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한 해적선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수연 >

폴 스킨스, 2023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에 뽑힌 그를 막는 것은 없어 보였다. 대학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프로 무대에 도전했고, 1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마이너리그를 평정하고 메이저리그에 올라와 바로 신인왕을 차지했다. 그리고 올해 187이닝 ERA 1.97을 기록하며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스킨스는 올해 승패는 10승 10패. 승률 5할에 그쳤다. 2018년 제이콥 디그롬(10승 9패 ERA 1.70), 2010년 펠릭스 에르난데스(13승 12패, ERA 2.27)와도 비견되는, 승운이 따라주지 않는 시즌을 보냈다. 스킨스의 소속팀은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최약체 피츠버그 파이리츠다. 올해 피츠버그는 71승 91패로 7년 연속 5할 승률 달성에 실패했고, 10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타선, 총체적 난국

스킨스를 가지고 있는 팀답게 올해 피츠버그의 투수력은 리그 상위권이었다. ERA 3.76으로 리그 7위, fWAR 19.1은 리그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팀과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투수력을 가진 팀이었다. 하지만 피츠버그는 ERA 10위 안에 들어간 팀 중 유일하게 5할 승률을 넘지 못했다. 이 정도 투수진으로도 메울 수 없을 정도로 타선이 약했기 때문이다. 

올해 피츠버그의 팀 WRC+는 82로 오직 콜로라도만이 이보다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피츠버그 타격에서 문제가 아닌 점을 찾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팀 홈런 117개(30위), 타율 0.231(28위), 장타율 0.350(30위), 삼진율 23.7%(25위)로 어떠한 긍정적인 지표를 찾을 수 없다. 

선수 개개인으로 살펴봐도, 절망적인 현실만 마주할 뿐이다. 매년 엄청난 타구 속도로 사람들을 기대하게 만들었던 오닐 크루즈는 올해 WRC+ 86을 기록하며 이전보다 퇴보해 버렸다. 2022년 8년 7,000만 달러에 계약한 키브라이언 헤이스는 2023년 만성적인 허리 부상 이후 타격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 신시내티로 트레이드되었다. 8년 1억 600만 달러의 장기 계약을 맺고 타선의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브라이언 레이놀즈도 매년 성적이 떨어졌다. 올해는 wRC+ 99로 리그 평균 이하의 타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올해 피츠버그에서 WRC+ 100을 넘긴 선수는 토론토에서 트레이드로 데려온 스펜서 호위츠와 샌프란시스코에서 데려온 조이 바트뿐이다. 

유망주 육성 역시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 닉 곤잘레스, 헨리 데이비스, 앤디 로드리게스, 리오버 페게로, 닉 요크, 배지환 등 올해 피츠버그가 기용한 젊은 유망주들은 그 누구도 메이저리그 수준의 타격을 보여주지 못했다. 마이너리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테르마르 존슨마저 평가가 떨어지고 있다.

< 2025년 피츠버그 타격 성적 (10타석 이상) >

지난 시즌 로우디 텔레즈는 피츠버그의 타격 코칭 시스템이 심각하게 잘못되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텔레즈는 2024년 피츠버그와 1년 320만 달러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5월까지 OPS 0.462를 기록하는 충격적인 부진에 시달렸고, 팬들은 텔레즈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야유를 보냈다. 

그러다 6월 초 텔레즈는 본인의 옛 코치 디 브라운을 만나 타격 메커니즘을 수정하고 마음가짐을 바꾸었다. 이후 6월부터 8월까지 OPS 0.879를 기록하며 같은 기간 팀에서 가장 뜨거운 타자로 거듭났다. 피츠버그 내부에서 두 달 동안 해결하지 못한 것을 브라운은 며칠 만에 해결한 것이다. 

2022년부터 타격 코치를 맞은 앤디 헤인즈는 2024년 끝나고 팀을 떠났다. 올해 맷 헤이그가 새로운 타격코치로 부임했지만, 지난 시즌보다 타격은 더 퇴보했다. 피츠버그의 타격은 코치를 넘어 구단 전반적인 시스템에서 시작된 문제인 것이다.

 

보너스? 그런 것은 없다.

9월 24일 피츠버그는 라우디 텔레즈를 지명할당하고, 하루 뒤 방출했다. 텔레즈의 성적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시즌 종료까지 고작 7경기밖에 남아있지 않았고, 텔레즈를 대신할 만한 1루수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다. 

피츠버그는 텔레즈가 425타석에 들어서면 25만 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해야 했다. 그리고 9월 23일 텔레즈의 타석수는 421타석이 되었다. 다음 경기에 출전하게 되면 보너스를 지급해야 할 가능성이 높았고, 피츠버그는 텔레즈를 방출하면서 25만 달러를 아끼게 되었다. 그리고 피츠버그는 텔레즈의 방출로 생긴 40인 로스터를 비운 채 시즌을 마쳤다.

시즌 도중 트레이드로 영입한 아이재아 카이너-팔레파 역시 비슷한 일을 당했다. 그 역시 500타석에 들어서면 20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을 수 있었지만, 496타석을 들어선 뒤 시즌 마지막 경기에 결장하면서 보너스를 챙기지 못했다. 마지막 경기에 뛴다면 보너스를 당연히 받을 수 있었겠지만, 카이너-팔레파는 마지막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다.

텔레즈의 방출에 있어 피츠버그 단장 벤 셰링턴은 보너스가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했고, 카이너-팔레파의 경우 본인이 직접 인터뷰로 보너스를 포기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구두쇠 구단

선수 계약 규모만 봐도 피츠버그가 얼마나 돈을 쓰는 것에 인색한지 드러난다. 피츠버그는 2018년부터 2025년 FA시장에서 1억 1,257만 달러를 쓰는 데 그쳤다. 피츠버그의 마지막 다년 FA 계약은 2017년 이반 노바와 맺은 3년 2,600만 달러이다. 이후 모든 FA 계약은 단년 계약만 맺고 있다. 장기적인 전력 보강보다는 매년 빈 자리를 메우는 데에 급급했고, 자금 유동성과 향후 트레이드를 고려한 단년 계약만 맺은 것이다.

과거에는 리빌딩 때문에 투자를 아꼈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었지만 스킨스가 주축이 된 올 시즌도 피츠버그는 FA 시장에서 1,995만 달러 지출에 그쳤다. 피츠버그가 올해 영입한 선수들, 앤드류 히니, 토미 팸, 케일럽 퍼거슨, 애덤 프레이저의 지난해 합산 WAR은 1.9승에 불과했다. 그 누구도 앞선 영입을 유의미한 전력 보강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피츠버그는 스킨스라는 역대급 재능을 보유하고 있고, 투수진은 이미 포스트시즌 경쟁이 가능한 수준이 됐다. 하지만 피츠버그는 그럼에도 무의미한 선수 영입만 이어가며 강한 투수진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그저 작은 리스크조차 두려워하며 더 많은 이익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

물론 피츠버그의 시장 규모는 큰 편이 아니다. 광역 인구수와 매출 모두 리그 20위권에 그친다. 이를 감안해도, 피츠버그는 인색한 투자 속에서 매년 리그로부터 받는 수익 분배금은 저축하고 있다. 그 결과 피츠버그의 수익은 리그 상위권, 빅마켓 팀들과도 비슷한 수준이다. 승리를 위한 투자 대신 이익을 내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팬들의 가장 큰 불만이다.

 

레전드와 팬들마저 저버리다.

PNC 파크, 2001년 개장한 피츠버그의 홈구장은 앨러게니강 옆에 있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경기장 건설 당시 팬들은 기념 벽돌 ‘버코 브릭’(Bucco Brick)을 구매할 수 있었고, 이 벽돌은 경기장 앞 외부 보도에 설치되었다.

우측 펜스는 팀의 레전드 로베르토 클레멘테의 등번호 21번을 기리기 위해 21m 높이로 지어졌다. 코로나 시기 광고가 들어오지 않자, 구단은 우측 펜스 빈 공간에 클레멘테의 21번 로고를 새겨 넣었다. 

2025년 4월 6일, X(구 트위터)에 우측 펜스에 클레멘테 로고가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어느 한 음료수 광고가 대신 새겨졌다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로베르토 클레멘테 주니어는 이를 보고 ‘Wow……..’라는 말만 남겼다. 클레멘테 로고 대신 새 광고를 새기는 과정에서 구단과 클레멘테 가족 사이에 아무런 소통도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 로베르토 클레멘테 JR의 X 게시물 >

그리고 이틀 후, 피츠버그 지역 방송국 ‘KDKA’는 ‘버코 브릭’이 어느 한 재활용센터에서 발견됐다고 보고했다. 피츠버그 구단은 노후화로 인한 교체의 과정이라는 이유로 이 벽돌을 치웠다고 말했지만,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은 아무것도 없는 시멘트였다. 이후 조사 결과 피츠버그 구단은 자금을 투자해 버코 브릭을 유지하거나 팬들에게 돌려줄 수 있었지만, 이를 거부하고 폐기하기로 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 피츠버그 구단은 클레멘테 가족에게 일련의 과정에서 생긴 일에 사과했다. 광고는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클레멘테 로고는 다시 돌아왔다. 구단주 밥 너팅은 버코 브릭이 쓰레기장에 던져진 것에 대해 사과했고, 이후 팬들에게 버코 브릭 복제품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이후 버코 브릭을 대신할 새로운 구조물을 설치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 재활용 센터에 버려진 버코 브릭. 출처: KADA >

팀 레전드의 로고가 사라지고 팬들이 구매한 벽돌이 사라질 동안, 구단은 그 어떠한 소통도 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썼으면 애초에 생기지 않을 논란을 스스로 불러온 것이다.

 

배를 버려라

구단주 밥 너팅은 팀을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 바라보고 있다. 너팅에게 피츠버그는 그저 값싼 선수들로 시즌을 치르면서 적당히 표만 팔며 수익을 올리면 되는 존재일 것이다. 그 사이 구단 레전드를 기리는 로고는 광고에 가려지고, 팬들이 구매한 벽돌은 쓰레기장에 내던져졌다.

피츠버그 팬들은 스킨스가 제2의 게릿 콜이 될 것이라 말하고 있다. 스킨스의 실력 때문이 아닌, 그저 투자도 없는 구단에서 시간만 보내다 곧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팬들은 여러 광고에서 ‘Abandon the ship, Bob’이라는 광고 문구와 함께 구단을 팔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너팅은 경기 중 팬들이 외치는 ‘Sell the team’ 구호가 중계방송에 나오지 않게 하는 것으로 구단을 팔 의지가 전혀 없음을 드러냈다.

올해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코너 그리핀이 현재 리그 최고의 타자 유망주로 떠오르며 피츠버그 팬들의 희망이 되고 있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제 19살에 불과한 유망주가 빅리그에 데뷔하는 것을 제외하면 타선에 큰 보강이 없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시장에 그 어떠한 좋은 타자가 나오더라도 피츠버그가 영입할 가능성은 0에 수렴하는 것을 피츠버그 팬들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 피츠버그는 희망의 가득 찬 팀이었다. 맥커친과 게릿 콜이 팀을 이끌며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나갔고, 내셔널리그 중부지구의 강팀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피츠버그에는 스킨스가 있지만, 노쇠한 맥커친이 여전히 타선의 중심을 지키고 있다. 

피츠버그의 스포츠 팬들은 여름은 기다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NFL의 스틸러스와 NHL의 펭귄스는 매년 좋은 성적을 위해 도전하지만, 파이리츠만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너팅의 마음이 크게 변하지 않는 한 피츠버그의 야구는 팬들의 절망적인 예상대로 흘러갈 것이다.

 

참조 = Fangraph, Baseball Reference, Sports Illustrated, MLB.com, CBS sports(KADA), ESPN

야구공작소 탁원준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도상현, 장호재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수연

ⓒ야구공작소. 출처 표기 없는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상업적 사용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Be the first to comment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