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 박진태, 지난 4년의 값진 성장

[야구공작소 김수빈] 2016 KBO 드래프트에서는 총 37명의 대학 선수가 프로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올해, 2017 KBO 드래프트에서는 총 23명의 대학 선수만이 프로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다. 대학 선수들의 기량 부족, 즉시 전력보다 육성에 더욱 중점을 둔 구단의 성향 등 여러 이유들로 인해서 대학 선수들은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4년간의 피땀 섞인 노력에 달콤한 보상이 아닌, 쓴 고배만이 남은 셈이었다.

이렇게 대학 선수의 지명이 줄어들고 있는 것에서 낮아진 대학야구의 입지를 확인할 수 있다. 고등학교 졸업 당시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거나 지명 순위가 낮아 대학을 거쳐 프로에 도전하려는 고등학생 선수가 있다면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프로 대신 대학에 진학 하더라도 4년의 시간이 허무함만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국대학교 4학년 사이드암 박진태는 다르다. 그는 대학에서 보낸 4년의 시간이 자신에게 얼마나 가치 있는 시간이었는지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올해 신인 지명에서 2차 2라운드로 KIA 타이거즈의 부름을 받은 박진태. 상위 라운드 지명을 받기까지, 그는 4년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eb%b0%95%ec%a7%84%ed%83%9c1 <박진태, 2016 하계리그전 (포항)>

박진태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운동을 접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처음 시작했어요. 아버지가 고등학교 때 까지 레슬링 선수를 하시다가 그만두셨는데 저랑 동생도 그 영향을 많이 받았죠. 저도 처음부터 아버지께서 야구를 시키려고 하셨어요.”

투수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박진태의 사이드암 투구폼은 ‘돌연변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갖게 됐다.
“투수를 하면서 공을 던지는데 저는 이상하게 오버스로로 예쁘게 공을 던지는 게 안됐어요.(웃음) 어쩔 수 없이, 팔이 안 올라가서 쓰리쿼터로 던지기 시작했거든요.(웃음) 저는 이상하게 오버스로로 던지면 구속도 안 나오고 힘을 못 써요. 주변에서는 저더러 ‘돌연변이’라고 하는 애들도 있었어요. 특별한 이유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투구폼인데, 지금은 저한테 딱 맞죠.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10년째 사이드로 던지고 있네요.”

지기 싫어하고 자존심도 센 성격 덕분에 초등학교 때부터 치열하게 경기를 뛰고 야구를 한 박진태는 고등학교 3학년, ‘고3병’이 제대로 오면서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고3 때 프로만 보고 운동을 했어요. 그런데 시즌이 딱 시작되니까 고3병에 제대로 걸린 거예요. 스카우트들도 의식하면서 부담도 됐고, 공을 손으로 던지는지 발로 던지는지 모를 정도로 심했죠.(웃음)”

결국 프로 지명의 기회는 박진태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전 진짜 손끝이 다 갈라져서 속살에 피가 고일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 공을 잡고만 있어도 아플 정도였죠. 그런데 고3병에 걸리니까 경기에는 그런 노력들이 하나도 나오지 않더라고요. 결국 프로 지명이 안 됐고요.”

아버지의 영향으로 처음 야구를 시작한 박진태. 지금까지 야구를 하면서 제일 힘들었다고 말하는 고3 때도 다시 일어서게 한 것은 아버지의 힘이었다.
“아버지가 프로 못 가고 나서 바로 야구 그만두라고 하셨어요.(웃음) 집에 있는 유니폼이랑 상 받은 것들 다 갖다 버리라고. 그런데 아버지의 그 말씀들이 저한테는 오히려 자극이었어요. 제가 주눅 드는 성격이었다면, 망가졌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제가 악이 있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인 걸 아버지가 아시니까 일부러 더 그렇게 말씀을 하신 거죠. 저도 더 오기가 생겼고 대학 가서 진짜 잘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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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때, 박진태의 갈라진 손 끝>

위기에는 악으로!

고등학교 2학년 때 건국대학교와의 연습 경기에서 박진태는 인상 깊은 모습을 남겼다. 그 덕분에 건국대학교 진학이 결정되었고 박진태는 다시 4년의 시간을 받았다. 하지만 대학에서도 처음에는 쉽지는 않았다.
“대학 진학 후 수술을 했어요. 팔꿈치 인대가 80퍼센트 이상 파열돼서 MCL 수술을 받았죠.(주: 토미존 수술) 수술을 했다는 것보다는 재활할 때가 더 힘들었어요. 건국대 감독님이 거시는 기대가 컸는데, 1학년 때 바로 수술하고 재활하니까 저도 정신력이 많이 약해졌죠.”
하지만 박진태는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아픈 기억과 아버지의 말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1년 동안 진짜 몸에만 신경 쓰겠다고 다짐했어요. 술은 입에도 안 댔죠. 진짜 8-9개월 동안 복귀하려고 엄청 노력한 것 같아요.”

그 의지 덕분이었을까. 박진태는 약 1년 후인 2014년 춘계리그전에서 첫 선발 등판의 기회를 받았다. 그것도 동국대와의 결승전, 매우 중요한 경기였다.
“감독님께서 제가 공 던지는 걸 보시고는 결승전 선발로 올리겠다고 하셨죠. 막상 경기 날이 되니까 진짜 긴장되더라고요.(웃음) 제가 1년 동안 보여준 것도 없고 복귀하자마자 결승전 선발이라니까, 부담도 됐고요. 감독님께서는 딱 ‘3이닝 1실점’만 버티라고 하셨어요.”

박진태는 감독의 지시를 훌륭하게 따랐다. 이 날 경기에서 박진태는 3이닝 4피안타 1탈삼진 2실점으로 마운드를 지켰다. 단순히 기록만 남았던 것은 아니다. 이날의 등판은 박진태의 가능성을 깨웠다.
“제가 이날 구속이 142km/h, 140km/h 정도 나왔어요. 저는 긴장도 했고 부담감도 있었는데 오히려 그게 더 구속을 나오게 한 것 같아요. 한 번도 이전에는 그런 스피드를 던진 적이 없었죠. 구속 잘 나오니까 자신감도 올라갔고요. 그날 진짜 부담도 되고 걱정도 했지만, 결승전 등판이 없었다면 절대 140의 스피드는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그날 안 나왔다면, 지금도 이 스피드는 못 던졌을 것 같아요. 제가 한 번 던질 수 있게 되면서 그 후 구속도 오르기 시작했으니까요.”

실제로 박진태는 구속이 느리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있었던 선수다. 하지만 올해 여름 들어 최고 구속을 149km/h까지 끌어올리면서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평균 구속 역시 130km/h 중반에서 140km/h 초반까지 끌어 올렸다. 사이드암 투수로서 안정적인 제구를 보유하고 있고 꾸준한 등판으로 위기관리 능력을 갖춘 박진태. 구속까지 더해지니 프로 구단들이 박진태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지명 실패, 대학 진학 후 수술과 재활, 그리고 결승전에서의 복귀 등판 등 많은 위기의 순간이 있었지만 박진태는 이를 자신의 성장 가능성으로 바꿨다. 2017 KBO 드래프트에서 좋은 결과를 받아든 건 바로 박진태의 이런 노력 덕분이 아니었을까.

%eb%b0%95%ec%a7%84%ed%83%9c3 <박진태 2016 시즌 대학리그 기록>

4년의 시간을 잘 보낸 박진태도 사실 처음 대학에 입학할 때는 부담이 앞섰다.
“저도 처음에는 대학교 4년이라는 시간이 부담이었죠. 야구는 야구대로 안 됐고 몸도 아프니까 더 힘들었고요. 하지만 그냥 이 악물고 했어요.”

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노력했고 4년의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얻었다.
“주변에서 너 할 것만 하라고 조언도 많이 해 주었고요. 저도 진짜 그냥 저 자신에게만 집중했어요. 고등학교 때보다 제 스스로의 값어치를 많이 올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1차 지명 후보로 언급되기도 했고요. 정신적으로도 많이 성숙해졌죠. 힘든 것도 많았지만, 결국 발전된 것들이 훨씬 많아요. 대학 진학은 정말 저에게 득이 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박진태의 말처럼, 그는 대학 진학으로 자신의 값어치를 올렸다. 박진태 본인의 정말 큰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학 와서 더 인정받는 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예전에는 제가 몸도 왜소하고 구속도 느렸죠. 그런데 지금 두 가지 모두 잡은 것 같아요. 1학년 때는 겨우 67kg이었어요. 몸 좋게 만들려고 웨이트도 엄청 했고 살 찌우려고 진짜 많이 먹고 노력했죠. 살 찌우는 것도 정말 힘들더라고요.(웃음) 구속도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대학 오지 않았다면 이룰 수 없었을 것 같아요.”

%eb%b0%95%ec%a7%84%ed%83%9c4 <박진태, 2016 하계리그전 (포항)>

그리고 4년 동안 피땀 흘렸던 박진태는 2017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제대로 된 보답을 받았다. KIA 타이거즈에 2차 2라운드로 호명된 것. 이제는 KIA 선수로서 합류를 앞두고 있는 그의 각오를 들어보았다.
“이제는 KIA 타이거즈 선수로서 팀에 보탬이 되고 싶어요. 팀에 힘이 되는 선수. 대학 때도 저는 항상 ‘박진태 나오면 경기 끝!’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었거든요.(웃음) KIA에서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아프지 않고 꾸준하게 야구하겠습니다.”

아마추어 선수로서의 4년 동안 아쉬움도 물론 남았다.
“올해, 제 성적도 물론 중요하지만 꼭 학교 우승을 이끌고 싶었어요. 아쉽게 우승은 못 한 점이 마음에 걸려요. 하지만 이제 프로 구단에서 새로운 목표로 더욱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앞으로가 중요하니까요.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고요.”

하지만 박진태는 프로 선수로서 아쉬움보다는 새로운 목표와 보완하고 싶은 점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다.
“일단 제가 가장 자신 있는 직구를 더 큰 강점으로 만들고 싶어요. 투수는 일단 직구부터 확실해야 하잖아요. 그래야 변화구도 잘 던질 수 있으니까요. 구속도 더 올릴 거예요. 합류하면 진짜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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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태, 2016 하계리그전 (포항)>

박진태는 ‘열정적이고 열심히 하는 선수’로 팬들에게 기억되고 싶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4년의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않은 그이니만큼, 그 누구보다 프로에서 좋은 경기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정말 열심히 노력했던 박진태. 그는 이제, KIA 타이거즈 선수로서 새로운 발자취를 남기려고 한다.

(사진 : 오늘부터 아마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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