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봉상훈] 야구에는 수많은 스타들이 존재한다. 어떤 선수는 홈런을 가장 잘 치는 타자이고 어떤 선수는 삼진을 가장 잘 잡아내는 투수이다. 우리는 이들을 스타 선수라고 부른다. 그리고 최고의 스타 선수들에겐 사이영 상이나 MVP라는 타이틀이 주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타이틀과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지는 스타들이 있다. 바로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프랜차이즈 스타란 어떤 한 팀을 생각했을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팀의 얼굴일 수도 있고 팀의 한 시대를 이끌었던 선수일 수도 있다. 프랜차이즈 스타는 팀을 대표하는 선수이며 선수들의 리더이고 팬들에겐 영웅과 같은 존재이다.
즉, 팀을 상징하는 선수, 이들이 프렌차이즈 스타이다.
마리아노 리베라를 떠올려 보자. 누구에게 물어봐도 그는 뉴욕 양키스를 상징하는 선수이다. 또 다른 선수로는 데이빗 오티즈가 있다. 오티즈는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데뷔를 한 선수이지만 누가 뭐래도 그는 보스턴 레드삭스를 상징하는 선수이다. 오티즈는 얼마 전에 레드삭스의 영구결번을 부여받았다. 이들은 각각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팬들이 사랑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프랜차이즈 스타는 쉽게 탄생하지 않는다. 야구를 잘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단순히 야구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프랜차이즈 스타가 될 수 없다. 프랜차이즈 스타가 쉽게 나올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한 팀에서 오랫동안 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 스타가 반드시 한 팀에서만 뛰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양준혁은 KIA 타이거즈에서 뛴 경력이 있지만 명실상부한 삼성 라이온즈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양준혁이 삼성을 상징하는 이유는 그가 삼성에서 긴 경력 동안 뚜렷한 족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는 이 부분이 어렵다. 메이저리그는 빅마켓과 스몰마켓이 어느 정도 구분되어 있다. FA 시기는 6년으로 비교적 빨리 찾아오며 스타들에게 책정되는 몸값은 스몰마켓 팀은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천문학적 금액이다. 선수들이 한 팀에만 머물기 어려운 이유이며, 스몰마켓 구단에서 더욱 프랜차이즈 선수를 얻기 어려운 이유이다.
그렇기에 스몰마켓 구단의 팬들은 더욱 프랜차이즈 스타를 열망한다.
선수들의 비즈니스적 선택은 반드시 존중되어야만 한다. FA자격을 얻고 데뷔했던 팀을 떠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자신이 사랑했던 팀과 지역을 떠나지 않고 팬과 함께 하는 것을 비즈니스보다 더 우선순위에 두는 선수들이 간혹 있다. 이들은 나와 같은 스몰마켓 팀의 팬에겐 선망의 대상이자 로망과도 같은 것이다.
대표적인 스몰마켓 팀 프랜차이즈 스타로는 템파베이 레이스의 에반 롱고리아를 들 수 있다. 2008시즌 신인왕 수상자인 롱고리아는 팀의 첫 포스트시즌을 이끌었으며 이후 꾸준한 활약으로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3루수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2012년에 매우 낮은 연봉으로 일찌감치 2022년까지 연장계약을 맺었다.
과연 어떤 템파베이 팬이 롱고리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는 FA시장에 나가면 적어도 500억은 충분히 더 받을 수 있었다. 뉴욕이나 시카고, LA와 같은 더 큰 도시에서 더 주목받는 선수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롱고리아는 템파베이라는 도시를 택했고 템파베이의 팬들을 택했다. 롱고리아가 최근 4년 동안 부진한 모습에도 꾸준히 유니폼 판매순위에서 상위권에 위치함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일러스트: 야구공작소 황규호)
또 다른 스몰마켓 구단인 캔자스시티 로얄스의 포수 살바도르 페레즈는 어떠한가. 캔자스시티 팬들의 페레즈 사랑은 다소 광적이다. 페레즈는 롱고리아와 같이 뛰어난 성적을 기록한 선수도 아니다. 그의 통산 OPS는 겨우 0.747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는 인기의 지표인 올스타 투표에서 상위권 순위를 매년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그는 27살의 나이에 5년 연속 올스타에 선정되었다.)
페레즈는 팀의 리더를 자청하고 있으며 겨우 27살의 나이에 벌써 2번째 연장계약을 맺었다. 그는 2015시즌 우승 로고를 팔에 문신으로 남기면서 팀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어린 나이에 짧은 경력이지만 그는 누가 뭐래도 캔자스시티 로얄스가 사랑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팬들은 프랜차이즈 스타의 과오를 덮어주기도 한다.
약물 의혹으로 커리어가 얼룩진 데이빗 오티즈가 여전히 최고의 타자이자 최고의 선수로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은 그가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14년을 뛰었던 선수이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팀 팬들에게는 어떻든 적어도 그는 레드삭스의 팬들에게 14년을 함께한 아름다운 추억 중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오티즈의 경력은 순전히 보스턴 팬들의 사랑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티즈의 업적을 깎아 내릴 생각은 없다. 단지 프랜차이즈 스타의 의미가 그를 더욱 대단한 선수로 만들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보스턴 팬들에게 있어서 오티즈는 단순히 팀을 응원하는 것을 뛰어 넘어 그 이상의 승리를 이끌어내는 선수였다. 팀의 구심점과 같은 선수를 계속 볼 수 있다는 것은 지역 팬으로서 하나의 긍지였을 것이다.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황규호 )
최고의 선수가 프랜차이즈 스타로 남는 것만큼 짜릿한 일은 없을 것이다. 2000년대 최고의 유격수인 뉴욕 양키스의 데릭 지터가 그렇다.
20년 동안 오직 뉴욕 양키스의 핀 스프라이트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지터의 별명은 ‘Caption Clutch’. 주장의 개념이 확실하지 않은 메이저리그에서 캡틴이라는 별명을 가진 선수는 흔치 않다. 지터는 2000년대 양키스를 가장 잘 대표하는 선수이다.
최고의 인기팀에서 헌신과 활약을 보여준 지터에게 돌아온 것은 팬들의 사랑이었다. 그의 마지막 홈경기 티켓 값이 1만 달러가 넘는 가격에 거래되었다는 이야기는 팬들의 지터에 대한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게 한다. 지터는 양키스 팬들에게 메이저리그 최고의 유격수 이전에 양키스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 시대 최고의 타자는 누가 뭐라고 해도 마이크 트라웃이고 최고의 투수는 클레이튼 커쇼이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야구 팬들에게도 최고의 선수는 이 두 선수 일까? 모든 야구 팬들에겐 자신이 응원하는, 자신이 사랑하는 팀과 선수가 있고 이는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에게 수렴한다. 필자의 사전에 최고의 야구 선수는 조지 브렛이고 가장 기억에 남은 선수는 마이크 스위니이며 현재 누구보다 사랑하는 선수는 알렉스 고든, 살바도르 페레즈인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야구 팬들은 한 팀의 팬으로서 일생을 보내기 마련이다. 이러한 팬들에게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존재는 내 일생을 바친 선수와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쓴 기록과 경기를 보고 자란 세대는 프랜차이즈 스타를 팀과 동일시하게 되고, 그들은 그 존재 자체가 팀의 역사가 된다.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한 팀을 대표한다는 것, 팬으로서 자신의 팀들만 가질 수 있는 프랜차이즈 스타가 있다는 것, 선수에게나 팬들에게나 프랜차이즈 스타의 존재는 큰 영광이고 행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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