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즌스 뱅크 파크에서 승리의 종소리가 울려퍼질 날이 머지않았다(출처=flikr)>
[야구공작소 김태근]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지난 시즌 우승을 일궈내기 전에 인고의 시간을 가졌다. 2009년을 시작으로 6년 연속으로 루징 시즌을 기록했고, 특히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세 시즌 연속 100패를 당했다. 하지만 *탱킹이라는 극약처방을 통해 창단 최초로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탱킹(tanking): 신인 드래프트에서 높은 순위의 지명권을 얻기 위해 일부러 패배하는 전략
휴스턴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긴 인고의 시간을 가진 구단도 있다. 바로 필라델피아 필리스다. 1883년 창단하여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구단이지만 그 대부분은 패배로 얼룩졌다. 미국 프로 스포츠 역사상 가장 빨리 통산 1만패를 쌓으며 ‘만패팀’이라는 불명예를 얻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벌써 10년… ‘아! 과거의 영광이여’
시계를 10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2008년 메이저리그 챔피언은 바로 필리스였다. 당시 필라델피아는 콜 해멀스, 제이미 모이어 원투펀치에 노블론 시즌을 보낸 철벽 마무리 브래드 릿지가 마운드를 지켰다. 타선엔 라이언 하워드, 체이스 어틀리, 지미 롤린스를 필두로 좋은 타자들이 즐비했다. 직전에 제이슨 워스(논텐더 영입), 셰인 빅토리노(룰5 드래프트)를 LA 다저스로부터 거저 얻는 행운도 있었다. 2008시즌 필라델피아는 투타 전력의 조화와 함께 강한 위닝 멘탈리티로 무장된 강팀으로, 챔피언의 자격이 충분했다.
*2008 필라델피아의 우승 전력
2008년, 창단 후 2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필라델피아는 이듬해에도 월드시리즈 진출에 성공했고 이후에도 한동안 컨텐더 팀으로 분류됐다. ‘내야 3총사’ 하워드-어틀리-롤린스가 맹활약한 2007년부터 ‘판타스틱4’로 화려했던 2011년까지 필라델피아는 5년 연속 지구 우승을 휩쓸었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열정적이기로 유명한 필리스 팬들도 팀의 승승장구에 열광했고 팀은 2007년부터 2013년까지 연평균 300만명이 넘는 홈 관중을 동원했다. 특히 2011년에는 메이저리그 홈관중 동원 1위를 기록했다(약 368만명).
그러나 필라델피아는 5할 승률에 실패한 2013년을 끝으로 황금기를 마감했다. 황금기를 이끈 주역들은 모두 쇠약한 고액 연봉자가 되어 팀 운영을 어렵게 만들었다. 완전한 하락세의 라이언 하워드에게 선물한 5년 1억2500만 달러의 계약이 대표적 사례이다. 게다가 계속된 질주로 인해 유망주 팜은 이미 황량했다. 이에 필라델피아는 다시 패배의 팀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우승 당시 신성이었던 콜 해멀스를 시작으로 우승 주역들은 팀의 리빌딩을 위해 트레이드되었다.
필리스의 리빌딩은 옳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필리스는 지난 시즌에도 패배의 팀이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최약 지구로 평가받는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에서 최하위를 기록했으며 승률(0.407)은 4할을 겨우 지켜낸 수준이다. 66승 96패를 거둔 필라델피아의 위치는 메이저리그 전체 꼴찌를 간신히 면했다(샌프란시스코, 디트로이트 64승). 하지만 전반기에 비해 후반기에는 향상된 성적을 보여주었다. 전반기에 29승 58패, 득실차 -92점으로 리그 최하위를 기록한 반면, 후반기에는 37승 38패, 득실차 0점으로 5할에 근접한 승률을 거뒀다. 후반기 팀의 약진은 젊은 야수들의 발전 덕분이었다.
오두벨 에레라(138경기 14홈런 OPS 0.778), 애런 알테어(107경기 19홈런 OPS 0.856), 닉 윌리엄스(83경기 12홈런 OPS 0.811)는 준수한 타격으로 외야에 자리잡았다. 이들은 모두 20대 중반에 불과하다. 특히 에레라는 골드글러브급 수비 잠재력을 가진 호타준족 중견수로서 팀의 미래로 기대를 받으며 2017시즌을 앞두고 최대 8년 5450만 달러의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무엇보다 리스 호스킨스(50경기 0.259/0.396/0.618)의 등장은 강한 임팩트를 남겼다. 그는 데뷔 첫 18경기(64타수)만에 11홈런을 때려내며 메이저리그 신기록을 작성했다. 이후 시즌 막판 약간의 부침을 겪긴 했지만 그는 50경기 18홈런으로 파괴적인 홈런 생산력을 보여줬다. 게다가 준수한 선구안과 컨택 능력을 겸비했는데 앞으로도 놀라운 활약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준다. 이번 FA 시장에서 카를로스 산타나를 3년 6000만 달러에 영입한 필라델피아에서 호스킨스는 1루수보다는 좌익수에 주력할 예정이다. 이에 필라델피아는 리그에서 손꼽히는 유망한 외야진을 얻게 되었다. 이들 중 한 명을 트레이드하며 약점을 보강하는 것도 가능하다.
내야에서도 유망주들의 생존 경쟁이 시작된다. 필라델피아는 이번 겨울에 주전 유격수 프레디 갈비스를 샌디에이고로 보냈다. 팀 내 간판 유망주로 유명했던 J.P. 크로포드의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다. 사실 크로포드의 작년 성적은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에서 모두 기대 이하였다(빅리그 23경기 0.214/0.356/0.300, 트리플A 127경기 0.243/0.351/0.405). 하지만 준수한 수비력과 뛰어난 툴은 여전히 현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기에 안정된 기회 속에서 반전을 기대할 만하다.
크로포드와 키스톤 콤비를 이룰 주전 2루수 세자르 에르난데스는 연봉 조정 1년차의 젊은 선수지만 내야에서 중심을 잡아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구단은 콜업 후 좋은 모습을 보여준 호르헤 알파로(29경기 5홈런 타율 0.318 OPS 0.874)에게 시즌 내내 포수 마스크를 씌울 예정이다. 경쟁자 카메론 러프의 DFA(계약이관공시)는 알파로에게 확고한 자리가 주어졌음을 의미한다.
한편 성장세가 정체된 주전 3루수 마이켈 프랑코는 팀의 고민거리다. 윈터리그에서도 경기 전날 밤새 음주 파티를 벌여 속을 썩인 그에게 팬들의 기대치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그에게는 이번 시즌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작년 트리블A와 더블A에서 132경기 26홈런 29도루 타율 0.304 OPS 0.889를 기록한 2루수 유망주 스캇 킹거리의 존재 때문이다. 킹거리가 시즌 중 3루수로 데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 며칠 전 팀이 그에게 안겨 준 최대 9년 6500만 달러(옵션 포함)의 연장 계약이 그 반증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아직 데뷔하지 않은 유망주에게 장기 계약을 체결한 경우는 킹거리가 역대 2번째이다(최초의 기록은 2014년에 연장계약을 맺고 하루 뒤에 빅리그에 데뷔한 휴스턴의 존 싱글턴). 구단 입장에서는 타자 유망주들의 성장세와 정착 여부를 지켜보며 ‘옥석 가리기’에 열중하면 그만이다.
야수진에 비하면 선발진은 자체 생산만으로 원활한 재건이 힘든 상황이다. 애런 놀라(27경기 ERA 3.54 fWAR 4.3)가 에이스로 발돋움했으나, 제러드 아이코프는 작년 부진에 이어 올해는 등 부상으로 고생하고 있다. 엄청난 구위로 기대를 모았던 빈스 벨라스케스도 끝없는 부상에 발목 잡히고 불펜 전향까지 고려하고 있으며 벤 라이블리와 닉 피베타는 프런트라인 선발투수로 성장하기 어렵다.
이에 필라델피아는 이번 겨울 시장에서 탑클래스 선발투수 영입을 타진했고, 제이크 아리에타와 3년 7500만 달러에 계약하는데 성공했다. 아리에타는 당초 최소 1억 달러대의 계약이 예상될 정도의 대어였지만, FA 시장에 유례없는 한파가 덮친 상황의 틈을 타 필라델피아가 합리적인 조건으로 계약에 성공했다. 이로써 필라델피아는 아리에타에게 남아있는 짧은 전성기를 활용하며 젊은 투수진의 멘토 역할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투수진의 완성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이미 에이스 반열에 오른 놀라가 있고, 아이코프는 부상에서 돌아온다면 3선발 정도의 활약은 해 줄 수 있다. 팜에는 ‘필리스의 세베리노’로 기대 받고 있는 98년생 식스토 산체스가 성장하고 있으며, 제구력이 완성됐다는 2016년 2라운더 케빈 가우디도 있다.
가시권에 들어온 명가 재건
필라델피아의 명가 재건이 머지 않았다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넉넉한 페이롤’ 사정이다. 다른 빅마켓 구단들은 사치세 기준을 맞추기 급급하다. 애초에 이번 FA 시장이 얼어붙은 요인도 양키스나 다저스 같은 부자 구단들이 ‘사치세 리셋’을 위해 지갑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빅마켓으로 분류되는 필라델피아는 사치세 걱정에서 자유로운 구단이다.
<자료 출처:Roster-Resource, 단위=달러($)>
앞으로 3년간의 확정 페이롤에 따르면, 필라델피아는 사치세 기준선까지 1억 달러 이상의 여윳돈이 생긴다. 그 이후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필라델피아의 확정 페이롤이 낮은 이유는 주축 선수들이 서비스타임이 많이 남았으며, 아직 몸값이 저렴한 어린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이는 수많은 슈퍼스타들이 쏟아져 나올 앞으로의 FA 시장에서 필라델피아가 큰손으로 나설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필라델피아가 이번 겨울에 아리에타를 영입한 것처럼, 2018시즌 후 FA 시장에 나올 클레이튼 커쇼(옵트아웃 시), 댈러스 카이클과 같은 선발투수 대어를 영입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다른 포지션의 특급 야수들도 마찬가지다(ex. 매니 마차도, 조시 도날슨 등). 결국 젊은 선수들을 라인업 곳곳에 채우면서 빈자리를 특급 FA 선수 영입으로 해결한다면 필라델피아의 리빌딩은 완성된다.
어린 시절부터 필라델피아의 열렬한 팬인 마이크 트라웃은 2020시즌을 끝으로 FA 자격을 얻는다. 몇 년 후, 우리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가 드림 클럽에 입단하는 모습을 볼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런 상상을 할 여유는 있다
기록 출처: Baseball-Reference, Fangraphs, ESPN, MiLB.com, Roster Resource
에디터=야구공작소 이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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