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도전 혹은 리빌딩, 캔자스시티의 2루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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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공작소 봉상훈] 각 팀이 2017년에 대비하기 위해 분주한 메이저리그의 오프시즌, 하지만 2015년 우승팀 캔자스시티 로얄스의 타임라인은 조용하기만 하다. 에릭 호스머, 마이크 무스타커스, 로렌조 케인, 알시데스 에스코바, 대니 더피, 웨이드 데이비스, 재러드 다이슨 등 팀의 주축을 이루는 대부분의 선수는 2017년을 끝으로 FA 자격을 얻게 된다. 즉, 2017년은 사실상 캔자스시티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다. 따라서 다른 어떤 팀보다도 지금 더욱 분주하게 움직여야 하지만, 사정은 여의치가 않다.

지난겨울 캔자스시티는 2015년 월드시리즈 우승에 힘입어 한 번 더 ‘달리기’ 위해 20승 투수 이안 케네디, 호아킴 소리아를 영입하며 투자를 감행했다. 그러면서 연봉 총액은 올해 1억 3,000만 달러 이상으로 뛰어올랐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에서 15위에 해당하는 규모로, 연고지 기반 매출이 적은 캔자스시티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그러나 2016년의 결과는 실패였고, 데이튼 무어 단장은 더는 연봉을 늘릴 수 없음을 인정했다. 아니, 오히려 몸집이 줄어들 것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유망주의 트레이드를 통한 전력 보강도 힘들어 보인다. 얼마 전 <베이스볼 아메리카(Baseball America, 이하 BA)>의 최고 권위자인 J.J. 쿠퍼는 캔자스시티의 구단 유망주 순위가 메이저리그 하위 3위권에 속한다고 전망했다. 지난해 쟈니 쿠에토, 벤 조브리스트를 영입하는 대가로 유망주를 소진하고, 남아있는 유망주들이 부진하며 마이너리그 팜의 상태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앞서 언급된 선수들을 모조리 트레이드해 유망주를 가득 받아 오고 청사진을 처음부터 다시 짜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이상적인 판단처럼 보인다. 하지만 2014년 포스트시즌 진출 전까지 30년 동안 가을야구를 겪지 못했던 캔자스시티의 팬들은 그런 모습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팀의 주축이 유지되는 것도 내년이 마지막이다.

그래서 캔자스시티의 수뇌부는 어쩔 수 없이 전진을 외치며 내년에도 포스트시즌에 도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올해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 그중 하나가 최악의 생산력을 보여줬던 2루수다.

 

캔자스시티의 2루수 잔혹사

2016년 캔자스시티의 2루수들이 보여준 공격 생산력은 아주 암울했다. 이들이 1년 동안 기록한 66의 조정 타격 생산력(wRC+)은 메이저리그 29위였고, 0.611의 OPS도 29위, 그리고 홈런은 무려 5개로 꼴찌였다. 거의 모든 공격 지표에서 최악의 기록을 남긴 셈이다. 개막전 2루수 오마 인판테는 올해도 부상을 입었고 결국 계약 기간을 모두 채우지 못하며 방출을 당했다. 인판테가 남긴 것은 3년간 0.238/0.269/0.587의 처참한 타율/출루율/장타율.

2010년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전체 4순위로 지명된 크리스찬 콜론은 올해 겨우 39번 선발로 나섰고, 2루수로도 161타석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이제 평범한 유틸리티 선수가 된 콜론에 대한 기대감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나마 ‘중고 신인’ 윗 메리필드만이 로얄수의 2루에서 분전했다. 하지만 메리필드도 만족스러운 성적을 낸 것은 아니었다.

로얄스의 이런 ‘2루수 잔혹사’는 하루아침에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얼마 전 캔자스시티 전문 매체 <파인 타르 프레스>는 지난 10년간 캔자스시티의 2루수 기록을 분석했다. 이 기사에 의하면 데이튼 무어가 2006년 7월 캔자스시티 단장으로 부임한 후 올해까지 2루수로 뛰었던 선수는 총 36명이다. 그리고 10년 동안 이들이 기록한 연평균 성적은 0.266/0.312/0.367, 31개의 2루타, 5개의 3루타, 7개의 홈런, 63타점, 74득점, 15개 도루. 결국, 무어 단장 시대에 특출난 2루수가 뛰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무어 단장이 영입한 최고의 2루수는 작년 트레이드를 통해 잠시 캔자스시티의 유니폼을 입었던 조브리스트였다. 이것이 캔자스시티의 2루수 잔혹사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불투명한 2017년의 계획

문제는 내년 계획도 그렇게 밝지 않다는 것. 현재 로얄스의 2루수 주전 싸움에서 가장 앞서 있는 선수는 28살의 늦깎이 신인 윗 메리필드다. 메리필드는 올해 81경기에서 0.283/0.323/0.392의 평범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첫 32경기에서는 0.324/0.348/0.456을 기록해 꽤 인상적인 출발을 보였다. 올해가 메이저리그 첫 시즌임을 생각한다면 앞으로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여지도 있다.

하지만 메리필드는 그동안 ‘잘해야 유틸리티 선수’란 평을 받았다. 메리필드의 최고 장점은 타격도 수비력도 아닌 다재다능함. 마이너리그에서 포수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했던 메리필드는 올해에도 메이저리그에서 1루, 2루, 3루, 좌익수, 우익수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했다. 하지만 장타력과 선구안이 부족하고 수비가 압도적이지 못한, 그리고 나이도 젊지 않은 메리필드에게 장기적인 주전 2루수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메리필드의 뒤에는 그보다 한참 어린 선수가 있다. 팀 내 최고 유망주, 21세의 라울 아달베르토 몬데시 주니어다. 작년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로 월드시리즈에서 데뷔한 신인이 된 몬데시 주니어는 3년 연속으로 MLB닷컴 유망주 랭킹에서 40위 안에 들었을 정도로 잠재력을 인정받은 유망주다.

하지만 작년까지 몬데시 주니어는 그동안 타격 면에서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올해 마이너리그에서 0.790의 OPS를 기록했지만, 이는 타자 친화적 리그에서 뛰면서 거둔 성적이었다. 그럼에도 캔자스시티는 그를 데뷔시키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그 결과는 0.185/0.231/0.281의 참담한 성적으로 끝났다.

나이가 어린 몬데시는 내년 다시 마이너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어중간한 메리필드와 몬데시 외에 2루 공백을 해결할 내부 자원은 딱히 없다. 팀 상황상 준척급 이상의 FA 영입, 트레이드를 통한 보강도 어렵다. 그래서인지 캔자스시티는 얼마 전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바로 신인 3루수, 체슬러 커스버트의 2루 기용이다.

 

새로운 시도, 그리고 여전한 과제

커스버트는 올해 127경기를 모두 3루수로 뛰었고 마이너리그에서도 대부분을 3루수로 보냈다. 마이너리그에서 2루수로는 2014년에 26이닝을 뛴 게 전부다. 하지만 캔자스시티는 커스버트의 기본적인 수비 실력이 나쁘지 않다고 판단, 얼마 전부터 그를 교육리그에서 2루수로 뛰게 하고 있다. 그가 올해 12개의 홈런을 때려낸 타격 실력을 유지하며 평범한 수비만 해낸다면, 캔자스시티의 2루수 경쟁력은 한층 나아질 것이다.

이 밖에 BA 팀 내 유망주 랭킹에서 2위에 꼽힌 헌터 도지어 역시 또 다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도지어도 커스버트와 마찬가지로 마이너리그에서 대부분을 3루수로 뛰었지만, 드래프트 당시 포지션인 2루로 복귀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도지어는 현재 팀 내 유망주 중에서 타격 완성도가 가장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도지어가 2루수로 정착한다면 팀의 걱정은 단번에 해결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대안은 대안으로 그치고 있다. 두 선수의 2루 정착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커스버트와 도지어가 2루수로 언급되고 있는 것은 선수의 실력이 아닌 팀의 포지션 상황 때문이다. 이들의 원래 포지션인 3루에는 로얄스의 핵심 타자, 마이크 무스타커스가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있다.

올해 무스타커스는 수비 도중 충돌로 십자인대 파열을 당해 일찍 시즌을 마감했다. 내년 그가 돌아오면 커스버트는 자리를 잃는다. 그런데 커스버트의 마이너리그 강등 기회가 소진된 탓에, 팀은 그를 방출하지 않는 이상 메이저리그에 그의 자리를 마련해야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고심 끝에 2루수 기용이라는 고육지책이 나온 것이다.

두 선수의 수비 능력에도 문제가 있다. 커스버트는 3루에서 수비 범위가 좁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런 그에게 생소한 2루수 역할을 크게 기대하긴 어렵다. 더군다나 커스버트는 유망주 시절부터 신체 능력과 체격상 1루가 더 어울릴 수 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도지어는 그보다도 3루 수비에 대해 저평가를 받는 데다 오히려 우익수의 대안으로 더 많이 거론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스버트의 포지션 변환 시도에 나섰다는 건 구단의 고민이 얼마나 깊은지를 드러낸다.

 

현실적인 대안, 변화가 필요한 캔자스시티

결국 내년 2루수는 메리필드가 유력한 상황. 메리필드는 지난 7년 동안 마이너리그에서 142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주력을 증명했다. 이를 바탕으로 한 다재다능, 그리고 올해 초반의 타격 실력을 한 해 내내 보여주길 기대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책이다. 커스버트의 2루 기용은 메이저리그에서 활용도를 더하고, 메리필드의 부족한 장타력을 보완하는 카드 정도의 의미가 있다.

다른 해결책으로는 저렴한 가격의 플래툰 선수 영입을 생각해볼 수 있다. 우타자인 커스버트와 메리필드는 모두 좌투수에게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우투수를 상대로는 나쁜 성적을 기록했다. 이 밖에 내년까지는 2루수로 봐야 할 21세의 몬데시 정도가 로얄스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히든카드다.

하지만 조브리스트 영입과 같은 큰 한 방이 없다면 확실한 해결은 어렵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메리필드나 커스버트가 2루수로서 평균 수준의 공격력과 수비력을 보여주는 것. 여기에 포스트시즌 진출이 가능해질 시, 몬데시를 다시 승격시키거나 트레이드로 확실한 전력보강을 이뤄내는 것이 최선의 선택지일 것이다.

캔자스시티는 내년에도 우승에 도전할 것이다. 데이튼 무어 단장은 매년 예상 밖의 움직임을 보여왔다. 2014년에도, 2015년에도 모두 캔자스시티의 행보에 의문을 달았지만, 이들은 두 해 잇따라 월드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수많은 트레이드와 FA 영입들이 이뤄지는 메이저리그 윈터 미팅이 얼마 남지 않았다. 데이튼 무어 단장은 과연 우승을 위해 또 다른 영입을 이뤄낼 수 있을까? 상황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2015년 언더독의 기적을 일궈낸 캔자스시티이기에, 일말의 기대감을 놓치지 않게 된다.

 

기록 출처: Fangraphs, MLB.com, Baseball America

(일러스트=야구공작소 황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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