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20시즌 리뷰] KT 위즈 – 6위에서 3위로, 막내의 유쾌한 반란

시즌 성적 – 81승 62패 1무(정규 2위, 최종 3위)

KT 위즈의 2020시즌은 한 마디로 ‘성공적’이었다. 시즌 전 KT를 5강 안정권 전력으로 평가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으나, KT는 정규 시즌을 2위로 마치며 막내의 유쾌한 반란을 이뤄냈다. 비록 포스트시즌에선 첫 번째 시리즈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뤄낸 것만으로도 대단히 성공적인 시즌이었다.

 

2019시즌을 창단 첫 5할 승률 달성으로 마무리한 KT는 비교적 잠잠한 스토브리그를 보냈다. 외국인 1선발로 라울 알칸타라 대신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를 영입하고, 타격 코치가 샌디 게레로에서 김강(기존 타격 보조 코치)으로 교체된 것 외에는 주요한 변화가 없었다. 2019년 첫 시즌을 소화한 이강철 사단의 기조를 그대로 가져가는 움직임이었다.

 

마운드와 함께 반등한 순위

KT의 올 시즌 출발은 좋지 못했다. 6월 30일, 시즌의 33%를 소화한 시점에서 성적은 21승 27패로 리그 8위였다. 마운드 붕괴가 결정적이었다. 해당 기간 평균자책점은 5.56으로 리그 9위. ‘믿는 도끼’였던 불펜이 먼저 무너졌다. 5월 한 달간 KT 불펜의 평균자책점은 7.95, 블론세이브는 6개로 리그 최하위였다. 마무리 이대은이 5월 한 달간 8이닝 11실점으로 최악의 부진 끝에 2군으로 내려갔고, 또 다른 필승조 자원 김재윤(8.1이닝 5실점)과 김민수(6이닝 10실점)도 2군 조정 기간을 가졌다. 연이어 6월에는 선발진마저 침몰했다. 6월 한 달간 KT 선발진의 평균자책점은 6.16, QS는 8개로 리그 9위였다. 1선발 데스파이네(ERA 7.41)와 소형준(ERA 6.29)이 부진했고, 윌리엄 쿠에바스와 김민은 부상으로 이탈했다.

 

갈팡질팡하던 KT 마운드는 7월 들어 반전을 이뤄냈다. 7월 이후 KT 마운드의 평균자책점은 4.05로 리그 2위. 해당 기간 KT의 성적은 60승 35패 1무로 압도적 1위였다. 선발진에선 1~4선발 데스파이네-쿠에바스-배제성-소형준이 부진과 부상을 이겨내고 10승을 달성했다. 부진으로 이탈한 5선발 김민의 공백도 김민수(선발 89.1이닝 ERA 5.44)가 적절히 메웠다. 불펜에선 새 얼굴들의 깜짝 활약이 있었다. 조현우(46.2이닝 ERA 3.09)-이보근(46.2이닝 ERA 2.51)-유원상(64이닝 ERA 3.80) 모두 시즌 전에는 주역으로 기대받지 못하던 자원이었으나, 이들이 없었다면 이번 시즌 KT의 호성적도 없었다.

 

2020시즌 KT 위즈 주요 투수 성적

그렇다면 올해 KT 마운드에서 가장 빛난 선수는 누구였을까. 선발진에선 데스파이네와 소형준을 꼽을 수 있다. 1선발 데스파이네는 이닝 이터의 덕목이 무엇인지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4일 휴식 루틴으로 동료들에게 추가 휴식일을 부여했고, 34번의 선발 등판 횟수와 207.2이닝 소화는 리그 최다 기록이었다. ERA 4.33으로 특출나진 않지만, 꾸준하게 중간 이상의 활약을 펼치며 이강철 감독으로부터 연승을 이어주고 연패를 끊어준다는 호평을 받았다.

 

신인왕 소형준은 올 시즌 KT가 수확한 최고의 보물이다. 입단 당시부터 ‘완성형 투수’라던 이강철 감독의 평가가 옳았음을 스스로 증명해냈다. 6월까지 평균자책점 6.65로 다소 부진했지만, 7월 2군 조정 기간 동안 커터를 장착하며 반등을 이뤄냈다. 7월 이후 평균자책점은 2.38로 리그 전체 2위. 특히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선발 등판해 6.2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한 것은 압권이었다. 비록 마지막에는 단 하나의 실투로 눈물 흘렸지만, 큰 무대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수월하게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모습은 차세대 국가대표 에이스의 탄생을 선포하는 듯했다.

 

선발진에 데스파이네와 소형준이 있었다면, 불펜에는 주권이 있었다. 주권은 올 시즌 KT 불펜의 버팀목이었다. 시즌 초반 이대은과 김재윤이 극심한 부진으로 이탈할 때에는 홀로 필승조를 지탱하며 흔들리는 불펜 속에서 희망의 끈을 붙들었다. 77번 등판(리그 1위)에 70이닝을 소화(불펜 3위)하며 일각에서는 혹사 이야기까지 나왔다. 이강철 감독 역시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 지은 후 인터뷰에서 시즌 초반 주권의 활약이 전환점을 마련했다고 칭찬했다.

 

꾸준했던 타선

2020시즌 KT 위즈 주요 야수 성적

시즌 초반 부침을 겪은 마운드와 달리, 올 시즌 KT의 타선은 꾸준했다. 8월을 제외하곤 매달 팀득점 4위 이상을 기록하며 가공할 만한 위력을 보여줬다. 최종 성적은 득점 3위, wRC+ 4위. 주전 야수 9명의 타석 소화 비율이 82%(리그 2위)로 높았으며, 최고령 유한준과 유격수 심우준을 제외한 야수 7명이 커리어하이급의 wRC+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강철 감독 역시 체력적으로 힘든 올 시즌에 더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주전 야수진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올 시즌 KT의 외야를 구성한 로하스-배정대-조용호. 이들이 합작한 WAR 12.1은 리그 2위였다.

올 시즌 KT의 MVP를 꼽으면 단연 멜 로하스 주니어. 홈런, 타점, 득점, 장타율에서 4관왕을 달성하며 리그 MVP를 차지했다. ‘리그를 폭격했다’라는 평가가 아깝지 않은 활약이었다. 로하스와 함께 KT 외야진을 구성한 배정대-조용호는 올 시즌 KT에서 가장 발전한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배정대는 외야 중심을 잡아주며 대체 불가 자원으로 성장했다. 전경기 출장에 수비 이닝(1221.1이닝)도 리그 1위. 고질적인 고관절 통증이 있는 조용호와 수비 범위가 좁아진 로하스 사이에서 리그 최고의 수비력으로 외야의 구멍을 메웠다. 시즌 전까지 백업 자원으로 분류된 조용호도 생애 첫 풀타임 시즌을 소화하며 wRC+ 100을 기록했다. 특히 타석당 투구수 4.48개(리그 최다 1위)를 기록하며 KT 타선의 선봉장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주전 1루수 강백호와 3루수 황재균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두 선수는 각 포지션에서 WAR 1위를 기록하며 KT의 상위 타선을 이끌었다. 특히 강백호는 다소 갑작스러웠던 1루수 전향을 성공적으로 이뤄내며 야구 천재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7월에는 스스로가 데뷔 이후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토로할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으나(7월 OPS 0.722), 결국 제 모습을 되찾으며 시즌 OPS 0.955로 또 한 번의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1루수 전향에 이어 4번 타순에도 순조롭게 적응하며 이대호, 박병호를 잇는 국가대표 4번 타자-1루수의 탄생을 알렸다. 3루수 황재균 또한 로하스, 배정대와 함께 600타석 이상을 소화하며 대체 불가능한 자원임을 입증했다.

 

야구는 선수가 하는 것이지만, 올 시즌 KT 타선의 선전은 김강 타격 코치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투수 출신인 이강철 감독은 “타격은 모두 김강 코치 작품”이라고 말하며 KT 타선에 있어서 김강 코치가 갖는 의미를 암시했다. 선수 의견을 최우선으로 존중해 먼저 나서진 않으면서도, 선수가 질문할 때는 족집게처럼 해답을 찾아주며 선수들의 절대 신임을 받는 코치가 됐다. 김강 코치 부임 직전(2018년) 8위였던 KT 득점은 지난 2년간 4위로 수직 상승했다.

 

이강철 사단 2년차, 여전했던 ‘강철 매직’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 지은 10월 말, KT는 이강철 감독에게 3년 20억 재계약을 안겼다. 한국시리즈 진출 경험이 없는 감독으로서는 역대 최고 규모 계약이었다. 그만큼 지난 2년간 KT의 호성적에는 이강철 감독의 공이 컸고, KT는 통 큰 재계약으로 보답했다.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으로 시즌 초반 극도의 부진을 겪은 KT가 웃는 모습으로 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강철 감독의 리더십이 있었다. 황재균은 “선수들로 하여금 부담 갖지 않고 자기 야구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라는 말로 이강철 감독의 리더십을 표현한 바 있다.

 

선수 기용에 있어서도 이강철 감독의 리더십은 빛났다. 시즌 초반 외국인 원투펀치 데스파이네와 쿠에바스가 다소 부진하자 개인 면담을 통해 승부처에서의 패스트볼 고집, 하위 타선을 상대할 때 방심 등 2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며 두 투수의 반등을 이끌어냈다. 올 시즌 KT의 국내 선발진을 맡은 소형준, 배제성, 김민수도 모두 이강철 감독의 선수 보는 눈 덕분에 선발 기회를 얻었다. 신인 소형준이 시즌 초반 부진하자 2군 조정 기간을 줬고, 복귀 후에는 “소형준의 공은 치기 어렵다. 본인 공에 자신감을 가져라”라는 말로 자신감을 심어줬다. 시즌 초반 테이블세터로 낙점했던 심우준-김민혁이 부진할 때는 본인의 오판을 인정하고 선수단에게 선발 라인업 작성을 맡기는 모습도 보였다. 이후 KT의 테이블세터는 조용호-배정대로 개편됐고, 타선의 위력은 한층 더 강화됐다.

 

포스트시즌- 경험의 차이를 실감한 창단 첫 포스트시즌

정규 시즌을 2위로 마무리한 KT가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상대는 포스트시즌의 백전노장 두산 베어스였다. 정규 시즌에서 보여준 양 팀의 전력은 거의 비슷했다(팀득점 두산: 816 KT: 813, ERA 두산: 4.40 KT: 4.56). 실제로 플레이오프 4경기 동안 KT의 득점은 8점, 두산은 11점으로 그 차이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양 팀의 포스트시즌 경험 차이는 거대했고, 그것이 양 팀의 운명을 갈랐다. 실책, 도루, 희생번트처럼 세밀한 부분에서 KT와 두산의 실력 차는 너무나도 컸다.

 

KT/두산의 플레이오프 기록

KT는 올 시즌을 통해 정규 시즌에 대한 자신감을 쌓았다. 창단 이후 4년간 10-10-10-9위를 하며 드리웠던 패배 의식은 지난해 5할 승률과 올해 정규 시즌 2위로 상당 부분 사라졌다. 그러나 포스트시즌에서는 아직 역부족이었다. 올 시즌 KT의 주축이었던 황재균, 강백호, 배정대 등은 두산의 백전노장인 김재호, 허경민, 최주환 등과 비교했을 때 포스트시즌에서의 ‘포스’가 떨어지는 감이 있었다. 두산 선수들의 포스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우승을 하려면 결국 포스트시즌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올 시즌 경험은 KT에게 좋은 자양분이 될 수 있다. KT가 플레이오프에서 3연패로 탈락하지 않고, 1승을 거두며 마지막까지 싸운 것은 KT 선수단 및 팬들에게 희망과 가능성을 심어줬을 것이다.

 

KT가 그려가야 할 미래

2020시즌 KT 위즈 백업 야수 성적

그동안 KT의 목표는 포스트시즌 진출이었다. 이제 KT의 목표는 우승이 될 것이다. 우승을 노리기 위해선 포스트시즌에 꾸준히 진출할 수 있는 전력을 만들어야 한다. 최우선 과제는 백업 야수 보강이다. 주전 의존도가 높은 KT인데, 시간은 KT 주전 야수들의 기량을 하나둘 쇠퇴시킬 것이다. 유한준(39)과 박경수(36), 황재균(33)은 내년이 FA 계약 마지막 시즌이며, 선수로서 황혼기에 접어든 유한준과 박경수에게 앞으로 많은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강철 감독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는 주전 포수 장성우(30)도 이제 30대에 들어섰다. KT 타선의 대들보 로하스는 일본프로야구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으며, 메이저리그 진출 가능성도 열려 있다. 이 가운데 KT는 올해 FA 시장에서 내야 보강의 의지를 밝혔다. FA 영입, 트레이드, 내부 자원 발굴 등 여러 방법 가운데 무엇이 됐든 간에 KT가 어떤 포지션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보강하는지가 앞으로 KT의 성패를 결정할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마운드 보강 역시 필수적이다. 올 시즌 초반 불펜 불안으로 극도의 부진을 겪은 KT는 유원상-조현우-이보근의 잇따른 활약로 위기를 넘긴 바 있다. 그러나 유원상(34)과 이보근(34)은 이미 전성기를 지난 나이다. 지난 2년간 KT의 마당쇠를 맡은 전유수(34) 역시 이들과 동갑이다. 고영표, 심재민, 엄상백과 같은 군제대 선수들이 연착륙하고, 이대은이 선발이든 불펜이든 확실히 자리 잡는다면 금상첨화다.

 

KT는 지난 2년간의 성적으로 ‘나약한 막내’의 이미지를 벗었다. 이제는 우승을 통해 ‘강력한 막내’로 거듭날 차례다. 올 시즌은 KT가 창단 첫 우승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는 평가를 받기 충분한 시즌이었다. 앞으로도 KT가 우승을 향한 진보를 꾸준히 이뤄낼 수 있을지 지켜보자.

 

야구공작소 당주원 칼럼니스트

에디터=야구공작소 나상인

일러스트=야구공작소 홍영준

사진 출처= KT 위즈

기록 출처=스탯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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