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모델의 저주

< 사진 출처 = Gamerant >

1988년부터 미국의 비디오 게임 제작사인 일렉트로닉 아츠(EA)에서 매년 출시하고 있는 미식축구 게임인 매든 NFL 시리즈(매든). 여기에는 ‘매든의 저주’라고 불리는 유명한 저주가 있다. 매든 표지를 장식하는 모델로 등장한 선수들이 그해 부진하거나 부상에 시달린다는 내용의 저주이다.

EA는 매든의 얼굴이라고 볼 수 있는 표지 모델을 선정하는 데 있어 심혈을 기울였다. 과거 좋은 성적을 기록했거나 인기가 많은 선수를 주로 표지 모델로 사용했다. 미식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 들어봤을 톰 브래디, 패트릭 마홈스 등이 그 예시다.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NFL에서도 관련 내용(클릭)을 다루는 등 실존하는 저주로 받아들여지는 매든의 저주. 매든의 MLB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MLB 더쇼 시리즈(더쇼)에도 저주가 존재하는지 알아보자.

< 사진 출처 = Matt Rogers X >

 

매든의 저주

EA가 매든 표지에 선수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99년이었다. 하여 저주는 1999년부터 시작된다. 2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매든 특성상 저주의 피해자가 상당수 존재한다.

가장 먼저 매든 표지 모델로 발탁된 선수는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러닝백 개리슨 허스트였다. 그는 직전 시즌 전 경기에 출장해 터치다운 7개를 기록, 프로볼(올스타)에 선정되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당해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비골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으며 이후 두 시즌을 결장했다. 이것이 저주의 시작이었다.

이듬해 표지를 장식한 그린베이 패커스의 러닝백 도지 레븐스 역시 직전 시즌 9개의 터치다운을 기록했다. 하지만 표지 모델이 된 00~01시즌 부상과 함께 부진의 늪에 빠지며 2004년 은퇴하기 전까지 5년간 단 11개의 터치다운만은 더 수확하는 데 그치며 저주의 또 다른 희생양이 되었다.

이후 매든의 표지를 장식한 쿼터백 마이클 빅(애틀랜타 팰컨스), 라인배커 레이 루이스(볼티모어 레이븐스), 트로이 폴라말루(피츠버그 스틸러스), 드류 브리스(뉴올리언스 세인츠) 등이 부진하거나 부상으로 신음했다.

미국의 언론사 CBS가 1999년부터 2022년까지 24명의 표지 모델을 나열하며 저주 여부를 판단한 글이 있다. CBS는 24명 중 14.5명1(약 60%)이 저주를 받았다고 서술한 바 있다.(클릭)

< 사진 출처 = MLB The Show >

 

더쇼의 저주

더쇼는 첫 발매가 2006년이었기에 매든에 비해 역사가 짧다. 물론 짧은 역사 속에도 저주의 피해자는 역시 존재한다. 평균적인 선수 생활이 미식축구보다는 긴 야구 특성상 매든처럼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진 않았다. 주관적인 판단이 포함되긴 했지만, 결과부터 말하면 2006년부터 2022년까지 17명 중 확실한 피해자는 3명(약 18%)이다.

< 사진 출처 = Amazon >

< 조 마우어의 성적 변화 >

피해자 5명 중 가장 눈에 띄는 게 조 마우어(미네소타 트윈스)다. 마우어는 유일하게 표지 모델을 두 차례 담당했다. 그 여파였을까. 저주의 수위가 매우 강했다. MVP를 수상했던 2009년에 비해 2010년, 2011년을 거치면서 타격 성적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포수로서의 가치도 떨어졌다. 2011년, 3년 연속으로 차지했던 포수 골드글러브 수상에도 실패했다. 저주가 실존한다면, 가장 큰 희생양은 마우어일 것이다.

< 사진 출처 = Amazon >

< 야시엘 푸이그의 성적 변화 >

야시엘 푸이그(LA 다저스)는 표지 모델로 발탁된 2015년 79경기 출장과 홈런 11개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또한 항상 지적받던 불성실한 태도와 끊임없는 사건사고가 다시금 수면 위로 오르며 경기장 안팎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후 2019년까지 계속된 구설수와 태업성 플레이를 일삼았다. 결국 한창 전성기를 구가할 나이에 빅리그에서 사라졌다. 그가 야구에만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 사진 출처 = Amazon >

< 하비에르 바에즈의 성적 변화 >

더쇼20의 하비에르 바에즈(디트로이트 타이거즈)는 19시즌 굵직한 성과를 바탕으로 더쇼20 표지를 장식했다. 하지만 2020년 타율 2할을 간신히 넘겼다. 한 시즌 동안 볼넷을 단 7개만 기록하며 출루율도 0.238까지 떨어졌다. 직전 두 시즌 동안 평균 0.544였던 장타율도 0.360까지 급락하며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원래도 정교한 타격과 좋은 선구안으로 승부하는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그의 단점은 최대치까지 부각됐다. 거짓말 같았던 추락인 만큼 합리적인 이유만으로 설명하긴 다소 부족하고, 또 아쉽다.

 

표지 모델은 왜 부진할까?

미식축구라는 종목의 특성상 매든은 많은 저주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반면 더쇼의 경우 피해자의 수가 적었다. 하지만 전혀 연관성이 없다고 할 순 없는 것이 사실이다. 확실한 피해자 3명 이외에도 많은 선수들이 비슷한 성적 혹은 ‘저주’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소폭 하락한 성적을 기록했다. 표지 모델 발탁 이후 더 좋은 모습을 보인 선수는 2006년의 데이비드 오티즈(보스턴 레드삭스)와 2007년의 데이비드 라이트(뉴욕 메츠) 둘 뿐이었다.

표지 모델로 선정됐다는 것은 직전 시즌 좋은 성적을 기록했거나 과거부터 꾸준히 좋은 성적을 기록해 큰 인기를 얻었다는 반증이다. 그런데 표지 모델로 발탁된 이후 성적이 하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포지션 특성을 들 수 있다. 매든의 경우 러닝백 포지션의 선수가 표지 모델로 선정된 건수가 7건에 달한다. 크게 분류해도 공격 팀 11명, 수비 팀 11명 총 22개의 포지션이 존재하는 종목에서 단일 포지션이 역대 표지 모델의 29%(7명/24명)를 차지했다. 다만 빠른 스피드가 생명인 러닝백 특성상 사이즈가 작다. 그런데 300파운드가 넘는 수비 팀 라인맨들에게 경기당 수십 차례 태클 당하기 일쑤이다. 그래서인지 러닝백은 미식축구의 모든 포지션 중에서 선수 생명이 가장 짧다. 이를 방증하듯 CBS가 저주받았다고 판단한 14.5명 중 러닝백 7명 모두가 포함 돼있다.

더쇼를 살펴보자. 두 차례의 저주를 받은 조 마우어는 포수였다. 미식축구의 러닝백과 마찬가지로 야구에서 가장 위험한 포지션은 포수가 아닐까 싶다. 경기 내내 무거운 장비를 착용하고 쪼그려 앉아 있어야 하고, 그 어떤 포지션보다 파울 타구에 맞을 가능성도 높다. 그리고 주자와의 충돌로 인해 뇌진탕을 겪기도 정말 쉬운 포지션임에 틀림없다. 타 포지션에 비해 선수 생활이 짧은 것이 사실이다.

안정적이지 못한 플레이스타일도 표지 모델 부진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비에르 바에즈는 안정적인 타율과 출루율로 승부를 보는 선수가 아니다. 통산 출루율이 0.297에 그칠 정도로 선구안이 없는 수준이다. 극단적인 타격 패턴과 함께 빠른 발, 뛰어난 수비, 순간적인 센스는 발군이었다. 하지만 디트로이트로 이적한 이후 장점은 모두 사라지고 단점이었던 극단적인 타격 패턴과 끔찍한 선구안이 극대화되면서 없느니만 못한 수준이 돼버렸다.

야시엘 푸이그 역시 안정적이지 못한 플레이스타일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다만 푸이그는 타격이 아닌 수비와 주루 측면에서 그렇다. 푸이그 특유의 다혈질적인 모습과 열정 넘치는 플레이가 수비와 주루에서는 독이 되기 일쑤였다. 주루 상황에서도 이러한 측면이 잘 나타났다. 오버런도 잦았고, 상황판단이 늦어 마구 뛰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표지 모델로 선정되면 저주를 겪을 가능성이 존재하는 가운데 이번 시즌 더쇼24의 표지 모델이 된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는 어떻게 될까. 위험한 포지션인 포수도 아니고 안정적이지 못한 플레이스타일을 보이는 선수도 아니다. 과연 그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참고 = Baseball Reference, Operation Sports, CBS Sports

야구공작소 김범진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도상현, 전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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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4.5명인 이유는 2010년의 표지 모델 2명 중 1명만 저주를 겪었기 때문에 0.5명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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