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표가 살고 있는 지옥

[야구공작소 박기태] 고영표. 야구팬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이름 석 자. ‘휴지통보다 적은’ KT 팬이 아니면 모를, 3승 8패밖에 못한 투수. ‘실력 위주로 뽑겠다’는 원칙에 따라 공명정대하게 이뤄진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서 탈락한 투수. 지은 죄가 얼마나 크길래 이런 지옥 속에 사는진 몰라도, 실력 하나만은 괜찮은 투수. 이 시대의 불운아 고영표가 지은 죄를 하나하나 뜯어보자.

 

삼진 많고 볼넷 적은 죄

옛 성현 말씀에 삼진은 사치스러운 존재라 했다. 최소한 공 3개 이상을 던져야 하니 말이다. 리그 평균 타율 2할 8푼의, 때리면 안타가 되는 타고투저 시대에도 선조의 지혜는 사라지지 않는다. 고영표는 탈삼진 비율 22.1%로 50이닝 넘게 던진 투수 중 10위, 한국인 중 2위에 올랐다. 탈삼진 욕심에 투구 수를 낭비한 죄가 드러난다. 볼넷도 적어서 K-BB%(탈삼진 비율-볼넷 비율)가 18.4%로 5위, 한국인 중 1위다. 볼넷이 적은 게 왜 죄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고영표의 잘못임이 틀림없다.

 

안타를 많이 내준 죄

삼진 욕심이 많으면 안타라도 덜 맞았어야 한다. 고영표는 인플레이 타구 타율(BABIP)이 0.375에 달한다. 리그 전체 3위다. 이것도 그의 잘못이다. 어떻게든 야수 정면으로 타구를 보낼 생각을 해야 했는데 삼진 생각에 정신이 팔린 게 분명하다. 순위표 위를 살펴보니 비싼 돈 주고 데려온 니퍼트도 있다. 운 나쁜 투수만 여기 이름이 올라온다는데 평소 쌓은 업보가 야구장에서 터진 것 같다. 이런 업보 많은 투수를 응원하는 KT 팬들에겐 참 안된 일이다.

 

이닝 욕심을 부린 죄

동반성장의 시대다. 불펜 투수가 먹고살려면 선발 투수가 이닝 욕심을 덜 부리는 미덕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고영표는 등판 때마다 6회, 7회까지 버텼다. 이번 시즌엔 평균 6.2이닝을 던졌다. 그 결과 한국인 선발 투수 중 양현종 다음가는 이닝이터가 됐다. 일감을 잃은 KT 불펜진은 의욕 저하로 고영표가 남긴 주자 9명 중 6명을 홈으로 들여보냈다. 나머지 3명을 막아 준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다. 앞으로는 적당히 5이닝만 던지고 내려오는 게 어떨까.

 


(사진=방송화면 캡쳐)

 

기록 조작한 죄

헛스윙 유도율은 투수의 공이 얼마나 뛰어난지 살펴볼 수 있는 지표다. 보통 한현희, 켈리, 최충연처럼 뛰어난 변화구를 던지는 투수가 상위권에 오른다. 올해 100구 넘게 던진 투수 중에서 고영표는 체인지업 헛스윙 유도율 1위에 올랐다. 지난해 2위도 고영표였다(500구 이상).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명단에 최충연의 이름이 있는 걸 보니 순위표의 공정함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고영표의 이름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국가대표 명단이 잘못됐을 리는 없으니, 순위표의 숫자가 잘못됐거나 조작된 결과 아닐까 의심이 든다. 혹시 이것도 트릭일까?

 

팀원 안 챙긴 죄

승리는 혼자 만들 수 없다. 팀과 함께 일구는 것이다. 그런데 고영표가 등판할 때마다 KT 타선은 침묵을 지켰고 평균 4.5점만 지원했다. 아무래도 선발 투수의 필수 덕목, 경기 전 피자 한 판 돌리기를 까먹은 것 같다. 3승을 거두는 동안 8패나 한 걸 보니 심증이 굳어진다. 기록을 살펴보니 과거 데뷔 첫 승 기념으로 피자를 돌렸던 국가대표 투수 임찬규는 올해 경기당 8.5점이나 지원을 받았다. 이럴 줄 알았다. 역시 승리만한 실력 지표가 없다.

 

결론

고영표의 FIP(수비 무관 평균자책점)는 3.89로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중 6위, 토종 투수 중 양현종에 이은 2위에 올라있다. 수비의 도움을 받았다면 평균자책점 4.74에서 앞자리가 4가 아니라 3이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굴 탓한다고 풀릴 문제도 아닌 것을. 대투수 류현진의 명언을 되새기며 수비를 믿지 않고 삼진을 더 많이 잡았다면 해결될 문제였다. 모쪼록 지옥에 떨어진 고영표의 앞날에 밝은 미래가 함께하길.

기록=STATIZ / 6월 19일 기준

에디터=야구공작소 조예은

ⓒ야구공작소. 출처 표기 없는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상업적 사용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Be the first to comment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