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연재물은 ‘KBO 박스스코어 프로젝트’와 함께 합니다.
김성근 감독은 1982년부터 2017년까지 몇 시즌을 제외하면 항상 KBO 리그의 현장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김 감독 본인이 코칭스태프를 거친 팀만 해도 OB 베어스를 시작으로 태평양 돌핀스, 삼성 라이온즈, 해태 타이거즈, 쌍방울 레이더스,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그리고 한화 이글스까지 무려 8팀이다. 원년 6팀 중 5팀에서 코칭스태프로 일했고, 1986년 이후 생긴 6개의 신생팀 중에서도 3팀을 거쳐 갔다. 그야말로 KBO 리그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은 유독 한 팀과는 오랜 시간 인연을 맺지 못했다. 바로 원년 참가 구단 6개 중 하나인 롯데 자이언츠다. 이른바 ‘본캐’라고 불리는 일본프로야구(NPB)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순회코치를 맡은 적이 있기는 했으나 정작 한국 롯데에서는 감독은 물론이고 코치를 비롯해 어떠한 역할도 맡은 적이 없다.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여러 이유가 나오고 있지만, 이유야 어찌 됐건 김성근 감독은 롯데는 물론이고 과거 동아대학교에 잠시 다닌 것을 제외하면 부산과는 전혀 인연을 쌓지 못했다.
오히려 김성근 감독이 맡았던 팀은 롯데와는 악연에 가까운 사이다. 삼성 감독 시절인 1991년과 1992년, 2년 연속 준플레이오프에서 맞붙기는 했지만 이전까지 큰 접점이 없었던 김성근 감독은 SK 감독으로 부임한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롯데의 악몽’으로 등장했다. 부임 첫해 압도적으로 밀린 상대전적(SK 14승 4패 우세)에 빈볼 시비까지 불거지면서 두 팀의 사이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오죽하면 당시 강병철 롯데 감독은 SK의 자극적인 플레이에 대해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대놓고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후로도 김성근 감독은 꾸준히 롯데와 안 좋은 기억만 만들었다. 2008년에는 제리 로이스터 감독 선임과 관련해 “한국야구와 미국야구의 대결이다”라며 대결 구도를 만들었고, 2009년에는 본인이 직접 관련되지는 않았지만 SK가 조성환의 부상과 박재홍-김일엽 벤치 클리어링 등으로 1년 내내 롯데와 으르렁거렸다. 그해 7월에는 로이스터 감독이 SK전에서 10점 차로 크게 리드하던 9회 말 2아웃에서 투수를 교체하며 ‘김성근 감독 저격’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 갈등은 2010년에도 이어져 이른바 ‘모래알 발언’, 그리고 시즌 후반부 사인 훔치기 논란으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김성근 감독이 2011년 8월 SK 지휘봉을 놓게 되면서 한동안 악연이 끊기기는 했지만 2015시즌을 앞두고 한화 감독으로 현장에 돌아오자 일각에서는 ‘과거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전년도 CCTV 사찰 사건으로 내홍을 겪었던 롯데는 시즌 시작 전까지 김성근 감독 영입으로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한화와 엮일 일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시즌은 시작됐고, 롯데와 한화는 4월 10일부터 12일까지 사직야구장에서 시즌 첫 맞대결을 펼치게 된다.
첫날 경기부터 두 팀은 치열한 일전을 펼쳤다. 롯데는 0대 2로 뒤지던 4회 말 정훈의 스리런으로 경기를 뒤집었고, 5회 말에도 5점을 추가하면서 경기를 가져가는 듯했다. 하지만 한화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8회 초 최진행의 2루타로 한 점을 따라간 한화는 9회 초 롯데 이명우의 갑작스러운 강판을 틈타 무려 5점을 올리면서 스코어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결국 연장전으로 이어진 경기에서 한화는 11회 초 김태균의 솔로포로 9대 8 역전에 성공했고, 권혁의 51구 투혼 속에 11회 말 수비에서 주자를 내보냈지만 2아웃까지 잡았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한화는 투수를 송은범으로 교체했고, 송은범은 1구 만에 장성우에게 끝내기 투런포를 허용하며 경기를 허무하게 내줬다.
그런데 끝내기 홈런이 나온 직후 양 팀의 주장인 최준석(롯데)과 김태균(한화)이 그라운드에서 신경전을 펼쳤다. 김태균은 전광판을 가리키며 무언가를 말했고, 최준석은 심각한 표정으로 김태균의 말을 들었다. 경기 내용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행동에 팬들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오갔다. 여러 이야기가 나왔지만 다음날 중계방송사에 의해 밝혀진 내용은 ‘불문율’에 관련된 것이었다. 10일 경기에서 롯데는 8대 2로 앞서던 6회 말 무사 2루에서 하준호에게 희생번트를 지시했다. 이어 2아웃 상황에서 2루 주자 황재균이 3루 도루에 성공했다. 한화 입장에서는 ‘큰 점수 차에서는 번트나 도루를 하지 않는다’라는 야구계의 불문율을 롯데가 어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이틀 뒤 폭발할 두 팀 간 갈등의 불씨가 됐다.
첫날부터 화끈한 승부를 펼친 두 팀은 3연전의 첫 두 경기에서 1승씩을 주고받았고, 결국 마지막 날 승부를 가리게 됐다. 양 팀은 외국인 투수 미치 탈보트와 조쉬 린드블럼을 내세우며 경기를 절대 내줄 수 없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경기는 초반부터 롯데가 압도적으로 치고 나갔다. 1회 말 시작과 함께 3타자 연속 안타로 선취점을 기록한 롯데는 정훈의 밀어내기 사구와 김대우의 만루홈런까지 나오면서 순식간에 6점을 올렸다. 이어 2아웃 후에는 오태곤이 안타로 출루한 데 이어 2루 도루에 성공했고, 다시 돌아온 황재균의 타석에서 적시타가 나오며 1회 말부터 7대 0으로 리드했다. 결국 한화는 선발 탈보트를 1회에 내리고 신인 김민우를 마운드에 올려야 했다. 롯데는 2회에도 정훈의 2점 홈런 등을 묶어 4득점, 2이닝 만에 10점의 리드를 안게 됐다. 한화는 2회 초 김태균의 솔로 홈런이 나오기는 했지만 롯데의 기세를 꺾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오태곤과 황재균의 도루가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었다. 이미 이틀 전 6점 차 상황에서 번트와 도루를 시도한 것에 대해 항의한 한화로서는 도발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었다. 물론 롯데 입장에서도 첫날 경기에서 6점의 리드를 2이닝 만에 날렸다는 변명을 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롯데가 일반적인 플레이를 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한화는 보복(?)에 나섰다. 4회 말 황재균의 세 번째 타석에서 한화 투수 김민우는 등 쪽으로 향하는 공을 던졌다. 당시 경기 해설자였던 박재홍마저도 “이 공으로만 본다면 고의성이 보인다”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황재균으로서는 화가 날 상황이었다. 꾹 참고 1루로 향하던 황재균은 김민우에게 사과하라는 몸짓을 했고, 1루수 김태균이 나와 황재균을 달래며 상황을 정리했다.
물이 99°C까지 오르게 된다면 1도만 올라도 끓게 된다. 그 1도가 다음 이닝인 5회 말 나오게 된다. 롯데는 5회 말 공격에서 바뀐 투수 이동걸에게 밀어내기 볼넷과 오태곤의 싹쓸이 2루타로 스코어를 15대 1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황재균의 타석에서 한화는 몸쪽으로 연거푸 2개의 공을 던졌다. 일반적인 몸쪽 투구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결국 이동걸의 3구가 황재균의 옆구리를 강타했고, 이미 빈볼을 던질 것으로 직감했던 황재균은 곧바로 마운드로 향했다. 이윽고 양 팀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오며 벤치 클리어링이 시작됐다. 2분 동안의 벤치 클리어링이 끝나고 심판진은 이동걸의 퇴장을 명령했다. 한화는 6회 이후 주축 선수인 김태균과 이용규를 경기에서 제외했고, 결국 경기는 롯데의 15대 3 대승으로 끝났다.
경기는 끝났지만 롯데와 한화의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이종운 당시 롯데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상대 팀에 피해를 주면 자신의 팀에도 피해가 간다는 걸 분명히 알아야 한다. 앞으로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오늘 경기만 넘기면 된다는 생각인가? 한화전은 앞으로 10경기나 넘게 남아있다. 앞으로 우리 선수를 가해하면 가만있지 않겠다”라며 사실상의 보복을 암시한 이종운 감독은 “야구로 승부하자”라는 말로 한화와 김성근 감독에게 경고를 날렸다. 24살이나 어린 감독이 선배 감독에게 공개적으로 비판을 쏟아내는 것은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이례적이었고, 당연히 화제가 됐다.
이에 김성근 감독은 “야구는 전쟁이 아니라 매너를 갖춘 스포츠다”라고 말하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김성근 감독은 “세상에 어느 감독이 고의로 몸에 맞는 공을 지시하나”라면서 벤치에서 빈볼 사인이 나왔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이종운 감독의 발언을 “예의가 아니다”라고 평가한 김성근 감독은 “선수가 맞는 빈볼만 아픈 게 아니다. 정신적 빈볼도 아프다”라며 세간에서 쏟아지는 비난에 대해서도 언급하기도 했다. 선수 사이의 갈등이 감독까지 번지면서 두 팀은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게 됐다.
결국 문제는 불문율에 대한 해석 차이였다. 타고투저 흐름이었던 2010년대 중반 상황에서 롯데는 확실히 리드하기 위해 1회 7점 차에서도 도루 사인을 냈고, 6회 6점 차에서도 번트 사인을 냈다. 이런 작전이 그동안 야구계에서 통용되던 불문율에 어긋났기 때문에 한화로서도 충분히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감정싸움이 감독까지 번지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측면도 분명 있다.
사건의 당사자였던 황재균은 6년 후 모 방송에 출연, 불문율에 대해 “정해진 게 없다. 상대방의 심기를 건들지 말아야 하는 것 정도만 안 한다”라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비슷한 시기 또 다른 당사자 중 한 명이었던 김태균 역시 황재균 빈볼 사건을 언급하며 “황재균이 큰 점수 차에서 도루를 시도해 선수단이 격분했다. 고참 선수들끼리 빈볼을 던지기로 합의했고, 내가 총대를 메겠다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빈볼 사건 이후로도 두 팀은 갈등을 이어갔다. 이종운 감독은 시즌 중 한화전에서 4점 차 리드를 잡자 주자에게 대놓고 X자를 그리며 도루를 하지 말라는 사인을 냈다. 에이스 린드블럼은 한화 외국인 투수 에스밀 로저스에 대해 언급했다가 활자를 통해 내용이 곡해되면서 곤란한 상황을 겪기도 했다. 이듬해 롯데가 조원우 감독으로 사령탑을 교체하고도 갈등은 계속됐다. 7월 하순 열린 사직 3연전에서 한화는 강민호를 상대로 집요하게 위협구를 던졌고, 롯데 역시 이용규에게 보복성 위협구를 2개나 던지며 앙금이 남아있음을 보여줬다.
PS. 황재균-이동걸 빈볼 사건이 일어난 지 2년 반이 지난 2017년 10월, 롯데는 준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있었다. 그해 5월 말 한화 감독직에서 물러난 김성근 감독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흐름은 롯데가 제일 좋다. 단기전을 치르는 데 좋은 투수가 있지 않나 싶다. 타자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라면서 3박자를 갖춘 롯데가 흐름을 탔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롯데는 준플레이오프에서 NC 다이노스에 2승 3패로 패배하면서 김성근 감독의 기대를 배반(?)했다.
[거인, 두 번째 스무살] 모아보기 (링크)
사진=롯데 자이언츠
야구공작소 양철종 칼럼니스트
ⓒ야구공작소. 출처 표기 없는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상업적 사용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