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애리조나에는 캐롤이 울린다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선홍 >

올해 3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는 팀 내 최고 유망주인 코빈 캐롤에게 8년 총액 1억 1,100만 달러가 보장되는(옵션 모두 발동 시 9년 1억 5,400만 달러) 초대형 계약을 안겼다. 캐롤이 지난해 빅리그 로스터에 있었던 시간은 고작 38일. 하지만 애리조나는 그가 팀의 중심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팀의 바람대로 캐롤은 대형 계약 첫해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경기 수는 많지 않았지만, 지난 시즌에도 캐롤은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리고 올해 페이스는 실로 대단하다. 시즌이 반환점을 앞둔 7월 5일 현재 캐롤의 fWAR은 로날드 아쿠나 주니어와 무키 베츠에 이은 NL 3위이며 OPS 또한 0.936로 NL 3위를 기록하고 있다. 2000년 이후 빅리그에서 단일시즌 규정타석을 소화한 22살 이하의 타자는 117명인데, 캐롤의 기록은 이 중 16위에 해당한다.

< 코빈 캐롤 데뷔 이후 성적표 >

 

달라진 패스트볼 대처 능력

캐롤은 드래프트 당시부터 뛰어난 타격 재능으로 관심을 모았고 마이너리그에서도 매년 130 이상의 wRC+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런 캐롤에게도 빅리그 투수들의 공은 쉽지 않았다. 표면적인 성적 우수했지만, 화려했던 겉모습에 비해 속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지난해 타율, 장타율이 각각 0.260, 0.500이었던 것에 비해 xBA(기대 타율), xSLG(기대 장타율)는 0.221, 0.359에 그쳤다. 리그 평균(0.291)을 훨씬 웃돌았던 0.333의 BABIP가 아니었다면 캐롤의 데뷔 시즌이 수월했으리라 장담하기는 힘들다.

이렇게 ‘속이 빈’ 성적을 거둔 이유는 구사율이 57%에 이르렀던 패스트볼을 잘 공략하지 못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해 캐롤의 패스트볼 상대 xBA는 0.175에 그쳤으며 Whiff%(스윙 중 헛스윙 비율)는 29.7%로 패스트볼을 100구 이상 상대한 선수 476명 중 430위에 해당다. 

특히 캐롤은 94마일(약 150km) 이상의 빠른 공에 애를 먹었다. 93마일 이하의 패스트볼에 대해서는 16.7%로 리그 평균(18.6%)보다 낮은 Whiff%를 기록했지만, 94마일 이상 패스트볼 상대로는 34.2%로 급등했다(리그 평균 21.8%)

캐롤은 어떻게 이 약점을 극복했을까? 시즌 후 MLB.COM과의 인터뷰에서, 캐롤은 지면 반력 측정 기구(Force Plate Stuff) 같은 신기술을 이용하기보다는 기본적인 훈련(피칭머신 타격, 선구안 훈련)에 집중했다고 이야기했다. 기본에 충실한 결과는 이번 시즌 그대로 성과로 드러났다. 작년과 달리 올해 캐롤이 가장 강점을 보이는 구종은 바로 패스트볼이다.

< 코빈 캐롤 2023시즌 구종별 성적 >

위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 캐롤은 이번 시즌 패스트볼을 상대로 가장 높은 타율, 장타율, wOBA를 기록 중이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Whiff%의 변화다. 패스트볼 상대 Whiff%가 15.8%로 13.9%P나 감소했다. 94마일 이상 패스트볼을 상대한 Whiff%도 16.1%로 지난해의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패스트볼 상대 헛스윙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레 지난해에 비해 삼진도 감소했다(K% 27% -> 19.5%). 지난 시즌은 삼진의 2/3를 패스트볼에 당했지만(31개 중 21개), 올해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64개 중 31개).

컨택 능력뿐 아니라 타구의 질도 좋아졌다. 패스트볼 상대 100마일 이상 타구의 비율이 27.6%에서 36.8%까지 증가했다. 올해 홈런 17개 중 13개가 패스트볼 상대로 뽑아낸 것이며 패스트볼 xSLG는 0.567로 지난 시즌에 비해 0.240이나 상승했다. 특히 94마일 이상의 패스트볼을 상대로도 좋은 성적을 기록 중이다.

< 코빈 캐롤 94마일 이상 패스트볼 상대 성적 >

패스트볼 공략에 성공하며, 캐롤은 이번 시즌 존 안의 공에 대해서도 대단한 재미를 보고 있다. 베이스볼 서번트는 스트라이크 존을 총 4가지 구역으로 구분한다. Heart(존 중심부), Shadow(존 가장자리), Chase(조금 먼 존), Waste(가장 먼 존)가 바로 그것이다. 지난해 캐롤은 Heart 구역에서 -5의 Run Value(해당 구역에서 얻은 점수라고 간주)를 기록했지만, 이번 시즌에는 +8을 기록하며 해당 부문 리그 19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새로운 프랜차이즈 스타의 탄생?

약점을 완전히 극복한 캐롤은 이제 새로운 역사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바로 신인왕과 MVP 동시 석권이다. 150년 가까이 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차지한 선수는 1975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프레드 린과 2001년 시애틀 매리너스의 스즈키 이치로가 끝이다.

가능성 충분하다. 신인왕 쪽에서는 최근 신시내티 레즈의 엘리 데 라 크루즈가 떠오르고 있지만 크루즈는 이제 막 25경기를 소화하는 데 그쳤다. MVP 부문도 마찬가지다. 맹렬한 페이스의 로날드 아쿠나 주니어와 ‘마의 4할’에 도전하는 루이스 아라에즈가 있지만 캐롤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만약 캐롤이 소속팀 애리조나를 12년 만의 지구 우승으로 이끈다면 오히려 가장 유력한 후보이다.

지난해 재계약 후 디애슬레틱과의 인터뷰에서 캐롤은 애리조나에 대한 애정을 내비쳤으며 팀과의 동행이 길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리고 캐롤과 함께하고 싶은 건 애리조나도 마찬가지다. 과연 그들은 아름다운 동행 속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리그 3위의 팜시스템을 갖춘 애리조나가 배출한 첫 번째 원석, 코빈 캐롤이 이번 시즌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지켜보도록 하자.

 

참고 = Baseball America, Baseball Savant, Fangraphs, MLB.COM, The Athletic

야구공작소 원정현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곽찬현, 오연우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선홍

ⓒ야구공작소. 출처 표기 없는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상업적 사용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Be the first to comment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