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오연우]
원클럽 맨이지만 우승커녕 가을야구조차 변변히 경험하지 못한 선수는 나를 슬프게 한다. 점점 팀에서 애물단지가 되어 갈 때, 이 선수의 전성기를 모르는 팬이 늘어갈 때, 매년 부활을 다짐하지만 매년 차도가 없을 때, 은퇴가 가까워지나 팀 전력은 여전히 우승과는 거리가 멀 때.
사직의 최동원 동상, 대전의 99년 우승탑,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소주와 시계. 마지막 우승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들은 나를 슬프게 한다. 기록으로 기억을 만들어야 할 때, 보지 못한 장면에 환호하고 겪지 못한 장면에 눈물 흘릴 때, 나는 다시 한번 슬퍼진다.
십수년째 제자리 걸음인 팀, 매년 리빌딩과 육성을 천명하지만 매번 실패하는 팀, 윈나우 탱킹 중인 팀. 없는 살림에 단 한 번의 승부수를 던졌지만 실패한 팀. 희망이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앞으로 한동안도 없을 팀들. 이런 팀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쉽게 예매할 수 있게 된 주말 잠실 경기, 매진에 실패하는 포스트시즌 경기. 공허한 프로야구 위기론과 쉽게 씌어진 해답들. 하지만 이를 비판하는 나도 쉽게 씌여진 해답보다 나은 해답을 알지 못한다.
뉴스창이 조회수만 노리는 기사로 가득 찰 때, 나도 그런 기사를 누르고 있을 때, 내부를 비판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내부를 대변하고 있을 때, 존경 받던 기자들이 하나 둘 사라질 때, 남은 기자들이 야구에 대한 존경과 동경 대신 냉소와 조롱만 조장하고 있을 때.
한때 누구보다 야구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더 이상 야구를 사랑하지 않는 모습도 나를 슬프게 한다. 매일 경기를 보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면 스스로의 변절에 마음이 아픈데, 이 순간에도 수많은 어린 학생들이 새롭게 야구에 사랑의 맹세를 바친다.
나보다 훨씬 능력 있는 팬들이 야구에 아무 기여도 하지 않을 때, 내가 저 정도 능력이 있었으면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었을지, 이들은 왜 저 능력을 야구를 위해 조금 더 써 주지 않는지 한스러울 때, 내 마음은 슬퍼진다.
팬그래프, BP가 치팅 분석 글로 가득 차 있을 때, 다가올 시즌에 대한 궁금함과 장난 섞인 기대는 묻히고, 건설적인 분석은 중단된 채 치팅 분석만 남은 커뮤니티를 볼 때,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가해자들의 적반하장을 볼 때, 이제 거기에 분노할 힘조차 없을 때.
바뀌어 버린 야구장 주위 풍경을 볼 때. 어린 시절에 살았던, 야구장 스코어보드가 보이는 집을 떠올릴 때, 이제 그 집이 고층 건물로 둘러싸여 버린 것을 볼 때, 야구장 옆에 있던 배팅장 자리에 큰 가게가 들어선 것을 볼 때, 나는 슬퍼진다.
한때 좋아했지만 더 이상 하지 않는 야구 게임, 야구 이야기를 하지 않는 야구 커뮤니티, 조소만 남은 댓글, 비이성적인 토의, 고쳐지지 않는 구습, 희망고문 속에 독립리그를 전전하는 선수, 돈 때문에 팀을 떠나야 하는 프랜차이즈 스타, 108패를 하고도 꼴찌가 못 되는 리그, 관중 없는 시범경기,
이 모든 것은 나를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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