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야구공작소 조예은)
팬그래프 시즌 예상: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4위 (71승 91패)
시즌 최종 성적: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5위 (58승 104패)
[야구공작소 박기태] 메이저리그 정상에 선 지 3년,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우승을 경험한 멤버가 대거 FA 자격을 획득한 지난 겨울에 이미 예견된 결말이었다. 주축 선수가 여럿 빠진 올해 로열스의 테마는 성적이 아닌 ‘리셋’이었다. 스몰마켓 팀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지출 비용을 낮추는 것이 1순위 목표였다. 예상보다 훨씬 가혹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고, 성적에 관계없이 매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에겐 힘든 한 시즌이었지만, 본디 목표를 생각해보면 실패라고 볼 수만은 없는 한 해였다.
다시 만난 바닥
로렌조 케인, 에릭 호스머, 마이크 무스타커스, 알시데스 에스코바.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던 주축 야수 4명은 FA 시장으로 나가 다른 팀의 품에 안기는 것이 거의 확실시됐다. 케인은 일찌감치 밀워키 브루어스와 5년 계약을 맺었다. 로열스가 거액의 제안을 날리며 마지막까지 옷깃을 붙잡았던 호스머도 결국 샌디에이고 파드레스를 선택했다.
다만 4명 중 선택지가 적었던 에스코바는 캔자스시티와 ‘1년 더’를 외쳤다. 3월에는 예상치 못하게 FA 미아가 된 무스타커스와 1년 550만 달러 계약을 맺는 반전도 있었다. 원하던 규모의 계약을 찾지 못한 무스타커스의 ‘FA 미아’ 전락은 오프시즌 FA 시장에 분 찬 바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됐다.
뜻밖의 투자였지만 둘과의 재계약이 팀의 노선 변경이나 역습을 뜻하는 건 아니었다. 호스머와 케인의 빈 자리는 쉽게 채울 수 없었고, 빈곤했던 득점력은 달라지지 않았다. 주축 선수를 FA와 트레이드 등으로 떠나 보낸 불펜의 공백도 채울 수가 없었다. 3년 전 최고의 강점이었던 불펜 성적은 리그 최하위로 추락했다.
후반기에는 31승 36패로 선전했지만, 거기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순간은 한참 멀어진 뒤였다. 캔자스시티는 어느새 시즌 목표에 ‘내년 드래프트 1번 지명권’을 추가했으나 최종적으로는 해도 해도 너무했던 볼티모어의 다음 순번 2번에 만족해야 했다.
더 참혹해진 팀 성적. 바닥 밑의 지하를 보는 듯했던 한 해였다
리셋 버튼 누르기
80승을 거둔 지난 시즌 로열스의 연봉총액은 1억 5천만 달러에 육박했다. 하위권에 머물러있던 시절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불어난, 스몰마켓 팀으로서 감당하기 버거운 액수였다.
*출처: Spotrac
리빌딩을 위한 과제는 두 가지로 압축됐다. 하나는 재정 건전성 회복, 다른 하나는 미래 전력이 될 유망주 보강. 팜 상태가 몇 년 사이 메이저 최하위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후자는 장기과제임이 당연했다. 당장의 목표는 감당하기 버거운 지출을 줄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여러 선수가 시즌 전과 시즌 중에 트레이드됐다.
시즌 중에는 무스타커스, 존 제이, 켈빈 에레라 등이 트레이드됐다. 시즌 전에는 부진한 성적으로 악성 계약이 된 호아킴 소리아(잔여 연봉 900만 달러), 브랜든 모스(잔여연봉 725만 달러)를 처분했다. 성적에 비해 몸값이 비싼 둘을 팔기 위해 지난해 불펜에서 맹활약을 펼쳤고, FA까지 시간이 4년 이상 남은 라이언 벅터와 스캇 알렉산더가 한데 묶여 세트로 트레이드됐다.
사실 벅터와 알렉산더의 트레이드는 불펜 투수의 가치가 상승하는 최근 시장의 트렌드를 떠올릴 때 아쉬움이 클 수 밖에 없었다. 허리끈을 조이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손실이었다지만, 두 선수가 올해 이적한 팀에서도 맹활약을 펼친 점은 아쉬움을 더했다. 이렇게 어렵게 지출을 줄이면서도 호스머에게 거액을 투자하려 한 무어 단장의 오프시즌 행보는 다소 이율배반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과거의 영광이 된 알렉스 고든(좌측), 시즌의 버팀목이 된 윗 메리필드(가운데) (사진=Flickr Keith Alisson, CC BY SA 2.0)
실망 속의 실망
104패라는 성적만으로도 팬들에게 충분히 힘든 한 해였지만, 그 속에서도 더욱 실망감을 안긴 이름들이 있었다.
오프시즌에는 지난해 쏠쏠한 활약을 펼친 호르헤 보니파시오가 금지약물을 복용했다는 사실이 적발돼 팬들에게 충격을 줬다. 80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마친 보니파시오는 다시 우익수로 69경기에 나섰지만, 성적도 지난해보다 나빠져 ‘야구로 속죄’하는 것도 실패했다.
성적이 실망스러운 선수로는 대니 더피가 있었다. 지난해 부상으로 규정이닝 달성에 실패하며 ‘유리몸’ 꼬리표를 유지한 대신(146.1이닝, ERA 3.81), 올해는 더 많은 경기와 이닝을 소화했지만 더 높은 ERA를 기록했다(155이닝, ERA 4.88). 앞으로 3년간 4600만 달러의 계약이 남은 더피의 부진은 로열스의 큰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그래도 더피는 다른 악성 계약에 비하면 나아 보이기도 했다. 좋은 기억을 많이 남겨준 알렉스 고든에게는 ‘까임 방지권’이라도 있지만, 도무지 나아질 구석이 보이지 않는 이안 케네디와 제이슨 해멀에게는 그야말로 돈을 버린 셈이다. 케네디는 앞으로 2년간 3300만 달러를 더 받는다. 해멀과는 다행히(?) 시즌 후 200만 달러의 바이아웃을 지불하며 작별했다.
캔자스시티의 악성 계약 목록
진흙 속의 진주 찾기
2015년 우승으로 정점을 찍고 지난해를 끝으로 전성기를 마친 뒤, 로열스의 팜에 남은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다 할 유망주가 마이너리그에 없었던 터라, 이번 시즌 두각을 드러낸 선수는 오히려 메이저리그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지난해 팀의 새로운 얼굴로 떠오른 윗 메리필드는 여전했다. 올해는 스프링캠프 때부터 연습한 중견수로도 가끔 겸업하며 팔방미인다운 모습을 뽐냈고, 45도루로 2년 연속 리그 도루 1위를 차지했다.
가장 눈에 띄게 성장한 선수는 투수진의 제이콥 주니스와 브래드 켈러. 빅리그 데뷔 2년차를 맞은 주니스는 풀타임 선발 첫 시즌을 보내며 177이닝 ERA 4.37의 준수한 성적을 냈고, 대니 더피가 부진한 선발진에서 사실상 1선발 역할을 했다. 켈러는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는 룰5 드래프트 출신 신성이 됐다. 불펜으로 꾸준히 좋은 활약을 펼치더니, 5월 막바지 선발로 전환해서도 성공을 이어갔다. 144와 1/3이닝을 소화했고 팀 내 여타 선발보다 훨씬 낮은 3.08의 ERA를 기록했다.
타선에도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라울 몬데시의 아들’로 더 유명했던 아달베르토 몬데시는 오랫동안 팀 내 최고 유망주였지만 성장이 더뎠다. 그러나 올해 75경기 291타석에서 OPS 0.804를 기록하며 7년 동안 부동의 주전 유격수였던 에스코바를 3루로 밀어냈다. 1995년생, 만 22세로 아직 그렇게 나이가 많지 않다는 점도 희망을 더하는 요소다.
후반기에 콜업되며 깜짝 활약을 펼친 라이언 오헌도 팬들에게 청량감을 줬다. 7월 31일 데뷔해 겨우 44경기 170타석에 나섰을 뿐이지만 12홈런을 포함, OPS 0.950을 기록하며 거포의 자질을 엿보게 했다.
이 밖에 지난해 부상으로 고초를 겪은 3루 유망주 헌터 도지어도 2번째 빅리그 시즌에 100경기 이상 출장하며 경험을 쌓았다. 브랜든 모스 & 라이언 벅터 트레이드에서 데려온 우완 히스 필마이어는 후반기 선발진에 합류, 무난한 투구를 펼치기도 했다. 새로운 피가 수혈된 로열스는 마지막 34경기에서 20승을 거두며 조금이나마 희망적인 모습을 보였다.
기다림의 끝을 기다리며
골수 팬들에겐 ‘지켜본다’기보다는 ‘버텨낸다’는 말이 더 어울렸던 한 시즌. 이미 우승 전에도 비슷한 암흑기를 버텨내지 않았느냐는, 위로 같지 않은 위로가 필요한 시기가 됐다.
데이튼 무어 단장의 첫 번째, 두 번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자(마이크 무스타커스, 에릭 호스머)와는 마침내 완전히 작별했다. 둘의 입단, 성장과 함께 로열스는 암흑기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둘을 떠나 보냄으로써 또 다른 암흑기에 돌입했다.
작은 행운, 미성숙한 젊은 재능에 기대를 걸게 되는 시기. 다음 황금세대를 찾는 로열스는 네드 요스트 감독과 1년 재계약을 맺었다. 조기에 큰 변화는 없겠고, 당장의 목표는 연봉 총액을 1억 달러 아래로 감축하는 것. 자연스럽게 팬들의 기대치 조절도 요구된다.
참조: Baseball Reference, Fangraphs, Spotrac
에디터=야구공작소 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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