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야구공작소 박주현)
팬그래프 시즌 예상 (승-패) : 1위 워싱턴 (90-72) 2위 필라델피아 (85-77) 3위 메츠 (84-78) 4위 애틀랜타 (83-79) 5위 마이애미 (60-102)
NL 동부 최종 순위 (승-패) : 1위 애틀랜타 (97-65) 2위 워싱턴 (93-69) 3위 메츠 (86-76) 4위 필라델피아 (81-81) 5위 마이애미 (57-105)
[야구공작소 이상평] 올해 내셔널리그 동부지구는 탱킹에 들어간 마이애미 말린스를 제외하고는 모든 팀의 순위 예측이 가장 힘든 지구였다. 기나긴 암흑기를 끝내고 달릴 준비를 시작한 필라델피아 필리스, 젊고 강한 팀을 구축하며 과거 화려했던 전성기의 모습을 찾아가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강력한 선발진의 뉴욕 메츠, 절정을 찍고 내려오고 있지만 여전히 강력한 워싱턴 내셔널스까지. 이로 인해 올해 내셔널리그 동부지구는 폭풍의 춘추전국 시대가 예상됐다.
스토브리그의 중심은 여기!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한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팀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전력보강에 나서며 지난 스토브리그의 중심으로 등극했다. 우선 지난 시즌 우승을 차지했던 애틀랜타는 재수를 결심한 MVP출신 3루수 조시 도날드슨과 단년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젊은 코어인 올스타 2루수 아지 알비스, 지난해 신인왕 중견수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와 장기 연장계약에 합의하며 장기 집권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데이빗 라이트와 작별한 메츠는 에이전트 출신의 반 와게넨을 단장으로 선임하며 큰 논란을 야기했다. 논란 속에 취임한 와게넨 단장은 윈나우를 선언하며 팀의 약점인 포수와 불펜 그리고 세스페데스의 빈자리를 채워줄 강타자를 보강했다. FA로 우완 불펜 쥬리스 파밀리아와 지난해 올스타 포수 윌슨 라모스를 영입했고, 시애틀과의 2:5 트레이드로 로빈슨 카노와 특급 마무리 에드윈 디아즈를 데려오며 승리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브라이스 하퍼에게 10년 300M(은퇴 이후 65살까지 100M을 디퍼)을 비딩했지만 사실상 잡을 생각이 없었던 워싱턴은 그 돈을 FA 시장에서 골고루 나눠서 사용했다. 좌완 선발 패트릭 코빈과 우완 선발 아니발 산체스, 베테랑 포수 커트 스즈키, 단년 재수를 선택한 2루수 브라이언 도져, 우완 불펜 트레버 로젠탈 등을 영입하며 팀 전반을 보강했다. 여기에 트레이드로 클리블랜드에서 포수 얀 곰스, 마이애미에서 우완 불펜 카일 바라클로도 영입했다. 워싱턴도 우승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가장 화려했던 바이어는 존 미들턴 구단주가 ‘스투핏 머니’를 선언한 필라델피아였다. FA로 MVP출신 외야수 앤드류 맥커친과 우완 불펜 데이빗 로버트슨을 보강했고 시애틀과의 트레이드로 유격수 진 세구라를 획득했다. 마이애미와의 트레이드로 공수주를 모두 갖춘 포수 J.T. 리얼무토를 영입했고, 새로운 에이스로 자리 잡은 애런 놀라에게 연장계약을 선사했다. 그리고 화룡점정으로, 동일지구 워싱턴의 상징적 선수이자, 올해 최대어였던 슈퍼스타 브라이스 하퍼에게 총액 3억 3천만 달러의 화끈한 계약을 안기며 암흑기 탈출과 윈나우를 화려한 돈잔치로 선언했다.
반면 전력 보강과는 아무 관계 없었던 리빌딩 팀 마이애미의 데릭 지터 구단주는 승리보다 야구 외적 요소에 집중하는 속칭 ‘먹거리볼’을 천명하며 구단의 유니폼과 로고, 경기장 등을 전부 리브랜딩했다. 그리고 몇 남지 않은 매물을 팔며 유망주 보강에 주력했다.
반전의 시작, 상어가족과 의자 던지기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의 전반기는 예상 밖의 판도로 흘러갔다. 필라델피아와 애틀랜타가 선두 다툼을 벌이는 가운데 피트 알론소라는 새로운 전력이 등장한 메츠는 예상만큼은 아니었지만 사정권에서 호시탐탐 선두를 노렸다. 반면 워싱턴은 선수들의 부상과 부진이라는 변수를 극복하지 못하며 레이스에서 뒤쳐졌다. 5월 23일까지 19승 31패를 기록한 워싱턴은 당시 지구 선두였던 필라델피아와는 10경기차까지 벌어지며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이때 워싱턴의 분위기는 최악에 가까웠다. 저조한 성적으로 인해 데이브 마르티네즈 감독은 경질될 위기에 처해있었으며, 컨트롤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핵심 선수들을 트레이드하며 셀러로 나설 수도 있다는 루머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예상 밖의 계약이 워싱턴의 반전을 이끌었다. 워싱턴은 5월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방출된 베테랑 외야수 헤라르도 파라를 영입했는데, 파라가 팀에 적응한 5월말부터 팀은 끝을 모르고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상어가족 음원과 함께 등장한 파라는 개인 성적은 특출나지 않았지만 빼어난 클럽 하우스 리더의 모습을 보이며 분위기 반전을 이끌었다.
워싱턴은 5월 24일부터 전반기 마감일까지 28승 11패를 기록하며 치고 올라갔다. 방출 선수들과 트레이드 시장을 통해 불펜을 보강했고, 오랜만에 건강히 시즌을 보냈던 스트라스버그와 여전히 강력했던 슈어저, 이적 첫해부터 완벽히 자리잡은 코빈을 앞세운 선발진은 불펜의 짐을 덜어줬다. 여기에 후안 소토, 엔서니 렌던을 앞세운 타선까지 각성해 워싱턴은 시즌을 93승 69패로 마감하며 와일드카드 1위를 무난히 수성할 수 있었다.
한편 워싱턴발 상어가족 열풍이 내셔널리그를 집어삼키는 듯하던 찰나에 또 다른 반전이 시작됐다. 단장의 경기개입과 캘러웨이 감독의 기자단 욕설 논란, 선수단 장악 실패 등으로 뒤숭숭했던 메츠가 그 주인공이었다. 와게넨 단장이 7월 5일 경기 후 코칭 스태프들을 소집해 진행한 회의에서 격분하며 의자를 집어 던졌는데, 이 ‘의자 사건’ 이후 메츠가 급작스럽게 치고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기세를 탄 메츠는 트레이드 시장에서 놀랍게도 바이어 역할을 하며 마커스 스트로먼을 영입했고, ‘의자 사건’ 이후 8월 10일까지 20승 7패를 기록하며 와일드카드 레이스에 0.5게임차까지 접근하기도 했다.
초반에 선두 다툼을 벌이던 필라델피아는 로버트슨, 아리에타, 맥커친 등이 시즌 아웃되고, 하퍼와 놀라 같은 핵심 선수들의 부진이 이어지며 5월 말부터 추락하기 시작했다. 뒤늦게 본인의 스타성을 과시한 하퍼를 필두로 끝까지 와일드카드 경쟁을 펼치긴 했지만 부상의 불운을 극복하긴 힘들었다. 메츠와 필라델피아 모두 마지막에 페이스가 쳐지며 밀워키에게 와일드카드 2위를 내주고 가을 야구는 다음 기회로 미뤄야만 했다.
이 치열한 경쟁과는 별개로 애틀랜타와 마이애미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그들만의 레이스를 펼쳤다. 애틀랜타는 73년 애틀랜타, 96~97년 콜로라도 로키스에 이어 역대 네번째 40홈런 트리오에 도전한 아쿠냐(41홈런)와 프리먼(38홈런), 도날드슨(37홈런)이 포진한 막강한 타선을 과시했다. 선발에서는 시즌 중반까지 사이영 레이스를 펼친 마이크 소로카와 훌리오 테에란, 그리고 시즌 도중 영입한 댈러스 카이클이 버텼고 불펜은 트레이드로 보강했다. 애틀랜타는 정규시즌 7경기를 남겨 두고 디비전 우승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마이애미는 디트로이트(0.292)와 볼티모어(0.333)에 이은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3번째로 낮은 승률(0.352)을 기록하며 내년 드래프트 전체 3픽을 확보했다.
각본 없는 가을 드라마
지구 우승을 차지한 애틀랜타는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우승팀이자 전통의 가을 좀비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격돌했다. 하지만 5차전에서 1회에 10점을 내주고 13대 1로 대패하며 업셋의 희생양이 되어 디비전 시리즈에서 시즌을 마감했다.
워싱턴은 밀워키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르며 가을을 시작했다. 7회까지 3-1로 리드당하며 상황은 워싱턴에게 불리하게 흘러갔다. 내일이 없는 게임에서 워싱턴은 슈어저와 스트라스버그를 모두 투입했고, 워싱턴 타선은 8회말 2사 만루에서 후안 소토가 조시 헤이더에게 극적인 역전 적시타를 쳐내며 각본 없는 가을 드라마의 시작을 알렸다.
극적으로 승리하면서 올라온 워싱턴은 디비전 시리즈에서 내셔널리그 최다 승 팀인 LA 다저스를 만났다. 워싱턴은 5차전에서 8회까지 3-1로 리드를 당하고 있던 중 불펜으로 올라온 커쇼를 상대로 8회 렌던과 소토가 백투백 홈런을 때려내며 극적인 동점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한다. 승부는 10회초 시리즈 내내 공수에서 극도의 부진을 보여준 베테랑 하위 켄드릭이 만루홈런을 때려내며 갈렸고, 챔피언십 시리즈로 진출한다.
또 다시 극적으로 상위 시리즈로 진출한 워싱턴은 애틀랜타를 꺾은 카디널스와 내셔널리그 챔피언을 두고 겨루게 됐다. 워싱턴은 시리즈 스코어 4대0으로 가볍게 승리하며 창단 50년만에 첫 월드시리즈 진출을 확정했다.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이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결정되자 월드시리즈는 강력한 선발진의 맞대결로 큰 주목을 모았다. 워싱턴은 1, 2차전을 연달아 잡았지만, 3~5차전을 휴스턴에게 내리 내줬다. 5차전 선발로 예정되었던 슈어저가 당일 아침 목이 뭉치며 등판하지 못할 때는 기적은 여기까지인 것만 같았다. 그러나 스트라스버그의 8.1이닝 2실점 호투를 앞세운 워싱턴은 기어코 6차전을 잡아내며 승부를 7차전까지 끌고갔다. 전날 등판하지 못했던 슈어저는 6차전 불펜에서 몸을 풀며 등판 의지를 불태우기도 했다.
7차전, 슈어저는 정상적이지 않은 몸 상태임에도 선발로 등판해 5이닝 2실점을 기록했고 뒤이어 등판한 코빈은 추가 실점 없이 0-2 스코어를 그대로 유지시켰다. 그러자 그레인키에게 봉쇄당하던 워싱턴 타선이 기회를 잡았다. 7회 렌던이 추격의 솔로 홈런을 때려냈고, 소토가 바로 볼넷을 고르며 그레인키를 끌어내린 것이다. 바뀐 투수 윌 해리스를 상대한 기적의 사나이, 하위 켄드릭은 또 다시 극적인 역전 투런 홈런을 작렬시켰다.
이어 8회 1점, 9회 2점을 추가한 워싱턴은 추가 실점 없이 경기를 마무리 지으며 50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WS MVP는 2차전과 6차전에서 모두 승리투수가 된 스트라스버그가 차지했다.
상어가족의 열풍과 함께 거의 바닥에서 시작해 기적적으로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 승리한 워싱턴은 가을에도 기적의 연속을 보여줬고, 프랜차이즈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거머쥐며 2010년대를 마무리했다.
MLB의 현재이자 미래: 아쿠냐, 소토, 그리고 알론소
이번 시즌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팀들 소속의 젊은 선수들은 메이저리그의 현재이자 미래를 이끌어 나갈 세대로 자리잡았다. 작년 신인왕 투표 2위에 오른 후안 소토는 올해 완전히 만개하며 하퍼의 공백을 완벽하게 매웠다. 소토는 올해 34홈런 110타점을 기록하며 1996년 알렉스 로드리게스(36홈런 123타점)에 이어 만 20세 시즌에 30+홈런, 110+타점을 기록한 역대 네 번째 타자가 됐다.
소토를 제치고 작년 신인왕을 차지했던 아쿠냐 주니어는 올해 워크에씩에 대한 잡음은 있었지만, 1번 타순에 완벽하게 자리잡았다. 2012년 마이크 트라웃에 이어 두번째로 만21세 이하 시즌에 30-30을 달성한 선수가 되었고, 역대 다섯 번째 40-40에도 도전했다. 41홈런-37도루로 시즌을 마치며 아쉽게 달성에 실패했지만 아쿠냐 주니어는 언제라도 이 기록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선수다.
데이빗 라이트의 은퇴로 프랜차이즈 스타를 잃어버린 메츠는 그의 자리를 대신할 선수를 찾아냈다. 시즌 초반부터 뜨거운 홈런 페이스를 과시한 알론소는 올스타 홈런 더비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은 물론이고, 총 53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2017년 양키스의 애런 저지가 세운 역대 신인 최다홈런 기록도 경신했다. 그에게 2019시즌 내셔널리그 신인왕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내년에도 이어질 춘추전국 시대
2020시즌의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에서 펼쳐질 이야기도 올해와 같은 춘추전국 시대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마이애미는 역시 내년에도 본인만의 고독한 레이스를 펼쳐야 한다. 탱킹과 함께 소위 ‘먹거리볼’로 불리는 운영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마침내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워싱턴은 팀이 이미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중이었고, 스트라스버그와 렌던이라는 핵심 선수들이 FA 시장에 나온다. 두 선수 모두 잡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워싱턴은 기본적으로 돈을 쓸 수 있는 팀이며, 한번의 우승으로 만족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최소 한 명은 잔류시킬 것이 유력하다. 팜 상태가 좋지 않아 장기적으로는 어려워질 수 있으나 최소 2~3년간은 강력한 팀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가을 성적표가 신통치 않았던 지구 우승팀 애틀랜타는 이미 젊은 팀이다. 여기에 올해 초반 시간이 더 필요했던 유망주들이 내년 본격적으로 힘을 보탠다면 더욱 어려지고, 강해질 것이다. 내셔널리그 득점 3위에 오른 강력한 타선은 도날드슨의 이탈이 점쳐지지만, 좌익수 유망주 오스틴 라일리가 기대를 받고 있다. 또한 브라이스 윌슨, 이안 앤더슨, 카일 라이트, 투키 투상 등의 투수 유망주들이 자리를 잡는다면 2000년대 초중반 강력했던 전성기 시절만큼의 전력을 구축하는 것도 헛된 꿈만은 아닐 것이다.
올해 부상으로 무너진 필라델피아는 시즌 중 마이크 트라웃이 에인절스와 연장계약을 맺으며 닭 쫓던 개가 됐다. 대신 그 실탄을 이번 오프시즌 최대어들에게 풀 준비를 하고 있으며, 그에 맞춰 감독을 게이브 케플러에서 조 지라디로 변경했다. 메츠 역시 선수단 장악에 어려움을 겪던 캘러웨이를 해임하고, 현역시절 클럽하우스 리더로 명성 높았던 카를로스 벨트란을 선임했다. 올해 중반에 보여준 저력을 감안하면 메츠 역시 언제든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는 후보다.
2020시즌 대권을 향한 치열한 경쟁은 벌써부터 시작됐다.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의 팀들은 내년에도 흥미진진한 레이스를 보여줄 수 있을까?
에디터=야구공작소 오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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