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연재물은 ‘KBO 박스스코어 프로젝트’와 함께 합니다.
오승환(삼성 라이온즈)은 KBO 리그 40년 역사에서 역대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손꼽히는 선수다. 프로 데뷔 후 해외 무대를 밟기 전까지 9시즌(실질적으로는 8시즌) 동안 277세이브를 거뒀다. 7년 동안 한국을 떠나있었음에도 통산 세이브 1위 자리를 지켰고, 복귀 후 2020년에는 KBO 최초 통산 300세이브를 기록했다. 한국 나이로 40줄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좋은 활약을 펼치며 2020 도쿄 올림픽 야구 대표팀에 합류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 포스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과거에는 오승환이 몸만 풀어도 경기가 끝났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롯데 자이언츠는 이런 오승환을 상대로 이상하리만큼 극적인 경기를 많이 만들었다. KBO 리그에서 블론세이브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7년 이후 오승환은 17번의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는데, 이중 롯데전에서만 7번이나 세이브 기회를 날렸다. 특히 2009년(19세이브)과 2012년(37세이브)에는 시즌 중 단 하나만 기록했던 블론세이브가 롯데전이었고, 2008년에는 시즌 초 3주 간격으로 두 번이나 세이브를 날렸다. 물론 통산 전적으로 보면 오승환이 롯데에 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롯데는 오승환을 상대로 기억에 남을 경기는 많이 만들어냈다.
그중에서도 오승환과 1982년생 동갑내기인 이대호는 오승환을 상대로 상대전적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2021시즌 전반기까지 이대호는 오승환을 만나 통산 29타수 10안타(타율 0.345)에 홈런 3개를 기록했다. 이대호의 홈런 3개 중 2개는 직접적으로 오승환의 세이브 기회를 날린 결정적인 홈런이었다. 사실상 오승환의 커리어 하이 시즌이라고 할 수 있는 2005년에도 이대호가 오승환에게 홈런을 뽑아냈을 정도다. 이대호는 일본프로야구에서도 오승환과 두 차례 만나 1안타를 기록했다.
롯데와 이대호가 오승환을 울린 경기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역시 가장 인상 깊은 경기는 2007년 5월 4일 경기이다. 특히 이날 경기는 이대호와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하게 지냈던 이승화(개명 후 이우민)가 이대호와 함께 오승환을 무너뜨린 날이어서 그 임팩트는 더 컸다.
이날 경기는 전병호(삼성)와 장원준(롯데)의 좌완 선발 맞대결로 펼쳐졌다. 이전까지 ‘로나쌩 클럽’(롯데만 나오면 쌩큐)의 회장이라는 별명이 있었던 전병호는 전년도까지 롯데를 상대로 10연승을 거둘 정도였다. 전병호는 평소와는 다르게(?) 경기 시작과 함께 1번 김주찬에게 2루타를 맞더니 1사 후 박현승에게 좌전 안타를 허용하면서 너무나도 허무하게 선취점을 내줬다. 이후 전병호는 이대호의 2루타와 펠릭스 호세의 볼넷으로 만루 위기를 만들었지만 6번 정보명에게 유격수 앞 병살타를 유도하면서 고비를 넘겼다. 이후 롯데는 언제나 그랬듯이 전병호에게 득점을 올리지 못하면서 침묵에 빠졌다.
그사이 롯데는 전년도까지 한솥밥을 먹었던 선수에게 일격을 얻어맞기도 했다. 4회까지 삼성 타선을 무실점으로 막아오던 장원준은 5회 들어 박한이의 볼넷과 강봉규의 안타, 조동찬의 고의4구로 역시 만루를 만들었다. 하지만 장원준은 전병호처럼 위기를 넘기지는 못했다. 2번 신명철을 상대한 장원준은 좌중간을 완전히 가르는 2루타를 맞았다. 1루 주자 조동찬까지 홈을 밟으면서 롯데는 순식간에 리드를 내주고 2점 차로 뒤지는 상황을 맞이해야 했다.
6회까지 전병호를 상대한 롯데는 7회에는 같은 좌완이지만 전혀 다른 스타일의 권혁을 만나서도 삼진 2개를 당하면서 고전했다. 그런데 8회 들어 롯데는 선두타자 황성용(개명 후 황동채)이 볼넷으로 살아나가면서 찬스를 만들었다. 3번 박현승이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다음 타자는 이미 첫 타석 2루타가 있던 이대호였다. 그러자 삼성 벤치가 움직였다. 권혁을 마운드에서 내리고 대신 기용한 선수는 바로 마무리 투수 오승환이었다. 5아웃 세이브라는 어려운 과제를 받아들었지만 오승환이라면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1982년생 동갑내기 최고의 투수와 타자였던 오승환과 이대호의 대결. 당시 중계를 맡았던 MBC ESPN(현 MBC스포츠플러스)의 이순철 해설위원은 “이대호 선수의 타석이네요. 저는 아무 말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승부에 긴장감을 더했다. 1스트라이크를 먼저 잡은 오승환은 다음 공으로 시속 147km의 바깥쪽 높은 패스트볼을 던졌고, 이대호는 이를 받아쳤다. 타구는 쭉쭉 뻗어 나가며 오른쪽 관중석으로 향했다. 동점 투런 홈런. 이대호는 주먹을 불끈 쥐었고, 오승환은 상기된 얼굴로 로진만 만져댔다. 오승환은 첫 타자부터 블론세이브를 기록하게 됐다. 정신이 번쩍 든 오승환은 호세와 정보명을 연속 삼진 처리하며 8회 말을 마감했다.
삼성이 9회 초 1사 2루 기회를 놓치자 롯데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롯데는 9회 말 선두타자 이원석이 좌전 안타로 출루한 데 이어 강민호의 번트로 주자를 2루에 내보냈다. 타석에는 이승화가 들어섰다. 역전 주자가 2루에 나간 것이 신경 쓰였던 탓인지 오승환은 슬라이더를 던지다 폭투를 저지르며 이원석을 3루까지 내보냈다. 끝내기 주자가 27.44m 앞으로 다가온 상황. 풀카운트까지 몰고 온 이승화는 오승환의 6구째 속구를 공략했다. 이승화의 타구는 전진수비를 하고 있던 삼성 외야진이 스타트를 끊을 시도도 하지 못할 정도로 큼지막하게 날아가 우중간 펜스를 때렸다. 1대 3으로 뒤지던 경기를 2이닝 만에, 그것도 ‘돌부처’ 오승환을 상대로 4대 3으로 뒤집은 것이다.
분위기를 탄 롯데는 다음날 경기에서도 삼성 수비진의 자멸 속에 승리를 거두며 2위 한화 이글스와 승차 없는 3위에 올랐다. 앞선 6년 동안 한 번도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했던 롯데가 드디어 가을에도 야구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롯데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5월 22일 광주 KIA전에서 연장 12회 접전 끝에 ‘헤딩 골든골’로 끝내기 패배를 당한 롯데는 이후 5월 말 한화와의 3연전 전패를 기점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8월 잠시 반등하며 4강 싸움에 참전하는 듯했으나 8월 말 5연패를 당하며 결국 롯데는 ‘8888577’의 대미를 장식했다.
PS. 다음날인 5월 5일 경기에서는 향후 롯데의 10년을 책임질 선발투수가 KBO 리그 무대에서 첫 선발 등판을 가졌다. 1999년 고졸우선지명에서 이름을 불렀으나 미국행을 택했던 이 선수는 2007년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를 통해 8년 만에 고향팀에 입단했다. 4월 말부터 주로 구원투수로 등판했던 이 선수는 후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다. 그리고 2020시즌까지 109승을 거두며 롯데 마운드를 꾸준히 지켰다. 이 선수는 바로 올 시즌이 끝난 후 현역에서 물러나는 송승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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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롯데 자이언츠
야구공작소 양철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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