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조예은)
[야구공작소 권승환] 미네소타 트윈스 선발진의 일원으로 2018시즌 개막을 맞이한 필 휴즈는 그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했다. 그는 시즌 초 두 경기에 선발로 나서 도합 7이닝 10피안타(2홈런) 6자책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미네소타는 휴즈를 대신해 5선발로 활약해줄 선수를 마이너리그에서 승격시켰다. 이 신인 투수의 이름은 페르난도 로메로다.
로메로는 2011년 외국인 자유계약을 통해 미네소타에 입단했다. 싱글 A로 승격된 2014년 인대 접합 수술을 받으면서 잠시 성장이 정체됐지만, 부상 전 90마일대 초반에 그쳤던 패스트볼 구속이 1년이 넘는 재활 기간 동안 90마일대 후반까지 뛰어올랐다. 로메로는 이 패스트볼을 앞세워 2017년 더블A에서 11승 9패 평균자책점 3.53을 기록하면서 메이저리그 승격을 향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로메로는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데뷔전부터 무실점으로 첫 승을 거뒀고, 5월 14일(한국시간)에는 오타니 쇼헤이와 선발 맞대결을 펼쳐 준수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5.0이닝 1자책 6삼진). 조용히 미네소타 선발진에 합류해 1선발 못지않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로메로의 강점은 무엇일까? 이는 그의 최근 등판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투심 패스트볼을 주목하라
로메로가 3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데뷔전에서 보여준 호투는 인상적이었다. 특히 우타자가 치기 어려운 스트라이크 존의 바깥쪽 낮은 코스를 주로 공략한 그의 투심 패스트볼은 여러 타자들을 힘들게 했다.
로메로의 데뷔전 투심 패스트볼 투구 위치(출처=베이스볼 서번트)
로메로가 구사한 최고 구속 98.4마일의 투심 패스트볼은 말할 나위 없이 위력적이었다. 미네소타 산하 마이너리그 팀 코치로 활약하며 로메로를 곁에서 지켜본 제이크 마우어(조 마우어의 형)는 이 공에 대해 “움직임이 좋은 묵직한 싱커” 라고 설명했다. 마우어의 말대로 로메로의 투심은 아래쪽으로 파고드는 싱커성 움직임을 보여준다. 움직임이 심한 90마일대 중후반의 투심 패스트볼은 정타를 만들기가 몹시 어려운 공이다.
때문에 로메로는 이 구종을 주로 타자들을 맞춰 잡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로메로의 투심은 그가 던지는 네 가지 구종(포심, 투심, 슬라이더, 체인지업) 가운데 가장 높은 73.1%의 땅볼 비율을 기록하는 중이다. 이는 투심 패스트볼을 구사하는 전체 선발 투수 중에서도 13위에 해당하는 수준급의 비율이다. 전 구종을 통틀어 봤을 때도 로메로는 리그 평균보다 10% 가까이 높은 52.8%의 땅볼 비율을 기록하며 빼어난 땅볼 유도 능력을 뽐내고 있다.
아직 남은 숙제, 제구
데뷔 첫 5경기에서 순항을 거듭한 로메로지만 제구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의 여지가 있다. 로메로가 기록하고 있는 4.15개의 9이닝당 볼넷은 리그 평균인 3.18개보다 확연하게 높은 수치이다.
위력적인 투심 패스트볼도 결정적인 상황마다 볼넷이 되어 돌아오는 양날의 검 같은 존재였다. 투심 패스트볼은 수많은 땅볼 타구를 양산하는 로메로의 주력 구종이지만, 로메로가 올 시즌 현재까지 내준 14개의 볼넷 가운데 무려 7개가 투심 패스트볼이었다. 이런 불안정한 제구 탓에 전체적인 투구 수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지난 5월 31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경기는 로메로의 제구력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 준 사례였다. 로메로는 이날 단 1.2이닝을 투구하면서 9피안타 8실점을 허용했다. 특히 투심 패스트볼 제구가 데뷔전과 완전히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5월 31일 투심 패스트볼 투구 위치(출처=베이스볼 서번트)
데뷔전에서 스트라이크 존의 낮은 쪽을 효과적으로 공략했던 로메로의 투심 패스트볼은 이날 대부분이 높은 코스에 형성됐다. 주력 구종 제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로메로는 경기 초반부터 흔들렸고, 결국 조기 강판이라는 쓴맛을 볼 수밖에 없었다.
투심 패스트볼은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스트라이크 존에 몰렸을 때 가장 피안타율이 높았던 구종이다(투심 0.326, 포심 0.318, 커터 0.311, 커브 0.305, 슬라이더 0.303). 제구가 동반되지 않은 투심 패스트볼은 볼넷은 물론 피안타로도 쉽게 연결된다는 이야기다. 로메로가 안정적인 이닝 이터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투심 패스트볼의 제구를 확실히 잡는 것이 급선무다.
빠른 공을 받쳐줄 서드 피치
로메로의 세컨드 피치는 헛스윙 삼진을 잡아내기 위해 사용하는 슬라이더다(투심 패스트볼 구사율 33.9%, 슬라이더 구사율 27%). 로메로는 슬라이더를 우타자의 바깥쪽, 좌타자의 몸쪽으로 떨어뜨리는 전형적인 운용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위력적인 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만으로는 메이저리그에서 선발 투수로 성공하기 힘들다. 더 다양한 투구 레퍼토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로메로는 이 과제를 체인지업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다.
로메로는 배운 지 일년도 되지 않은 체인지업을 바로 실전에서 활용하고 있다. 올해 스프링 캠프에서 팀의 마무리 투수 페르난도 로드니에게 전수 받은 구종이다. 로메로에게 체인지업을 가르친 로드니는 그의 빠른 습득 능력에 놀라며 “몇 달 후에 메이저리그에서 보자”는 격려를 남겼다. 실제로 로메로는 한 달도 채 지나기 전에 메이저리그 승격 티켓을 거머쥐었다.
로메로는 이 체인지업을 믿을 만한 서드 피치로 키워 나가고 있다. 데뷔 첫 두 경기에서는 가장 자신 있는 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중점적으로 내세웠다면, 5월 26일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경기에서는 체인지업의 비중을 대폭 상승시켰다.
로메로의 구종별* 투구 수 변화(출처=브룩스 베이스볼)
*Hard는 투심 혹은 싱커, Breaking은 슬라이더, Offspeed는 체인지업이다.
이날의 로메로는 데뷔 초 문제시됐던 투구 수 관리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모습이었다. 체인지업을 던진 횟수가 적었던 데뷔 첫 두 경기(첫 경기 체인지업 11구, 두 번째 경기 7구) 에서 그는 나란히 5이닝 동안 97구를 던졌다. 하지만 26일 경기에서 로메로는 체인지업 구사율을 슬라이더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7이닝을 101구로 마무리 지었다(슬라이더 22구, 체인지업 19구). 데뷔 후 첫 7이닝 소화. 체인지업이라는 믿을 만한 서드 피치의 추가는 기존의 주력 구종들까지 살아나는 선순환으로 이어졌다.
미네소타의 플레이오프 진출 변수로 떠오르는 로메로
현재 미네소타는 비교적 경쟁이 심하지 않은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에서 1위 싸움을 펼치고 있다. 로메로가 안정적인 선발투수로 자리를 잡아준다면 미네소타는 지구 우승의 꿈에 한 발 더 다가서게 된다.
물론 많은 이닝을 소화하면서 실점을 최소화하는 것은 안정적인 선발투수의 필수 조건이다. 로메로는 시애틀과의 경기에서 체인지업의 비중을 높임으로써 레퍼토리를 다양화했다. 하지만 제구력에는 아직 물음표가 붙어 있다. 결정적인 상황에서 내준 볼넷들은 로메로의 투구 수를 증가시켰고, 때로는 조기 강판을 초래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구력 때문에 로메로의 선발진 안착이 어려울 것이라 단정지어서는 곤란하다. 그는 빠른 습득 능력으로 로드니를 감탄하게 만들었던 신인 투수이기 때문이다. 과연 로메로는 물음표를 확신으로 만들어 미네소타를 플레이오프로 이끌 수 있을까? 시즌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기록 출처: Baseball-Reference.com, Baseball Savant, Brooks Baseball, Cot’s Baseball Contracts, Fangraphs, TwinCities.com
에디터=야구공작소 이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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