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야구공작소 최경령)
팬그래프 시즌 예상: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3위 (76승 86패)
시즌 최종 성적: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3위 (80승 82패)
[야구공작소 박기태] 내년이면 내년의 야구가 막을 올린다. 야구팬들은 겨울이 되면 사라졌다가도 봄이면 다시 돌아오는 시즌을 회전목마에 태워 둔 아이처럼 기다리며 지켜본다. 하지만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는 그런 시간도 있다. 캔자스시티의 야구에서는 올해가 그런 시간이었다.
2014시즌의 도약부터 2015시즌의 월드시리즈 우승, 그리고 2년간 이어진 컨텐딩까지. 그보다도 더 전부터 한참의 세월을 함께해온 캔자스시티의 코어들이 올 시즌을 끝으로 고별의 때를 맞이한다. 에릭 호스머, 마이크 무스타커스, 알시데스 에스코바 그리고 로렌조 케인은 이제 FA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재러드 다이슨은 이미 1년 먼저 시애틀로 적을 옮겼다. 살바도르 페레즈와 대니 더피는 남았지만, 30년 만의 우승 트로피 사냥에 공을 세운 황금 세대, 21세기의 가장 빛나는 ‘로열 패밀리’의 이야기는 마지막 장을 맞이했다.
이들은 마지막 장을 앞두고도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비를 넘기기엔 힘이 부족했다. 누구의 잘못이었을까. 미래의 에이스라던 요다노 벤추라의 갑작스런 죽음, 너무 일찍 황혼기를 맞이한 알렉스 고든, 웨이드 데이비스를 떠나보내며 데려왔지만 마이너리그에서만 환상적이었던 호르헤 솔레어. 사실, 어느 한 명의 잘못이 아닌 모든 이들의 잘못이었다. 우승이라는 샴페인을 터트린 지 2년, 로열스는 그 사이 팀으로서 천천히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개개인의 부진을 탓하자니 특별하지 않은 한 명 한 명이 모여 영광을 차지했던 2015년의 행진 앞에서 낯을 들 수가 없었다.
가족의 해체. 유종의 미를 노리며 끝까지 리빌딩이 아닌 도전을 택했지만, 종막에는 아쉬움만을 남긴 채 다시 기나긴 겨울잠을 향해 가고 있는 로열스의 현주소다.
최고의 선수 – 에릭 호스머
시즌 성적: 0.318/0.385/0.498 25홈런 94타점 66볼넷 104삼진 bWAR 4.0 fWAR 4.1
가족이었지만 떠날 때가 됐다(사진=Flickr Keith Allison, CC BY SA 2.0)
호스머는 오랫동안 마이너리그 시절의 호평에 비해 발전이 더디다는 평을 들어왔다. 시즌 개막 전에는 지난해 후반기 최악의 부진(OPS 0.676)을 겪은 탓에 ‘FA 폭탄’이 될 가능성이 높은 선수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올 시즌, 호스머는 기어코 FA를 앞두고 커리어 하이 시즌을 만들어냈다. 3월에는 미국 대표팀으로 WBC에 참가해 역전 투런 홈런을 때려내는 맹활약을 펼치며 고국에 대회 첫 우승을 안기기도 했다. 통산 4번째 골드 글러브, 첫 번째 실버 슬러거 상을 수상했다는 영광은 덤이었다.
초점은 이제 FA에 맞춰진다.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는 벌써부터 ‘호스머는 플레이오프 마을의 택배 배달부’라는 그만의 창의적인 미사여구를 만들어내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투수 친화적인 구장에서 뛰었다는 것도 타자로서의 가치에 플러스 요소가 된다. 그러나 땅볼이 많은 유형의 타자이고 과거 성적에 부침이 많았다는 점, 커리어 하이 시즌의 WAR이 4.0에 그쳤다는 점 등은 마이너스 요소다. 벌써부터 팬그래프에서는 이번 FA 시장 최고의 함정 카드로 호스머를 지목하고 있다. 시즌 전부터 거취에 대해 루머가 있었지만, 캔자스시티를 떠날 것은 확실시되고 있다.
발전한 선수 – 윗 메리필드
시즌 성적: 0.288/0.324/0.460 19홈런 78타점 29볼넷 88삼진 bWAR 3.9 fWAR 3.1
캔자스시티의 새로운 신데렐라(사진=Flickr Keith Allison, CC BY SA 2.0)
지난해까지 ‘땜빵 2루수’로 여겨졌던 선수가 올해는 2루의 구세주가 됐다. 타율과 출루율은 지난해와 거의 같았지만(0.283/0.323 → 0.288/0.324), 장타율이 크게 늘어났다(0.392 → 0.460). 3.9의 bWAR과 3.1의 fWAR은 팀내 야수 3위의 성적이며, 메이저리그 2루수를 가운데서도 각각 5위, 10위에 해당한다.
수비 포지션의 다재다능함이 장점으로 여겨지던 메리필드는 올해도 2루수를 중심으로 좌익수, 우익수, 3루수 그리고 1루수까지 총 5개의 포지션에서 경기에 나섰다. 실제 기용 비중은 2루수가 압도적이었지만, 4명의 주전 야수가 FA로 풀리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에도 멀티포지션을 소화할 여지가 남아 있다. 그러나 그 기용을 둘러싼 분위기는 지난해와 180도 달라질 전망이다. 메리필드는 더 이상 팀의 ‘을’이 아니다. 팀의 ‘갑’이다.
메리필드의 성공을 예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2년 전 룰 5 드래프트에서 어느 팀의 지명도 받지 못한 것에 충격을 받고 웨이트 트레이닝에 열중한 결과, 자신에게 부족했던 파워라는 무기를 장착하는 데 성공했다. 올 시즌 기록한 19개의 홈런은 마이너리그 시절을 통틀어도 한 시즌 최다 홈런. 27세의 늦은 나이에 데뷔했지만, 이제는 카우프만 스타디움의 신데렐라가 됐다.
실망스러운 선수 – 호르헤 솔레어
시즌 성적: 35경기 110타석 0.144/0.245/0.258
‘최소한의 양심설’이 필요한 선수(사진=Flickr Minda Haas Kuhlmann, CC BY 2.0)
그를 데려오기 위해 무려 웨이드 데이비스를 내줬다. 트레이드 당시에도 데이비스의 맞트레이드 상대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평이 많았다. 데이비스의 팔꿈치 건강에 대한 의심 말고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특급 마무리였던 웨이드 데이비스를 내주고 데려왔다는 사실 자체로 솔레어를 향했던 기대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몸이 성치 않았던 것도 아니었는데, 실제로 집어 든 성적표는 나쁘다 못해 끔찍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25세라는 젊은 나이와 마이너리그 성적은 괜찮았다는 점(74경기 24홈런 OPS 0.952)을 제외하면 기댈 희망조차 보이지가 않는다. 솔레어 트레이드는 특별한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은 올해 최악의 결정이 되고 말았다.
마지막 스퍼트, 남은 것은
로열스는 이번 시즌에도 핵심 타자들의 트레이드 대신 컨텐딩을 선택했다. 트레이드 데드라인까지만 해도 선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2경기 차로 뒤진 지구 2위, 그리고 아메리칸리그 와일드카드 2위를 질주하면서 기적을 이뤄내는가 싶었다. 그러나 8월로 접어들면서 10승 18패로 거짓말처럼 무너져 내렸다. 결국은 반등에 성공한 미네소타 트윈스에게도 밀리며 지구 3위로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FA 이탈로 타격을 받았던 것은 야수진이지만, ‘불펜 3대장’을 앞세워 우승을 따냈던 투수진 역시 상처투성이가 됐다. 제이슨 바르가스가 시속 90마일도 되지 않은 공을 내세워 깜짝 활약을 펼쳤지만, 복권에 가까운 이런 성과를 매년 기대할 수는 없다. 팀의 미래로 여겨지던 요다노 벤추라의 사고사는 몇 년 뒤에 돌아봤을 때 로열스의 암흑기를 앞당긴 결정타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남은 것은 5년 계약을 맺은 대니 더피뿐이다. 과거 잭 그레인키가 암흑기의 한 줄기 빛으로 남았던 것처럼, 더피 역시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더피마저도 장기계약의 첫해인 올해 팔꿈치 부상으로 고초를 겪었다.
마운드의 기둥은 이제 더피 뿐이다(사진=Flickr Keith Allison, CC BY SA 2.0)
이제 한 시즌만에 1루수-유격수-3루수-중견수가 빠지는 대형 악재가 현실이 됐다. 문제는 이들을 내부에서 대체할 선수가 없다는 것. 2017년 초부터 MLB닷컴과 베이스볼 아메리카에서 발표해온 Top 100 유망주의 명단에 캔자스시티 소속으로 이름을 올린 선수는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스몰마켓 팀이 우승을 향해 전력을 쏟아붓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반작용이자 예견된 미래였다.
다음번의 밝은 미래는 언제쯤 찾아오게 될까. 데이튼 무어 단장이 로열스호의 키를 잡은 지도 10년이 넘었다. 2006년 부임한 그의 첫 작품이 2015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호스머-무스타커스-케인-에스코바의 1세대라면, 그 뒤를 이어야 할 2세대는 안타깝게도 실패만을 반복하고 있다. 무어 사단은 스카우트와 육성 양쪽에서 실패를 거듭하는 중이다. 차라리 냉정하게 시즌을 포기하고 FA를 앞둔 선수들을 트레이드하며 팜을 보강해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이 문제였든 간에, 분명한 것은 남은 결과물이 처참하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앞으로 한동안 험난한 암흑기가 찾아올 것은 자명해 보인다. 위안이라면 같은 지구의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역시 마찬가지로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 정도. 잔치는 끝났다. 로열스는 이제 다가올 험난한 여정을 향해 전진한다. 영광의 시간이었던 2015시즌, 그 기억이 다하기 전에 새벽이 찾아오길 기다릴 뿐.
기록 출처: Fangraphs, Baseball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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