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컵스가 또 한 번의 출정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의 부름을 받은 것이다.
포스트시즌이 컵스에게 지니는 의미는 다른 어떤 팀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특별하다. 이들은 야구는 물론 다른 종목의 스포츠 팬들 사이에서도 유머 소재로 통용되고 있을 정도의 오랜 시간을 월드시리즈 우승 없이 보내왔다. 컵스가 마지막으로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것은 대한제국 융희 2년인 1908년의 일이고, ‘염소의 저주’가 탄생한 1945년 이후로는 아예 월드시리즈 진출조차 이뤄내지 못했다.
지난해인 2015년은 영화 <백 투 더 퓨처 2>에서 컵스의 우승이 예언되었던 해였다. 컵스는 실제로 정규시즌에만 97승을 거두면서 영화의 예언을 현실로 만드는 듯했지만,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만난 뉴욕 메츠에게 4대 0으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러나 올시즌의 컵스는 97승을 거뒀던 지난해의 그 팀보다도 더 강력한 팀이 되어 돌아왔다. 양대 리그를 통틀어 가장 빠른 속도로 지구 1위를 확정 지었고, 결국에는 이번 시즌 유일의 100승 팀으로 자리매김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단순히 승수라는 결과만 압도적이었던 것이 아니다. 올시즌의 컵스는 모든 영역에서 리그의 다른 29개 구단을 압도한 역사적인 수준의 강팀이었다.
내셔널리그 최강의 타선과 마운드
여기서는 한 팀이 다른 팀들에 비해 얼마나 압도적이었는지를 가늠해보기 위해 수학능력시험에서처럼 ‘표준점수’를 활용해보려 한다. 우리는 리그 평균과 팀 성적의 차이를 계산한 다음 그 차이를 30개 구단의 표준편차로 나눔으로써 각 팀이 해당 영역에서 기록하고 있는 표준점수의 값을 구할 수 있다. 특정 팀이 특정한 영역에서 리그의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숫자로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메이저리그 유망주들의 실력을 평가하는 데 활용되는 20-80 스케일의 측정 역시 이와 흡사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올시즌 컵스의 타선은 리그 전체에 비추어서 얼마나 뛰어난 성적을 올렸던 것일까. 타선의 활약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계산해낼 수 있는 지표는 단연 wRC+(평균 대비 조정 득점 생산력)일 것이다. 그리고 계산 결과, 컵스의 타자들이 이번 시즌 기록한 wRC+는 20-80 스케일을 기준으로 64점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올시즌의 홈런 개수를 기준으로 했을 때 36홈런을 친 것과 유사한 점수이고, 선수로서는 올스타급의 성적을 기록한 것과 다름없는 수준의 점수이다.
20-80 스케일로 표현된 각 팀 야수진의 타격 / 승리 기여도 성적. 올시즌 시카고 컵스 야수진의 위력은 올스타급 선수, 혹은 30~40홈런 타자에 비견될 만큼 압도적이었다.
마운드의 지배력은 타선보다도 강력했다. 다시 한번 20-80 스케일을 기준으로 나타냈을 때, 올시즌 컵스가 기록한 팀 평균자책점은 68점에 해당한다. 20-80 스케일에서 70점이라는 점수는 호세 바티스타의 파워와 같은 압도적인 수준의 우수함을 의미한다. 실제로, 지난해에도 이미 강력했던 컵스의 투수진은 올해 들어서 더욱 막강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컵스의 올시즌 선발 로테이션은 존 레스터, 카일 헨드릭스, 제이크 아리에타, 존 래키 그리고 제이슨 해멀로 구성되었다. 1선발부터 3선발까지가 모두 사이영상 투표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특급 에이스들이다. 지난해에는 아리에타가 돌풍을 일으키며 사이영상을 차지했다면, 올시즌에는 헨드릭스와 레스터가 2점대 초중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면서 사이영상 경쟁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불펜 또한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양키스로부터 특급 마무리 아롤디스 채프먼을 영입하면서 안정감이 배가되었다. 그 외에도 전천후 투입이 가능한 마이크 몽고메리와 사이드암 조 스미스가 시즌 도중 합류함으로써 불펜진의 뎁스를 한층 더 두텁게 했다. 기존의 마무리였던 헥터 론돈은 셋업맨으로 보직을 전환했고, 부상으로 한동안 이탈해 있었던 또 한 명의 셋업맨 페드로 스트롭마저 얼마 전 복귀하여 힘을 보태고 있다. 이렇게 물샐 틈 없는 불펜을 완성한 컵스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낮은 후반기 불펜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20-80 스케일로 표현된 각 팀 투수진의 평균자책점. 컵스의 투수진은 야수진에 비해서도 다른 팀들과의 격차가 확연한, 아주 빼어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내셔널리그 최강의, 메이저리그 최강의 수비진
그러나 컵스가 가장 압도적인 실력을 뽐낸 장소는 타석도, 마운드도 아니었다. 야구장의 드넓은 잔디밭이야말로 컵스의 가장 압도적인 힘, 즉 ‘수비력’이 선을 보인 곳이었다. 이번 시즌 동안 컵스는 팀 단위로 78의 DRS와 73.7의 UZR을 기록했다. 이 두 가지의 지표는 현존하는 지표들 중 가장 객관적으로 수비력을 측정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컵스는 이 두 지표 모두에서 리그 1위를 차지했다,
컵스가 기록한 DRS와 UZR은 20-80 스케일로 환산했을 때 각각 73점과 75점에 해당한다. 이렇게 20-80 스케일을 기준으로 해서 70이 넘어가는 점수는 아롤디스 채프먼의 강속구와 같은 경이적인 수준의 우수함을 뜻한다. 같은 방식으로 최근 10시즌 간의 모든 팀 DRS와 UZR을 20-80 스케일에 맞추어 계산했을 때, 컵스가 기록한 73점과 75점은 전체에서 각각 1위와 2위에 해당한다. 즉, 근 10년 동안 컵스만큼 압도적인 수비 실력을 뽐낸 팀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그물망 같은 수비의 결과는 팀 투수진이 허용한 BABIP(인플레이된 타구의 타율)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컵스 투수진의 올시즌 BABIP 수치는 리그 평균인 0.298보다 현저히 낮은 0.255에 불과하다. 투수진의 BABIP 값이 낮다는 것은 상대 타자가 공을 필드 안으로 때려냈을 때 안타로 이어진 숫자가 적다는 뜻이고, 그만큼 수비수들이 많은 타구를 아웃으로 연결했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서, 컵스의 수비진이 상대의 타율을 족히 2~3푼씩은 떨어뜨렸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컵스의 수비는 명실공히 메이저리그 최강이다. 2위와의 차이도 결코 적지 않다.
최강 마운드와 최강 수비, 저주를 깰 비책이 될까
이처럼 올시즌의 컵스는 야구라는 스포츠의 대부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타격과 투구, 수비 모두에서 최고의 성취를 이룩한 팀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1년만에 엄청난 발전을 이뤄낸 수비력과 막강한 마운드의 조합이다.
지난 시즌에도 컵스는 상당히 양호한, 양의 DRS, UZR 수치를 기록했던 팀이었다(DRS +10, UZR +23.4). 그러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올시즌의 컵스 수비진이 이루어낸 발전은 믿기 어려울 만큼 거대했으며 또 급작스러웠다(DRS +78, UZR +73.7). 수비가 강화되었다는 것은 팀 입장에서는 당연히 반겨야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이와 함께 컵스의 2016 시즌 전력과 구성을 떠올려보자. 어렵지 않게 이것이 컵스에게 예사 경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쌍수를 들고 반겨도 모자랄 정도의 경사다.
컵스는 이번 시즌 동안 채프먼 등을 영입하면서 불펜의 보강을 위해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 그 보답으로 후반기에는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가장 우수한 불펜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2.85), 두 번째로 높은 9이닝당 탈삼진을 달성했다(10.69). 이처럼 막강한 불펜에 철벽 수비진이 더해지고 나면, 경기 후반에 컵스를 상대로 점수를 뽑아낸다는 것은 정말이지 엄청난 난이도의 과제로 탈바꿈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컵스의 선발진은 홈런과 득점이 늘어난 올시즌의 리그 환경에서도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선발진에 강점을 지닌 대부분의 팀들이 작년보다 높아진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고전하는 가운데서도, 컵스의 선발진은 리그 유일의 2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하며 호조를 이어나가는 중이다.
야구에서의 단기전은 일종의 확률 싸움이다. 지난해의 월드시리즈는 이 승리의 확률을 높이기 위한 정반대의 전략이 맞붙은 사례였다. 선발투수가 이닝을 거듭할수록 공략당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명제는 대부분의 경우에 사실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강한 뒷문’ 전략을 선택했던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반대로 ‘강한 앞문’ 전략을 들고 나왔던 뉴욕 메츠를 4승 1패로 수월하게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2016년의 컵스는 원래부터 강했던 앞문을 잘 보수했으면서, 동시에 강력하고 두터운 뒷문을 구축하는 데에도 성공을 거두었다. 거기에 더해 두 문의 앞뒤를 든든하게 받쳐줄 촘촘한 그물망 수비까지 마련했다. 이러한 여러 방면에서의 발전과 보강은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정규시즌 성적에서 드러나듯이, 이번 단기전을 맞이하는 컵스는 어느 때보다도 성공 확률을 높여 놓았다고 할 수 있다.
과연 백년 동안의 기다림은 끝을 맺을 수 있을까.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 보인다.
기록 출처: 팬그래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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