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김우빈] 프로야구 구단 경영을 농사에 비유한다면, 신인을 지명하는 과정은 씨를 뿌리는 단계와 같다. 이를 통해 구단은 중장기적인 선수단 운영의 초석을 놓게 된다.
신인 선수의 수급은 주로 매년 열리는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이뤄진다. 구단들은 먼저 1차 드래프트에서 연고지 출신 유망주를 한 명씩 지명하고, 여기서 지명을 받지 못한 모든 선수들을 대상으로 2차 드래프트를 진행한다. 이 2차 드래프트에서는 연고지와 무관하게 마음에 드는 아마추어 선수를 지명할 수 있다.
신인 2차 드래프트의 지명은 지난 정규시즌 성적의 역순으로 진행된다. 때문에 시즌 막판 가을야구 경쟁에서 멀어진 구단의 몇몇 팬들은 아예 더 낮은 순위를 기록해 다음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높은 순번을 얻어내자는 바람을 내비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 순번 앞을 차지하는 것은 정규시즌 등수를 포기할 정도로 가치 있는 선택일까?
물론 정규시즌 성적을 포기한다는 선택이 정확히 어느 정도의 비용을 수반하는지를 계산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2차 드래프트의 지명 순위를 하나 앞당기는 것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는지를 가늠해보는 것은 가능하다. 우선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선수가 구단의 장래에 얼마나 오랫동안 보탬이 되어주는지를 살펴보자.
2017시즌에는 최하위의 향방에 주목한 ‘이대은 리그’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기도 했다.(사진=kt 위즈 제공)
지명된 선수의 예상 컨트롤 기간 계산하기
지명된 선수의 향후 기여도는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을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 문제는 이 선수의 기여를 몇 번째 시즌까지 반영하느냐는 점이다.
KBO 규약에 명시된 신인 선수의 FA 자격 취득 연한은 고졸인지 대졸인지에 따라 각각 9년과 8년으로 나뉜다. 하지만 이 기간만을 첫 소속 팀에서 보내고 바로 FA 자격을 취득하는 선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선수들은 자격 연한 1년을 채우기 위해 1군에서 145일 이상을 보내거나 규정 이닝 및 타석의 2/3 이상을 소화해야 한다. 이러다 보니 심지어는 김성배와 권오준처럼 부상과 부진으로 선수 생활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FA 자격을 얻게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실제로 2008년부터 2018년 사이에 FA 자격을 처음 취득한 125명의 경력을 살펴보면, 드래프트 이후로 FA 자격 취득까지 보낸 시간이 평균 12년 11개월에 이른다. 사실상 13년에 가까운 시간이다.
이처럼 구단이 지명한 선수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은 평균적으로 약 13년이 지난 다음의 일이다. 신인 지명을 통해 얻어낼 수 있는 활약의 평균 지속 기간이 곧 13년가량이라는 뜻이다.
지명 순위에 따른 활약 계산하기
따라서 이 글에서는 지명된 신인들의 기여 기간을 13년이라 가정하고, 모든 팀이 1 라운드부터 동일하게 한 명씩을 지명하기 시작한 1998년을 조사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조사의 마지막은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05년 신인 드래프트로 설정했다. 이 기간 동안 총 675명의 선수들이 KBO 리그 구단의 지명을 받았다.
이들이 13년차 시즌까지 기록한 WAR의 합을 구하되, 커리어 내내 유의미한 출전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선수들은 평균을 크게 왜곡할 우려가 있어 계산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타자의 경우 60타석 이상, 투수의 경우에는 30이닝 이상을 한 시즌도 기록하지 못한 선수들을 모아 ‘데뷔하지 못한 선수’로 분류했다.
한편, 아무리 현장의 전문성이 발전한다고 해도 드래프트의 각 픽이 어떤 활약을 펼칠지를 정확하게 예측해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신인 드래프트 사상 최대의 실패 사례 중 하나인 ‘류거나(류현진 거르고 나승현)’가 일어난 것 역시 비교적 최근인 2005년의 일이었다.
이 글에서는 이런 실패한 지명이 초래하는 왜곡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지명이 이후 13년 동안 가장 높은 WAR을 적립한 순서대로 이뤄졌다는 다소 과감한 가정을 도입했다. 예를 들어 2005년 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는 1순위로 조정훈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정근우를 택했으며, 두산 베어스는 2순위로 서동환이 아닌 윤석민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아래는 이 가정을 바탕으로 ‘유의미한 누적 기여도를 기록한 마지막 라운드’인 3라운드까지의 순위별 평균 누적 WAR을 정리한 표다.
1998~2005년 신인2차 드래프트 순위별 평균 누적 WAR
지명 순위 한 단계의 가치
그렇다면 시즌 등수와 맞바꾼 지명 순위 한 단계의 가치는 어느 정도인 것일까. 아래의 그래프는 신인 2차 드래프트의 각 지명 순위가 다음 순위에 비해 얼마나 큰 기여를 팀에 안겨줬는지를 나타낸다.
이를 통해 지명 순위 하나가 가장 큰 차이를 불러오는 구간이 1순위와 2순위 지명 사이임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도 현장 전문가들이 신인 드래프트를 예측할 적이면 그해의 ‘드래프트 최대어’에 대해서는 공공연하게 공감대가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전체 1순위 지명권을 확보해 이 특급 신인을 지명하는 것이 2순위 지명에 비해 무려 11승을 더 벌어들이는 선택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다음으로 큰 차이를 보이는 구간은 3순위와 4순위 사이이다. 이 두 순번 사이의 선택은 미래의 5.4승을 좌우할 수 있지만, 이보다 낮은 지명 순위에서는 한 단계 차이로 2승 정도의 우위를 만들어 내기조차 쉽지 않다. 실제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최상위권을 형성하는 유망주들은 서너 명 정도이고, 이후의 지명부터는 구체적인 순서를 예측하기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확실한 스타 선수를 지명할 수 있는 기회는 약 3순위까지라고 짐작해볼 수 있는 셈이다.
물론 상기한 내용은 모두 ‘훗날 높은 WAR을 적립한 순서대로 지명이 이뤄졌다’는 가정 하에 나온 수치들이다. 한정된 샘플을 극복하기 위해 과감한 가정을 택한 만큼, 실제로 벌어진 신인 지명 및 육성과는 다소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1998년부터 2005년 사이 신인 2차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지명 받은 선수들 가운데, 드래프트 동기들 중 가장 높은 WAR을 적립한 8명 안에 이름을 올린 선수는 전체의 30% 정도에 불과했다. 현실은 지명 순위대로 돌아가지만은 않았다는 뜻이다.
내년에도 시즌 후반이 되면 ‘6위 이하의 순위는 의미가 없으니, 차라리 최하위를 차지해서 특급 신인을 지명할 기회를 얻자’는 주장이 출몰하기 시작할 것이다. 정말로 고의 패배를 도모한다면 프로 구단의 본분을 망각한 행위가 되겠지만, 지명 순위를 한 단계 끌어올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닌 선택인지는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13년 동안 11승을 더 벌어들일 선수를 지명하는 것과 마지막까지 정규 시즌 경기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는 것. 과연 팬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선택은 어느 쪽일까.
기록 출처: Statiz
에디터=야구공작소 이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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