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오정택] 2013년 겨울, 시애틀 매리너스 산하 타코마 레이니어즈(트리플A) 소속 외야수 에릭 테임즈는 KBO리그의 신생팀 NC 다이노스에 합류하는 모험을 강행했다. 트리플A에서의 성적도 나쁘지 않았지만(57경기 .295 7홈런), 계속해서 백업으로 빅리그와 마이너를 오가는 것에 지쳐있었고, 그 해에는 그 기회조차 받지 못했던 점이 그의 발걸음을 한국으로 이끌었다.
선택은 성공적이었다. 테임즈는 3시즌 동안 KBO리그 최고의 외국인 타자로 우뚝 섰다. 통산 타율 0.349, 124홈런, 382타점, OPS 1.172, wRC+ 188.4의 어마어마한 기록을 남겼다. 2015년에는 KBO리그 최초로 40-40을 달성(47홈런-40도루)하며 MVP까지 수상했다.
테임즈가 KBO에서 보여준 모습은 ‘괴물’ 그 자체였다. (사진 제공=NC다이노스)
2016년 겨울, 밀워키 브루어스는 전 시즌 내셔널리그 홈런왕에 올랐던 크리스 카터를 논덴터로 방출하는 모험을 강행했다. 물론 카터가 2할 초반대의 타율, 삼진왕 같은 불명예스러운 기록들을 보유했지만 그래도 41개의 홈런을 기록한 파워를 무시할 수는 없다는 평이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밀워키의 결정에는 큰 자신감이 있었다. 바로 KBO리그를 평정한 테임즈를 영입했기 때문이었다.
밀워키의 자신감은 근거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테임즈는 전반기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다. 한동안 메이저리그 전체 WAR 1위에 올랐었고, 신시내티를 상대로 한 달에 8홈런을 때리는 등 그가 시즌 초에 보여준 활약은 KBO에서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계속되지 못했다. 전반기의 활약이 너무 대단했던 탓일까, 후반기가 오자 테임즈는 다소 지친 모습을 보여줬다.
표1. 테임즈의 전/후반기 스탯 비교
‘메이저리그’와 ‘KBO리그’의 차이
KBO리그에서 테임즈는 속구 킬러로 통했다. KBO리그에서의 3년 동안 속구 상대 3할 7푼이라는 고타율을 기록하며 평균 141km대의 공을 아무 문제없이 공략했다. 테임즈의 KBO리그 평정에는 투구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속구의 공략에 능했던 것이 가장 컸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선 상황이 조금 달랐다. 현재까지 테임즈가 승부한 속구의 구속은 92.5마일(약 148km). 한국에서 상대하던 공에 비해 약 7km 이상 빠른 공이었다. 그리고 이 빠른 공은 테임즈에게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되었다.
그림1. 테임즈의 전/후반기 속구 상대 피안타율 (포수시점/*출처: fangraphs)
사실 시즌 내내 테임즈는 속구에 문제를 겪었지만(속구 상대 .230), 후반기에 특히나 더 적응을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그림1). 위 자료는 테임즈의 속구 상대 피안타율을 존으로 나눈 그림이다. ‘그래도 해볼 만 했던’ 전반기에 비해 후반기의 모습은 처참할 정도였다. 특히 몸쪽 공에 완전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문제는 속구만이 아니었다. KBO시절에 비해 무섭게 들어오는 커브와 슬라이더 역시 대응하기 어려웠다. 최고 구속 90마일에 이르는 슬라이더, 더 큰 각으로 떨어지는 커브에 테임즈는 속수무책이었다(슬라이더 상대 .159, 커브 상대 .114). 빠른 구속의 싱커, 커터, 스플리터에 3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한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잃어버린 ‘감’
전반기 테임즈는 .248이라는 낮은 타율을 기록하면서도 .936의 준수한 OPS를 기록했는데, 여기에는 테임즈의 좋은 선구안이 크게 기여했다. 밀워키가 그를 계속해서 2번 타자로 기용한 이유도 그의 선구안과 파워를 감안한 결과였다.
그러나 후반기에는 이런 좋은 선구안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후반기 테임즈는 3볼 카운트 시에 더 공격적인 스윙을 시도했는데, 이는 오히려 나쁜 결과를 더 자주 불러왔다. 전반기에 비해 3볼 시 출루율이 5푼 정도 감소하며 고정된 반면 (.605 -> .545), 풀카운트 시 삼진의 비율은 매우 높아졌다(K% 8.3% -> 27.3%).
원인은 그의 몸 상태에 있었다. 지난 4월말 올라온 햄스트링과 무릎에 입은 두 차례의 부상이 후반기까지 테임즈를 괴롭혔다. 테임즈의 여러 인터뷰를 인용하면, 그는 특정한 한 구역을 노리고 타격에 임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햄스트링 염좌 이후 어느 순간부터 스윙이 이전처럼 빠르게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이는 존을 넓게 보려는 시도와 결합돼 삼진의 증가, 출루율의 하락 등 복합적인 슬럼프로 이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고뇌의 흔적
살펴본 바대로 테임즈가 후반기에 들어 성적이 크게 하락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몇 가지 기록들에서 그가 나름대로 부진에 대해 고뇌한 흔적은 찾아볼 수 있다.
표2. 테임즈의 주요 타구 기록
후반기 테임즈의 라인드라이브 비율은 9%포인트 가까이 증가했다. 전반기에 비해 더 좋은 타구를 날렸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테임즈의 노력은 시즌 막바지에 들어서야 결과로 나타났다. 마지막 한 달 동안 그가 기록한 타율 .328와 OPS .995은 괴물 같았던 메이저리그 복귀 첫 달(3/4월 타율 .345, OPS 1.276) 다음으로 좋은 월간 기록이었다.
시즌을 마무리하며
후반기의 모습이 아쉬웠지만, 그가 올 시즌 쌓아올린 기록들은 그의 복귀시즌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팀 내 최다 홈런(31개)을 비롯해, OPS, 절대장타율, BB% 같은 세부기록들도 팀 내 1위에 해당하는 기록들이다. 테임즈가 단순한 카터의 대체자가 아닌 팀 내 최고의 타자로 거듭났다는 것을 보여준다.
올 시즌 밀워키는 변수의 팀이었다. 키온 브록스턴, 조나단 비야의 부진으로 흔들리던 타선에는 테임즈를 비롯해 트래비스 쇼, 도밍고 산타나 등 홈런으로 무장한 타자들이 기대 이상으로 활약했다. 여기에 무너진 선발진을 지탱한 지미 넬슨, 체이스 앤더슨 원투펀치까지 ‘의외’였던 선수들의 활약으로 예상과 달리 시즌 마지막까지 가을 야구 경쟁을 펼쳤다. 변수들이 상수로 작용한 밀워키는 와일드카드 획득에 실패했지만 지구 2위라는 성과를 거뒀다.
복귀 첫 시즌을 무난하게 넘긴 테임즈가 내년 이맘때쯤에는 밀워키를 이끌고 메이저리그 첫 포스트시즌 무대를 누비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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