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재활 끝에 빅리그에 데뷔한 레이 블랙(일러스트=야구공작소 박주현)
[야구공작소 김동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브루스 보치 감독은 지난 6월 29일(현지시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홈 3연전을 앞두고 유망주 레이 블랙의 승격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현재 샌프란시스코는 마무리 헌터 스트릭랜드가 전치 6주의 손 골절상을 입어 이탈했으나, 큰 수술을 받고 올해 복귀한 마크 멜란슨과 윌 스미스를 연투시키지 않겠다는 코치진의 결정으로 인해 마무리 보직이 공석인 상황이다. 여기에 임시 마무리 샘 다이슨이 콜로라도 로키스 전에서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면서 보치 감독은 트리플 A 무대에서 뛰어난 성적을 기록 중인 블랙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그리고 마침내 블랙은 7월 8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 2011년 신인 드래프트 7라운드에서 샌프란시스코에 지명 받은 지 무려 7년 만에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았다.
큰 수술만 3번, 선수 등록 기간보다 재활이 길었던 7년
팀에 지명된 지도 어느덧 7년이 지났지만, 샌프란시스코 팬들에게 레이 블랙이란 이름은 안타까움의 동의어다. 블랙의 길고 긴 재활 역사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된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팔꿈치 내측 인대 재건 수술(일명 토미 존 수술)을 받은 그는 피츠버그 대학으로 진학한 뒤에도 무릎 부상에 시달렸다. 야구 외적으로도 강도 사건에 휘말려 오른손이 골절되는 불운이 겹쳤다. 하지만 블랙의 재능은 뛰어났다. 등판만 하면 80마일대 중후반의 슬라이더와 98마일을 넘나드는 패스트볼을 구사하는 블랙의 재능은 스카우트와 팬들을 홀리기엔 여전히 충분했다.
메이저리그에 데뷔하기까지 레이 블랙이 겪은 부상이력
2008년: 오른쪽 팔꿈치 내측 인대 재건 수술(재활 1년 6개월)
2010년: 오른쪽 무릎 반월판 파열과 오른손 골절(재활 1년)
2011년: 오른쪽 어깨 관절와순 파열(재활 2년 6개월)
2014년: 오른쪽 어깨 통증으로 DL 등록
2015년 4월: 광배근 염좌로 DL 등록
2015년 5월: 이두박근 염좌로 DL 등록
2016년 7월: 오른쪽 어깨 통증으로 DL 등록
2016년 8월: 복귀 후 또다시 어깨 통증으로 DL 등록
2016년 9월: 오른쪽 어깨 뼈 돌기 제거 수술(재활 1년 6개월)
그러나 블랙의 불운은 프로 데뷔 후에도 그치지 않았다. 드래프트 이후로도 그의 어깨는 계속해서 이상신호를 보냈다. 블랙과 팀은 수술을 피하기 위해 수개월간의 휴식과 재활을 반복했지만 결국 2012년 봄, 파열된 관절와순을 고치기 위한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블랙에게 이 수술이 고등학교 시절의 토미 존 수술(성공 확률이 90%에 육박한다)와 달리 재활 성공률이 33%에 그치고 수술 전과 같은 기량을 회복할 가능성은 7%에 불과한 수술이란 사실을 전달했다.
그렇게 2012년 봄부터 2014년 봄까지 블랙은 기나긴 재활에 몰두했다. 물리치료실과 훈련장을 오가느라 TV조차 보기 힘들었고, 애리조나의 뜨거운 여름 탓에 숙소에서만 생활해야 했던 고된 나날의 연속이었다. 이때 블랙을 지탱해준 것은 가족, 동료, 종교 그리고 끝까지 그를 기다리고 믿어준 팀이었다.
아버지는 재활이 너무 힘들면 언제든 집으로 돌아와 함께 농사나 짓자(블랙의 집은 펜실베니아에서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며 블랙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돼줬고, 신은 힘이 들 때 기댈 수 있는 정신적 버팀목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동료와 코치들은 복귀 이후에 도움이 될 만한 투구 매커니즘을 재활 중이던 블랙과 함께 연구했고, 경기에 나가지 못해 울적해질 때도 곁에 있어줬다. 팀은 데뷔 후 보여준 것이 얼마 없던 그를 2014년 11월 룰5 드래프트 직전, 40인 로스터에 포함시키면서 믿음을 보여줬다. 블랙 역시 2016년 스프링캠프에서 “만약 다른 팀에서 드래프트 됐다면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며 샌프란시스코 조직을 향한 무한한 애정을 나타냈다.
차기 마무리 후보로 부상하다
샌프란시스코의 인내와 블랙의 의지는 헛되지 않았다. 블랙은 프로 무대에 데뷔한 2014년부터 항상 자잘한 부상에 시달리며 부상자명단을 들락거렸지만, 마운드에 오를 적이면 어김없이 뛰어난 구위를 선보였다.
관절와순 수술에서 돌아온 레이 블랙의 100마일 패스트볼 (출처: MLB.com)
레이 블랙의 프로 데뷔 후 성적과 구속
2014년(싱글 A): 37경기 35.1이닝 71삼진 ERA 3.57 / 최고구속 98마일
2015년(싱글 A): 20경기 25이닝 51삼진 ERA 2.88 / 최고구속 104마일
2016년(더블 A): 35경기 31.1이닝 53삼진 ERA 4.88 / 최고구속 103마일
2014년 부상에서 돌아온 블랙이 보여준 구위는 브라이언 윌슨, 서지오 로모의 뒤를 이을 새로운 마무리 후보로 손색이 없었다. 드래프트 당해인 2011년 베이스볼 아메리카에 의해 팀 내 24번째 유망주로 선정됐던 블랙은 복귀 첫해 바로 팀 내 24위를 회복했고, 이듬해인 2015년에는 팀 내 13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다. 당시 샌프란시스코는 상당한 마무리 유망주들을 보유한 팀이었다. 차기 마무리 후보였던 히스 헴브리가 트레이드로 보스턴으로 떠나갔지만 팀은 여전히 헌터 스트릭랜드, 카일 크릭, 데릭 로 같은 여러 마무리 후보를 보유하고 있었다. 블랙은 스트릭랜드와 함께 발군의 구위를 뽐내며 팬들을 설레게 했다. 특히 실제 경기에서 선보이는 구속이 팬들과 여러 관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블랙의 구속에 대한 과거 야구 관계자들의 반응 (출처: 트위터)
순조롭게 마이너리그 단계를 밟아 오르며 서지오 로모와 산티아고 카시야가 떠난 샌프란시스코 불펜에 힘이 되어주리라 기대 받았던 2016년, 블랙의 오른쪽 어깨가 또다시 말썽을 일으켰다. 2016년 하반기에만 어깨 통증으로 2차례 부상자 명단에 올랐던 블랙은 결국 다시 한 번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원인은 수술 받았던 어깨에 생긴 뼈 돌기였다. 뼈 돌기를 제거하는 수술 자체는 앞선 두 차례의 수술보다 간단했지만, 팀은 길더라도 확실한 재활을 원했다. 그렇게 블랙은 또 한 번 1년이라는 긴 시간을 트레이닝센터에서 허무하게 보냈다. 하지만 건강한 블랙이 샌프란시스코의 유력한 마무리 후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꿈에 그리던 데뷔, 과연 샌프란시스코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확실한 재활을 원했던 팀의 결정은 2018년 7월 현재까지는 주효한 듯 보인다. 블랙은 지난해 말 교육리그에서 복귀한 뒤로 단 한 번도 부상자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있다.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100마일을 상회하고 있으며 제구까지 안정적이다. 극단적 타자 친화 성향의 퍼시픽 코스트 리그(PCL)에서 지난 17경기(16.1이닝) 동안 2볼넷, 2피안타만을 내주고 25개의 삼진을 잡아낸 블랙의 최근 활약은 더 이상 가볍게 취급할 수준이 아니다.
현재 샌프란시스코 불펜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가고 있다. 시즌 초부터 주축 선발들이 장기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잦은 등판으로 팀을 지탱했지만(불펜 ERA 3.65, 리그 전체 10위), 시즌이 흐르면서 새로운 동력의 필요성이 점차 뚜렷해지는 모양새다.
2018년 샌프란시스코 불펜 현황 (현지시간 7월 8일 기준, 괄호 안 ML 순위)
ERA: 3.72 (ML 11위)
세이브: 22 (ML 최다 공동 18위)
블론 세이브: 17 (ML 최다 공동 2위)
세이브 성공률: 43% (ML 28위)
이닝: 324 (ML 최다 7위)
패스트볼 평균 구속: 93.5마일 (ML 11위)
9이닝 당 탈삼진: 8.5개 (ML 22위) *리그 평균 8.96개
레이 블랙의 2018년 성적(현지시간 7월 8일 기준)
더블 A: 10경기 10이닝 4볼넷 20삼진 ERA 0.90 WHIP 0.80 K/9 18.00
트리플 A: 22경기 21.2이닝 7볼넷 38삼진 ERA 2.91 WHIP 0.78 K/9 15.78
필요한 상황에서 삼진을 잡아내는 능력이 부족했던 샌프란시스코 불펜에 블랙의 싱싱한 어깨와 탈삼진 능력은 큰 힘이 될 것이다(마이너리그 통산 123.2이닝 235삼진). 하지만 매우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이력의 투수인 만큼 과도한 기대는 대사를 그르칠 수도 있다. 블랙의 화려한 부상 경력과 뛰어난 성적 사이에서 가려진 좌우 편차 또한 보치 감독의 선택지를 제한할 것이다.
레이 블랙의 2018년 트리플 A 무대 좌우 스플릿(현지시간 7월 8일 기준)
vs 좌타자: 9.2이닝 8피안타 2피홈런 7실점 2볼넷 17삼진 / 37타수 8안타(0.216)
vs 우타자: 12이닝 2피안타 0피홈런 1실점(무자책) 5볼넷 21삼진 / 38타수 2안타(0.053)
메이저리그 데뷔를 앞둔 블랙에게 앞으로 필요한 것은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이다. 또 한 가지 보완점이 있다면 역시 좌타자를 상대하는 요령이다. 2014년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샌프란시스코 불펜은 꾸준히 좌타자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핵심 좌완 불펜이었던 하비에르 로페즈와 제레미 어펠트의 노쇠화와 은퇴가 결정적이었다. 같은 지구의 뛰어난 좌타자들을 요리하지 못하면서 샌프란시스코는 지구 우승에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좌타자 상대 OPS 0.752 vs 우타자 상대 OPS 0.702). 지난 시즌 핵심 우완 불펜으로 자리 잡은 스트릭랜드 또한 좌타자를 상대로는 힘을 쓰지 못했다(좌타자 상대 OPS 0.875 vs 우타자 상대 OPS 0.587). 좌타자에게 강한 우완 불펜 투수의 필요성이 한층 부각되는 형국이다.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블랙은 은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어깨뼈 돌기 제거 수술 후 처음으로 마운드에 오른 지난 해 교육리그에서 블랙은 투구 도중 통증을 느꼈고, 구속도 이전만큼 끌어올리지 못했다. 농장에서 가업을 이을지 고향에서 아이들을 가르칠지를 고민하던 그는 올해 스프링캠프에서 다시 한 번 공을 던졌고, 시속 98마일이라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 도전을 이어갈 수 있었다. 매년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며 간절히 기도하고 또 노력했던 블랙의 7년은 빅리그 데뷔라는 결실로 나타났다.
출처: Baseball America, Baseball Essential, Mercury News, MLB.com
에디터=야구공작소 이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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