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 = Flickr Erick Drost, CC BY 2.0 >
“20세기 투수는 구속으로 말했다면 21세기 투수는 구속과 회전수로 말한다.”
이렇게 표현한다면 과장일까? 필자는 어느 정도 그렇게 야구계가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해외 유턴파로 데뷔 첫해 SK 와이번스의 주전 마무리를 따낸 하재훈.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시속 150km’, 그리고 ‘2600 RPM’이었으니 말이다.
투구의 회전수라는 개념이 대중에 널리 알려진 것은 MLB <스탯캐스트>가 도입된 2015년 즈음이다. 강산이 변하려면 5년이나 남았으니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그 중요성이 높아졌다 하겠다. 하지만 회전수라는 단어는 들어봤어도 그것의 특징에 대해선 여전히 잘못된 상식을 갖고 있는 팬들이 많다. 현장에서 데이터를 다뤄야 할 사람들에게도 그릇된 인식이 있는 경우가 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이 자리를 빌어 투구 회전수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 3가지를 바로잡아 보려 한다.
1. 회전수는 아무 기계로 재도 똑같다?
가장 많은 오해다. 현재 시중에 투구 회전수를 측정하는 기기 혹은 브랜드는 대략 4가지 정도가 있다. 이 중 회전수를 직접 측정하는 방식은 2곳 정도에서 사용 중이며, 회전수를 직접 측정하는 대신 다른 수치에서 역산해 간접적으로 추정하는 방식을 쓰는 곳이 있다. 전자의 예시는 트랙맨(Trackman)과 랩소도(Rapsodo), 후자의 예시는 PITCH F/X(한국명 PTS)를 들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직접 측정과 간접 측정(추정)의 차이다. 야구공의 무브먼트 수치와 구속을 통해 대략적인 회전수를 역으로 계산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지만, 그렇게 역산한 숫자와 진짜 회전수 사이에는 거의 매번 오차가 발생한다. 그 오차의 폭도 구종이나 구속과 같은 공의 다른 특성에 따라 달라지기 일쑤다.
공의 회전은 x, y, z축의 세 가지 요소로 나타낼 수 있는 3차원의 영역이다. 공의 회전수는 공의 상하좌우 무브먼트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PTS는 ‘상하/좌우’로 나뉘는 2차원의 영역인 무브먼트 값에서 회전수를 역으로 계산한다. 이렇게 구한 값은 계산 과정에서 3요소 중 하나가 빠지므로 실제 회전수와 달라진다.
가령 포심 패스트볼은 역산한 회전수와 실제 회전수가 90% 이상 일치할 때가 많지만, 슬라이더는 실제 회전수의 10%도 안되는 값이 계산되는 경우도 많다. 직접 측정하는 기기에서 슬라이더 회전수를 2500 RPM이라고 보여줘도, 역산식 기기에서는 2000 RPM도 되지 않는다고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구속이 느린 공일 수록 무브먼트 값이 높게 나오는데 이런 경우 실제보다 회전수가 크게 추정되며 오차가 더욱 커질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기기 간의 스케일도 다를 수 있다. 회전수를 직접 측정하는 트랙맨 시스템에 따르면 최고 수준의 투수가 던지는 포심 패스트볼의 회전수는 2600 RPM 정도다. 하지만 PTS 시스템의 데이터를 보면 KBO리그 최고 수준의 투수가 던지는 포심 패스트볼 회전수가 2800 RPM이 넘는 것으로 나타난다. 공인구의 차이 등을 감안해도 동일한 기준에서 측정된 숫자로 보기 어렵다. 이는 PITCH F/X 시스템이 회전수를 직접 측정하지 않고 역산하기 때문에 생기는 차이다. 이런 차이를 간과하고 ‘MLB 최고 투수 이상의 회전수’라는 수식어를 붙여선 안될 것이다.
2. 회전수는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
구종의 특성에 따라 다르다. 심지어 같은 구종이라도 던지는 의도에 따라서 회전수가 낮은 쪽이 더 좋을 수도 있다.
회전수가 높으면 좋은 구종으로는 대표적으로 ‘직구(포심 패스트볼)’, 변화구 중에는 ‘브레이킹 볼(슬라이더, 커브)’ 계통이 꼽힌다. 이 경우는 많은 회전을 통해 공기저항을 극대화해 꺾이는 움직임을 늘이는 것이 주목적이다. 회전수가 높은 패스트볼은 ‘라이징 패스트볼’이란 수식어처럼 타자 눈에 치솟으며 날아오듯이 보일 것이다. 회전수가 높은 슬라이더나 커브는 더 강하고 크게 휠 것이다.
반면 너클볼 같은 구종은 회전수가 높아서 좋을 것이 없다. 무회전 상태로 날아가면서 던지는 투수조차 예상하기 어려운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게 핵심이기 때문이다.
한편 싱커처럼 패스트볼과 비슷하지만 ‘솟구치는’ 대신 ‘떨어지는 듯한’ 움직임을 만드는게 목적이라면, 회전수가 높아서 좋을 것이 없다. 의도와 달리 마지막까지 볼끝이 살아 움직이게 될 것이니 말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KBO리그에는 2018년 한화에서 싱커(투심 패스트볼)를 장착해 화려하게 복귀한 송은범이 있으며, MLB에는 싱커를 주무기로 쓰는 시카고 컵스의 카일 헨드릭스가 있다.
이 밖에도 회전수가 낮은 슬라이더로도 좋은 효과를 내는 사례도 있다. 뉴욕 메츠의 노아 신더가드가 던지는 슬라이더의 회전수는 2000-2200 RPM을 오가는데, MLB 평균인 약 2400 RPM에 못 미친다. 하지만 시속 140km를 넘는 빠른 구속과 날카로운 꺾임으로 최고의 구종으로 평가받고 있다. 회전수도 중요하지만, 회전 방향과 움직임을 의도대로 만들어낼 수 있느냐도 그만큼 중요하다.
3. KBO리그의 회전수 숫자는 믿을 수 없다?
최근 KBO리그 투수들의 회전수 데이터가 언급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과연 MLB 데이터와 동일 선상에서 평가할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다.
1에서 설명했듯이 기준이 다른 숫자를 비교한 것을 두고 ‘틀렸다’는 말만 들었다면 이런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똑같은 트랙맨 레이더로 측정한 KBO리그 데이터와 MLB 데이터를 비교한다면, 일단은 두 결과가 ‘같은 기준에서 측정됐다’고 봐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미국과 한국에서 쓰는 트랙맨 레이더는 ‘버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동일한 제품이다. 회전수 숫자의 차이가 생긴다면 측정 기기보다는 환경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다. 공인구가 대표적인 예다.
외국인 투수의 회전수가 달라졌다면, 공인구를 쥐는 감 때문에 회전수가 달라졌을 수 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마운드 등 구장 설비나 날씨에 따라 투구 컨디션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또는 미국에서 던졌을 때와 한국에서 던질 때 쥐는 그립이 다르거나 투구법이 달라지면서 회전수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이런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한국에서 던진 공의 회전수와 미국에서 던진 공의 회전수는 비슷하게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KBO리그 투수가 던진 패스트볼 회전수가 2600 RPM이 나왔다고 하면, MLB에서 던질 때도 회전수가 그 근처에서 나올 거라고 생각해도 좋다.
야구공작소 박기태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김준업, 이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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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소도가 직접 회전수를 측정한다는 내용에는 동의하기 어렵네요. 오히려 카메라 영상을 바탕으로 추정해내는 방식에 가까운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작성자입니다. 댓글에 대해 답변드립니다.
일단 트랙맨은 레이더 활용을 강조하니 제쳐두더라도, 영상 바탕으로 추정하는게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 회전수를 측정할 수 있는지 혹시 다른 방식을 알고 계신지요? 제가 아는 선에선 영상을 보고 회전수를 세는 방식을 두고 ‘직접 측정한다’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어서 이렇게 썼습니다. 2020년부터 스탯캐스트 시스템의 바탕이 되는 호크아이도 기본적으로는 같은 식으로 계산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외려 PITCH F/X는 무브먼트, 구속 등의 다른 정보에서 회전수를 추정하니 영상을 바탕으로 추정한다는 수준도 아니고, 타 기기와 비교했을 때 오차가 심각하게 큽니다. 구속이 느린데 무브먼트가 높게 나오면 회전수도 높다고 나오는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런 까닭에 ‘간접 추정’이라고 하였습니다. 처음부터 회전수 정보를 제공한 랩소도/트랙맨과는 차이가 있어 구분하였고 크게 틀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알려주시면 감사히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직구도 회전수가 많으면 무조건 좋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사실 같은 회전수가 나와도 신체 조건이나 폼에 따라서 각도가 다르기 때문에 회전수가 메이저리거 급이라고 다 같은 공이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