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이동헌 >
대학 시절 같은 학교에 다니며 리그 최고의 원투펀치를 이루었던 두 투수가 있다. 최고의 유망주였던 이들은 드래프트 이후 부상과 부진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3년 후 같은 구단에서 메이저리그 데뷔에 성공하게 된다. 텍사스 레인저스의 잭 라이터(Jack Leiter)와 쿠마 로커(Kumar Rocker)의 이야기다. 이들이 밴더빌트 대학교의 원투펀치에서 텍사스 레인저스의 2025년 개막 로테이션에 포함되기까지의 여정을 살펴보자.
대학 최고의 원투펀치, 텍사스에서 만나다

< 밴더빌트 대학교 시절 잭 라이터(좌)와 쿠마 로커(우) >
2021년 드래프트를 앞두고 가장 주목받은 유망주는 당시 밴더빌트 대학교의 원투펀치였던 잭 라이터와 쿠마 로커였다. 그해 라이터는 110이닝, 로커는 122이닝 동안 179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나란히 NCAA 디비전 1 삼진왕에 올랐다. 이러한 두 투수의 활약을 바탕으로 밴더빌트 대학교는 칼리지 월드시리즈에서 준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잭 라이터 대학 통산 성적: 125.2이닝 201삼진 53볼넷 ERA 2.08
쿠마 로커 대학 통산 성적: 236.2이닝 321삼진 68볼넷 ERA 2.89
대학 최고의 선발 투수로 평가받은 라이터와 로커가 드래프트 5순위 이내에 지명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였다. 당시만 해도 두 투수가 같은 구단의 유니폼을 입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예상대로 라이터는 텍사스 레인저스의 전체 2순위 지명을 받았다. 당시 라이터가 받은 792만 달러의 계약금은 그해 드래프트에서 가장 높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로커가 10번째 순서가 되어서야 뉴욕 메츠의 지명을 받은 것이었다. 예상보다 낮은 순번에 로커의 건강 상태에 대한 의구심이 피어났다. 그리고 이내 메디컬 테스트에서 팔꿈치와 어깨에 문제가 발견되면서 계약에 실패하게 된다. 결국 로커는 드래프트 재수를 선택하고 독립리그에서 1년을 보내게 된다.
독립리그에서 로커는 20이닝 동안 50개의 삼진과 평균자책점 1.35를 기록하며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여전한 내구성에 대한 불안과 남들보다 1년이 늦은 나이는 로커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이러한 까닭에 2022년 드래프트를 앞둔 로커의 예상 지명 순번은 대부분 1라운드 이후였다.
하지만 또 한 번 놀라운 일이 발생한다. 드래프트 당일 전체 3번째로 호명된 선수는 다름 아닌 로커였다. 심지어 로커를 지명한 구단은 1년 전 라이터를 지명했던 텍사스 레인저스였다. 밴더빌트 대학의 두 투수가 재결합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로커를 지명한 것에 대해 텍사스 레인저스의 크리스 영 단장은 건강에 대한 확신을 갖고 지명했으며, 무엇보다 작년의 역경을 딛고 일어난 로커의 성격과 워크에식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이후 로커가 계약금 520만 달러에 텍사스에 공식적으로 합류하면서 밴더빌트 대학교의 두 투수는 메이저리그를 향한 여정을 함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 텍사스 레인저스 유니폼을 입은 잭 라이터와 쿠마 로커 >
계속된 부상과 부진, 멀어지는 메이저리그의 꿈
이미 대학에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 라이터와 로커는 마이너리그를 빠르게 주파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계속된 부상과 부진은 두 투수의 성장을 가로막았다.
라이터의 문제는 제구였다. 2023년 9이닝당 12.1개의 삼진을 잡아낸 강력한 구위는 여전히 라이터의 강점이었다. 하지만 AA에서 2022년 9이닝당 5.4개, 2023년 9이닝당 5.2개의 볼넷을 내주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제구 불안으로 인해 라이터는 마이너리그 두 시즌 동안 평균자책점 5.38이라는 예상을 훨씬 밑도는 성적을 기록한다.
반면 로커는 드래프트 당시부터 우려를 낳은 건강 문제가 사실로 드러났다. 이미 프로 시작이 늦어진 로커는 실전 경험이 중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6경기 만에 팔꿈치가 문제를 일으켰고 결국 토미 존 수술을 받아 시즌을 날리게 되었다.
어느새 파이프라인 유망주 TOP 100 명단에서 두 선수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한때 대학 최고의 원투펀치이자 드래프트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던 둘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고 있었다.
메이저리그 데뷔가 점점 멀어지는 상황 속에서 두 선수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라이터는 성적 개선을 위해 몇 가지 투구 메커니즘도 수정했지만, 마음가짐의 변화가 가장 컸다고 밝혔다. 이전까지 실패한 경험이 없었던 라이터는 상대를 압도하고 완투, 노히트를 던지겠다는 생각만으로 마운드에 올랐었다. 하지만 마이너리그에서 부진을 겪으며 한 발짝 물러섰다. 결과보다는 당장의 투구 하나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만약 라이터에게 부진의 기간이 없었다면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로커 역시 부상 기간 동안 정신적으로 무장할 수 있었다. 특히 팀 동료였던 베테랑 투수 제이콥 디그롬의 역할이 중요했다. 디그롬과 로커는 토미 존 수술에서 돌아오는 시기가 같았다. 이 기간 동안 로커는 디그롬과 매일 이야기하며 그의 침착함과 단순하게 생각하는 방법을 본받을 수 있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라이터와 로커가 얻은 깨달음은 두 선수의 커리어에 있어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2년간의 부상과 부진은 두 선수가 메이저리그 선발 투수로 자리 잡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이제 실패를 통해 배운 내용을 본인에게 적용하여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은 것이다.

< 2025년 텍사스의 개막 로테이션 진입에 성공한 두 투수 >
메이저리그 데뷔와 개막 로테이션 진입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맞이한 2024년. AAA에서 시즌을 시작한 라이터는 14.1이닝 동안 25개의 삼진을 잡으면서 3개의 볼넷만을 내주는 뛰어난 활약을 한다. 이러한 활약 덕분이었을까, 4월 18일 드디어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 데뷔에 성공하게 된다.
물론 메이저리그의 벽은 높았다. 라이터는 메이저리그에서 평균자책점 8.83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마이너리그에서는 평균자책점 3.51을 기록했고, 33.3%의 삼진율은 70이닝 이상 소화한 선발 투수 중 전체 1위의 기록이었다. 특히 9이닝당 볼넷을 4.1개까지 줄이면서 제구 불안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편 시즌 중반 토미 존 수술에서 복귀한 로커는 AA에서 평균자책점 0.46, AAA에서 평균자책점 1.80을 기록하며 건강만 하다면 최고의 투수라는 것을 증명했다. 압도적인 활약을 바탕으로 빠르게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받았고, 콜업된 후 3경기에서 평균자책점 3.86을 기록하면서 좋은 투구 내용을 보여줬다. 이로써 라이터와 로커는 모두 우여곡절 끝에 메이저리그 데뷔에 성공하게 된다.
라이터가 부진한 모습에도 시즌 후반 계속해서 기회를 받고, 로커가 부상 복귀 후 빠르게 콜업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텍사스의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9월 1일 기준 텍사스는 지구 선두와 10경기 차, 와일드카드 3위와는 9.5경기 차까지 벌어져 있었다. 포스트 시즌 진출이 힘든 상황에서 브루스 보치 감독은 미래를 위해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더 주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이유로 라이터와 로커는 메이저리그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메이저리그에서의 실전 경험은 라이터와 로커를 한 단계 더 성장시켰다. 처음 콜업된 후 라이터는 메이저리그에 왔으니 더 많은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기에 출전하면서 점점 원래 페이스를 유지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조금 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로커 역시 메이저리그에서 다양한 타자들을 상대하며 각 볼카운트를 이겨내고 운영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었다고 밝혔다.
실전 경험 덕분이었을까, 2025년 라이터는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며 텍사스의 개막 로테이션 진입에 성공한다. 로커는 조금 부진한 모습을 보였지만, 존 그레이와 코디 브래드포드가 부상을 당하면서 마찬가지로 개막 로테이션에 합류하게 된다. 밴더빌트 대학교의 두 투수가 같은 메이저리그 유니폼을 입고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는 데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이들의 발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라이터는 우타자 상대 투심을 추가하고 체인지업의 사용 빈도를 늘리는 시도를 하고 있다. 로커 역시 기존의 포심과 슬라이더 외에 투심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아직 시즌은 길기 때문에 두 투수가 발전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
마치며
많은 투수 유망주가 빛을 못 보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힌다. 메이저리그 데뷔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고, 데뷔에 성공하더라도 불펜 투수로 커리어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점에서 드래프트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았던 라이터와 로커가 나란히 메이저리그 선발 로테이션 진입에 성공한 것은 의미가 크다.
메이저리그를 향한 이들의 여정은 유망주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극복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들은 경기에 출전해 야구를 접근하는 방식을 배워가면서 더 나은 선수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여기에 베테랑 선수의 존재, 구단의 성적, 기존 선수들의 부상 등 여러 상황이 유망주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본인의 노력과 상황적 요인이 모두 뒷받침되어야 메이저리그 데뷔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라이터와 로커는 같은 대학교에서 출발하여 같은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데뷔했다는 사실이 이들의 이야기에 더 주목하게 만든다. 두 젊은 투수가 메이저리그까지 오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밴더빌트 대학교의 라커 룸에서 경기를 준비하던 둘은 이제 엄연한 메이저리그의 라커 룸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다. 시즌 초반 라이터와 로커는 모두 부상자 명단에 올라가 있다. 여기에 로커는 아직 프로에서 한 시즌을 온전히 뛰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두 투수의 커리어는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어두운 마이너리그 생활에서 스스로 해법을 찾았듯, 앞으로의 위기에서도 해결책을 찾아낼 것이다. 이번 시즌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 도전을 시작한 잭 라이터와 쿠마 로커. 이들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관심 있게 지켜보자.
참고 = Fangraphs, Baseball Reference, Baseball Savant, MLB.com, The Dallas Morning News, The Athletic, Yahoo Sports, Sports Illustrated
야구공작소 김태현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도상현, 민경훈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이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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