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런 벅스턴은 잊어’ 맥스 케플러의 약진

2017시즌 당시의 맥스 케플러 (사진=Wikimedia Commons CC BY 2.0)

 

[야구공작소 이해인] 야구라는 단어에서 유럽을 떠올리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2017 WBC에서 네덜란드와 이스라엘이 대반전을 보여줬지만, 유럽 내 비인기 종목인 야구 열기에 불을 지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유럽은 여전히 야구 변방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야구에 입문해 메이저리그 입성까지 성공한 선수가 있다. 바로 미네소타 트윈스의 맥스 케플러다.

그는 한때 <베이스볼아메리카>가 선정한 메이저리그 전체 유망주 순위에서 30위에 오를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은 유망주 출신이다. 그러나 높은 순위에도 팬들의 많은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같은 팀에 더 높은 순위를 다투던 2명의 야수 유망주, 바이런 벅스턴과 미겔 사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시즌에는 아이러니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벅스턴과 사노가 부상자 명단에 오르고 부진한 사이 케플러가 좋은 성적을 올리며 플레이오프 진출을 노리는 팀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잠재력 폭발의 시작

케플러의 마이너리그 통산 성적

 

케플러는 마이너리그를 꾸준히 정복한 선수가 아니다. 그의 마이너리그 성적은 매해 요동쳤다. 그 중 루키 레벨에서 뛰었던 2012년과 AA에서 뛰었던 2015년, 그리고 주로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활약했던 2016년에는 좋은 성적을 냈다. 해당 시즌의 공통점은 삼진 대비 볼넷의 비율과 순수장타율이 다른 시즌보다 월등히 높았다는 점이다.

비슷한 강점을 반영하듯 2016시즌을 앞두고 각종 메이저리그 유망주 관련 매체가 케플러를 두고 내린 평가의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2016년 <팬그래프>에 기고된 한 칼럼은 케플러에 대한 평가를 인용했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 스윙이 길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투구 인지 능력*(pitch recognition)이 훌륭하며, 볼넷을 얻어내고 삼진을 제한하는 동시에 경기장 모든 방향으로 강한 타구를 만들어 낼 줄 안다.

존 시켈스: 육체적으로 성숙하면서 더욱 힘이 좋아지면서 장타력이 늘어났다. 동시에 투구 인지 능력이 ‘괜찮은 정도’에서 ‘엄청난 정도’까지 올라왔다. 그 결과 AA를 정복할 수 있었다.

베이스볼 아메리카: 스윙이 길다. 그러나 투구 인지 능력이 훌륭하며 어디로 공이 날아오든 배럴 타구를 만들어낼 수 있다.

 

* 투구 인지 능력은 투수의 손에서 빠져나온 공이 어떤 구종인지, 그리고 그 공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파악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 능력이 특출한 타자는 공에 대한 스윙 여부와 스윙 방향을 빠르게 판단하고 결정한다.

 

케플러의 메이저리그 성적

 

아쉽게도 마이너리그에서 폭발한 잠재력은 메이저리그 성적으로 곧바로 이어지지 못했다. 처음 풀타임 시즌에 도전한 지난 2년 동안에는 마이너리그에서 부진했던 때와 비슷한 성적을 남겼고, 볼넷/삼진 비율과 순수 장타율 등의 세부 지표도 그 시기와 비슷해졌다. 그러나 현재진행형인 2018시즌은 다른 모습이다. 케플러의 세부 성적 및 표면 성적 모두 마이너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던 때와 비슷해졌다.

케플러는 시즌을 앞두고 미네소타 담당 기자 마이크 버라디노와의 인터뷰에서 “내 문제는 발사각에 관련한 것이 아니다. 내 배트 헤드를 최대한 빨리 스트라이크 존에 갖다 놓는 것이 문제다”라고 밝혔다.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지적받은 ‘긴 스윙’이 여전히 문제라는 진단을 내린 것이다.

‘긴 스윙’의 대척점은 ‘간결한 스윙’이다. 스윙이 간결해질수록 타자는 좀 더 늦게 스윙을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스윙을 늦게 시작할수록 타자는 더 오래 공을 지켜보며 투구의 궤적과 코스를 판단할 수 있다. 즉, 투구 인지 능력의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케플러가 내린 진단이 옳았고 그에 대한 대처가 적절했다면 투구 인지 능력과 관련된 지표가 향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올해 케플러의 성적을 보면 실제로 그렇게 됐다는 걸 가리키는 변화를 찾을 수 있다.

 

투구 인지 능력 발현을 뒷받침하는 변화들

무엇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볼넷/삼진 비율의 개선이다. 볼넷이 소폭 늘어나는 한편 삼진이 크게 줄어들었다. 케플러는 지난 2시즌 동안 타석의 20% 이상에서 삼진을 당하며 고개를 떨궜다. 그러나 올해는 타석의 13% 정도로 삼진을 당하는 횟수가 급감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스트라이크존 바깥으로 날아오는 공에 대한 대처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커브, 슬라이더, 커터, 스플리터 같은 변화구를 상대로 헛스윙을 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구종별 스트라이크존 바깥쪽 공에 대한 컨택트 성공률 변화

 

구종별 헛스윙률 변화

 

케플러는 스트라이크 존에 들어오지 않는 커터, 스플리터, 슬라이더, 커브에 대한 컨택트 횟수를 크게 개선했다. 그 결과 구종 별 헛스윙 비율이 줄어들었고, 연달아 삼진 비율도 크게 줄었다. 또한, 변화구에 쉽게 속지 않자 변화구를 상대로도 좋은 타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커브와 슬라이더 상대 시 OPS 변화(2016년부터 2018년까지)
커브: 0.517→0.473→1.467
슬라이더: 0.654→0.486→1.417

투구 인지 능력의 향상을 가리키는 또 다른 증거는 코스별 스윙 횟수의 변화다. 구종과 코스에 대한 판단이 빨라지면 대처하기 쉽지 않은 공에 배트를 내는 일도 줄어든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서는 장타를 방지하고 상대의 헛스윙을 끌어내기 위해 하이 패스트볼을 선택하는 투수들이 늘어났다. 케플러 역시 지난해까지 높은 패스트볼에 배트를 내다 허공을 가르며 공략당하는 횟수가 많았다. 하지만 올해에는 같은 코스에 대한 헛스윙 비율을 훨씬 줄였다.

 

케플러의 포심 패스트볼 헛스윙 히트맵(좌: 2016, 중: 2017, 우: 2018)

 

투구에 대한 빠른 판단과 실행은 장타 생산력 향상으로도 이어졌다. 순수장타율은 2할 이상으로 증가했고, 강한 타구의 비율도 33%에서 43%까지 늘어났다. 단순한 행운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타자의 행운을 가늠할 수 있는 BABIP(인플레이 타구 타율)는 지난해와 거의 비슷하다. 운이 좋은 것이었다면 공을 띄웠을 때 홈런이 되는 횟수(플라이볼 당 홈런 비율)가 늘어났겠지만, 오히려 지난해보다 줄어들었다. 총알처럼 빠르고 적당한 각도로 날아가는 배럴 타구(Barreled Ball) 역시 앞선 2시즌에 비해 2배 이상 자주 나오고 있다. 정확한 구종 및 코스 판단과 빠른 스윙이 이뤄진다면 정타가 많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이치다.

 

아직 해결할 과제와 미래

물론 케플러에게 당면한 숙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몇몇 변화구에 대한 대처는 좋아졌지만, 아직 체인지업에 대한 대처는 미진하다. 이런 결과를 분석했을 상대 팀 투수들은 이미 작년보다 6%p가량 더 많은 빈도로 체인지업을 던지기 시작했다. 지난해 체인지업은 케플러가 5번째로 많이 상대한 공이었지만, 올해에는 그 순위가 2위까지 올라갔다. 지난 5월 7일(한국시각) 경기에서도 케플러는 우완 투수의 체인지업에 2타석 연속으로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싱커 공략에도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아쉬운 점이다. 케플러는 지난 2시즌 동안 싱커를 상대로 그나마 나은 성적을 기록해왔다. 하지만 올해에는 싱커를 상대로 타율 0.167이라는 좋지 못한 성적을 기록 중이다.

이렇게 아직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산재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케플러는 기분 좋은 출발을 이어가고 있다. 시즌 전의 청사진과는 다르게 부진에 빠진 팀이기에 그의 활약은 팬들에게 매우 소중하게 다가오고 있다. 과연 케플러가 부푼 기대에 부응해 미네소타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 수 있을지 지켜봐도 좋을 것이다.

 

출처: MLB, Milb, Fangraphs, minorleagueball, Baseball America, Baseball Prospectus, Baseball Savant, St. Paul Pioneer Press, Baseball pastor

 

에디터=야구공작소 박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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