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민서 >
야구공작소는 연말을 맞이하여 KBO 팀별 24시즌 리뷰를 발행합니다. 12월 31일까지 매일 한 팀씩 업로드됩니다.
시즌 성적 = 87승 55패 2무 (최종 1위)
KIA 타이거즈의 2024년은 느낌표의 연속이었다.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김종국 당시 감독이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 영장이 청구돼 계약을 해지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 시작이었다. 주장 나성범이 햄스트링 부상으로 2년 연속 개막전 엔트리에 탈락했고 개막 후에도 윌 크로우, 이의리, 정해영 등 주축 선수들이 연이어 부상으로 이탈했다. 후반기에는 에이스 제임스 네일과 윤영철, 최형우마저 부상으로 1달 이상 자리를 비우며 위기를 맞이했다.
이러한 악재 속에서도 KIA는 끝끝내 1위 자리를 지켰다. 0.301의 팀 타율과 OPS 0.828에서 보이듯 리그 최강의 타선을 보유했고, 기존의 JJJ 트리오(장현식, 전상현, 정해영)에 곽도규가 가세한 필승조도 굳건했다. 또한 두꺼운 팀 뎁스로 주전 선수들의 부상을 최소화한 것이 주효했다. 특히나 부상자가 많았던 선발진은 황동하와 김도현이 난세 영웅으로 등장했고, 대체 외국인 투수 캠 알드레드의 활약이 더해져 무너지지 않았다.
2023시즌과 2024시즌의 KIA는 시즌 내내 여러 악재에 시달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2023시즌에는 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그대로 무너졌다면, 2024시즌은 악재를 훌륭하게 극복하면서 가장 높은 곳에서 시즌을 마무리했다.
범상치 않았던 비시즌
비시즌 KIA는 FA 자격을 얻은 주전 2루수 김선빈을 잔류시켰고 4번 타자 최형우와도 비FA 다년 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2023시즌 팀 wRC+ 2위에 올랐던 강력한 타선 전력이 그대로 유지됐다. 투수진은 JJJ 트리오와 최지민이 버티는 필승조에, 양현종-이의리-윤영철로 이어지는 안정적인 토종 선발진이 있었다. 이는 많은 전문가들이 KIA를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은 요인이었다. 다만 3년 연속으로 외국인 투수들의 부상, 부진에 발목을 잡혔던 만큼 새로운 외국인 투수 영입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 결과 1월 초에 이르러서야 빅리그 경험이 많은 크로우, 세인트루이스 40인 로스터에 있었던 네일을 영입함으로써 팀 구성을 완료했다.
그러나 스프링캠프 직전 김종국 당시 감독이 금품 수수 혐의로 직무 정지를 당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발표됐다. 곧이어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 영장까지 청구되면서 KIA는 김 감독과의 계약을 해지했고 급히 이범호 타격코치를 감독으로 선임해야 했다. KBO 역사상 현직 감독이 범죄 혐의로 구속 영장을 청구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고, 스프링캠프 출국 이틀 전에 사건이 발생한 만큼 선수단이 받은 충격은 상당했다. 또한 KIA는 이 감독이 선임된 2월 13일 전까지 약 2주 동안 감독 없는 초유의 스프링캠프를 진행해야 했다. 게다가 시범 경기 도중에는 주장 나성범이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며 2년 연속으로 개막전 합류가 불발됐다. 비시즌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KIA의 2024시즌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2024시즌 돌아보기
갑작스러운 감독 교체와 주장의 이탈에도 KIA는 흔들리지 않았다. 개막 4연승을 기록한 KIA는 김도영, 네일, 필승조의 맹활약을 앞세워 4월부터 일찌감치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5~6월엔 승패마진 +1에 그쳤다. 연이은 상위권 팀과의 맞대결로 인한 피로감과 크로우, 이의리, 정해영 등 핵심 자원들의 부상 이탈이 KIA의 발목을 잡았다. 특히 6월 25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13점 차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역전을 허용하는 등 경기력 저하도 상당했다. 다행히 2위 팀들을 상대로 연이어 승리를 거두며 2017시즌 이후 7년 만에 전반기를 1위로 마무리했다.
후반기는 시작과 동시에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를 연달아 스윕하며 기세를 이어갔다. 동시에 KBO 역대 한 경기 최다 실점 기록과 네일, 윤영철 등의 부상과 같은 악재가 후반기에도 찾아왔다. 하지만 KIA는 이를 이겨내고 7~9월 모두 월간 6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해 전반기보다도 압도적인 경기력을 자랑했다. 특히 2위권이었던 LG, 삼성과의 맞대결에서 전승을 거두며 두 팀의 추격을 뿌리친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 결과 KIA는 2009시즌, 2017시즌과 달리 빠르게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 지으며 여유 있게 한국시리즈를 대비할 수 있었다.
한국시리즈에서도 운이 따랐다. 우선 삼성의 투타 기둥이었던 코너 시볼드와 구자욱이 부상으로 출장하지 못했다. 1:0으로 뒤지던 1차전은 우천으로 인한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돼 삼성의 기세가 중간에 꺾였다. 이후부터 기세가 오르기 시작한 KIA는 시리즈 내내 삼성을 압도했다. 그 결과 KIA는 37년 만에 광주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우여곡절 많았던 2024시즌을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했다.
부상 악령, 뎁스의 힘으로 극복하다.
2023시즌에 이어 부상 악령은 계속 KIA를 괴롭혔다. 주장 나성범이 햄스트링 부상으로 4월 말까지 이탈한 것을 시작으로, 개막 1달 만에 이의리와 크로우도 팔꿈치 수술로 시즌 아웃당하며 선발진이 붕괴할 위기에 처했다. 후반기에는 마무리 정해영과 윤영철이 부상으로 1달 이상 자리를 비웠고 에이스 네일마저 타구에 턱을 직격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임기영, 최형우, 김선빈 등 다른 주전 선수들도 크고 작은 부상으로 이탈함으로써 KIA는 온전한 전력으로 시즌을 치르지 못했다. 부상자 속출로 인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던 2023시즌과 전반적으로 비슷한 상황이었다.
< 2024시즌 KIA 타이거즈 주요 부상자 >
하지만 지난해와 달리 KIA는 두꺼운 뎁스의 힘으로 부상 악재를 극복했다. 먼저 이의리와 윤영철의 자리는 황동하(선발 95.2이닝 ERA 4.80)와 김도현(선발 43.1이닝 ERA 4.57)이 메웠다. 황동하와 김도현이 선발진에 합류한 후 대체 선발로 호투하면서 KIA는 계속 1위를 지켜나갈 수 있었다. 특히 둘의 선발진 합류 이후에도 선발진에서 추가 부상자가 발생했음을 고려했을 때, 황동하와 김도현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KIA는 우승을 장담할 수 없었다. 지난해 많은 이닝을 소화한 여파로 제구력이 무너진 최지민의 역할은 신예 곽도규(55.2이닝 ERA 3.56)가 완벽하게 대체했고 마무리 정해영의 공백도 전상현(66이닝 ERA 4.09), 장현식(75.1이닝 ERA 3.94) 등 기존 필승조로 버텨냈다.
백업 야수들의 활약도 빛났다. 지난해 LG에서 방출된 서건창은 뛰어난 컨택과 선구안, 클러치 능력을 통해 준주전 선수로 부활(248타석 wRC+ 125)했다. 이창진 역시 타율은 저조했지만, 특유의 선구안으로 0.401의 높은 출루율을 기록하며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박정우도 기존에 김호령이 수행하던 대주자, 대수비 역할을 완벽하게 대체했다. 이 외에도 변우혁, 홍종표, 윤도현 등의 젊은 선수들 역시 적재적소에 활약하면서 앞으로의 미래 또한 기대할 수 있었다. 과거 KIA의 발목을 잡았던 선수단 뎁스는 더 이상 약점이 아니라, KIA의 가장 강력한 힘으로 거듭났다고 할 수 있는 시즌이었다.
2024시즌 MVP : The Young King
KIA의 2024시즌에서 김도영의 활약은 절대적이었다. 제2의 이종범으로 큰 기대를 받으며 입단한 김도영은 시즌 초반에는 지난해 APBC에서 당한 손가락 부상으로 주춤했다. 하지만 이범호 감독과 함께 했던 뜬공 프로젝트가 빛을 보기 시작한 4월부터 본격적으로 방망이가 터졌다. 월간 10-10 클럽을 달성한 것을 시작으로 사이클링 히트, 역대 최소 경기 30-30 클럽, 아시아 단일 시즌 최다 득점 등 각종 대기록을 작성하며 리그 최고의 슈퍼스타로 등극했다. 장염 증세가 있었던 5월을 제외하면 월간 OPS가 1 이하로 내려가지 않았을 정도로 꾸준하게 리그를 지배했다. 한국시리즈에서도 적재적소에 활약하며 팀 우승에 기여했고 프리미어 12에서는 1.503의 OPS를 기록하며 대표팀의 중심 선수로 맹활약했다.
< KIA 타이거즈 공식 SNS >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0.347(3위)-189안타(3위)-143득점(1위)-38홈런(2위)-출루율 0.420(1위)-장타율 0.647(1위)-OPS 1.067(1위)-wRC+ 172.5(1위)-sWAR 8.32(1위). 대부분의 타격 지표에서 리그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압도적인 성적이다. 그 덕에 전반기가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도 정규시즌 MVP 트로피에는 이미 ‘김도여’까지 이름이 새겨졌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놀라운 것은 역사에 길이 남을 시즌을 보낸 이 선수는 이제 겨우 데뷔 3년 차인 21살이라는 것이다. KIA의 주전 야수 중에서는 막내임에도 경이로운 성장 속도로 팀 타선을 선두에서 이끌며 KIA의 12번째 우승에서 가장 큰 공을 세웠다. 같은 나이의 이승엽, 김현수, 김태균 등의 전설들보다도 뛰어난 성적이다. 3년 차에 MVP를 비롯한 여러 상을 싹쓸이한 김도영은 입단 당시의 기대치를 완벽하게 충족했다. 더불어 ‘제2의 이종범’에서 ‘제1의 김도영’으로 나아가는 여정의 첫걸음을 완벽하게 내디딘 시즌이었다.
호랑이 꼬리 징크스
2024시즌 KIA의 우승 동력에서 ‘호랑이 꼬리 징크스’도 빼놓을 수 없다. 호랑이 꼬리 징크스는 1위 호랑이의 꼬리를 노리는 2위 팀이 도리어 호랑이에게 잡아먹힌다는 의미이다. 그만큼 2위 팀을 상대하는 KIA의 힘은 압도적이었고 이례적인 수준이었다.
< 2024시즌 KIA 타이거즈 vs 2위 팀 상대 전적 >
위 표는 2024시즌 KIA와 2위 팀 간의 상대 전적이다. 시즌 내내 한화 이글스, NC 다이노스, 두산 베어스, LG, 삼성 등 여러 팀의 도전을 받았지만, 단 한 번도 루징 시리즈를 기록하지 않았다. 최종 전적은 27경기에서 24승 3패(승률 0.889)로 ‘압도’라는 수준을 넘어섰으며 후반기에는 12경기에서 단 1패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 덕에 KIA는 정규시즌을 약 2주 남긴 시점에서 여유 있게 우승을 확정할 수 있었다. 2009시즌과 2017시즌의 KIA는 SK 와이번스와 두산에 시즌 최종전까지 거센 추격을 허용해 가슴이 철렁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기에 2024시즌의 호랑이 꼬리 징크스는 KIA의 강력한 우승 원동력인 동시에 기분 좋은 징크스로 남게 됐다.
2025년 : 역사의 반복일까, 새로운 시작일까
부임 첫 해 통합 우승을 달성한 이범호 감독에게 2025시즌은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여전히 KIA의 전력은 리그 최상위권이다. 투수진은 에이스 네일이 2025시즌에도 동행하고, 조상우가 트레이드로 합류하면서 뎁스를 유지했다. 패트릭 위즈덤이 가세한 타선 역시 리그에서 가장 위협적이며 내년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는 박찬호와 최원준의 활약도 기대할 만하다. 특히 한준수, 변우혁, 김도현, 윤도현, 황동하, 곽도규 등 젊은 선수들이 팀의 우승 과정에서 크게 활약한 만큼 향후 있을 세대교체에도 파란 불이 들어왔다.
다만 주축 선수인 양현종, 최형우, 나성범, 김선빈 등 베테랑 선수들의 나이가 1살 더 늘었다. 필승조 장현식이 경쟁팀 LG로 이적했고 삼성 역시 최원태와 아리엘 후라도를 영입해 대대적으로 전력을 보강했다. 게다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시즌을 치르며 상당한 수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역대 최다 실책 신기록을 세운 수비도 아킬레스건이다. KIA는 우승 다음 시즌에는 중위권으로 추락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2010시즌에는 16연패를 당했고 2018시즌에도 5위에 그쳤다. 팀 내부 상황과 경쟁팀들의 대대적인 전력 보강을 고려했을 때 마냥 2025시즌을 낙관할 순 없다.
이범호 감독도 2018시즌의 실패를 직접 경험했던 일원이다. 동시에 아픈 역사를 끊어내고 새로운 문을 열어야 한다는 중책도 맡았다. KIA는 2025시즌에도 우승에 도전할 만한 전력으로 평가받는다. 단 우승 도전만큼 중요한 과제는 이전처럼 단발적인 성적이 아닌, ‘꾸준한 강팀’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2024시즌에 그 희망과 문제점을 확인한 만큼 2025시즌은 이범호 감독과 선수단에 매우 중요한 시즌이 될 것이다. 과연 KIA의 2025시즌엔 또다시 ‘우주의 기운’이 찾아와 왕조 부활의 신호탄을 쏠 수 있을지 지켜보자.
참고 = STATIZ, KIA 타이거즈, KBO
야구공작소 조승화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조광은, 당주원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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