 양상

MLB와 비교해 보자. MLB 웨이버 제도 이용은 KBO리그와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는 MLB에 있는 마이너리그 옵션(이하 옵션)에서 기인한다. KBO리그에서 1군 선수를 퓨처스 리그로 내릴 때 별다른 제약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달리 MLB는 선수에게 옵션이 있어야만 마이너리그로 보낼 수 있다. 그렇기에 일정 조건이 충족되어 옵션이 소진된 선수는 아무리 성적이 안 좋아도 즉각적으로 마이너리그로 보낼 수 없다.

이때 옵션이 없는 선수를 마이너리그를 보내고 싶은 경우 웨이버 공시를 이용한다. 엄밀히 말하면 지명할당이라고 칭하는 DFA(Designated For Assignment)를 거쳐서 40인 로스터에서 선수를 제외할 수 있다. 그 후 옵션이 없는 선수를 강등시키기 위해서 웨이버 공시를 이용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또한 MLB 선수는 메이저리그 서비스 타임 5년을 채우게 되면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얻게 되어 팀 자의만으로는 마이너리그에 갈 수 없게 된다.

< 2023시즌 MLB 웨이버 공시 예시 >

하지만 KBO리그에서는 1군 선수가 퓨처스 리그에 내려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부상, 실력, 휴식 등 다양한 사유로 가곤 한다. 퓨처스 리그로 내려보내기 위해 웨이버 제도를 이용할 필요가 없다.

KBO리그에서는 단순히 구단의 사정, 선수의 상병으로 인한 선수에 대한 권리 포기로써 웨이버 제도를 이용한다. 가령 과거 한화 이글스는 대대적인 팀 리빌딩을 통해 감당하기 어려운 선수단 크기와 고령화된 팀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2015년에 5명, 2016년에 6명, 2017년에 6명, 3년간 총 17명의 선수를 시즌 중 웨이버 공시했다. 대부분은 30세 이상 베테랑들이었다. 포수 조인성, 외야수 추승우, 투수 마일영, 송신영 등 야구를 이 시기에 본 팬은 대부분 알 만한 이름들이다. 총 17명 중 2명(내야수 전현태, 김태완)만이 웨이버 공시를 통해 팀을 찾았다. 다른 이들은 방랑자 신세가 되거나 은퇴를 선언했다.

또한 코로나 시기 각 구단은 관중 축소, 리그 개막 지연 등으로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각 팀은 약 10명씩 웨이버 공시해 선수단 축소를 꾀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선수들이 직장을 잃었다. 당시 한화 이글스 외야수 이용규가 현 키움 히어로즈로 이적하는 사례도 있었지만, 최강야구에서 활약하고 있는 정근우, 박용택, 김문호도 이 시기에 웨이버를 통한 방출로 은퇴했다.

KBO는 웨이버 공시에 선수의 상병이나 구단의 사정 등 제한을 두어 구단의 일방적인 해고를 막고 있다. 하지만 위 사례로 미뤄 보면 구단의 사정이라는 건 해석하기 나름이다. 따라서 제한의 실효성이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대외적으로는 웨이버 공시를 하여 선수에게 타 팀에서 재도전할 기회를 주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구단 입장에서는 선수를 방출하기 위해 이용하는 것이다. 특히 국내 선수와 팬들에게는 웨이버 제도가 다시 도전할 기회보다는 방출의 의미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웨이버 제도는 선수 권리를 최소한으로 침해하는가?

MLB는 메이저리그 팀과 마이너리그 팀이 하청 관계 같은 구조로 계약을 맺고 있다. 선수가 웨이버 제도를 통해 메이저리그 팀에서 나가게 되더라도 마이너리그 팀과 계약을 맺을 수 있다. 비교적 KBO리그보다 직장을 한순간에 잃을 확률이 낮다. 하지만 1군과 2군이 한 팀으로 운영되는 KBO 리그 구조상 웨이버 공시가 되는 동시에 2군의 가능성은 전무하다. 선수를 원하는 팀이 존재하지 않으면 실직의 위기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또한 마이너리그 옵션이나 거부권과 같이 선수의 지위에 불안정함을 덜어내 주는 조항은 KBO 규약에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질문 하나를 던져볼 수 있다. 선수에게는 일반 직장인처럼 자신의 직장을 선택할 권리가 있을까? 있다면 웨이버 제도는 선수의 권리를 침해하는 제도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구조적으로 선수가 최초 구단을 선택하지 못하거나 타의로 소속팀이 바뀌는 것은 헌법 제15조에서 규율하는 모든 국민이 누려야 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한다. 대표적인 예시가 드래프트 제도지만 더 깊은 논의는 진행하지 않겠다. 직업 선택의 자유는 물론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된다는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제한될 수 있다. 이는 비례성 원칙을 따라 제한되어야 한다. 간단하게, 기본권을 제한하는 수단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적합하다면 침해되는 법익이 가장 작은 대안을 선택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웨이버 제도에서 선수는 기존 팀의 선택에 따라 소속팀이 사라지거나 바뀐다. 이때도 선수 개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려면 침해 법익을 최소한으로 제한해야 한다. 

그렇다면 웨이버 제도는 법익을 최소한으로 침해하고 있는가? 웨이버 공시가 되면 선수에게는 재취업의 기회가 되고, 본인이 웨이버를 거부하지 않는 한 원하는 팀이 없더라도 잔여 연봉을 보장받는다. 잔여 연봉은 규약에 따라 웨이버 공시된 후 기간에 대한 연봉을 지급해야 한다는 야구 프로스포츠 표준계약서 제22조 제2항의 본문을 따라 구단이 선수에게 지급해야 한다. 이때 당해 연봉뿐 아니라 FA를 통해 다년 계약을 맺은 경우엔 그 기간 연봉까지 지급해 줘야 한다.

예를 들어 2017년 웨이버 공시됐던 KT 위즈 김상현은 양도가 되지 않아 자유계약선수가 됐다. KT 위즈는 김상현의 과거 임의탈퇴 기간을 제외한 연봉을 부담하게 됐던 사례가 있다. 또한 선수는 팀 자의로 진행되는 트레이드나 웨이버를 거부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 직업 선택의 자유가 일부 보장되는 것처럼 보일 여지가 있다.

선수들은 구단에 남고자 할 때는 소극적인 방법으로 직업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웨이버를 거부해 임의해지선수가 되거나 FA 조건이 충족됐을 때 FA 신청을 하지 않는 방법 등이 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실현될 수도 있는 여지가 있다. 메이저리그의 10-and-5 rights는 한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10년을 뛰거나 한 구단에서 5년 이상을 보냈을 시에 선수에게 트레이드 거부권을 주는 권리다.

이처럼 적극적으로 선수들의 권리를 보호해줄 방법이 있음에도 KBO리그에는 이런 제도가 없다. 모든 팀은 선수들과 소통, 기업과 구단의 이미지를 위해 최대한 도의적으로 선수들을 대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규정을 해석해 보면 구단과 리그에게 선수의 권리를 자유로이 침해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웨이버 제도, 선수들은 동의했는가?(1) – 현재의 웨이버 제도가 최선인가?

참고 = KBO 야구규약, MLB.com, 민법, 헌법

야구공작소 유승우 칼럼니스트

에디터= 야구공작소 한민희,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서한

야구공작소. 출처 표기 없는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상업적 사용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Be the first to comment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