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 = 토론토 블루제이스 유튜브 >
브루스 수터는 1986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와의 인터뷰에서 “스플리터는 내 커리어를 뒤바꿨으며, 스플리터가 없었다면 펜실베이니아로 돌아가 인쇄소에서 일하고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잭 모리스, 마이크 스캇, 오렐 허샤이저 등 많은 투수가 스플리터를 구사했다. 별칭도 pitch of the ‘80s(80년대의 구종)였다.
하지만 스플리터의 전성기에 제동을 건 것은 다름 아닌 부상이었다. 스플리터를 던진 투수들이 대부분 부상으로 쓰러져 커리어를 마감했다. 이때부터 스플리터에는 팔꿈치에 많은 무리를 가해 투수에게 부상을 유발한다는 인식이 쓰였다. 일부 구단에서는 스플리터 사용을 금지했고, 그렇게 메이저리그에서 잊혀갔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2024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MLB.com의 분석가인 마이크 페트리엘로는 “이번 시즌에 유행할 구종은 스플리터와 싱커다”는 내용의 글을 게시했다.
2023시즌 단 1.6%에 불과했던 스플리터의 구사율은 2024시즌에 3.0%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페트리엘로의 예측은 적중했고 스플리터는 2024시즌의 트렌드로 떠올랐다. 사람들에게서 잊힌 스플리터는 어떻게 수면 위로 올라왔을까?
스플리터는 부상을 유발하지 않는다?
드라이브라인의 피칭 디렉터인 크리스 랭인은 2022년 본인의 트위터(현재는 X)에 “스플리터가 부상 위험 때문에 금기시됐지만, 이에 대한 기초 연구는 부족하다. 스플리터는 투수에게 좋은 구종이다”라는 내용의 트윗을 게시했다.
드라이브라인에서 구종과 팔꿈치 부상 간의 관계를 분석했지만, 스플리터가 타 구종보다 팔꿈치 부상의 위험성이 높다는 내용은 없었다.
theScore는 토미 존 수술을 받은 861명의 투수 중 통산 스플리터 구사율이 5% 이상인 투수는 전체의 8.2%인 71명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토미 존 수술을 받은 투수들이 가장 많이 구사한 구종은 포심 패스트볼(783명)과 슬라이더(623명)였다.
1990년대부터 스플리터가 사라진 이유는 부상 유발이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나오지 않았다.
변형 스플리터의 등장
완벽한 스플리터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중지와 검지를 넓게 벌려야 한다.1 손가락의 유연성은 스플리터의 위력을 배가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손가락을 넓게 벌릴수록 회전수가 감소해 너클볼과 유사한 낙차가 큰 무브먼트를 가진 저회전 변화구로 변모한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그립에는 부상의 위험이 존재한다. 트레드 애슬레틱의 퍼포먼스 스페셜리스트인 타일러 좀브로는 “손가락을 넓게 벌릴수록 팔꿈치 굴곡근2에 부하를 주면서 팔꿈치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손가락을 넓게 벌리지 않는 변형 스플리터가 등장했다. 그 중 포쉬(fosh)라고도 불리는 그립은 손가락을 크게 벌리지 않아 부담이 없다. 포쉬를 사용하는 케빈 가우스먼은 약지와 중지를 사용해 패스트볼처럼 투구한다. 그는 “공이 가운뎃손가락에서 회전하도록 두면 좌완 투수의 슬라이더처럼 회전한다”라고 말했다.
< 케빈 가우스먼의 스플리터 그립 & 투구 >
스플리터와 같은 그립, 무브먼트를 갖고 있지만 95마일 이상의 구속을 가진 스플링커(splinker)도 존재한다. 스플링커는 싱커와 스플리터가 합쳐진 변형 스플리터이며 조안 듀란, 폴 스킨스 등이 주로 구사하고 있다.
< 조안 듀란의 스플리터 그립 & 투구 >
로우 암 슬롯, Supination 유형 투수의 반대 손 타자 상대 구종으로 활용
투수의 암 슬롯은 낮아지고 있다. 랭인은 스플리터를 구사해야 하는 유형으로 낮은 팔 각도를 가진 선수, Supination 유형 투수를 지목했다.
Supination과 Pronation이란?
투수들의 피칭 스타일은 Supination(외전)과 Pronation(내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Supination 유형은 투구 시 엄지손가락이 위, 손바닥은 안쪽을 향한다. 패스트볼을 투구하면 공은 투수의 글러브 쪽으로 움직인다. Supination 유형 투수는 슬라이더와 커브와 같은 브레이킹 볼, 커터와 같이 글러브 방향으로 향하는 구종을 구사하는 데 유리하다.
반면 Pronation 유형은 투구 시 엄지손가락은 아래를 향하고 손바닥은 바깥쪽으로 향한다. 패스트볼을 투구하면 공은 투수의 팔 쪽으로 움직이게 된다. Pronation 유형 투수는 싱커, 체인지업과 같은 팔 방향으로 궤적을 그리는 구종 구사에 유리하다.
< Pronation, Supination 구분 >
투수들이 반대 손 타자를 상대할 때 대표적으로 사용하는 구종은 체인지업이다. 대부분의 투수는 Supination 유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Supination 유형 투수들은 반대 손 타자를 상대할 수 있는 체인지업 완성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Supination 유형 투수들은 스플리터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스플리터는 Pronation, Supination에 관계없이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 라이언은 낮은 암 슬롯과 Supination 유형을 가진 투수다. 2022시즌을 마친 라이언은 새로운 변화구를 장착하길 원했고, 팀 동료인 케일럽 실바, 그리핀 잭스와 함께 Driveline에 방문했다. 라이언은 일주일 동안 드라이브라인에서 스위퍼와 스플리터를 배웠다. 그는 처음에 부상 위험 때문에 스플리터를 배우기 주저했었다고 말했다. 랭인은 스플리터가 라이언을 3~4선발에서 1선발 투수로 만들어줄 수 있다며 끝없이 설득했다. 고심 끝에 라이언은 수긍했고, 이는 신의 한 수가 됐다.
< 조 라이언 연도별 구종 구사율 변화 (2021~2024) >
스플리터와 스위퍼를 추가한 라이언의 2023시즌 성적은 2022시즌에 비해 좋지 못했다. 다만 스플리터는 직전 시즌 구사했던 체인지업에 비해 좋은 성적을 보였다. 2024시즌에는 2023시즌에 비해 스플리터 구사율은 감소했지만, 훨씬 더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 조 라이언 스플리터 투구 >
< 조 라이언 체인지업, 스플리터 성적 (2022~2024) >
타자를 압도할 수 있는 구종
아래는 2024시즌3 MLB 구종 구사율과 피안타율 등을 나타낸 표다. 스플리터는 모든 구종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 MLB 2024시즌 구종별 성적4) >
스플리터는 같은 손 타자를 상대함에 있어서도 전혀 손색이 없는 구종이다. 좌타, 우타 상대로 모두 좋은 성적을 보여준다.
투수는 타자와의 수싸움에서 여러 가지 선택지를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다.
마치며
체인지업의 구사율은 매년 감소하고 있다. 반면 스플리터의 구사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두 구종 간의 구사율 격차가 좁혀지고 있지만 아직 스플리터를 활용하는 투수는 많지 않다.
그 이유는 부상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대중적인 관념과 구종 추가의 어려움이다. 앞서 설명했듯 스플리터를 많이 던질수록 부상 위험이 다는 연구 결과는 없다.
< 체인지업, 스플리터 구사율 변화 (2021~2024) >
문제는 구종 추가의 어려움이다. 투수가 구종 레퍼토리를 개선하려면 많은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던지는 방법이 같은 구종은 연마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일례로 스위퍼가 있다. 스위퍼는 슬라이더와 던지는 방법은 똑같지만 그립이 다르며, 슬라이더에 비해 글러브 방향으로 더 많이 이동한다. 스위퍼는 슬라이더보다 좋은 성적을 보여줘 왔다. Supination 유형 투수들은 기존에 투구하던 슬라이더에서 그립만 다를 뿐 던지는 방법이 같은 스위퍼를 추가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 슬라이더 & 스위퍼 성적, 구사율 변화 >
스플리터의 구사율이 많이 증가하지 않은 이유는 투수들이 기존에 구사하던 슬라이더를 스위퍼로 교체하거나 개선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스플리터는 체인지업보다 좋은 성적을 매년 보여주고 있다. 체인지업에서 변형된 스플리터도 등장하며 체인지업과 스플리터의 경계선이 무너지는 모습도 관찰된다.
현재 스플리터는 NPB와 KBO에서 많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메이저리그에 다시 돌아온 스플리터가 앞으로의 투구 트렌드를 바꿀 수 있을지 지켜보도록 하자.
참고 = Baseball Savant, FanGraphs, MLB, Yahoo Sports, theScore
야구공작소 김승곤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조광은, 전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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