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야구공작소 이세영, 박지원)
시즌 성적 – 62승 80패 2무(7위)
오프시즌 행보
[야구공작소 박지원] 지난 시즌으로 시계를 돌려보자. 디펜딩 챔피언 자리를 사수하는 데 실패한 KIA 타이거즈는 오프시즌 돌입과 동시에 대대적인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 우선 2018년 와일드카드전 종료와 동시에 14명의 선수가 방출 통보를 받았다. 그중에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고군분투했던 임창용도 포함돼 있었다. 임창용은 이해 갑작스러운 퓨처스행과 난데없는 선발투수 전향 등의 비상식적인 기용을 겪으며 김기태 감독과의 불화설이 대두됐던 선수다.
김기태 감독의 ‘형님 리더십’에 위기가 찾아왔다고 판단한 KIA는 수석 코치 자리를 폐지하고 투수 총괄 코치와 야수 총괄 코치라는 보직을 신설해 난국을 타개하고자 했다. 투수 총괄 코치로는 LG 트윈스 시절 김기태 감독과 호흡을 맞췄던 강상수 코치가, 야수 총괄 코치로는 김민호 코치가 각각 선임됐다. 임창용의 방출과 마찬가지로 균열이 생긴 김기태 감독의 리더십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방책이었다.
우승의 주역이었던 외국인 선수들도 전부 교체 대상이 됐다. 팀의 1선발로 활약했던 헥터는 지나치게 높은 연봉이 발목을 잡았다. 첫해 준수한 성적을 거뒀던 팻딘은 2년 차 시즌 내내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다. 결국 두 투수는 각각 터너와 윌랜드로 교체되고 말았다. 2년 연속 20-20을 기록했던 버나디나도 거포형 외야수를 희망했던 김기태 감독의 요청으로 해즐베이커에게 자리를 넘겨줘야 했다.
최악의 시즌 초, 끝나버린 동행
오프시즌 동안의 파격적인 변화는 결국 독이 됐다. 개막부터 3연패에 빠진 KIA는 한 달이 넘도록 투타 모두에서 정상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특히 에이스 양현종의 부진은 치명적이었다. 양현종은 4월까지 평균자책점 8.01의 처참한 성적으로 승리 없이 5패만을 떠안았다. 이전 5시즌 동안 KBO 리그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던 양현종인 만큼 자연스럽게 ‘혹사 논란’이 일어났다.
외국인 투수들도 마찬가지었다. 윌랜드와 터너는 5월 17일까지 각각 5.40, 5.3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리그 평균자책점 순위에서 30위 안에도 들지 못했을 정도의 처참한 성적이었다. 첫 3경기에서 인상적인 투구를 선보였던 윌랜드는 이어진 6경기에서 단 1차례밖에 퀄리티 스타트를 달성하지 못했다. 과거 팔꿈치 부상의 여파를 의심케 하는 모습이었다. 터너는 기복이 심했다. 잘 던지다가도 야수진의 실책 같은 상황이 나온 이후에는 급격히 무너져버렸다.
선발투수들의 부진은 고스란히 불펜의 부담으로 이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롱 릴리프 역할을 해줄 선수가 없다 보니 선발투수가 초반에 무너진 경기에서는 여러 명의 불펜 투수가 마운드를 밟아야 했다. 1이닝을 채우기보다는 이닝 중간마다 흐름을 끊어가며 투수를 교체하는 김기태 감독의 성향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이와 같은 문제점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4월 중순 치러진 롯데 자이언츠와의 3연전이다. 공교롭게도 이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마무리 투수 김윤동은 대흉근 부상을 당하며 시즌 아웃이 되고 말았다. 지난 2시즌 동안 129경기에 등판하며 불펜의 핵심 역할을 해 줬던 김윤동의 부상은 KIA의 시즌 구상에 큰 타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해즐베이커는 역대 타이거즈 최악의 외국인 타자로 평가되는 숀 헤어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처참한 시즌을 보냈다. 11경기에 출장해 OPS 0.581를 기록했고, 중견수 자리에서도 최악의 수비를 선보였다. 버나디나도 첫 시즌 초반에는 극심한 부진에 시달렸지만 수비와 주루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기 때문에 계속 기회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해즐베이커는 공수주 어디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팀 성적마저도 좋지 않았다. 결국 헤즐베이커는 4월 4일부로 퓨처스로 강등됐고, 더 이상 1군 무대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국내 야수진 또한 마찬가지었다. 지난 두 시즌간 리그 상위권의 화력을 자랑했던 KIA 타선은 개막 2개월 만에 차갑게 식어버렸다. 누상에 주자가 나가면 방망이는 더욱 차가워졌다. 5월 17일까지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KIA의 팀 타율은 0.250, OPS는 0.675에 불과했다. 무엇보다도 장타율이 0.359에 그쳤을 만큼 장타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자연히 경기당 득점도 4.15점으로 최하위에 머물렀고, ‘빅 이닝’이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특히 중심타선에 배치된 선수들의 침묵이 심각했다. 지난해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며 이번 FA 시장 최대어로 주목받았던 안치홍은 달라진 공인구 때문인지 장타력이 급감했다. 최형우, 김주찬, 나지완 등의 노장 타자들은 뚜렷한 노쇠화 기미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최형우가 온갖 견제를 받으며 고군분투했지만 기량 하락이라는 딱지를 피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이러한 총체적 부진은 고스란히 팀 성적으로 이어졌다. KIA는 5월 중순까지도 리그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5월 16일, 충격적인 소식이 발표됐다. 5월 17일 경기를 끝으로 김기태 감독이 감독직을 사퇴한다는 것이었다. 성적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자진 사퇴의 형식이었다. 이렇게 5년 동안의 ‘동행’이 막을 내렸다.
‘흥’ 대행 체제, 선택의 기로에 서다
김기태 감독의 사퇴 이후에는 퓨처스 감독이었던 박흥식 감독이 대행 체제로 시즌을 치러 나갔다. 이번 시즌을 마지막 ‘윈 나우’의 시기라 판단한 박흥식 대행은 최대한 성적을 내는 것을 우선적인 목표로 삼고, 그럼에도 성적이 저조할 경우 리빌딩으로 노선을 변경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김기태 감독 시절에 비해 한결 합리적인 투수 운용을 펼쳤고, 한편에서는 베테랑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달라진 팀 분위기 덕이었을까? KIA는 이어진 5월 14경기에서 11승 3패를 기록하며 반등 조짐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반격의 선두에는 최악의 부진을 탈출한 양현종과 외국인 투수들이 있었다. 김윤동 대신 마무리를 맡은 문경찬도 5월 들어 단 1점의 실점도 허용하지 않으며 ‘철벽’의 면모를 뽐냈다.
타석에서는 해즐베이커와 이범호의 대체 선수로 들어선 이창진과 박찬호가 공수주를 가리지 않고 맹활약을 펼치며 활력소 역할을 해줬다. 여기에 베테랑 야수들도 조금씩 페이스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대체 외국인 타자로 입단한 터커의 활약도 준수했다. 다소 고전했던 합류 초반 이후로는 나쁘지 않은 출루율과 장타율을 기록했고, 수비에서도 안정감 있는 활약으로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이전까지 쌓은 무수한 패배를 극복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고질적인 햄스트링 부상에 시달린 이범호의 은퇴 결심을 계기로 KIA는 결국 리빌딩 국면에 접어들었고, 리빌딩 행보가 본격화된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필연적인 경기력 하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주전 자리를 차지하고 나선 이창진과 박찬호의 활약은 전반기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고, 기회를 얻은 젊은 선수들은 타석과 수비 모두에서 불안한 모습을 노출했다. 이명기를 내주면서 데리고 온 이우성 또한 기대했던 장타력을 발휘해주지 못했다.
그래도 소득은 있었다. 항상 KIA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혔던 불펜은 이번 시즌을 통해 더 어려졌고, 더 두터워졌다. 김윤동이 부상으로 전열을 이탈했지만 문경찬을 필두로 전상현, 고영창, 박준표 등이 일취월장한 기량을 뽐냈다. KIA의 젊은 불펜진은 올해 최근 5시즌 동안의 KIA 불펜진 가운데 가장 적은 블론세이브(12개)와 가장 높은 구원 WPA(-1.19)를 합작했다.
MVP – 양현종
퀄리티 스타트(이하 QS) 단 2회, 0승 5패, 평균자책점 8.01. 최악의 출발이었다. 0.389의 피안타율을 비롯한 온갖 투구 지표에서도 리그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하지만 5월부터 양현종은 180도 달라졌다. 5이닝을 투구하지 못한 경기가 없었다. 5월 이후 출장한 23경기에서 그는 QS 20회, QS+ 13회, 완봉승 2회를 달성하며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4월 한 달간 평균자책점 리그 최하위를 기록했던 선수가 시즌 종료 시점에 평균자책점 1위로 올라서는 기적을 이뤄냈다. KBO 리그 역사에서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대기록이다.
이번 시즌 KIA의 팀 투수 WAR 총합은 14.04였다. 그리고 양현종은 그 절반을 훌쩍 넘는 7.36을 혼자 책임졌다. 팀 내에서 가장 높은 수치였음은 물론이고, 리그 전체로 봐도 투수 WAR 부문 전체 선두였다. 올해 양현종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KIA의 최고 선수였다. 리그 최고의 투수라 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2020시즌 전망
한국시리즈 우승으로부터 단 2년. 어느새 KIA는 가을 야구에서마저 멀어지고 말았다. 더 이상의 추락은 용납할 수 없다는 뜻이었을까. KIA가 변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타이거즈 순혈주의’에서 벗어나 외국인 감독인 맷 윌리엄스를 선임했고, 트래킹 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해 레이더 추적 시스템인 플라이트 스코프를 설치하고 나서기도 했다.
2019시즌은 소득이 전혀 없는 시즌은 아니었다. 가장 눈에 띄는 소득은 간만에 안정감을 찾은 불펜이었다. 한두 선수가 모든 부담을 짊어진 모습이 아니었다는 점도 긍정적이었다. 김윤동이 부상에서 돌아오는 내년에는 질과 양 모두에서 한층 견실해진 불펜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빈약해진 타선이었다. 다행히 윌리엄스 감독은 타격에 일가견이 있는 지도자다. 저명한 외국인 감독을 선임해 체계적인 운영을 추구하고, 적재적소에 데이터를 활용해 부족한 부분을 보강한다면 팬들 입장에서도 조금은 기대감을 품고 내년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당장 내년의 전망은 썩 긍정적이지 않다. 우선 외국인 투수를 두 자리 모두 새롭게 영입해야 할 상황이고, 새로 영입해 온 투수들이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양현종과 두 외국인 투수를 제외한 4선발부터의 윤곽도 확실하지 않다.
나란히 FA 자격을 취득한 키스톤 콤비 김선빈과 안치홍의 행보도 관건이다. KIA에서 잡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만큼 잔류의 가능성이 높지만 어느덧 30대로 접어드는 나이 탓에 예전 같은 활약을 장담하기가 어렵다. 최형우, 김주찬 같은 베테랑 야수들의 노쇠화도 피할 길이 없다. 여러모로 KIA의 내년은 계속 리빌딩에 집중하는 한 해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처럼 KIA는 2020시즌보다 그 이후를 더 기대하게 만드는 팀이다. 과연 이들은 지금의 ‘웅크림’을 발판으로 높이 뛰어오를 수 있을까?
기록 출처=STATIZ.CO.KR
사진=KIA 타이거즈 홈페이지
에디터=야구공작소 이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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