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한태현 >
최근 체감 구속이 투수의 구위를 평가하는 지표로 부상했다. 체감 구속이란 투수가 공을 던질 때 타자에게 실제로 얼마나 빠르게 느껴지는지를 수치화하여 속도 단위로 나타낸 개념이다. 스피드건에 기록된 구속, 익스텐션1 등의 요소가 개입한다.
이에 따라 체감 구속을 늘리는 것이 야구인들에게 큰 관심사 중 하나가 되었고, 기존보다 스트라이드2를 늘려서 익스텐션을 늘려야 한다는 인식이 퍼졌다. 스피드건에 측정된 구속이 동일하다는 전제하에 익스텐션이 1cm 길어질수록 체감 구속은 0.16km/h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과연 체감 구속을 높이기 위해 스트라이드와 익스텐션을 늘려야만 할까?
< 전 마이애미 말린스 소속 카터 캡스의 투구 모습 >
캡스는 투구판에서 앞으로 점프하는 투구폼을 지녔다. 엄청난 길이의 스트라이드는 물론, 측정 이래 가장 긴 익스텐션(약 253cm)을 기록해 스피드건 구속보다 무려 시속 3마일(4.8km/h)가량 높은 시속 101.7마일(약 164km/h)의 체감 구속을 기록했다.
본론
투구 동작은 투수의 디딤발3이 착지할 때까지 생성된 전진 운동이 골반, 몸통, 어깨, 팔의 회전 운동으로 변환되며 일어난다.
스트라이드가 길어지면 투수가 앞으로 내딛는 속도가 빨라져 자연스럽게 전진 운동이 강해진다. 동시에 상체 회전을 타자와 더 가까운 지점에서 시작할 수 있다. 상술한 요인들은 체감 구속이 증가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 투구 동작 시 힘이 하체부터 손목까지 전이되는 과정을 개략적으로 나타낸 것. 투수의 투구 동작은 하체가 지면을 밀어내며 생성된 힘이 몸통, 어깨, 팔꿈치, 손목의 회전으로 전환되어 일어난다. >
야구, 투창 등의 종목에서 빠른 몸통 회전을 일으키기 위해 강한 상·하체 분리4는 필수다. 그러나 스트라이드를 억지로 늘리면 상·하체 분리가 최대가 되는 타이밍과 몸통/골반 회전의 타이밍이 앞당겨진다.
이는 투수가 전진 운동을 몸통의 회전 운동으로 변환하는 데 불리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투수가 효율적인 몸통 회전으로 힘을 전달할 수 없게 되어 구속이 떨어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릴리스 포인트가 머리를 기준으로 뒤쪽에 형성되기 쉽다. 결과적으로 긴 익스텐션을 위해 늘린 스트라이드가 오히려 체감 구속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 우투수의 디딤발이 땅에 닿는 순간 투수를 위에서 본 모습 >
골반(엉덩이)은 포수 쪽으로 회전하고 상체는 골반보다 적게 회전하여 상·하체 분리가 나타난다. 양 어깨를 이은 선(Shoulder line)과 골반의 양 끝을 이은 선(Hip line) 사이의 각도(Hip-Shoulder separation angle)로 상·하체 분리의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골반과 어깨가 회전한 각도 차이로 상·하체 분리를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1) 너무 이른 골반과 몸통 회전으로 인한 구속 저하
골반과 몸통에 회전이 일어나는 타이밍은 효율적인 상체 회전과 구속에 핵심적인 요소다.
골반이 너무 빨리 회전하기 시작하면 골반의 최대 회전 속도가 일어나는 타이밍이 디딤발 착지 이전 시점으로 앞당겨진다. 이로 인해 몸통 회전이 일어나는 시점, 상·하체 분리가 최대가 되는 시점이 모두 앞당겨진다.
한편, 투수가 익스텐션을 늘리기 위해 기존보다 스트라이드를 길게 설정하면 고관절에 가동 범위5 이상의 벌림(Abduction)이 일어나기 쉽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고관절에서는 폄(Extension) 동작이 더 일찍 일어난다.
< 평균적인 고관절 가동 범위 >
- Flexion: 굽힘
- Extension: 폄
- Abduction: 벌림
- Adduction: 모음
- Lateral rotation: 가쪽 돌림
- Medial rotation: 안쪽 돌림
폄 동작이 일찍 일어나면 디딤발이 닿기 훨씬 전에 골반이 포수 쪽으로 회전하기 시작하여 매우 이른 시점에 골반에서 최대 회전 속도가 나타난다. 이는 긴 스트라이드가 상체 회전운동의 타이밍을 앞당겨서 오히려 구속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보다 길게 설정한 스트라이드가 골반과 몸통 회전의 타이밍에 좋지 못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모션 센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 연구팀은 투수들의 스트라이드를 변화시키며 투구 동작 과정에서 각 신체 부위의 운동 에너지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스트라이드가 길어질수록 척추가 포수 쪽으로 회전하기 시작하는 시점과 최대 운동 에너지가 나타나는 시점이 앞당겨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 와인드업(0%)부터 공을 뿌릴 때(100%)까지 척추에서의 시간당 운동 에너지 변화량을 추적한 그래프 >
스트라이드를 짧게 설정한 상황(US), 길게 설정한 상황(OS), 그 중간(NS)을 비교해보면, 스트라이드가 길수록 척추가 회전을 시작하는 시점(위로 향하는 화살표), 척추가 최대 운동 에너지에 도달하는 시점(아래로 향하는 화살표)이 빠르다.
(2) 후방에 형성된 릴리스 포인트로 인한 익스텐션 상승 폭 감소
릴리스 포인트가 머리를 기준으로 지나치게 뒤에 형성되는 것을 막으려면 어깨와 팔에 빠른 회전을 가할 수 있어야 한다. 강한 몸통 회전은 어깨와 팔의 빠른 회전을 위한 필수 요건이다.
상술한 것처럼 스트라이드를 억지로 넓히면 몸통 회전이 약해지고 이 결과 공을 앞쪽으로 끌고 나오는 것이 어려워진다. 이로 인해 릴리즈 포인트가 머리를 기준으로 기존보다 뒤에 형성되기 쉽고, 스트라이드를 넓힌 이후의 익스텐션 상승 폭이 예상보다 훨씬 작아진다.
결론
< 2024시즌 내셔널리그 신인왕 수상자이자 사이영 투표 3위에 오른 폴 스킨스가 투구하는 사진 >
키에 비해 짧은 스트라이드와 돋보이지 않는 익스텐션(201cm, 상위 35%)을 갖고 있으나 2025시즌 선발 투수 중 2위의 포심 패스트볼 체감 구속을 기록 중이다. 왼 다리의 안쪽 돌림이 돋보인다.
스트라이드가 길지 않아도 높은 체감 구속의 공을 던질 수 있다. 폴 스킨스와 절정의 기량을 보여주던 맥스 슈어저가 그 방법을 가장 잘 보여준다.
두 선수는 와인드업 후 앞으로 내디디며 왼 다리에 안쪽 돌림을 일으켜 골반의 회전을 최대한 지연시킨다. 이후 디딤발이 닿기 직전에서야 골반을 급격히 회전시킨다. 이로 인해 디딤발 직후에 골반의 회전이 상체의 폭발적인 회전으로 전이된다. 몸통 회전을 이용한 투구의 극한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스트라이드를 늘리는 것은 체감 구속을 늘리기 위한 여러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하다. 오히려 스트라이드를 줄이거나 유지하는 대신, 골반과 몸통 회전의 타이밍을 최적화하여 구속을 끌어올리는 것 또한 체감 구속을 올리는 또 다른 길이다.
참고 = MLB.com, Energy flows with intentional changes in leg movements during baseball pitching, segmental power analysis of sequential body motion and elbow valgus loading during baseball, https://rocklandpeakperformance.com/pitching-biomechanics-hip-shoulder-separation/, https://treadathletics.com/
야구공작소 조승택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윤형준, 장호재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한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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