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무실점을 기록한 켄 자일스(사진=Wikimedia Commons)
[야구공작소 이해인] 지난 7월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 사이의 대형 트레이드가 발발했다. 토론토는 이 거래로 본래의 마무리투수였던 오수나를 보내는 대신 부진을 겪고 있던 휴스턴의 마무리투수 켄 자일스와 유망주 2명을 받아왔다.
자일스는 시속 100마일까지도 올라가는 강속구와 종으로 날렵하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리그를 주름잡던 구원투수였다. 그러나 2017시즌 포스트시즌부터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이번 시즌에도 본래 갖고 있던 안정감을 되찾지 못했다. 반면 이번 시즌에도 우승 경쟁을 해야 했던 휴스턴은 그의 반등을 기다려줄 여유가 없었다. 결국 자일스는 평균자책 4.99라는 참담한 성적을 낸 끝에 마이너리그로 강등당하는 수모까지 겪어야 했다.
그의 부진은 토론토에서도 계속됐다. 유니폼을 갈아 입은 직후였던 8월 한 달 동안 자일스는 11이닝 동안 11실점(9자책)과 4개의 홈런을 허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가 기대를 버리고 ‘이번 시즌 부활은 실패다’라고 느끼고 있을 무렵 자일스가 달라졌다. 9월 한 달 동안 8.2이닝을 던지며 무실점으로 상대 타자들을 압도했다.
하이 패스트볼과 제구
위에서도 언급했듯 자일스는 최대 시속 100마일에 이르는 포심 패스트볼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포심 패스트볼에는 또 하나의 강점이 있다. 바로 회전수다. 이번 시즌 자일스가 던진 포심 패스트볼 평균 회전수는 2372rpm으로 메이저리그 최상위 20%에 속한다. 즉 하이 패스트볼로 헛스윙을 유도하기에 좋은 모든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셈이며 토론토는 이를 십분 활용했다.
이런 변화는 실제 차트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토론토 이적 후 포심 패스트볼 상하 평균 로케이션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또한 8월과 9월에 포심 패스트볼의 헛스윙 유도율이 증가했다. 그리고 베이스볼 서번트가 제공하는 피치 차트를 통해서 위치의 변화 역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프1. 월별 포심 패스트볼 평균 상하 로케이션 변화
(*단, 적은 이닝 소화로 비교적 샘플의 숫자가 적었던 3월과 7월은 앞으로도 계속 배제)
그래프2. 월별 포심패스트볼 헛스윙율
그림1. 포심 패스트볼 피치 차트(좌: 2018시즌 휴스턴 소속, 우: 2018시즌 토론토 소속)
특히 그림1에서는 두 가지를 살펴볼 수 있다. 첫째로 오른쪽의 차트에서는 대부분의 공들이 스트라이크 존 높낮이 정중앙을 기준으로 위쪽에 밀집해 있다. 그러나 좌측은 다른 양상이다. 높낮이의 측면에서 일정한 패턴이 보이지 않는다.
둘째로 우측의 제구가 좌측에 비해 훨씬 좋았다는 것이다. 바로 Grooved Pitches의 비율 차이다. Grooved Pitches란 ‘상하, 좌우를 기준으로 모두 한가운데 몰린 공들, 즉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 들어간 공들’을 의미한다. 육안으로도 휴스턴에서 뛸 때가 토론토에서 뛸 때보다 Grooved Pitches의 비율이 높은 것이 보인다.
그래프3. 월별 Grooved Pitches 비율
한편 그래프3을 통해 왜 8월에도 자일스가 부진했는지 살짝 엿볼 수 있다. 헛스윙 유도율이나 로케이션이 모두 과거에 비해 좋아지기는 했지만 실투성 공들이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로 들어간 비율이 꽤나 높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일스가 8월에 헌납한 4개의 피홈런 가운데 1개가 바로 이 가운데로 몰린 포심 패스트볼에서 나왔다.
그림2. 포심패스트볼 로케이션(좌: 8월, 우: 9월)
그림2의 양쪽 모두 4~6월과 비교했을 때 한가운데로 들어간 포심 패스트볼의 밀도가 현저히 줄어들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8월과 9월의 로케이션 차이 역시 상당하다. 특히 8월에는 하이 패스트볼 구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애매한 높이의 실투성 공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반면 9월에는 한가운데 몰린 공들 및 애매한 높이의 공들 모두 현저한 비율로 줄어들었다.
살아나고 있는 슬라이더의 위력
포심 패스트볼 뿐만 아니라 슬라이더의 위력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살아났다. 지난 4월 자일스의 슬라이더는 커리어를 통틀어 월 단위로 쪼갰을 때 가장 낮은 헛스윙 유도율을 기록하는 등 구위가 바닥을 쳤다. 그러나 5월부터는 평년 이상의 성적으로 회복세를 보였다.
디어슬레틱의 타일러 스태포드 기자는 자일스의 4월 부진을 가볍게 분석하며 그 원인을 움직임의 변화로 꼽았다. 4월 한 달 동안의 슬라이더는 이전 해들에 비해 우타자 바깥쪽 방향으로 많이 흘러 나갔다. 수치상으로도 H-Movement*가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높았다. 하지만 이런 변화로 인해 오히려 골라 내기 쉬운 공이 됐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H-Movement 및 Z-Movement: 피치인포에서는 각 투구별로 홈플레이트에서 40피트 지점을 지날 때의 위치와 속도를 이용해 그린(공기저항 배제, 중력 고려) 가상의 궤도를 설정한다. 이 궤도가 홈플레이트 위를 지날 때의 위치와 실제 투구가 홈플레이트 위를 지날 때의 위치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 사이 수평 거리를 H-Movement라 부른다.
그 뒤로 자일스의 슬라이더 움직임은 서서히 예년과 비슷해져 갔다. 우타자 바깥쪽으로 휘어지는 움직임은 근 2달 만에 사라졌으며 예전과 같이 횡적인 움직임보다는 종적인 움직임이 강해졌다. 인과관계라 단언할 수 없으나 이와 함께 슬라이더 헛스윙율 역시 어느 정도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표1. 슬라이더 움직임 관련 지표
영상1. 2017시즌 초반 슬라이더 궤적
영상2. 2018시즌 4월 슬라이더 궤적
영상3. 2018시즌 후반기 슬라이더 궤적
영상2에 비해 영상3에서는 훨씬 슬라이더의 종적인 움직임이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완전한 해답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디어슬레틱의 에노 사리스는 SNS를 통해 자일스의 슬라이더가 2017시즌 8월부터 우타자 몸 쪽으로 말려들어가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와 일맥상통하는 결괏값 중 하나가 바로 표1에서 볼 수 있는 토론토에서 뛰었던 2018년 8월과 9월이다.
이것이 나쁜 작용을 할 것이라 섣불리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2017년 중반까지 성공의 주역이었던 슬라이더와는 다른 유형의 공이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휴스턴에서 이번 시즌 초반 2달가량 시도했던 우타자 바깥쪽으로 휘어지는 슬라이더 궤적은 이를 수정하기 위한 시도였을 가능성 역시 있다.
슬라이더 제구 역시 월별로 꽤나 편차가 컸다. 그가 우타자 바깥쪽 궤적으로 흐르는 슬라이더를 많이 던졌던 3~5월에는 우타자 몸쪽 높은 곳으로 제구된 공이 거의 없었다. 한편 본래의 슬라이더 움직임을 되찾았던 시간인 6~8월에는 영점이 비교적 잡히지 않은 듯했다. 소위 ‘행잉 브레이킹 볼’이라고 부르는 높은 코스로의 실투성 공들이 많이 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달인 9월에는 그 어느 때보다 로케이션이 완벽했다. 일부 가운데에 몰린 공들이 있지만 좌타자 상대 백도어성의 코스와 철저하게 스트라이크 존 하단과 우타자 바깥쪽에 탄착군이 형성됐다.
그림3. 슬라이더 로케이션(좌: 3~5월, 중: 6~8월, 우: 9월)
계투진의 중심이 돼야 한다
트레이드 당시 한 지역 매체에서는 “자일스만 부활한다면 그 하나만으로도 이번 트레이드는 토론토가 이긴 것이 될 수 있다.”라고 평을 내놓았다. 그리고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투수들이 허용한 예상가중출루율로 보았을 때 자일스는 0.292, 오수나는 0.294로 둘이 거의 동일한 성적을 냈다는 점이다.
한편 굵직한 성적들을 들여 봤을 때 자일스의 반등 가능성은 낮은 편이 아니다. 아직 9이닝당 탈삼진 개수에서 9개 이상을 잡는 등 이전보다는 떨어졌지만 아직까지 준수한 수치를 보여주고 있으며 볼넷 허용에서는 커리어 로우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4.65라는 높은 평균자책에 반해 FIP는 3.08로 나쁘지 않은 수치에 머무르고 있다. 또한 헛스윙 유도 확률 역시 지난 시즌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으며 2015시즌보다는 오히려 더 높았다.
그 어떠한 것보다 긍정적인 요소는 이번 시즌 끝이 좋았다는 점이다. 높은 평균자책에도 불구하고 계속됐던 ‘무(無)블론 세이브’ 행진은 토론토에서도 이어졌다. 또한 점점 좋아졌던 투구 내용과 9월의 무실점은 다음 시즌 그의 부활을 기대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요소다. 과연 자일스가 ‘토론토가 이긴 트레이드’로 만들 정도의 부활을 해낼 수 있을까? 다음 시즌 그의 활약상을 주목해보자.
기록 출처=MLB.com, Baseball Savant, Brooks Baseball, The Athletic, Twitter
에디터=야구공작소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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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글 잘 봤습니다.
“둘째로 우측의 제구가 좌측에 비해 훨씬 좋았다는 것이다. 바로 Grooved Pitches의 비율 차이다. Grooved Pitches란 ‘상하, 좌우를 기준으로 모두 한가운데 몰린 공들, 즉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 들어간 공들’을 의미한다. 육안으로도 휴스턴에서 뛸 때가 토론토에서 뛸 때보다 Grooved Pitches의 비율이 높은 것이 보인다.”
이 부분은 읽자 마자 곧바로 이해가 안가서 그림 보고 읽어보고 생각하고를 반복했네요. Grooved Pitches 라는 의미가 직관적으로 잘 와닿지 않아서 그랬던것 같아요. 야공소 이런 글좀 많이 많이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