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백, 하이 패스트볼을 던져라

엄상백은 한층 더 발전할 수 있을까? / 사진 = kt wiz 제공

 

[야구공작소 김경현] KT가 1군에 진입한 지 햇수로 4년의 시간이 되었다. 4년은 좌충우돌하던 신생팀이 형님팀들과 당당하게 맞설 준비를 한 시간이며, 풋내가 풀풀 나던 야구소년이 당당한 프로야구선수로 성장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KT의 많은 ‘야구소년’ 중에서도 엄상백의 성장이 특히 그러했다.

2015년 데뷔한 엄상백은 아마추어 시절의 기대와는 달리 데뷔 후 한동안 눈에 띄는 성적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2015년의 평균자책점 6.66은 리그 평균(4.89)과 많은 차이가 났다. 22번의 선발 등판 중 퀄리티스타트(QS)는 단 3번뿐이었고, 경기 당 평균 4.2이닝밖에 소화하지 못했다. 선수층이 매우 얇은 KT가 아니었다면 엄상백은 1군에 남아있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듬해에도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엄상백은 불펜으로 강등됐다.

그저 그런 유망주였던 엄상백에게 2017년 큰 변화가 찾아왔다.  5월 3일 롯데전에서 이대호를 포함한 롯데 타자들을 150km/h에 육박하는 패스트볼로만 제압하며 1이닝을 완벽하게 틀어막더니 이후 파이어볼러로서의 재능이 만개했다. 2016년 141.6km/h였던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2017년에는 무려 146.3km/h까지 상승했다. 부상으로 많은 이닝을 소화하진 못했지만 드디어 팬과 팀이 기대한 만큼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 시즌이었다.

 

2% 부족한 엄상백

눈에 띄는 구속 상승이 있었지만 엄상백의 성적은 그 값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특히 빠른 구속에 비해 탈삼진 능력이 떨어지는 점이 걸렸다. 보통 구속은 탈삼진 능력과 비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2017년 패스트볼 평균 구속 145km/h 이상인 불펜 투수 중 엄상백보다 떨어지는 탈삼진 능력을 보인 투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표1> 2017년 패스트볼 평균 구속 145km/h 이상 불펜 투수 9이닝 당 탈삼진(K/9)

 

데뷔 당시 187cm, 72kg으로 운동선수치고는 호리호리한 체격을 지니고 있던 엄상백은 꾸준한 노력으로 올해 초에는 90kg까지 증량하는 데 성공했다. 늘어난 몸무게만큼 구속은 더 상승해 5월 24일 기준 평균 149.2km/h를 던지고 있다. 같은 기간 KBO 리그에서 엄상백보다 빠른 구속을 자랑하는 선수는 조상우, 산체스, 한승혁, 소사 뿐이다(*10이닝 이상 투구 기준).  하지만 여전히 올해도 엄상백의 탈삼진 능력은 매우 떨어진다. 엄상백의 올 시즌 9이닝당 탈삼진(K/9)은 5.4에 불과하다. 물론 겨우 12.1이닝밖에 소화하지 않았지만 앞서 언급한 선수들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떨어지는 수치이다.

 

<표2> 2018년 패스트볼 평균 구속 149km/h 이상 투수 9이닝 당 탈삼진(K/9)

 

낮은 탈삼진 능력은 엄상백의 성적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2017년 엄상백의 피안타율은 0.242로 50이닝 이상 던진 투수 중 리그 최소 7위에 해당할 만큼 뛰어났다. 하지만 평균자책점은 리그 33위, 수비 무관 평균자책점(FIP)은 리그 34위로 뛰어난 모습은 아니었다. 엄상백은 피장타율 0.328, 9이닝당 홈런(HR/9) 0.52 등 장타 억제에서 최상위급 결과를 냈다. 하지만 타자를 확실하게 처리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기에 예상외로 높은 평균자책점과 FIP를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하이 패스트볼

엄상백이 강속구란 훌륭한 무기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그 무기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방법을 메이저리그에서 한 번 찾아보고자 한다. 최근 메이저리그에는 하이 패스트볼 열풍이 불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표3>를 보면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표3> 2018년 MLB 타자들의 포심 패스트볼에 대한 타격 결과

 

하이 패스트볼의 장점은 타자의 스윙을 잘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2018년 메이저리그에서 스트라이크 존 상단에 들어온 포심 패스트볼은 존 하단으로 오는 볼에 비해 무려 두 배 가까이 높은 76.5%의 스윙 비율을 보여줬다.

하이 패스트볼은 헛스윙 역시 더 많이 유도한다. 존 하단에 들어간 패스트볼은 9.6%의 헛스윙밖에 이끌어내지 못했지만 상단의 패스트볼은 2배가 넘는 23.3%의 헛스윙률을 기록했다.

또한, 하이 패스트볼은 장타를 억제한다. <표3>을 보면 각 존에 들어간 패스트볼의 타격 결과 중 상단에 들어간 패스트볼의 장타율이 가장 낮음을 확인할 수 있다. 소위 플라이볼 혁명이라 불리는 홈런 폭증의 시대에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하이 패스트볼이란 비책을 꺼내 든 것이다. KBO도 환경은 다르지만 홈런의 비중이 점차 늘고 있다. (타석당 홈런 비율 2016년 2.57% /  2017년 2.72% / 2018년 2.83%) 어퍼 스윙을 하는 타자들이 늘어가는 가운데 하이 패스트볼은 이에 좋은 해결책이 될 것이다.

 

엄상백은 하이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을까?

앞에서 살펴보았듯 하이 패스트볼은 잘만 구사된다면 분명한 이점이 있다. 그렇다면 엄상백이 던진 하이 패스트볼 역시 효과적이었을까?

 

<표4> 2017년 엄상백 스트라이크 존 별 패스트볼 결과

 

<표4>에서 확인할 수 있듯 엄상백의 하이 패스트볼 투구는 좋은 결과를 나타냈다. 특히 헛스윙률은 17.9%라는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는 올해 최고의 강속구 투수인 앙헬 산체스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기록이다. (산체스 패스트볼 헛스윙% 17.8%) 구속에 비해 낮은 탈삼진 비율을 보이던 엄상백에게 하이 패스트볼은 탈삼진을 유도할 수 있는 ‘단비’와도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

엄상백의 하이 패스트볼은 변화구 구사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엄상백의 투구 패턴은 패스트볼로 상대를 윽박지른 후 떨어지는 슬라이더로 상대의 헛스윙을 유도하는 것이다. 하이 패스트볼 후에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던진다면 타자의 시선을 위아래로 흔드는 투구를 선보일 수 있다.

엄상백은 같은 팀의 김재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작년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한 엄상백의  패스트볼 중 25.3%만이 존 상단을 통과했다. 이는 각 구역 중 가장 낮은 수치이다. 올해 역시 존 상단을 노린 패스트볼은 28.8%로 제일 적다. 역시 빠른 패스트볼을 자랑하는 김재윤이 올해 하이 패스트볼을 적극적으로 구사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김재윤 존 상단 패스트볼 구사율 2017년 21.3% / 2018년 37.2%)

물론 엄상백의 제1과제는 안정적인 제구력과 어느 상황에서나 흔들림 없는 모습이다. 파이어볼러로 각성한 이후 엄상백은 구속을 믿고 일단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욱여넣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볼넷을 허용하고 있다. (KBO리그 전체 2017~2018년 BB/9 3.19 / 동 기간 엄상백 BB/9 3.76) 또한 주자가 나가면 자신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 최근 2군으로 내려간 이유 역시 득점권 상황에서 과도하게 흥분하고 제대로 공을 던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당 기간 패스트볼 스트라이크 비율 45.3% / 득점권 패스트볼 스트라이크 비율 38.5%)

하지만 엄상백은 순수 구위로만 타자를 압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영건 투수다. 하이 패스트볼은 엄상백 최고의 무기인 강속구를 더욱 돋보이게 해줄 수 있다. 엄상백은 한 인터뷰에서 팀의 탈꼴찌와 아시안게임 국가대표팀 승선을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패스트볼이 높게 꽂힌다면 그 목표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기록 출처 = baseballsavant.com, statiz.co.kr

에디터=야구공작소 곽보성, 양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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