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윈 잭슨의 위대한 여정

(출처=mlb.com)

[야구공작소 김동민] 2003년 9월 9일(현지 시각), 19살의 꼬꼬마 투수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선발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상대하기 위해 마운드에 올랐다. 생애 첫 메이저리그 등판에 그것도 애리조나의 선발 투수는 공포의 랜디 존슨. 그러나 이 당찬 투수는 대투수가 8이닝 4실점(3자책)하는 동안 6이닝 1실점 퀄리티 스타트 피칭을 펼치며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추고 내려갔다. 그 해 사이영 상을 수상할 에릭 가니에가 50번째 세이브로 문을 굳게 닫았고 결국 처음 등판한 꼬꼬마 투수는 메이저리그 첫 승리를 따내고야 만다.

2003년 9월 9일의 다저스 vs 애리조나 경기 스코어 박스 (출처=Baseball Almanac)

세월이 흘러 지난 5월 16일(한국시간),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원정경기를 가졌다. 16년 전 랜디 존슨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꼬꼬마는 이제 35살의 노장이 되어 생애 첫 메이저리그 경기를 뛰게 되는 션 앤더슨을 상대한다. 16년 전의 그 경기가 반대의 입장으로 오버랩되는 셈. 선두타자 조 패닉을 맞아 첫 번째 공으로 88.5mph(약 142km/h)짜리 커터를 던졌다. 그리고 그렇게 그는 전설을 써내려 갔다.

14번째 팀, 역사에 남다

이 경기의 선발 에드윈 잭슨은 5이닝 동안 3실점 2자책점을 내주며 노 디시전에 그쳤고 팀은 4:3으로 패했다. 그러나 승패와 관련없이 이 경기는 잭슨에게는 상당한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는 경기가 끝난 후 인터뷰를 가지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상황이)나는 인내심이 많다고 알려주는 거나 다름없죠… 몇몇 팀들은 선수들이 집에 가고 싶게 하거나 그만두게 만들고 울려버리는 등의 상황을 만들어줬지만, 그런 상황이 저를 힘들게 만들수록 저는 더욱 열심히 경기에 임했습니다.”

토론토는 잭슨에게 메이저리그 기회를 준 14번째 팀이다. 이는 종전 옥타비오 도텔의 13팀을 넘어선 메이저 리그 신기록에 해당한다. 통산 104승 124패, 4.61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는 우완 투수.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5할이 되지 않는 승률로 평가절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기록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지금까지, 그리고 또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표1] 통산 최다 팀 소속 기록 명단 (출처=Baseball-Reference)

이전 최다 기록 보유자였던 도텔을 포함해 4, 5위인 론 빌론과 마이크 모건 모두 불펜 투수였으며 맷 스테어스나 헨리 블랑코 등이 플래툰 플레이어 내지 전문 대타요원으로 활약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커리어 대부분을 선발 투수로 뛴 잭슨의 기록 경신은 큰 의미를 가진다. 바로 다음 순위는 바톨로 콜론의 11개로 잭슨의 14개와는 차이가 있으며 콜론의 커리어는 22년이었다.

“(드래프트 당시에) 그는 포지션 플레이어(타자)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다저스는 그의 어깨에 주목했고, 그의 운동능력이 (투수로서) 일관된 메커니즘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잭슨을 투수로 만든다는 그 결정은 통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무브먼트가 동반된 95mph(약 153km/h)의 패스트볼을 던지며 이는 다저스의 팜에서 최고로 손꼽힌다. 또한 좋은 슬라이더를 가지고 있다…(좋은 실력이) 보장되는 투수 유망주는 없다. 그러나 그렇게 보이게 하는 몇몇 특징들이 있으며, 잭슨은 그것들을 가지고 있다.”

존 시켈스가 2003년에 작성한 스카우팅 리포트 (출처=ESPN)

잭슨은 2001년 드래프트에서 18살의 나이로 다저스의 6라운드 픽으로 지명되었고 3년이 지난 2004년에는 BA(Baseball America) 선정 프리 시즌 전체 4위 유망주로 평가받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가 저니맨 생활을 할 줄은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성장 속도는 생각보다 느렸다. 컨텐딩을 하고 있는 다저스의 입장에서는 좋은 유망주라 할지라도 현재의 팀 상황에서 전력이 되지 못하는 투수를 놔두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2006년 1월 14일, 탬파베이 데빌레이스로 트레이드 되면서 그의 기나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2010년대 초반까지 평균 95mph, 최대 97mph(약 156km/h)에 이르는 포심 패스트볼을 주무기로 사용했고 킬링 피치로 슬라이더를 주로 썼다. 간간히 체인지업과 커브를 던지면서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기타 구종의 비율을 6:3:1 정도로 유지했으나 구위가 조금씩 하락함과 함께 포심보다 커터를 즐겨 던지기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35살의 나이지만 여전히 평균 93mph에 이르는 패스트볼을 뿌린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2018년 선발진이 약했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입단해 후반기 선발 로테이션 구성에 큰 힘이 되어주면서 4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이러한 경쟁력이 그를 지금까지도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남아 있게 했다.

저니 로그 (Journey Log)

에드윈 잭슨이 14개 팀에서 뛴 경기 수<5월 16일 기준> (출처=mlb.com)

[표2] 에드윈 잭슨의 커리어<5월 25일 기준> (출처=Baseball-Reference)

그간 잭슨이 겪은 고난(?)을 표로 정리한 결과는 한 페이지에 이른다. 크고 작은 트레이드에 연관되어 있던가 하면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받고 노히터 달성도 하는 등 여러 일이 있었다.

다저스에 입단한 후 잭슨의 마이너리그 성적은 상위급 유망주의 실링을 그대로 보여줬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상황들이 겹쳐 탬파베이로 트레이드 되었다. 탬파베이에서의 3년 동안은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을 담당하고 팀의 리그 우승을 함께하는 등 없어서는 안 될 활약을 보였다. 이후 2009시즌 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로 트레이드 되었고 그 해 올스타에도 선정되며 개인 최고의 시즌을 보내게 된다.

1년 만에 삼각 트레이드로 다시 애리조나로 이적하는데 이 때 관여된 양키스는 디트로이트로부터 커티스 그랜더슨을 받는 대신 이안 케네디를 애리조나로 보냈고, 디트로이트는 그랜더슨을 보낸 대신 애리조나로부터 맥스 슈어저를 받았다. 케네디가 3시즌 정도 애리조나의 에이스 역할을 했지만 슈어저의 현재 위상을 생각한다면 실패한 트레이드나 다름없었다. 잭슨 역시 역대 최다 투구수(149구) 노히터를 빼면 큰 활약 없이 부진하면서 결국 시즌 중반에 화이트삭스로 쫓겨나듯 트레이드 되었다. 그러나 화이트삭스에서 오히려 좋은 성적을 보여 애리조나를 다시 곤혹에 빠지게 만들기도 했다.

2011년 시즌 중반 또 다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트레이드되면서 그 당시 최다 팀 소속 타이 기록(12개 팀)을 세웠던 옥타비오 도텔과 같이 뛰게 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빈약했던 세인트루이스 투수진에 도텔과 함께 보탬이 되면서 세인트루이스를 월드시리즈 우승에까지 이끈 1등 공신이 되었다.

(출처=Flicker Matthew Straubmuller)

하지만 2012년 단년 계약으로 워싱턴 내셔널스에서 뛴 후부터 악몽이 시작되었다. 시카고 컵스와 4년 계약을 맺으며 대박을 터뜨린 듯 보였지만 2013년 최다패 1위(8승 18패 4.98ERA)의 멍에를 떠안으며 부진과 불운에 시달리다가 2년 반 만에 방출되었다. 그리고 이 때부터 여러 팀을 떠도는 저니맨 신세로 전락했다. 2015년부터 2018년 중반까지 옮겨 다닌 팀만 무려 8개에 이른다. 3년 반 동안 이 정도였으니 1년 이상 팀에 붙어있는 경우가 없었다.

그러나 지난 시즌 오클랜드에서 반등을 이뤄내면서 다시 경쟁력을 찾았다. 그리고 이번 2019년 드디어 14번째 팀인 토론토에서 기회를 받으며 새로운 기록을 쓰게 되었다.

그의 미래는?

에드윈 잭슨의 등번호 수집기* (출처=Baseball-Reference)

*14팀이지만 다저스에서 등번호가 2번 바뀌었고 탬파베이 시절에 데빌레이스에서 레이스로 바뀌면서 다시 한 번, 그리고 워싱턴에서 두 번 뛰는 과정에 등번호가 두 개로 올라가면서 총 18개의 등번호가 등록되어있다.

노장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추세의 요즘 메이저리그. 5월 21일까지 2019시즌 메이저리그에서 뛴 1046명의 선수 중 만 35세 이상의 선수는 55명에 불과하다. 전체 중 고작 5.2%에 불과한 비율이다. 그러나 그렇게 적어지는 기회 속에서도 내년이면 36살이 되는 잭슨은 여전히 빅리그에서 뛰면서 그 흐름을 무색케 하고 있다.

현재 뛰고 있는 선수들 중 페르난도 로드니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팀을 뛴 제시 차베즈, 타일러 클리파드, 잭 듀크 등이 9팀에서 선수 생활을 해왔던 것을 생각하면 잭슨의 순위는 한동안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잭슨이 15번째, 16번째 팀을 찾을 확률도 낮다고 볼 수 없다. 여전히 나쁘지 않은 구위를 유지하고 있는 그의 현재 실력은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이어 나가기에 부족함이 없다.

소속 팀 수가 많았다는 것은 그가 한 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돌았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가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만큼 많은 팀에서 뛰지 못하고 메이저리그에서 조용히 사라졌을 것이다. 에드윈 잭슨이란 선수에게 이 기록은 불명예스러운 것이 아닌 명예롭고 자랑스러운 것이다. 그의 길었던 여정과 앞으로 남은 여정에 새겨질 새로운 기록에 응원을 보낸다.

출처=mlb.com, Baseball-Reference, Fangraphs, ESPN

에디터=야구공작소 임선규 & 이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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