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SK 와이번스)
[야구공작소 오연우] 1985년 9월 11일, 32년 전 어제는 메이저리그의 피트 로즈가 4192번째 안타를 때려내면서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 안타 기록을 경신한 날이다. 1928년에 은퇴한 타이 콥이 남긴 기록이 57년 만에 경신되는 순간이었다.(다만 이후 타이 콥의 최다안타가 4191개에서 4189개로 정정되면서 사실은 그보다 앞에 경신한 셈이 되긴 했다.)
위 동영상에서도 볼 수 있듯 당시 경기장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모든 관객과 선수들이 한마음으로 대기록을 축하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통산 최다 안타라는 기록이 이렇게까지 축하받은 이유는 무엇인가?
누적 기록에서 ‘대기록’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이 비교적 자주 나오는 기록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모든 타자들이 기록할 수 있는 안타 만한 기록도 없다. 반대로 특정 타자들만 기록할 수 있는 3루타의 경우에는 언젠가 통산 최다 3루타 기록이 경신되더라도 이렇게 큰 축하는 받지 못할 것이다.
또한 대기록이 되기 위해서는 기록에 이런저런 조건이 없어야 한다. 가령 피트 로즈가 경신한 기록이 ‘신시내티 스위치 외야수 최다 안타’ 기록이었다면 누가 관심이나 있었겠는가. 특정 선수에게 유리한 조건을 하나씩 걸기 시작하면 누구라도 기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누구나 될 수 없어야 대기록이다.
높은 빈도와 무조건성이라는 면에서 보았을 때 통산 최다 안타는 최고의 기록이다. 그러나 안타보다 이 두 조건에 더 잘 어울리는 기록이 있다. 바로 경기 출장 그 자체다.
연속경기출장의 역사
프로야구 초창기 연속경기출장으로 이름을 날린 선수는 MBC 김인식이었다. 김인식은 1982년 3월 27일에 열린 첫 프로야구 경기에 출장한 것을 시작으로 1987년까지 팀의 모든 경기에 출장했다. 1988년 개막전에 출전하지 못하면서 기록이 끊겼지만 6년 동안 세운 606경기 연속 출장 기록은 지금도 KBO 전체 5위에 랭크되어 있다.
이 기록을 넘어선 것이 OB 김형석이다. 1989년 9월 24일을 시작으로 1994년 9월 4일까지 팀의 전 경기에 출장하면서 622경기 연속 출장을 기록한다. 연속 경기 출장 기록이 끊긴 것은 9월 4일 경기 후 그 유명한 ‘OB 항명’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622경기 연속 출장은 KBO 2위 기록이다.
3위 기록은 황재균의 618경기다. 2016년 4월 29일까지 기록을 이어갔으나 이 경기에서 자신이 파울 타구에 맞는 부상으로 기록이 중단되고 말았다.
4위 기록은 이범호의 615경기로, 가장 아깝게 끊긴 케이스다. 휴식 차원에서 선발에서만 제외되었는데 강우 콜드로 경기가 일찍 끝나는 바람에 후반에 교체되어 경기에 출장하지 못한 것이다. 특별히 부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쉬움을 더할 수밖에 없었다.
철인이 되기까지
최태원은 1993년 쌍방울에서 데뷔한 뒤 첫 해부터 111경기에 출장했고 이듬해에도 118경기로 거의 전 경기에 출장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맞이한 1995년. 개막전에는 출장하지 못했지만 그 다음 경기인 4월 16일 해태전에 대타로 한 타석에 들어선 것이 시작이었다.
<1995년 4월 16일 쌍방울-해태전 박스스코어, 타수(打)가 0이고 4사구(球)도 아니며 타점(點)도 없는 것으로 보아 희생번트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1995년은 개막전에 나오지 못한 것 때문에 전 경기 출장에는 실패했지만 96년부터는 전 경기 출장 행진을 이어간다. 그리고 조용히 한 경기씩 쌓아간 결과 1999년 9월 18일 삼성전에서 드디어 김형석의 622경기를 넘어서게 된다.(다만 이 경기에서는 4타수 무안타 2삼진으로 부진했다.)
최태원은 1997년에 기량이 정점에 오른 뒤 점점 성적이 나빠져 1999년에는 극심한 타고투저에도 불구하고 타율이 2할 3푼에 그친다. 그러나 당시 쌍방울은 최약체 팀이었기에 최태원을 대체할 선수도 없었고 대체할 이유도 없었기에 경기 출장을 계속할 수 있었다. 쌍방울이 해체되고 SK로 간 뒤에는 신생팀이니만큼 성적이 다소 나빠도 출장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2002년 들어 경기수가 1000경기에 가까워지자 이제는 기록 달성 때문에 빼려 해도 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천운이라면 천운이었다.
하지만 최태원의 기량은 점점 떨어지고 있었고 구단 입장에서는 1000경기 기록이 끝난 뒤의 세대교체도 준비해야 했다. 결국 2002년 최태원은 선발 출장한 거의 모든 경기에서 경기가 끝나기 전에 대타로 교체하는 방식으로 기용되었다. 121경기에 출장했음에도 타석은 300타석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어쨌든 시간은 갔고, 2002년 8월 23일 대전 한화전에서 드디어 1000경기 연속 출장이라는 금자탑을 세우게 된다. 1999년의 623번째 경기와는 달리 이 경기에서는 자축하듯 3타수 3안타 1볼넷의 맹활약을 펼쳤다.(그러나 팀은 패배했다.)
<2002년 8월 23일 SK-한화전 박스스코어>
1000경기 연속출장 달성 이후 최태원의 팀내 입지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출장 기록을 바로 끊지는 않았지만 점점 선발에서는 빠졌고, 1014번째 경기를 마지막으로 9월 10일 경기에 출장하지 않으면서 연속경기출장을 마감하게 된다.
기록이 끊기자 배려는 없었다. 끊긴 이후 치러진 20경기에서 최태원은 고작 8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이듬해에는 33경기에서 28타석에 들어선 것이 전부였고, 결국 그 길로 은퇴하게 된다. 모두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 다소 쓸쓸한 마무리였다.
가장 기본에 충실한 기록
그 어떤 위대한 기록도 먼저 경기에 출장하지 않고는 세울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연속 경기 출장이라는 기록은 모든 기록의 바탕이 되는 기록이며 가장 기본에 충실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야구는 소수의 정예 멤버를 계속 출장시키는 대신 선수들의 체력을 관리하면서 최적 컨디션에서 출장할 수 있도록 한다. 선수 관리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변화이나 그 결과 과거와 같은 ‘철인’은 구조적으로 볼 수 없게 되어버린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현행 144경기 체제에서는 7년 연속 전 경기 출장을 기록하면 거의 1014경기에 닿을 수 있다. 아주 어려운 기록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야구의 방향을 생각하면 어쩌면 현재 KBO리그 타자 누적 기록 중 가장 경신되기 어려운 기록이 연속경기출장 기록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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