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환에서 김도현으로, 유망주에서 에이스로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홍기민 >

2025시즌 개막 이후 KIA 타이거즈는 디펜딩 챔피언으로서의 위용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주원인은 토종 선발진의 부진이다. 5월 16일 기준 KIA 국내 선발 sWAR은 1.21로 리그 8위이며 ERA 역시 4.86을 기록하며 7위에 쳐져 있다. 직전 시즌 ERA 2위, sWAR 3위를 기록한 것과는 극명히 대비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김도현이다. 지난해 KIA의 난세 영웅이었던 김도현은 비시즌 황동하와 5선발 경쟁을 벌였다. 경쟁에서 승리한 김도현은 양현종, 윤영철이 부진한 가운데 연일 호투를 이어가며 KIA의 토종 에이스로 급부상했다. 이 같은 김도현의 성장은 단기간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 김도현은 KIA의 새로운 희망으로 등극했을까.

 

새로운 에이스가 된 시즌 초반

김도현은 시범 경기 막판까지 황동하와 5선발 경쟁을 벌인 끝에 승리를 거뒀다. 그 기세는 정규 시즌까지 이어졌다. 5월 16일까지 8경기 선발 등판해 ERA 2.74, sWAR 1.12(리그 21위)로 빼어난 투구를 이어가고 있다. 우선 제구력이 점차 안정되어 가고 있다. 한화 시절 김도현은 많은 볼넷을 남발하며 스스로 무너질 때가 많았다. 하지만 지난해 9이닝당 볼넷을 3.72개로 낮췄다. 2025시즌에는 1.96개로 낮추며 순항하고 있다. 이닝당 투구 수도 15.6개로 리그 평균보다 낮다.

이닝 소화도 자연스레 늘었다. 김도현은 8경기에서 46이닝을 소화했다. 경기당 5.75이닝으로 리그 전체 15위, 국내 선발 투수들 가운데서는 7위를 기록했다. 선발 등판한 모든 경기에서 5이닝 이상을 던졌다. 10피안타 6실점으로 난타당했던 4월 23일 삼성전에서도 5.2이닝을 버텨냈다. 그럼에도 타선의 득점 지원이 적어(9이닝당 3.5점, 규정 24위) 2승 2패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 유일한 흠이다.

< 김도현의 정규시즌 성적과 국내 선발투수 중 순위, 5월 16일 기준 >

 

극적인 패스트볼 구속 향상

이전의 김도현과 지난 2시즌 간 김도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단연 패스트볼의 구속 상승이다. 한화 시절 김도현은 체인지업, 커브, 슬라이더 등 변화구는 잘 구사했지만 낮은 패스트볼 구속에 항상 발목 잡혔다. 패스트볼의 구속이 느리다 보니 주로 피해 가는 피칭을 할 수밖에 없었다. 승부를 들어가면 공략당해 고전을 면치 못했다. 자연스레 볼넷도 많았다.

그러나 군 제대 후 팀에 합류한 지난해 김도현의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147.8km/h, 최고 구속은 154km/h를 기록했다. 투심 패스트볼 역시 평균 145km/h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입대 전후로 평균 구속이 6km/h 가까이 상승한 것이다. 이러한 패스트볼 구속 상승폭은 2022~2024시즌 동안 1번이라도 1군에서 던진 투수들 가운데 2위에 해당한다. 한화 ‘김이환’이었던 시절에는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137~140km/h 수준에 그쳤던 만큼 극적인 구속 상승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 김도현의 연도별 패스트볼 평균 구속, 5월 16일 기준 >

군대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취사병이었던 김도현은 군 복무 기간 동안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하체 근육을 단련했던 것이 주효했다고 밝혔다. 하체 힘은 투수의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과 회전수 상승에 유의미한 영향을 준다. 실제로 한화 시절과 비교해 보면 김도현의 몸은 전체적으로 꽤 건장해졌다.

여기에 쉼 없이 달려왔던 김도현의 어깨와 팔꿈치도 군대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몸과 공에 힘이 붙으면서 공을 이전보다 강하게 던지기 시작했고 스스로 강속구 투수들의 투구 메커니즘을 연구했던 성과 등이 더해지며 극적인 구속 상승을 이뤄낼 수 있었다.

2025시즌 김도현의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5월 16일 기준으로 규정 이닝을 소화한 선발 투수들 가운데 15위, 투심 패스트볼은 6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국내 선수로 한정하면 각각 3위, 1위로 껑충 뛰어오른다. 향상된 구속은 멘탈을 약점으로 지적받았던 김도현에게 자신감이라는 또 다른 선물을 안겨주었고 이는 기량 향상으로 이어졌다. 김도현의 아킬레스건이었던 패스트볼은 이제는 김도현의 성장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됐다.

< 김도현의 포심 패스트볼 >

 

볼 배합의 변화

김도현은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등의 변화구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어 한화 시절부터 주요 선발 유망주로 평가받았다. 이 중에서도 김도현의 주무기는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이었다. 한화 시절 김도현은 우타자에게 슬라이더, 좌타자에게는 체인지업을 결정구로 활용했고 커브는 주로 카운트를 잡는 용도로 던졌다. 하지만 변화구의 평균 구속이 130km/h를 채 넘지 못했다. 제구도 완벽하지 않았기에 타자들에게 쉽게 공략당하기 일쑤였다.

이적 후 볼 배합에 변화를 주었다. 커브의 비중을 크게 늘렸다. 이전까지 김도현의 커브 구사율은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에 비해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다 KIA로 이적한 2022시즌부터 우타자 상대 시 커브의 구사율을 20.8%로 대폭 늘렸다(2021시즌 7.2%). 동시에 약 10% 정도의 구사율을 기록한 우타자 상대 체인지업 구사율을 7.5%로 낮췄다. 2024시즌에는 2.5%로 우타자 상대 체인지업을 거의 봉인하고 커브와 슬라이더, 포심 패스트볼로 우타자를 상대했다.

< 김도현의 연도별 변화구 구사율, 5월 16일 기준 >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김도현의 커브는 2024시즌 피OPS는 0.479, 헛스윙률 35.8%로 엄청난 위력을 자랑했다. 기존의 결정구였던 슬라이더보다 더 좋은 결과를 냈다. 김도현의 슬라이더가 2022시즌 평균 구속 132km/h에 머물다 6km/h 정도 구속이 올라 2024시즌 138.9km/h까지 증속 됐음에도 말이다.

삼진 능력에도 영향을 줬다. 2스트라이크 이후 커브와 슬라이더의 구사율은 각각 24.5%, 28.4%로 거의 비슷했다. 그러나 2스트라이크 이후 헛스윙률은 커브가 31.0%로 슬라이더(17.6%)보다 약 2배 가까이 높았고 Putaway%1 역시 21.3%, 13.8%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10.2 이닝밖에 던지지 않았던 2022년을 제외하면 김도현은 2024년 9이닝당 탈삼진 7.08로 커리어 동안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김도현의 커브는 가을의 가장 높은 무대에서도 빛을 발했다. 김도현은 2024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양현종이 강판당한 후 다음 투수로 등판했다. 이때 커브를 결정구로 적극 활용했는데(구사율 33.3%) 그 결과 2.1 이닝 동안 단 1개의 볼넷만을 내주며 삼성 타자들을 압도했다.

< 2024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김도현의 커브 >

2025시즌에는 지난해 높은 피안타율을 기록한 슬라이더와 포심 패스트볼 구사를 줄였다. 대신 투심 패스트볼과 좌타자 상대 체인지업의 구사율을 대폭 늘렸다. 5월 16일 기준으로 우타자 상대 커브와 좌타자 상대 체인지업은 각각 피OPS 0.045, 0.679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특유의 테일링이 걸리는 패스트볼이 더해지며 뜬공을 효과적으로 억제해 내고 있다(전년 대비 외야뜬공% 5%P 하락).

< 2024/2025시즌 김도현의 타자 유형별 구종 구사율, 5월 16일 기준 >

또한 김도현의 커브는 우타자와의 상성도 역전시켰다. 2024시즌까지 김도현은 우투수임에도 통산 우타자 상대 피안타율이 0.307로 좌타자보다 0.028가량 높았다. 그러나 2024시즌 36.4%였던 우타자 상대 포심 구사율을 27.8%로 낮추고 위 표에서 보이듯이 커브와 슬라이더 위주로 레퍼토리를 수정했다. 그리고 이는 우타자 상대 열세 극복으로 이어졌다(우타자 피안타율 0.180).

 

앞으로의 과제

옥에 티도 있다. 앞서 언급했듯 김도현은 패스트볼의 놀라운 구속 향상을 이뤄냈다. 하지만 여전히 패스트볼의 피안타율이 리그 평균보다 높고 피장타 억제에서도 다소 고전하고 있다. 더불어 2025시즌에는 포심 패스트볼의 제구가 다소 높은 쪽으로 형성되고 있다. 포심 패스트볼은 높은 존 투구로 활용하는 게 정석이지만 정작 김도현의 하이 패스트볼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투심 패스트볼도 다소 몰리는 공이 많았다. 그 탓인지 지난해 대비 투심 패스트볼 구사율을 10% 이상 늘렸으나 땅볼 비율은 6%P 정도 하락했다.

패스트볼을 낮게 투구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김도현은 포심 패스트볼에도 팔 방향으로 휘는 움직임이 있다. 국내에 김도현만큼 빠른 투심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는 투수는 드물다. 이런 패스트볼들은 존 하단에 투구하면 헛스윙과 땅볼을 유도할 수 있다. 구속도 빠른 편인 만큼 존 하단에 꽂힌다면 타자가 정타를 만들어 내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낮은 존 비중을 높이는 방법도 고려해 볼만하다.

< 2025시즌 김도현의 투심/포심 패스트볼 구역별 구사율, 5월 16일 기준 >

또 한 가지 아킬레스건은 슬라이더다. 2025시즌 기준으로 김도현은 평균 구속 137.1km/h, 최고 140km/h 이상의 고속 슬라이더를 구사하고 있다. 리그 평균이 132.5km/h이니 확실히 이점을 가질 수 있을 만한 구속이다. 하지만 슬라이더를 구사했을 때 그리 재미를 보지 못했다. 5월 16일 기준으로 슬라이더의 피안타율은 0.310, 좌타자를 상대로는 0.333로 더 오른다. 입대 전후로 평균 구속이 6km/h나 올랐지만 피안타율 면에서는 이전과 별 차이가 없는 셈이다. 

평균 구속이 크게 올랐음에도 타자를 제압하는 데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다면 굳이 높은 구사율을 유지할 이유가 있을까. 지난해 보스턴 레드삭스는 ‘더 경쟁력 있는 공을 던지자’는 전략하에 패스트볼 구사를 줄여 재미를 보았다. 올해 김도현도 피안타율이 높았던 패스트볼의 구사를 낮춰 효과를 보고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슬라이더의 구사율을 낮추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김도현은 커브와 체인지업이라는 확실한 무기가 있다. 아예 봉인하기보다는 구사율을 조금 낮춰 슬라이더를 타자들의 눈에 낯설게 만드는 전략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물론 앞서 말했듯 올해는 슬라이더 비중이 조금 줄었다. 그럼에도 구사율이 18.2%다. 체인지업보다 높다(체인지업 구사율 16%). 결과가 좋지 않다면 구사율을 좀 더 줄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전망

2020년대 들어 KIA는 이의리, 최지민, 윤영철, 곽도규 등 수준급 좌완 유망주들을 다수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에 반해 우완 쪽에서는 번뜩이는 젊은 투수가 잘 보이지 않았다. 2024시즌 전까지 2020년대 KIA의 25세 이하 우완 투수들의 sWAR은 5.94로 9위에 그쳤다. 같은 기간 정해영이 6.75를 쌓았으니 정해영 외에는 제대로 활약한 선수가 없는 셈이다. 

하지만 지난해 황동하와 함께 김도현이라는 혜성이 등장했다. 김도현은 그 고민을 해결해 줄 유력한 후보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이 있다. 김도현은 처음에는 뒤처지는 듯했지만, 묵묵히 자신이 설정한 방향으로 걸었다. 군대라는 폐쇄적이고 제한된 환경 속에서도 노력이라는 가능성을 믿고 운동에 매진해 분명한 성과를 이뤄냈다. 그리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을 때 천군만마가 되어 나타나 팀이 정상으로 가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느린 패스트볼 구속에 발목 잡혔던 김이환은 150km/h의 강속구와 위력적인 변화구를 쉽게 던질 수 있는 김도현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KIA의 든든한 선발투수로 성장했다. 보통 구속은 재능의 영역이라고 하지만 김도현을 보면 꼭 그런 것만 같지는 않다.

아직 정규시즌 종료까지는 100경기 정도가 남아있다. 이토록 긴 장기 레이스에서 김도현은 끝까지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을까. 분명 쉬운 일은 아니지만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꿔온 김도현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KIA의 천군만마 김도현이 다시 한번 팀을 구해낼 수 있을지 지켜보자.

 

참고 = 스탯티즈, 네이버 스포츠, KBO STATS, TIVING, 프로야구 넘버스북 2025

야구공작소 조승화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이지영, 장호재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홍기민

ⓒ야구공작소. 출처 표기 없는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상업적 사용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1. Putaway% : 2스트라이크 카운트 투구 대비 삼진 결정 비율

Be the first to comment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