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연재물은 ‘KBO 박스스코어 프로젝트’와 함께 합니다.
KBO 리그는 2008년 대호황의 시대를 맞이했다. 11년 만에 400만 관중을 기록한 2007년의 분위기를 이어 LG 트윈스를 제외한 모든 팀의 평균 관중이 늘었다. 그러면서 1995년 이후 처음으로 500만 관중 시대가 돌아올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수년 동안 KBO 리그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현대 유니콘스 문제’가 신생팀 서울 히어로즈의 창단으로 해결됐고, 순위 싸움도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한동안 관중석을 떠났던 팬들이 하나둘씩 다시 야구장을 찾았다.
2008년의 우승팀은 SK 와이번스였다. 그러나 2008년의 흥행을 이끈 주역은 바로 롯데 자이언츠였다. 페넌트레이스를 4연승으로 시작한 롯데는 4월 한 달 동안 14승 10패를 거두며 순위 싸움의 핵으로 등극했다. ‘저러다 곧 예전처럼 떨어지겠지’라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롯데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6월까지도 5할 이상의 승률을 유지하며 ‘올해는 다르다’라는 평가를 이끌어 냈다. 새로 부임한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노 피어’ 정신이 선수단 전체에 깃들면서 전반적인 분위기가 달라졌다.
2007년 타선의 핵이었던 이대호와 박현승이 다소 부진했지만 카림 가르시아와 조성환 등 새로운(혹은 돌아온) 얼굴이 자리를 잡고 김주찬과 강민호 등이 타선의 중심으로 등극하면서 짜임새 있는 라인업이 만들어졌다. 투수진에서도 손민한-장원준-송승준-이용훈-마티 매클레리(후반기 조정훈)의 5선발이 톱니바퀴 맞물리듯 굴러가며 롯데 역사상 가장 안정적인 선발진을 구축했다. 비록 마무리 투수로 낙점받은 임경완이 ‘임작가’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으며 낙마하기는 했지만 ‘향운장’ 최향남이 임경완의 공백을 메우며 뒷문을 잠갔다.
이렇듯 2000년대 들어 최고의 시즌을 보낼 것 같았던 롯데는 7월 들어 시련에 빠졌다. 7월 둘째 주 6경기에서 1승 5패를 기록한 롯데는 다음 시리즈였던 KIA 타이거즈전도 2연패로 시작했다. 여기에 연패 기간 팀의 주장이었던 정수근이 음주 폭행 사건을 일으키며 이탈하는 악재가 겹쳤다. 하락세가 이어지는 와중에 하필 천적이었던 SK 와이번스를 만나면서 시즌 처음으로 5할 승률도 붕괴됐다. 예년 같았으면 7월 중순 올스타 브레이크가 찾아오면서 분위기를 추스를 수도 있었지만 2008년은 베이징 올림픽으로 인해 7월 말에야 전반기가 끝난 시즌이었다. 기나긴 7월을 보낸 롯데는 막판 4연승을 거두며 그나마 4위로 전반기를 마감했다.
이대호와 강민호, 송승준을 베이징으로 보낸 롯데는 후반기 반등을 위해 전열을 가다듬었다. 7월 퇴출된 매클레리를 대신할 외국인 투수로 멕시코 국가대표 출신의 데이비드 코르테스를 영입하며 약점이었던 뒷문을 보강했다. 정수근을 대신해 예비역 조성환이 새로 주장을 맡아 분위기를 다잡았고, 선수들도 한 달 가까운 휴식기 동안 체력을 보충하며 후반기를 준비했다. 베이징으로 간 세 선수도 고비마다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치며 건국 이래 최초의 남자 구기 종목 금메달의 수훈갑으로 등극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후반기를 시작한 롯데는 7월 중순의 그 롯데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몇 년 동안 롯데의 발목을 잡아 온 한화 이글스를 만나서 롯데는 3연전을 모두 가져왔다. 올림픽 결승전의 주역 류현진이 등판하지 못하는 사이 롯데는 올림픽의 영웅 이대호가 11타수 5안타 5타점으로 활약하며 시리즈를 롯데의 분위기로 만들었다. 홈으로 돌아온 롯데는 삼성 라이온즈를 만나서도 2연승을 거두며 52일 만에 3위에 복귀했다. 전반기 4연승에 더해 후반기 시작 후 5연승을 질주한 롯데는 1992년 세운 팀 최다 연승(9연승)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삼성 3연전 마지막 날, 롯데는 에이스 손민한을 투입하며 구단 역사상 최초의 10연승 도전에 나섰다. 그러나 수비진이 에이스를 도와주지 못했다. 2회 초 2루수 조성환의 실책이 발단이 된 무사 1, 3루 위기에서 손민한은 현재윤에게 적시타를 맞으며 먼저 한 점을 내줬다. 여기에 본인의 번트 수비 실수로 무사 만루를 만들었고, 박한이의 희생플라이가 나오면서 손민한은 2회 2실점을 기록했다. 3회에도 조성환의 아쉬운 수비로 선두타자를 내보냈고, 김창희의 내야 땅볼과 박석민의 적시타로 또다시 2점을 내줬다. 박석민은 4회에도 중전 적시타를 때려내며 손민한을 마운드에서 내렸다. 두 번째 투수 김일엽이 추가 실점을 하지 않으면서 스코어는 5대 0이 됐다.
이대로 경기가 끝났다면 ‘진격의 거인’이 아니었다. 롯데는 전년도까지 한솥밥을 먹었던 삼성 선발 이상목을 상대로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롯데는 4회 말 조성환의 2루타로 만든 득점권 기회에서 이대호의 적시타로 첫 점수를 냈다. 이어 롯데는 5회 박기혁의 내야 땅볼과 김주찬의 적시타로 2점을 추가, 본격적인 추격에 나섰다. 그러나 롯데는 7회 1사 1, 2루 찬스를 날리는 등 경기 중반까지도 2점 뒤진 상황으로 경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약속의 8회가 찾아왔다. 롯데는 6회부터 마운드에 올라온 정현욱을 세 번째 이닝에서야 드디어 공략하기 시작했다. 선두타자 이인구가 볼넷으로 나간 롯데는 조성환의 중견수 앞 안타로 1, 2루 기회를 만들었다. 여기에서 이대호가 떨어지는 포크볼을 감각적으로 때려내며 중견수 앞 적시타를 기록했다. 그리고 타석에는 3타수 무안타를 기록 중이던 가르시아가 들어왔다. 사직구장에는 “가~르시아~”를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응원에 보답하듯 가르시아는 우중간을 완전히 가르는 장타를 때렸다. 1루 대주자 이승화(현 이우민)까지 홈을 밟으면서 롯데는 순식간에 6대 5 역전에 성공했다. 롯데는 이어 등판한 오승환을 상대로도 강민호가 우익수 앞 안타를 터트리며 추가점을 올렸다.
롯데는 리드를 지키기 위해 8회 초 2아웃에서 등판한 코르테스를 계속 마운드에 올렸다. 150km/h를 넘나드는 강속구로 박석민과 우동균을 삼진으로 돌려세운 코르테스는 대타 진갑용도 포수 파울플라이로 처리했다. 7대 5 롯데 승리. 롯데는 이 승리로 팀 역사에서 최초로 두 자릿수 연승을 달성했고, 다음 경기였던 9월 2일 LG 트윈스전에서도 8대 3으로 이기면서 연승 행진을 ‘11’까지 이어갔다. 이 분위기를 이어간 롯데는 11연승이 종료된 후 곧바로 7연승을 추가하며 2위 자리까지 노렸다. 9월 17일 한화전에서 승리한 롯데는 길었던 ‘비밀번호 8888577’을 끊어냈다.
하지만 2008년 롯데의 행복한 순간은 여기까지였다. 2위 경쟁자였던 두산 베어스를 홈으로 불러들인 롯데는 3연전을 모두 내주며 2위 경쟁을 사실상 마감했다. ‘1박 2일 촬영 논란’은 덤이었다. 3위 자리는 여유 있게 확정했지만 4위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는 3전 전패로 마감했다. 8년을 기다린 롯데는 마치 매미처럼 4일만 울고는 그대로 잔치를 끝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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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롯데 자이언츠
야구공작소 양철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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