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이 합쳐 WAR -1, 83년생 백업포수 4인 이야기


메이저리그에 가고 싶으면 포수를 해라

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구단주인 웨인 셀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주변에 야구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포수를 시켜라. 그래야 하루라도 빨리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지극히 당연한 얘기다. 메이저리그 팀의 25인 로스터에는 12~13명의 야수가 포함되어 있다. 이 중 포수는 최소 두 자리를 차지하며, 팀에 따라서는 세 자리까지 포수로 채우는 경우도 있다. 투수를 제외한 야구의 포지션 수가 8개(지명타자까지 포함하면 9개)라는 점을 생각하면 매우 높은 비율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최근 들어 체력 부담과 부상 위험이 큰 포지션인 포수를 기피하는 경향이 심해지면서, 다른 포지션과 비교했을 때 경쟁률이 상당히 낮아졌다.

1983년생 메이저리거 중에는 유독 좋은 포수가 많다. 지금은 은퇴한 포수 타격왕 조 마우어부터 프레이밍의 달인 러셀 마틴, 2019 워싱턴 우승의 주역 커트 스즈키, 공격형 포수 크리스 아이아네타까지. 이들 네 명이 지금까지의 경력 동안 쌓은 bWAR(레퍼런스 승리기여도)을 합치면 129.2에 달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위 선수들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83년생 포수 네 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 주인공은 제프 매티스, 르네 리베라, 드류 부테라, 바비 윌슨으로, 메이저리그에 가고 싶으면 포수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말을 증명하는 ’25번째 남자’들이다.


네쌍둥이 백업 포수

매티스, 리베라, 부테라, 윌슨은 놀라울 정도로 공통점이 많다. 일단 네 명 모두 우투우타에다가 6피트 언저리의 키를 가지고 있다. 또한 푸에르토리코 출신인 리베라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전부 플로리다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넷 다 통산 타율이 2할대 초반 이하일 정도로 타격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네 명의 통산 조정 타격 득점을 합치면 -400.7점인데(베이스볼 레퍼런스 기준), 일반적으로 10점이 1승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보므로 타격으로만 평균 대비 -40승 정도를 팀에 보탠(?)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티스(15년), 리베라(11년), 부테라(10년), 윌슨(10년)의 메이저리그 경력은 도합 46년에 달한다. 이들이 오랫동안 빅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홈플레이트 뒤에서 보여준 수비력 때문이다. 매티스(95), 리베라(28), 윌슨(23)의 통산 DRS(디펜시브 런 세이브)는 엘리트 수준이다(리베라와 윌슨의 경우 제한된 출장 기회를 감안해야 한다). 네 명 중 유일하게 DRS가 음수인 부테라(-31)는 프레이밍에서 약점을 보이지만, 비상 상황에서 투수로 등판한 적이 6번이나 될 정도로 강한 어깨를 자랑한다.

<83년생 백업 포수 4인 통산 성적>

공격에서 잃은 점수를 수비로 만회한 이들 네 명의 통산 bWAR(레퍼런스 승리기여도) 합은 -0.8이다. WAR 0이 대체선수 수준이라는 것을 상기하면, 이들은 대체선수와 비슷하거나 더 못한 실력으로도 빅리그에서 각각 10년 이상을 살아남은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호르헤 포사다(뉴욕 양키스)나 조 마우어(미네소타 트윈스)와 같은 원클럽맨 포수는 될 수 없었다. 대신에 자신을 필요로 하는 구단을 찾아 끊임없이 떠돌아다녀야 했다.

이들 백업포수 4인방은 프로 경력 내내 주연보다는 조연으로 활약하며, 팀의 투수진을 빛나게 해주는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매티스, 리베라, 부테라, 윌슨 각각에 초점을 맞춰서 길고 지난했던 선수 생활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네 명 중 가장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고 인지도가 높은 제프 매티스부터 시작하자.


‘수비형 포수의 대명사’ 제프 매티스

제프 매티스는 2001년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전체 33순위로 지명되어 애너하임 에인절스(2014년에 LA 에인절스로 개칭)에 입단했다. 당시 매티스의 스카우팅 리포트는 그가 운동 능력이 좋아 어느 포지션이든-심지어 유격수까지-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타격 역시 준수하다는 평가였다. 프로 입단 이후 매티스는 꾸준히 베이스볼 아메리카 선정 유망주 랭킹 100위 안에 들었고, 2005년에 메이저리그 데뷔를 이뤘다. 매티스는 인상적인 프레이밍과 블로킹 능력을 보여 마이크 소시아 당시 에인절스 감독의 총애를 받았는데, 이후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하는 마이크 나폴리와 플레잉타임을 거의 비등하게 나눠 가졌다(나폴리는 매티스와 정반대 스타일의 공격형 포수다).

하지만 매티스의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유망주 시절 운동 능력이 좋다는 평가가 무색하게, 그가 빅리그에서 보여준 모습은 ‘수비 원툴’에 가까웠다. 타율은 매년 1할대에서 2할 초반대를 오갔으며, 홈런은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2010시즌부터는 삼진/볼넷 비율이 5 이상으로 치솟는 등 선구안까지 무너졌다. 2011시즌이 끝나고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트레이드될 때, 매티스의 통산 OPS는 0.557이었다. 2009년 양키스와의 ALCS에서 타/출/장 0.583/0.583/1.000으로 맹활약한 것이 그의 에인절스 시절 하이라이트였다.

팀을 옮긴 후에도 매티스의 타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2012시즌 매티스는 필드에서 49번의 도루시도 중 20번을 저지하며 아메리칸리그 도루저지율 2위에 올랐다(도루저지 10회 이상 포수 중). 이러한 활약 덕분에 그는 2012년 8월 토론토와 연간 150만 달러 규모의 2+1년 연장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2012시즌이 끝난 후 매티스는 12명의 선수가 포함된 대형 트레이드 속에 마이애미 말린스로 팀을 옮기게 된다.

그는 그곳에서도 ‘매티스다운’ 공격력과 수비력을 보여줬는데, 2015시즌부터 J.T. 리얼무토가 본격적으로 빅리그에서 활약하기 시작하며 입지가 급격하게 좁아졌다. 2016년까지 마이애미에서 뛴 매티스는 2017시즌을 앞두고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2년 400만 달러 규모의 FA 계약을 맺는다. 새 팀에서 매티스는 에이스 잭 그레인키의 전담포수로 활약하며 전 사이영상 투수의 부활을 도왔다. 비록 본인의 타격 성적은 그레인키와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2018시즌 이후, 매티스는 텍사스 레인저스와 2년 625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맺으며 늦은 나이에 ‘FA 대박’을 터뜨린다. 하지만 텍사스 팬들의 기대를 받으며 입단한 그는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지역 언론의 ‘욕받이’가 되고 말았는데, OPS 0.433으로 봐줄래야 봐줄 수가 없는 타격 성적을 찍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도루저지율까지 17%로 급감하며 노쇠의 징조를 보였다.

멘도사 라인을 본딴 ‘매티스 라인’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킬 정도로 처참한 타격 실력, 볼을 스트라이크로 둔갑시키는 프레이밍 능력, 대체선수 수준의 WAR을 찍으면서(그의 통산 bWAR은 정확히 0이다) 15년 동안이나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은 생존력까지. 제프 매티스는 본인만의 독보적인 캐릭터를 가진 선수이다. 한 사람의 MLB 팬으로서, 그가 전성기 때의 수비력을 회복해 2021시즌 이후에도 선수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저니맨 중의 저니맨’ 르네 리베라

르네 리베라는 2001년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전체 49순위로 지명되어 시애틀 매리너스에 입단했다. 매티스보다 열여섯 순위 아래긴 했지만, 역시 미래가 밝은 유망주 포수였던 셈이다. 강한 어깨와 괜찮은 파워를 보유했다고 평가받은 그는 2004년 만 21세라는 어린 나이에 빅리그 무대를 밟는다. 이듬해인 2005년에는 50타석에서 0.396의 타율을 기록하며 잠재력을 보였지만, 조지마 겐지라는 확실한 주전포수가 있었던 시애틀은 리베라를 중용하지 않았다. 결국 리베라는 2007시즌 전체를 더블에이에서 보낸 뒤 LA 다저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는다.

리베라는 다저스의 마이너리그 팀에서 50%에 육박하는 도루저지율을 기록하고, 1루수 알바까지 뛰는 등 ‘열일’했지만 빅리그의 부름을 받을 만한 타격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컨택, 선구안, 파워 모두 애매하다는 것이 그의 문제였다. 이 문제는 2009시즌 뉴욕 메츠 산하 마이너 팀에 있을 때에도 똑같이 반복되었다. 결국 2010시즌을 앞두고 리베라는 독립리그인 애틀랜틱 리그의 문을 두드리기까지 이른다.

애틀랜틱 리그에서 6할이 넘는 장타율을 기록한 리베라는 5월에 뉴욕 양키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으며 프로 무대 복귀에 성공한다. 하지만 빅리그로 복귀하지는 못했다. 리베라는 시즌 내내 양키스 산하 트리플에이와 더블에이 팀에 머물렀다.

2011시즌을 앞두고 리베라는 미네소타 트윈스와 계약을 맺었다. 추측건대 미네소타에서도 콜업을 받지 못했다면 리베라의 선수 경력은 얼마 가지 않아 끝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리베라는 미네소타의 트리플에이 팀에서 괜찮은 활약을 보였고, 5월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빅리그 무대로 복귀한다(부테라의 백업 포수 역할이었다). 그러나 리베라는 제한된 기회 속에서 본인의 가치를 증명하는 데 실패한다. 그해 114타석에 들어선 리베라의 타율은 0.144로 매티스 라인 아래였다. 2012시즌을 앞두고 미네소타와 재계약을 맺은 리베라는 그해 전체를 마이너리그에서 보냈다.

리베라는 2013시즌 이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주전 포수 야스마니 그랜달의 부상을 틈타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는다. 리베라는 같은 83년생 포수 닉 헌들리의 백업으로 뛰며 56%의 도루저지율과 0.3의 Pass/9(9이닝당 폭투+포일)을 기록했다. 이렇듯 안정적인 수비력을 보여준 리베라는 2014년 초 샌디에이고와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고, 5월 말에 헌들리가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트레이드된 것을 계기로 주전으로 도약한다. 그리고 11개의 홈런과 116의 OPS+(조정 OPS)를 기록하며 커리어하이 성적을 찍는다(bWAR 2.7). 8월의 한 경기에선 동점 홈런과 끝내기 안타를 모두 쳐내는 위업을 달성하기도 했다.

리베라는 시즌이 끝난 뒤 샌디에이고-탬파베이-워싱턴 간의 대형 삼각 트레이드 속에 탬파베이로 팀을 옮겼다. 프로 데뷔 이후 오랜만에 한 팀에 자리를 잡는 듯했던 리베라는 그렇게 다시 저니맨 생활을 시작했다. 20대 후반의 방랑과 비교해 달라진 것은, 각 팀의 빅리그 25인 로스터에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뿐이었다.

탬파베이에서 출루율이 직전 해보다 1할 이상 하락하며 극심한 부진을 겪은 리베라는, 2016년 뉴욕 메츠와 두 번째 계약을 맺고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NL 와일드카드전에서 선발포수로 출장하기도 했다(매디슨 범가너가 완봉승을 거둔 그 경기이다). 2017년에도 메츠에서 시즌을 시작한 리베라는 시즌 중반 시카고 컵스로 트레이드되었는데, 50타석에서 OPS 0.999를 찍으며 2005년에 이어 ‘50타석의 황제’임을 입증했다. 2018시즌부터는 플레잉타임이 점점 줄어들어, 뉴욕 메츠 소속인 2020년 현재 빅리그 로스터 진입이 불확실한 상태이다. 21세기와 함께 시작된 저니맨의 여정이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리베라는 이 글에서 매티스, 부테라, 윌슨과 한데 묶인 것을 기분 나빠 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는 통산 OPS+가 72로 최소한의 타격 실력은 갖추고 있는 데다가, 전성기였던 2014년에는 공수에서 A급 활약을 보여준 적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팀에 둥지를 틀지 못하고, 여러 구단을 전전하며 가늘고 긴 선수 생활을 했다는 네 명의 공통된 특징은 리베라에게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가 프로 경력 동안 소속됐던 팀은 무려 11개에 이른다(독립리그 팀까지 포함하면 12개). 20대 초반 주목받는 유망주였다가 오랜 침체기를 겪고, 30대 초반에 뒤늦게 꽃을 피운 그의 커리어는 많은 어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WS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은 포수’ 드류 부테라

드류 부테라는 2002년 드래프트에서 48라운드에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지명되었다. 너무 낮은 지명 순위에 실망한 그는 토론토와 계약을 맺는 대신 대학 진학을 택했고, 2005년 드래프트 5라운드에서 뉴욕 메츠에 지명되며 드래프트 재수에 성공한다. 부테라는 뉴욕 메츠 팜에서 가장 좋은 수비력을 가진 포수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공격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여 빠르게 승격되지는 못했다.

부테라는 2007년 시즌 중 미네소타 트윈스로 트레이드되었고, 이 글에 나오는 네 명의 선수 중 가장 늦은 2010년에야 메이저리그 데뷔를 이룬다. 그해 43%의 도루저지율로 감독의 눈도장을 찍은 부테라는, 2011년 조 마우어가 부상으로 결장하는 동안 잠시나마 주전포수로 활약한다. 하지만 0.449의 OPS를 기록하며 공격력에서 한계를 보였다. 해를 거듭할수록 부테라의 입지는 좁아져만 갔고, 결국 2013년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LA 다저스로 팀을 옮긴다.

2013년 확장 로스터 때 다시 빅리그 무대를 밟은 부테라는 2014년 더 많은 출장 기회를 받으며 192타석에 들어섰다. 5월의 한 경기에서는 패전처리로 마운드에 올라 94마일짜리 패스트볼을 뿌려 팬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시즌이 끝나고 이웃팀인 LA 에인절스로 트레이드된 부테라는 2015년 초반 21타석에서 4개의 단타만을 치며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에인절스는 부테라를 지명할당(DFA) 처리했고,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트레이드로 그를 영입하게 된다.

2015년 캔자스시티는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1위와 월드시리즈 우승을 향해 순항했다. 살바도르 페레즈라는 확실한 주전포수가 있었기에 부테라의 역할은 백업에 제한됐지만, 그는 팀의 포스트시즌 로스터에 포함되었다. 하이라이트는 캔자스시티가 우승을 확정지은 월드시리즈 5차전이었는데, 팀이 5점차로 앞선 12회말에 대수비로 출장하여 마무리투수 웨이드 데이비스의 공을 받았다. 2015년 MLB의 마지막 아웃카운트(윌머 플로레스 삼진)를 잡는 일은 드류 부테라의 몫이었다.

2016년 부테라의 역할은 여전히 백업이었지만, 133타석에서 113의 OPS+를 기록하며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 다만 부테라가 이 해에 기록한 DRS는 -6으로, 수비력 저하가 시작된 시즌이기도 했다. 2018년 중반까지 대체선수보다 조금 못한 수준의 성적을 찍으며 캔자스시티에 남아있던 부테라는 그해 8월에 콜로라도 로키스로 트레이드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단 16타석에 들어서는 데 그쳤다. 부테라는 2019시즌을 앞두고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지만, 시즌 개막 직전에 옵트아웃 권리를 행사하고 다시 콜로라도로 돌아오게 된다. 그는 시즌의 대부분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냈는데, 메이저에서 뛴 기간에도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부테라는 2020시즌 이전에 다시 한 번 콜로라도와 마이너 계약을 맺고 빅리그 경력을 이어나가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부테라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다섯 번째로 많은 트레이드를 당한 선수이다(5번). 그의 강한 어깨와 투수 리드 능력은 팀 입장에서 버리기는 아깝고 쓰기는 애매한 계륵이었다. 그의 통산 bWAR은 -3.5로, 이 글에 등장하는 네 명의 포수 가운데서도 압도적 꼴찌이다. 하지만 부테라는 기록에 나타나는 것보다 훨씬 강한 임팩트를 남긴 선수로 팬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선수에서 지도자로’ 바비 윌슨

바비 윌슨은 2001년 드래프트 26라운드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지명되었으나 대학 진학을 택했다. 이듬해 다시 참가한 드래프트에서 그는 더 낮아진 48라운드가 돼서야 애너하임 에인절스의 선택을 받았다(고졸이었던 부테라보다 두 차례 앞에서 지명되었다). 비록 지명 순위는 높지 않았지만, 윌슨은 마이너리그에서 괜찮은 타격 실력을 보여주었다. 더디지만 꾸준히 성장해나간 끝에 그는 2008년 메이저리그 데뷔를 이뤘다. 에인절스에서 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윌슨은 해를 거듭할 때마다 더 많은 경기에 나섰다. 그는 평균 이하의 공격력과 평범한 어깨를 가졌지만, 인상적인 포구 및 투수 리드 능력을 보여주는 포수였다.

2012시즌이 끝나고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윌슨은 뉴욕 양키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한 해 내내 빅리그 콜업을 받지 못했다. 2014시즌 전에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계약을 맺었지만 메이저에서는 달랑 2경기에 출장하는 데 그쳤다. 2015년에는 탬파베이 레이스에서 극도의 타격 부진을 겪은 끝에 웨이버 공시되었고, 텍사스 레인저스가 윌슨을 영입하게 된다.

텍사스의 타자 친화적인 환경에서 타격감을 어느 정도 끌어올린 윌슨은, 2016시즌 개막 직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디트로이트에서 기회를 많이 부여받지 못한 윌슨은 5월에 다시 텍사스 유니폼을 입게 된다. 텍사스에서 백업포수로 뛰며 직전 해와 비슷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던 그는, 텍사스가 밀워키 브루어스로부터 조너선 루크로이를 영입하면서 지명할당 처리되었다. 그에게 다시 한 번 손을 내민 것은 탬파베이 레이스였다. 포수 뎁스가 얇은 탬파베이에서 윌슨은 두 달 동안이나마 많은 출장 기회를 보장받았다. 또한 OPS+ 80으로 포수로서 나쁘지 않은 타격을 보여주기도 했다.

2017시즌 전체를 LA 다저스 산하 트리플에이 팀에서 보낸 윌슨은 2018시즌 이전에 미네소타 트윈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제이슨 카스트로의 부상을 틈타 메이저리그 콜업을 받았다. 그는 언제나처럼 좋은 수비력(DRS 8)과 미약한 공격력(OPS+ 43)을 보여주었고, 2019년에는 디트로이트로 돌아와 15경기에서 0.091의 타율을 찍은 뒤 은퇴를 선언했다.

윌슨은 매티스, 리베라, 부테라와 비교해서도 굉장히 ‘가느다란’ 커리어를 보냈다. 공수 어느 것에서도 특출난 툴이 없었고, 결국 네 명 중 가장 먼저 선수 생활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윌슨은 홈플레이트 뒤에서의 안정감으로 여러 팀 투수들의 신뢰를 받은 포수였다. 텍사스 레인저스는 2019시즌을 마친 그에게 더블에이 팀 감독직을 제안했고, 윌슨은 이를 수락했다. 코치를 거치지 않고 바로 감독으로 채용된 독특한 사례이다. 머지 않은 미래에 메이저리그 팀을 지휘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야구공작소 나상인 칼럼니스트

자료 출처=베이스볼 레퍼런스, 베이스볼 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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