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로 날아든 로맨티시스트

로저스 센터에는 재미있는 세레머니를 하는 남자가 있다.(일러스트=야구공작소 황규호)

 

[야구공작소 김동윤] 2015년의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떠올리면 호세 바티스타의 화끈한 배트 플립을 빼놓을 수 없다. 바티스타는 떠났지만 또 하나의 색다른 홈런 세레머니를 하는 선수가 영입돼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다. 2018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2:1 트레이드로 건너온 얀게르비스 솔라르테다. 그가 홈런을 친 후 펼치는 세레머니는 바티스타처럼 화끈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3루를 돌며 점프한 후 하늘을 가리키고 내려오면서 악어처럼 손뼉을 치는 이 모습은 다소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세레머니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래서 더 자주 보고 싶은 그런 사연을 갖고 있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독특한 세레머니를 하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소개해본다.

 

사랑하는 딸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솔라르테와 그의 세 딸 (출처=솔라르테 인스타그램)

 

솔라르테가 ‘악어 박수’ 라 불리는 홈런 세레머니를 하게 된 것은 팬을 위해서도 상대방을 자극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자신의 홈런 세레머니를 따라하는 세 딸을 위한 것이다. 3년 전, 그는 자신이 홈런을 친 모습을 보는 세 딸이 그와 똑같은 자세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시작한 독특한 세레머니가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에게는 6살, 5살, 3살의 세 딸 얀리엣, 율리엣, 율리아나가 있다. 솔라르테 본인이 부모님께 이름을 받았듯이, 그의 딸들의 이름엔 그와 아내인 율리엣의 이름이 섞여있다. 부모를 닮아 유쾌하고 춤을 좋아해 팬들의 사랑도 받고 있다. 그가 부진할 때면 플로리다에 남겨둔 딸들이 걱정돼서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솔라르테의 딸 사랑은 유명하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곁에서 아내이자 엄마인 율리엣은 찾아볼 수 없다.

 

유쾌했던 그녀와의 첫 만남부터 결혼까지 

솔라르테는 미네소타 트윈스의 루키였던 시절에 율리엣과 처음 만났다. 당시 율리엣은 그처럼 해외에서 건너온 유망주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 중 하나였다. 그는 자신처럼 농담을 좋아하고 낙천적이지만 때때론 진지한 그녀에게 끌렸다. 근처 쇼핑몰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이를 계기로 교제를 시작하게 된다.

솔라르테의 빅리그 진출은 쉽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도록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웠고, 그때마다 은퇴를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가족은 좌절하는 솔라르테를 지탱해줬다. 그의 삼촌이자 메이저리그 선수였던 로저 세데뇨도 꿈을 잃지 않게 도와줬다. 주변의 도움과 본인의 노력은 마침내 빛을 발했다. 마이너리그 6년 차부터 새로 옮긴 팀인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2014년, 솔라르테는 뉴욕 양키스에서 기회를 잡는다.

당시 양키스는 FA로 로빈슨 카노를 떠났고,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장기 징계를 받으면서 내야에 큰 공백이 생겼다. 이런 상황 속에서 솔라르테는 스프링캠프부터 맹타를 휘둘렀고, 기회를 잡았다. 조 지라디 감독으로부터 메이저리그 로스터 진입을 축하한다는 전화를 받는 순간 그의 곁엔 어린 두 딸과 아내가 있었다. 메이저리그 데뷔를 위해 휴스턴으로 이동하기 전 그들은 마당의 큰 나무 아래서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행복하게 죽고 싶어요

행복하게 떠나길 원한 율리엣과 솔라르테(출처=솔라르테 인스타그램)


양키스에서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되면서 유틸리티가 아닌 주전 3루수로 입지를 다진 솔라르테였지만 그들의 행복은 그리 길지 않았다. 샌디에이고에서 두 번째 시즌을 맞이한 2015년 가을, 셋째 딸 율리아나를 출산한 율리엣에게서 다수의 악성 종양이 발견됐다. 종양은 이미 여러 장기에 퍼져있었다. 율리엣은 그에게 걱정하지 말고 남은 시즌을 잘 마무리하라고 말했지만 솔라르테는 그럴 수 없었다.

솔라르테는 다가오는 스프링캠프를 쉬고 아내의 곁에 있고자 했지만 율리엣은 그걸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자신과 딸을 위해 많은 경기에서 활약하길 바랐고, 자신도 솔라르테와 딸을 위해 암과 끝까지 싸워 이겨낼 것을 다짐했다.

의사가 그들에게 선고한 시간은 단 3개월. 율리엣은 슬퍼하는 그에게 한 마디를 남긴다.

“행복하게 죽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솔라르테는 돈보다 얼마 남지 않은 아내와의 추억을 선택한다. 자신의 미래 연봉 중 11%를 담보로 소속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고 300만 달러를 받은 것이다. 이때 그는 아직 서비스 타임 3년 차였다.

앞으로 그가 받을 연봉을 짐작해볼 때 이 결정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2년 연속 OPS 7할과 10홈런 이상을 기록했고, 2루와 3루를 소화할 수 있는 유틸리티 능력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2016시즌, 그의 일과는 경기를 마치고 그녀와 딸들에게 자신의 활약상을 보고하러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녀는 떠났지만 그는 잊지 않았다

이런 그와 그녀의 노력이 헛되진 않아 의사의 예상보다 몇 개월 더 살았다. 2016년 9월 17일 율리엣은 결국 그들의 곁을 떠났다. 다행히 솔라르테는 세 딸과 함께 임종을 지켜볼 수 있었고, 아내를 위해 열정적으로 경기에 임한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은 슬픔에 잠겼다. 샌디에이고는 그에게 무기한 휴가를 줬지만 솔라르테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른 복귀를 선택했다.

2016시즌 솔라르테는 시즌 전 70타점을 목표로 했다. 율리엣이 천지창조 신화의 7일과 관련된 숫자 7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율리엣이 떠나간 17일에 그의 타점은 68점이었다. 그들이 목표한 70타점은 보지 못한 채 아내는 떠나갔지만, 솔라르테는 그 약속을 지키려 팀으로 돌아왔다. 솔라르테는 6주 간 햄스트링 부상으로 빠졌음에도 15홈런 71타점 타율 .286, 출루율 .341, 장타율 .467, OPS .808. 로 커리어하이를 달성했다.

그리고 아내가 떠난 1년 후인 2017년 9월 ‘17’일,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솔라르테는 시즌 ‘17’호 홈런을 치고, 팀의 역전승을 이끈다.

 

율리엣의 1주기에 쏘아올린 솔라르테의 시즌 17호 홈런(출처=Youtube ‘Baseball plus‘)

 

그는 역전승을 이끈 후 인터뷰에서 오늘의 이 홈런은 매우 특별하며, 아내가 이 경기를 보고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녀가 남겨준 세 딸을 위해 계속 이 모습을 이어나가야 하고, 행복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아내의 말을 기억하고 실천하고 있던 것이다.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남자

솔라르테는 현재 새로운 사람과 함께 세 딸을 양육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에겐 이런 모습이 실망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아내가 떠난 후 매일 엄마를 찾는 딸들을 위해 고민하고,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노력했던 솔라르테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새로운 출발에 응원을 보내고 있다.

율리엣은 솔라르테가 항상 경기장에서 열정적인 플레이와 긍정적이고 활력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랐다. 올해 팀을 옮긴 솔라르테는 바뀐 환경 속에서도 그런 그녀의 소망과 그녀가 남긴 딸들을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런 모습은 새로운 팀과 팬들에게도 활력소와 재미있는 볼거리가 되고 있다. 가족들을 위해 행복해지려 노력하는 남자, 그의 노력이 바티스타가 떠난 로저스센터의 새로운 원동력이 되어주길 기대해본다.

 

출처 : mlb.com, Fox sports, 샌디에이고유니언트리뷴

 

에디터=야구공작소 조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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