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의 두 버팀목, 채병용 그리고 김주한

[야구공작소 오정택] 2016년 SK 와이번스의 불펜은 시즌이 개막하기 전부터 적잖은 고민과 우려의 대상이었다. 셋업맨과 마무리 투수의 역할을 돌아가면서 소화해 줬던 윤길현과 정우람은 FA로 모두 팀을 떠나버렸고, 남은 선수들 중에서 가장 믿을 만한 카드였던 박희수는 지난 2시즌 내내 부상에 시달리면서 몸 상태에 심각한 의문부호가 붙어버린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이를 받쳐줄 선수들 또한 신통치 않았다. 부상과 부진 끝에 보상선수로 이적해 온 김승회, 지난 2년 사이 지나칠 정도로 많은 경기에 나섰던 전유수, 역시나 부상과 부진으로 신음하고 있던 박정배가 그 이름들이었다. 이처럼 개막 직전에만 해도 SK의 불펜 구상은 무수한 가정과 불확실성 위에서 간신히 형체만 갖추고 있었다.

▲ 물음표로 가득했던 SK의 주력 불펜진

시즌이 시작되자 SK는 김광현 – 켈리 – 윤희상 – 박종훈으로 이어지는 준수한 선발진을 앞세워 ‘선발 야구’를 펼쳐 나갔다(선발 WAR 5위 / QS% 2위). 반면 타선은 리그 2위의 팀 홈런에 걸맞지 않은 평균 이하의 득점 생산력을 기록하면서 선발진을 제대로 지원해주지 못했다(선발 득점 지원 6.22점 / 리그 8위). 자연히 선발이 내려간 이후의 2~3이닝 동안 근소한 리드를 지켜줄 불펜의 활약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016년, SK의 불펜은 리그 4위의 WAR과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면서 예상을 뒤엎은 준수한 활약을 펼쳐주었다. 주력으로 분류되었던 투수들의 분전 덕분은 아니었다. 사실, 박희수를 제외한 나머지 세 투수들은 그리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박희수와 함께 2016년 SK의 불펜을 이끌었던 것은 변수에 가까웠던 두 선수의 ‘깜짝 활약’이었다.

채병용

‘채병용’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SK 팬들은 이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사진=SK 와이번스 제공)

SK 왕조의 첫 2년 동안 채병용은 팀의 대업에 혁혁한 공을 세운 주축 선발투수였다. 하지만 부상과 군 입대로 마운드에서 한동안 모습을 감추고 말았고, 제대 이후에도 2013년부터의 세 시즌 동안은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고 있었다. 스윙맨으로 나서며 5선발과 롱릴리프 보직을 오갔으나 부상 여파와 노쇠화 탓에 구위와 이닝 소화력 모두가 예전 같지 않았다. 2015 시즌을 마치고 FA 신분을 얻어 SK와 재계약하는 데 성공했지만, 아무래도 계약의 규모는 작을 수밖에 없었다(2+1년 10.5억).

하지만 이번 시즌, 채병용은 팀의 마당쇠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면서 수준급의 불펜 투수로 재탄생했다. ‘FA 로이드’라는 세간의 표현처럼 FA를 앞두고 대활약을 펼치는 다른 선수들과는 정반대로 FA 계약 직후에 좋은 활약을 펼쳐주었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 놀라운 변화를 이뤄낸 채병용의 올 시즌 성적

* 200이닝 이상 기준

부진했던 지난 3년 동안 채병용은 두 가지의 치명적인 결점을 노출했다. 지나치게 많은 피홈런과 극도로 부진한 좌타자 상대 성적이 바로 그것이었다. 올 시즌의 채병용은 이 두 결점 모두를 수월하게 극복한 모습이었다. 좌타자 상대 성적도 전체적으로 크게 개선되었고, 9이닝당 피홈런은 직전 두 시즌의 절반에 가까운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 채병용의 올 시즌 좌타자 상대 성적과 9이닝당 피홈런

이러한 반전을 이끌어낸 최대의 요인은 역시 구위의 회복이었다. 과거의 채병용은 구속이 빠르지 않음에도 좋은 구위를 가지고 있는 투수로 이름이 높았는데, 부상 이후로는 이 구위를 회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허나 올 시즌 채병용의 구종가치 기록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구종이 이전에 비해 확연하게 상승한 위력을 발휘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좌타자를 상대로 활용하는 슬라이더의 구위가 크게 살아났다는 것이 핵심적이었다.(슬라이더 구종가치 2015년 -9.9 -> 2016년 2.8 )

변한 것은 구위만이 아니었다. 구종의 구사 패턴에도 변화가 있었다. 2015 시즌의 채병용은 좌타자와 우타자를 가리지 않고 스플리터를 결정구로 활용했지만, 이는 그리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스플리터 구종가치 -1.6 / 피안타율 0.313). 올 시즌, 채병용은 스플리터의 구사를 줄이는 대신 거의 던지지 않던 싱커의 비중을 증가시켰다(스플리터 구사율 2015 7.1% -> 2016 3.8%, 싱커 구사율 2015 0.9% -> 2016 6.5%).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채병용의 싱커는 0.150의 빼어난 피안타율을 바탕으로 리그 5위에 해당하는 3.3의 구종가치를 적립해주었다.

활약의 세부적인 내용 역시 인상적이었다. 팀의 필요에 따라 많은 경기에 나서고 많은 이닝을 소화했음에도 시즌 내내 꾸준한 활약을 펼쳐주었고, 위기 상황에서는 한층 안정적인 투구를 펼치며 팀에게 확실한 승리를 안겨주었다. 채병용의 올 시즌 승계주자 실점률은 단 19.6%에 불과했으며(리그 4위), 터프세이브 상황에서는 단 하나의 블론세이브도 범하지 않았다. 불펜투수의 활약을 측정하기에 적합한 지표인 WPA*에서는 1.93을 기록하며 리그 전체 투수들 가운데 3위에 오르기도 했다.

* WPA(Win Probability Added): 승리 확률 기여도

 

전망&불안요소

좋은 성적을 거두기는 했지만, 30대 중반에 접어드는 나이에 중간계투로서 많은 이닝을 투구했다는 사실은 분명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68경기 83.2이닝 / 최다등판 5위, 구원 이닝 4위). 또한 전 시즌에 비해 7푼가량 낮은 BABIP를 기록했다는 점(0.360->0.291)을 감안하면 2016년의 성적은 어느 정도 운이 따른 결과였다고도 해석해볼 수 있다. 단순한 운의 작용으로만 취급하기에는 투구에 나름의 변화를 주었던 것도 사실인 만큼, 2017년의 활약을 보다 차분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김주한

SK의 왕조 시절을 상징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인 잠수함 투수. 김주한은 그 계보를 이을 수 있을까. (사진=SK 와이번스 제공)

시즌 초의 SK 불펜을 이끌었던 것은 성공적으로 기량을 회복한 채병용과 박희수, 그리고 또 하나의 필승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 받았던 박정배였다. 그러나 첫 3주 동안의 무실점 행진 이후, 박정배의 페이스는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박정배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김승회, 문광은, 서진용 등의 수많은 투수들을 실험대에 올린 SK였지만, 기대에 부응하여 필승조에 안착하는 선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바통은 시즌 중반에 콜업된 대졸 신인 김주한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SK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제3의 필승조를 손에 넣었다. 과연 김주한의 무엇이 그를 그리도 특별하게 만들어주었을까? 답은 바로 체인지업이었다.

김주한은 속구, 슬라이더, 체인지업의 3가지 구종을 주로 구사하는 사이드암 투수다. 그리고 이 중 최고의 무기는 구위와 구사율 모두에서 리그 정상급의 기록을 작성한 체인지업이다. 좌측과 우측으로 떨어지는 두 가지 궤적의 체인지업은 그의 투구를 한층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에반스 – 허경민 – 정수빈을 모조리 삼진으로 돌려세웠던 2016년 6월 4일 두산전에서의 투구는 이를 압축적으로 잘 보여준다. 에반스에게 구사한 체인지업은 수직으로 가라앉았고, 허경민에게 던진 체인지업은 좌측 하단으로, 그리고 정수빈에게 던진 체인지업은 우측 하단으로 가라앉으며 타자의 헛스윙을 이끌어냈다.

전반기 동안 온갖 보직을 아우르는 전천후 카드로 활용되었던 김주한은 필승조에 합류한 후반기에는 페이스가 떨어진 박희수와 채병용을 대신하여 최고의 활약을 펼쳐주었다. 구원투수로 기록한 56.2이닝은 지난 시즌 신인 불펜투수 가운데 가장 많은 이닝이었고, 1.57의 구원WAR 역시 SK 소속 불펜투수 가운데 박희수와 채병용에 이은 3번째의 기록이었다. 5월 말에 데뷔하고도 빠르게 리그에 적응했다는 점이, 그리고 자신의 주무기를 프로 무대에서도 훌륭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눈여겨볼 만하다.

 

전망&보완점

김주한이 앞으로 보완해야 할 부분은 분명하다. 우선 홈 구장에서의 부진 극복이 시급하다. 올 시즌 원정에서 33.1이닝을 투구하며 1피홈런, ERA 2.43의 정상급 성적을 기록했던 김주한의 홈 성적은 26이닝 5피홈런, ERA 6.50에 불과하다. 속구의 위력을 개선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이다(속구 피안타율 0.388 / 피OPS 0.986). 가장 구사율이 높은 구종인 속구가 계속 수월하게 공략당할 경우, 이는 자칫 소포모어 징크스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SK 구원투수진이 나아가야 할 길

올 시즌 SK의 불펜은 이 2인과 마무리를 맡았던 박희수를 제외하고는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이 3인을 잇는 팀내 WAR 4위가 3개월 가량을 뛴 박민호(0.52)라는 점에서 이들을 받쳐주던 투수들의 부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투수기용에도 문제가 있었다. 선발진이 무너졌을때 7~8회를 맡아줘야 할 김주한과 채병용이 조기에 투입되며 뒤를 지켜주지 못한 경우가 다수였다.

하지만 SK에는 시즌 후반 어느 정도 안정감을 갖추고 8회를 맡아주었던 서진용, 롱릴리프로서 잠재력을 보여준 정영일, 그리고 새로 합류한 해외파 유턴 선수들까지 여러 불펜 자원들이 가능성을 뽐내고 있다. 이들의 활약에 따라 내년 시즌 마운드 구상이 더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박희수를 받쳐주는 2인방은 수준급의 필승조를 구축하고 있다. 이제 이들을 받쳐줄 제2의 2인방, 혹은 그 이상이 새롭게 두각을 드러내야 할 때다.

 

기록 출처: Statiz, KBReport

(일러스트=야구공작소 황규호)

1 Comment

  1. 근 몇 년간 좋지 못했던 채병용이 조금이나마 부활한 모습을 보인 것 같아 다행입니다.

    특히 시즌별 피홈런 스탯 정리해주시는 부분에서 (12경기)밖에 안나온 부분까지도 세밀하게 짚어주셔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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