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 데 라 크루즈는 뜨거웠던 여름을 재현할 수 있을까?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이동헌 >

키가 2미터에 가까운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빠른 발과 강한 어깨를 보유하고 있다면 어떨까. 여기에 파워를 가진 스위치히터라면? 신시내티 레즈 소속 엘리 데 라 크루즈는 이러한 특징을 다 가진 유니콘 같은 선수다.

데 라 크루즈의 여름은 매우 뜨거웠다. 데뷔와 함께 빠른 발과 파워로 그라운드를 휘저었다. 하지만 올스타 휴식기 이후 슬럼프에 빠졌다. 전반기 활약이 사라진 채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첫 시즌의 아쉬움을 뒤로한 데 라 크루즈는 절치부심으로 새 시즌을 맞는다. 뜨거웠던 타격감을 다시 찾기 위해 데 라 크루즈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다재다능한 슈퍼루키

데 라 크루즈는 데뷔와 동시에 MLB를 놀라게 했다. 재능있는 루키는 끊임없이 등장하지만, 데 라 크루즈가 특히 눈에 띈 점은 특별한 툴을 많이 가졌기 때문이다.

먼저 데 라 크루즈는 리그 최고의 어깨를 지녔다. 스탯캐스트에는 야수의 평균 송구 속도를 나타내는 Arm Strength 지표가 있다. 데 라 크루즈의 Arm Strength는 95.9mph로 리그 전체 8위, 유격수 전체 1위다.

강한 어깨에 더해 빠른 발 역시 리그에서 손꼽힌다. 데 라 크루즈의 스프린트 스피드는 초당 30.5ft로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바비 위트 주니어와 함께 리그 1위를 기록했다. 1초당 약 9.3m를 달릴 정도로 폭발적인 속력을 가진 것이다. 빠른 발을 바탕으로 데 라 크루즈는 모든 베이스를 휘젓는다. 2023시즌 단 98경기만 뛰고도 리그 9위의 기록인 35개의 도루를 성공했다. 데뷔 후 한 달 만에 메이저리그 통산 2번째 ‘한 이닝 3도루’라는 대기록을 쓰기도 했다.

타격에선 강한 타구를 생산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지난 시즌 강한 타구비율은 45.9%로 리그 평균인 39.2%보다 6%p 높았다. 평균 타구 속도는 91.2mph로 리그 상위 20% 권이지만, 최고 타구 속도가 119.2mph에 달했다.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 지안카를로 스탠튼에 이어 리그 3위를 기록했다.

이렇듯 데 라 크루즈가 가진 재능은 빅리그 진입과 동시에 훌륭한 수치로 나타났다. 이러한 재능을 활용해 전반기 wRC+ 133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흐름이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후반기 데 라 크루즈는 전반기와 다른 사람이었다.

무너진 후반기

< 전, 후반기 타격 성적 비교 >

뜨거운 전반기를 보냈지만, 올스타 휴식기 이후 데 라 크루즈의 성적은 급격히 내려갔다. 볼넷 비율이 3%P 정도 늘었으나 삼진 비율도 크게 증가하며 36%를 기록했다. 타격 지표는 모두 하락했다. 타율은 2할을 못 넘겼고 장타율은 0.355에 그쳤다. wRC+는 70 넘게 떨어지며 리그 상위 타자에서 하위 타자가 돼버렸다.

힘이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타구 속도는 후반기 평균 91.7mph로 전반기 평균인 90.2mph보다 오히려 증가했다. 강한 타구 비율도 44.9%로 전반기의 47.7%보다 소폭 하락하긴 했지만 치명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 전, 후반기 컨택 성적 비교 >

문제는 컨택에 있었다. 존 내부와 외부를 가리지 않고 공을 맞힌 비율이 줄었다. 스윙 비율 역시 줄어들었다. 존에 들어오는 공은 배트를 내야 하지만 오히려 스윙이 줄며 더 많은 스트라이크를 허용했다. 컨택 비율이 떨어졌다고 타격 성적이 이 정도로 하락하기는 쉽지 않다고 판단해 필자는 조금 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봤다. 그리고 컨택 및 스윙과 관련된 또 다른 지표들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부진의 원인

< 크루즈의 2023시즌 패스트볼 상대 스윙 스탯 >

먼저, 데 라 크루즈는 패스트볼을 상대할 때 고전했다. 패스트볼 상대 스윙 비율(Swing%)은 후반기가 시작되는 7월 고점을 찍은 후 하락했다. 후반기 전체 구종 상대 스윙 비율은 44.2%였지만, 8월과 9월 패스트볼 상대 스윙 비율은 각각 41.2%, 38.4%로 패스트볼을 상대할 땐 더 소극적으로 휘둘렀다. 이 와중에 헛스윙 비율(Swing&Miss%)은 계속해서 상승했다. 시간이 갈수록 더 적은 스윙을 했지만, 헛스윙은 늘어나 버린 것이다.

헛스윙 문제는 존 내부와 외부를 가리지 않고 큰 문제였다. 존 내부 헛스윙 비율(In Zone Swing&Miss%)과 존 외부 헛스윙 비율(Chase Miss%) 모두 시간이 갈수록 증가했다. 두 수치 모두 6월에 비해 9월에 2배 이상을 기록했다. 특히, 존 외부 패스트볼에 휘두른 스윙의 약 43%가 헛스윙일 정도로 고전했다.

< 크루즈의 2023시즌 Swing Take >

Swing Take에서도 이러한 점을 알 수 있다. 데 라 크루즈는 존 한가운데로 꽂히는 공을 지켜보며 많은 손해를 봤다. 보라색 부분인 Heart 존에선 공을 지켜본 Take 비율이 34%로 리그 평균 대비 7%P나 높았다. 한가운데로 들어오는 공은 지켜보는 대신 휘둘러야 하지만, 데 라 크루즈는 필요 이상으로 지켜본 것이다. Heart 존과 다르게 스윙을 참아야 하는 Chase 존에선 Swing 비율이 리그 평균보다 5%P 높았고, 득점 가치 -9를 기록하며 큰 손해를 봤다. 휘둘러야 할 때는 휘두르지 않고, 오히려 휘두르지 않아야 할 때 휘둘렀다. 그리고 이것이 실제 손해로 이어졌다.

< 크루즈의 2023시즌 상대 구종별 wOBA >

부진의 또 다른 원인에는 미흡한 변화구 대처도 있다. 패스트볼을 상대할 때만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특히, 브레이킹볼에 많이 약했다. 데 라 크루즈의 2023시즌 브레이킹볼 상대 비율은 34.6%다. 그리고 시즌을 통틀어 데 라 크루즈의 브레이킹볼 상대 wOBA는 0.325를 넘긴 적이 없었다. 오히려 꾸준히 하락했다. 헛스윙 비율도 36%를 기록했다. 상대하기 힘든 공을 많이 만나면서 이에 철저히 공략당한 것이다.

종합적으로 후반기 데 라 크루즈는 스트라이크 존 운영이 무너졌다. 스윙은 줄었고 모든 구종을 상대로 헛스윙이 많았다. 휘둘러야 할 공은 휘두르지 않거나 맞추지 못했다. 참아야 할 공에는 참지 못하며 헛스윙을 추가했다. 이 모든 점이 맞물리며 성적이 바닥을 친 것이다. Swing Take 지표에서 Chase존의 Take 득점 가치가 +15인 점과 후반기 볼넷 비율이 리그 평균인 8.6%보다 높은 9.2%를 기록한 점을 보면 공을 보는 능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존을 걸치는 부분과 존 내부로 오는 공을 대처하는 판단력이다. 데 라 크루즈가 반등하기 위해선 이 부분의 보강이 필수다. 거를 공은 거르고 쳐야 할 공은 칠 수 있는 판단력을 갖춰야 한다.

데 라 크루즈는 모든 구종을 상대로 고전했다. 특히 가장 많은 비율로 상대하는 패스트볼 대처가 무너진 점이 큰 원인으로 보인다.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패스트볼이다. 더 빠르고, 더 무브먼트가 좋은 패스트볼에 데라 크루즈는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결국 경험이 필요하다. 더 많은 패스트볼을 보며 자신만의 판단력을 갖춰야 한다. 데라 크루즈의 반등은 이 패스트볼에 대한 적응을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마치며

데 라 크루즈는 본인이 어떤 부분에 강하고 약한지를 보여줬다. 상대 팀들은 데 라 크루즈의 약점을 공략했고 실제로 효과를 봤다. 데 라 크루즈 입장에선 다시 뜨거운 타격감을 보여주기 위해 약점을 극복해야 한다.

지난 시즌의 부진을 뒤로 하고 데 라 크루즈는 이번 시즌을 주전 유격수로 시작한다. 겨울 내내 반등을 노린 데 라 크루즈의 스프링 트레이닝 성적은 타율 0.280, OPS 0.919 2홈런 7타점으로 신시내티에 기대감을 안겨줬다. 약점을 극복하고 스프링 트레이닝의 기세를 정규 시즌에서도 이어간다면 데 라 크루즈는 메이저리그를 다시 놀라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참조 = BaseballSavant, Fangraphs, MLB.com

야구공작소 문정현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이재성,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이동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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