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채희 >
지난봄 42번째 대장정에 나섰던 2024 KBO리그가 KIA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024시즌은 공인구 반발계수 변화와 더불어 자동 볼 판정 시스템과 피치컴이 도입되는 등 선수들이 리그의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시즌이었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좋은 성적을 올리며 자신의 기량을 만개한 선수들도 존재한다.
이들 중 가장 빛났던 선수는 단연 KIA의 김도영이다. 그는 역대 최초 월간 10홈런-10도루를 시작으로 30홈런-30도루 클럽, 사이클링 히트 등을 달성하며 역사를 새로 써 내려갔다. 또한 시즌 내내 리그 최고의 타자로 군림했고 강력한 정규 시즌 MVP 후보로도 꼽히고 있다. 그와 동시에 기량 발전상 유력 후보이기도 한 김도영은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새로운 타격폼 : 일단 공을 맞춰야 한다
“저는 안타 치고 도루하는 선수입니다.”
‘제2의 이종범’으로 큰 기대를 받았던 김도영이 입단 당시 생각했던 본인의 이미지다. 본인을 장타자가 아닌 교타자로 평했는데 KIA가 김도영에게 기대했던 것은 파워였다. 빠른 배트 스피드와 강한 코어 회전, 손목을 이용하는 감각이 남달라 장타력에도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2022시즌 시범경기에서 김도영은 0.432의 타율과 0.636의 장타율을 기록했다. 이 같은 활약에 힘 입어 고졸 신인으로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개막전 리드오프를 맡았다. 강력한 신인왕 후보로도 꼽혔지만 갓 데뷔한 김도영에게 1군의 벽은 높았다. 김도영은 데뷔 후 첫 1달 동안 OPS 0.445, 장타는 4개에 그치며 본인이 생각했던 교타자의 모습도, 구단이 기대한 장타자의 모습도 보여주지 못했다.
< 좌 = 2022시즌 3월, 우 = 2022시즌 5월 >
김도영이 찾은 답은 타격폼 수정이었다. 김도영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타격 시 손이 머리보다 높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타격 시 손의 위치가 높을수록 타격 지점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이 더 소요돼 투수들의 공에 타이밍을 맞추는데 어려움이 발생한다. 시범경기까지는 빠른 배트 스피드 등으로 대처할 수 있었으나 1군 투수들의 공에 대응하기엔 타이밍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5월부터 손의 위치를 얼굴 높이로 내렸다. 손을 내린 것은 테이크백을 간결하게 수정하려는 목적이다. 일반적으로 테이크백을 줄이면 불필요한 움직임이 적어져 스윙이 간결해지고 타격 지점까지 가는 시간이 단축돼 정확한 타이밍에 타격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팔꿈치가 몸통에 붙었다. 또한 팔꿈치가 몸통에 붙으면 인아웃 스윙이 가능해진다. 뒷팔을 최대한 몸에 붙여 배트를 돌리는 인아웃 스윙은 몸통 회전속도가 높을수록 효과가 극대화되며 장타 생산에도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겨치는 타구가 많고 강한 코어 회전이 장점인 김도영에게 적합한 해결책이었다.
< 좌 = 2022시즌, 우 = 2023시즌 >
2023시즌엔 손을 어깨높이로 더 내린 뒤 배트는 꼿꼿이 세워 얼굴 앞에 배치했다. 아예 처음부터 낮은 위치에서 공을 치는 방식으로 폼을 수정해 좀 더 간결한 스윙을 하기 위함이다. 이 변화는 유효했다. 1년 만에 Whiff%을 10%P나 줄여 스스로 강점이라고 밝힌 컨택 능력이 살아났다.
컨택이 늘면서 자신감이 붙어 자신만의 존을 확실히 설정했다. 그 결과 24.4%였던 삼진%을 16.1%로 낮춰 0.35에 그쳤던 BB/K도 리그 평균 이상으로 올렸다. 특히 데뷔 시즌 32.5%에 달했던 Chase%을 리그 평균 수준까지 낮추는 등 선구도 점차 발전해 나갔다.
< 표1 = 김도영의 연도별 삼진%, 볼넷%, 볼넷/삼진 비율, 헛스윙%, 컨택% >
하늘에서 찾은 OPS : 공을 띄워야 한다
2010년대 초반 메이저리그에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조니 고메스, 조쉬 레딕 등 뜬공형 타자들을 영입해 2년 연속 아메리칸리그 서부 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2015년에는 스탯캐스트도 도입되면서 본격적으로 뜬공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결과 땅볼의 가치가 크게 떨어져 이른바 ‘뜬공 혁명’이 시작됐다. 실제로 2018시즌 메이저리그 타구 구종별 결과 비율에서 땅볼과 외야 뜬공의 안타 비율은 각각 24%와 26%로 뜬공이 근소하게 높았고 장타 비율은 2%와 22%로 큰 차이를 나타냈다.
뜬공의 유행은 클린트 허들 前 피츠버그 파이리츠 감독의 ‘OPS는 하늘에서 찾아야 한다(Your OPS is in the air)’는 말에서 잘 드러난다. 이러한 뜬공 혁명의 대표적인 수혜자로는 앤서니 렌던을 꼽을 수 있다. 2016시즌 렌던은 전년 대비 타구 각도가 약 7도 상승하면서 20홈런을 때려냈고 올해의 재기상도 받았다. 렌던 외에도 많은 메이저리그 타자가 혁명에 동참하면서 더 이상 뜬공은 혁명이 아니라 대세라고 할 수 있다.
이범호 감독 역시 뜬공을 통해 김도영을 장타자로 육성하고자 했다. 실제로 김도영은 신인 시절부터 잠실야구장 상단으로 대형 홈런을 날릴 정도로 장타자로서 잠재력이 있었다. 이에 이 감독은 김도영에게 뜬공과 장타를 꾸준히 강조했고 김도영도 ‘중장거리 타자’로 본인의 이미지를 바꿔나갔다. 그렇다면 무엇이 김도영을 변화시켰을까?
< 표2 = 김도영의 연도별 타구 분포 >
우선 김도영은 2022시즌 중반부터 타격 시 손을 낮게 내렸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컨택 능력의 향상 외에도 장타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최근 메이저리그 선수들도 장타를 위해 손의 위치를 낮추고 있다. 대표적으로 저스틴 터너는 뉴욕 메츠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손이 어깨~머리 높이에 있었다. 그러나 LA 다저스 이적 후 손을 어깨 밑으로 내리고 어퍼 스윙으로 스윙을 교정하면서 각성해 다저스의 주전 3루수로 등극했다. 손을 내린 것은 신체의 움직임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아래에서 위를 향하는 어퍼스윙의 각도를 형성하기 위함이다. 테드 윌리엄스 역시 <타격의 과학>에서 살짝 올려 치는 어퍼 스윙은 투구 각도와 거의 일치해 컨택 면적이 넓어서 가장 이상적인 스윙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부상이 겹치면서 2023시즌까지는 성과가 가시적이지 않았다.
< 좌 = 2022시즌, 우 = 2024시즌 >
2024시즌 김도영은 뜬공% 57.7%를 기록했다. 발사각도를 올리기 위한 시도를 따로 하지 않았으나 이범호 감독은 턴 동작을 변화로 언급했다. 이 감독에 따르면 김도영은 타격 시 뒷발이 끝까지 돌지 않아 몸을 지탱하지 못해 스윙도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실제로 2022시즌의 김도영은 스윙 시 뒷발이 끝까지 돌지 않았다.
반면 2024시즌에는 뒷발이 끝까지 돌아 뒤꿈치가 지면과 거의 수직을 이뤘고 뒷발도 단단히 고정됐다. 타자들은 앞발을 단단히 디딘 뒤 축으로 삼아 회전하며 파워를 내는데 뒷발이 고정되지 않으면 몸을 지탱하지 못해 힘을 제대로 실을 수 없다. 체중을 지탱하던 뒷발이 돌면서 뒤꿈치를 들어 올리면 몸이 회전하기 편한 상태를 유지된다. 뒷발을 끝까지 돌려서 단단히 세우면 지지대 역할을 수행하기에 몸통 회전과 체중 이동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김도영도 평소 몸의 회전을 강조하는 이 감독의 지도에 따라 스프링캠프에서 뒷발과 허리를 끝까지 돌릴 수 있도록 연습했다. 2022시즌부터 손을 내려 스윙적인 매커니즘은 거의 완성한 김도영은 턴 동작을 수정하면서 본래 강점이었던 몸통 회전이 좋아졌다. 그 덕에 발사각도를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레 공이 뜨기 시작했다.
꾸준한 웨이트 트레이닝도 한몫했다. 김도영은 재활 기간 선배 나성범의 도움을 받아 근육량을 늘렸다. 근육량을 늘리면서 본래도 힘이 좋았고 배트 스피드가 빨랐던 김도영은 벌크업을 통해 자신의 강점을 더 강화했다. 앞선 시즌과 달리 부상 없이 주전으로서 꾸준히 경기에 출장한 것도 긍정 요인이다.
< 2024시즌 8월 17일 잠실야구장 중앙 담장을 넘기는 비거리 135m의 홈런 >
그 결과 외야로 나가는 뜬공의 비율이 전년 대비 10.8% 증가했고 자연스레 장타력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특히 김도영이 때려낸 38개 홈런 중 19개가 잠실야구장 중앙 담장도 넘길 수 있는 125m 이상의 비거리를 기록했다. 이범호 감독이 원했던 대로 공을 띄우기만 한다면 잠실야구장도 쉽게 넘길 수 있는 타자가 된 것이다. 2024년은 김도영에게서 장타자의 자질을 발견한 이범호 감독의 안목과 그에 부응한 김도영의 재능이 빛을 본 한 해가 됐다.
마치며
데뷔 3년 만에 리그 최고의 타자가 된 김도영의 나이는 불과 만 21세다. 같은 나이의 이승엽, 김현수, 김태균 등의 전설들보다도 뛰어난 성적을 올려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보여줬다. 또한 KIA의 주전 야수 중에선 가장 어린 나이임에도 부상과 부진 없이 팀을 통합 우승으로 이끈 1등 공신이기도 하다. 지난 2시즌의 시련을 딛고 최고의 별이 된 ‘The Young King’ 김도영은 이제 프리미어 12만을 남겨두고 있다. 과연 김도영이 국제대회에서는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또 앞으로 어디까지 비상할 수 있을지 지켜보도록 하자.
참고 = 스탯티즈, 네이버 야구 중계, TVING 야구 중계, Fangraphs
야구공작소 조승화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장호재,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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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차에 mvp라니 대단하네요(아직확정은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