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진욱, 미완의 원석에서 이제는 믿을맨으로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희진 >

5년. 류진욱이 지명 후 1군에서 처음 공을 뿌릴 때까지 걸린 시간이다. 그는 2015 KBO 신인드래프트 2차 2라운드(전체 21번)로 NC 다이노스에 지명받았다. 2016년과 2018년 두 번의 팔꿈치 수술을 했고, 군 복무를 포함해 재활에만 4년 가까운 시간을 쏟았다. 한 인터뷰에서 류진욱은 “입단 동기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잘하고, 신인 선수들은 매년 들어오는데 나는 1군 데뷔도 못 하고 있었다. 정말 화가 나는데 풀 데도 없더라”라며 초조한 모습을 드러냈다. (링크)

그리고 2020년 확장 엔트리가 적용된 9월 처음으로 1군 콜업이 됐다. 3경기, 3이닝을 던졌다. 당연히 한국시리즈 엔트리엔 들지 못했고 팀의 창단 첫 우승을 멀리서 지켜봐야만 했다. 투수가 서 있어야 할 마운드로 돌아왔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한 해였다.

이듬해(2021년) 1군 44경기에 등판해 건강을 증명하면서 점점 중용되기 시작했다. 올해는 커리어 처음으로 70경기에 출장해, 1승 4패 22홀드, ERA 2.15를 기록하며 리그 정상급의 불펜투수로 군림했다. 이용찬, 김영규와 더불어 안정적인 불펜진을 구축했다. 이는 NC의 3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과 시즌 내내 이어진 치열한 순위 경쟁에 큰 힘이 됐다.

두 번의 긴 재활을 기다려 준 NC에 보답하듯 류진욱은 시즌에 이어 포스트시즌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공을 뿌렸다. 류진욱은 어떻게 리그 정상급의 셋업맨으로 올라설 수 있었을까.

 

빠르게, 더 빠르게

류진욱은 제구보다는 구위에 강점이 있는 투수다. 189cm의 장신인 그는 고등학생 시절에 체중이 80kg 정도밖에 나가지 않는 마른 체형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최고 구속 144km/h를 기록하고 부산고 에이스로 활약하며 롯데의 1차 지명 후보에 거론되기도 했다.

프로에서는 자신의 강점을 잘 알고 이를 활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해 88kg 정도 체중이었던 그는 몸을 키우고 살을 찌워 올 시즌에는 94~95kg을 유지하고 있다고 본인이 밝혔다. (링크) 꾸준히 근육량을 늘린 결과 구속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1군 무대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2021년에도 그의 직구는 빨랐다. 2021년 직구 평균 구속은 리그 평균을 웃도는 144.7km/h를 기록했다. 이듬해 평균 146.7km/h를 기록하더니 올해는 최고 구속 152km/h를 기록하며 스탯티즈 기준 평균 147.8km/h에 달하는 빠른 공을 뿌리고 있다. 직구뿐만 아니라 커터와 스플리터도 140km/h에 육박할 정도로 구속을 올렸다.

구속이 빨라지자 자신감이 생겼다. 삼진이 많아졌고 장타 억제가 효과적으로 됐다. 피홈런은 단 하나뿐이었고 내야에 갇힌 타구는 60%가 넘을 정도로 외야로 뻗는 타구 자체가 많이 없다. 이는 규정이닝 30퍼센트 이상 던진 투수 중의 최고이자 유일한 수치다.

구속이 빨라지면서 직구의 무브먼트도 좋아졌다. 류진욱의 직구는 우타자 기준 몸쪽으로 휘어들어가 마치 투심과 같은 느낌을 준다. 작년보다 몸쪽으로 약 5cm가량 더 휘었다. 직구가 몸쪽으로 휘어들어 오는 것과 반대로 커터는 바깥쪽으로 휘어나간다. 정반대의 무브먼트를 가진 직구와 커터는 서로를 더욱 빛나게 해주었다.

 

스플리터의 재발견

2021년 시즌 초 류진욱은 직구, 커터, 체인지업 세 가지 구종을 구사했다. 좌타자 상대 무기이자 결정구로는 체인지업을 선택했다. 하지만 류진욱의 체인지업은 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구속이 너무 빨랐다. 직구와 구속 차이가 채 10km/h도 나지 않았을 만큼 체인지업치고 빨랐으며 스트라이크존 아래로 떨어져야 할 공이 떨어지지 않았다. 체인지업으로 유명한 고영표와 비교하면 탄착군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프로 레벨에서 통하지 않는 구종이었다.

    < 2021년 류진욱 체인지업 구사 분포 >

     < 2023년 고영표 체인지업 구사 분포 >

체인지업이 말을 듣지 않자 직구와 커터를 더 활용하려 했지만, 좌타자 몸쪽으로 휘어들어 가는 커터는 우타자를 상대할 때만큼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vs 우타 피 ops 0.667, vs 좌타 피 ops 1.455)

< 2021년 류진욱 좌우 스플릿 >

좌타자 상대에 어려움을 겪던 류진욱은 시즌 중반 스플리터를 추가로 장착했다.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승부를 하기보다 타자의 눈앞에서 빠르게 떨어지는 변화구를 택했다.  체인지업보다 떨어지는 각은 작았지만, 더 빠르게 떨어졌고 보다 안정적인 탄착군을 형성했다. 새로운 무기를 장착한 류진욱은 전반기(22⅔이닝 17볼넷)보다 후반기(20⅔이닝 5볼넷)에 훨씬 안정된 제구를 보이며 이듬해를 기대하게 했다.

2022년 류진욱은 체인지업을 포기했다. 직구, 커터, 스플리터 세 가지 구종만을 던졌다. 하지만 전반기 WHIP 2.17, 평균자책점 6.18로 고질적인 제구불안을 나타내며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여전히 좌타 상대로는 어려움을 겪었고, 우타 상대로도 제구가 흔들렸다. 스플리터 사용에 애를 먹던 류진욱은 9월과 10월 직구와 슬라이더를 더 활용하는 방향으로 돌파구를 찾았지만, 임시방편이었다.

여전히 좌타자 상대로 어려움을 겪는 숙제가 있었다. 이를 안고 2023시즌 준비에 들어갔다. 스플리터를 더 빠르고, 예리하게 만드는 것으로 해답을 찾았다. 한 기사에 따르면 좌우 무브먼트가 예년에 비해 좋아졌고 상하 무브먼트도 미세하지만 증가했다. 강인권 NC 감독은 공이 빨라진 것에 더해 스플리터의 완성도가 좋아져 타자를 더욱 과감하게 승부하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링크)

퀄리티가 좋아진 스플리터는 류진욱에게 큰 무기가 되었다. 좌타자 상대로 이제 커터를 거의 던지지 않고, 직구와 스플리터만으로 승부한다. 그리고 좋은 결과를 끌어냈다. 데뷔 후 처음으로 좌타자 상대 피OPS(0.470)가 우타자 상대 피OPS(0.518)보다 낮았다.

< 연도별 좌타 상대 구종 구사율 >

스플리터는 어느덧 류진욱의 제1 변화구가 되었다. 좌타자 상대 해법이 됨과 동시에 우타자 상대 새로운 무기가 된 것이다. 여전히 직구와 커터를 위주로 우타자를 상대하지만 우타자 상대로도 20% 가까이(19.9%) 스플리터를 구사하며 우타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하나 더 만들었다.

스플리터가 좋아지자 커터도 더욱 빛났다. 타자를 유인할 변화구가 하나 더 있으니 커터를 존 안에 더 많이 집어넣었고 그 결과 타자들의 스윙을 더 끌어냈다. 2021년보다 상하 무브먼트가 줄어든 대신 더 빠르게 좌우로 꺾이는 커터는 장타를 단 하나도 허용하지 으며 효과적으로 타자를 공략했다.

 

마무리

류진욱은 엘리트 코스만 밟아 오진 않았다. 부상도 있었고 부침도 있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항상 긍정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매년 연말마다 긴장했다. 한 살씩 나이가 들 때마다 입지에 대한 불안감이 컸고, 팀에 남아야 할 명분을 제시하지도 못했다.”라고 밝혔다. (링크)

하지만 올해 연말은 예년과 다름이 분명하다. 정규시즌에 이어 포스트시즌에서도 7경기에 출전해 맹활약했다. 앞으로 팀의 대권 도전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연봉 협상 테이블에서 당당할 명분도 충분하다.

이제 풀타임 3년 차인 그에게는 아직 무궁한 가능성이 남아 있다. 매년 성장을 위한 변화를 시도하는 만큼 발전 가능성이 크다. 그는 곧 야구선수로서 전성기 나이대에 돌입한다. 그는 긴 재활을 거름 삼아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재활 중인 선수들에게 힘이 되는 또 한 가지 모범 사례가 될 수 있길 기대한다.

 

참조 = statiz, 2itracking

야구공작소 홍휘주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이재성, 유은호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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