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야구공작소 최원영)
팬그래프 시즌 예상: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공동 3위(82승 80패)
시즌 최종 성적: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공동 3위(78승84패)
[야구공작소 오상진] 텍사스 레인저스는 최근 2시즌(2015-2016) 연속 아메리칸리그(AL) 서부지구 1위를 차지했다. 텍사스는 그 기간 동안 피타고리안 승률을 한참 뛰어넘는 실제 승률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는 피타고리안 승률에 기초한 기대승수보다 13승이나 많은 95승을 거두는 믿을 수 없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 2년간 지구 최강팀으로 군림했지만 올 시즌 텍사스가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지구 라이벌 팀들이 앞다투어 전력 강화에 나설 때 텍사스는 빠져나가는 선수들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객관적인 전력의 열세를 뒤집고 지구 1위를 차지했던 과거의 행운을 바라기에는 너무 많이 격차가 벌어졌다.
텍사스의 2017시즌은 개막전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전체 세이브 1위(56개), 홀드 2위(103개)로 팀의 지구 우승에 크게 기여했던 불펜이 가장 먼저 흔들리기 시작했다. 맷 부시가 블론 세이브를 기록했고 뒤이어 등판한 마무리 샘 다이슨은 0.2이닝 3실점으로 무너지며 첫 경기를 내줬다. 이틀 뒤 다이슨은 6-4로 앞선 상황에 등판해 0.1이닝 5실점이라는 믿을 수 없는 투구로 또 한 번 경기를 불태웠다. 다이슨은 4월 한 달 동안 단 한 개의 승리와 세이브도 거두지 못하고 3패 ERA 17.18의 극심한 부진에 빠졌다. 결국 다이슨은 6월 트레이드로 팀을 떠났고 이후 팀의 마무리 자리는 맷 부시가 맡았지만 불안함은 여전했다. 여기에 지난해 활약했던 토니 바넷의 부진과 제이크 디크먼의 부상 공백은 텍사스 불펜을 한없이 약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메이저리그 최상위권이었던 세이브와 홀드가 1년 만에 최하위권(세이브 29개, 29위 / 홀드 66개, 26위)으로 추락해버렸다.
텍사스의 문제는 불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콜 해멀스는 두 달 가까이 자리를 비우며 데뷔 시즌(2006년 132.1이닝) 이후 가장 적은 148이닝을 소화하는 데 그쳤고 결과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11승 6패 ERA 4.20). 다르빗슈 역시 메이저리그 데뷔 후 가장 부진한 모습(6승 9패 ERA 4.01)을 보이다 결국 LA 다저스로 떠났다. 마틴 페레즈는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모두 소화하며 13승(12패)을 거뒀지만 ERA 4.82는 만족스러운 결과가 아니었다. 부활을 기대하며 영입한 타이슨 로스는 초라한 성적(3승 3패 ERA 7.71)만 남기고 시즌이 끝나기도 전에 짐을 쌌다. 그나마 FA로 영입한 앤드류 캐쉬너(11승 11패 ERA 3.40)만이 제 몫을 해줬을 뿐 텍사스의 선발진은 시즌 내내 정상적인 로테이션을 꾸리기도 어려웠다.
타선은 팀 홈런 AL 3위(237개,)로 화끈했지만 팀 타율(.244, AL 13위)은 떨어지고 삼진(1493개, AL 최다 2위)이 크게 늘어나면서 전형적인 공갈포 타선이 되어버렸다. 물론 팀 득점이 늘어나긴 했지만(765→799점) 투수진의 부진을 메우기에는 부족했다(799득점/816실점, 득실점 마진 -17).
2016-2017 텍사스의 팀 타격 기록 비교
전반기가 끝난 시점에서 텍사스는 AL 서부지구 1위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16.5경기 뒤져 있었다. 그나마 와일드카드는 아직 3경기 차로 가시권이었지만 7월의 마지막 날 격차는 5.5경기로 오히려 더 벌어졌다. 텍사스는 결국 트레이드 마감 시한을 앞두고 다르빗슈를 LA 다저스로, 조나단 루크로이를 콜로라도 로키스로 보내며 사실상 가을 야구에 대한 의지를 반쯤 접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텍사스는 트레이드 이후 8월 16승 12패(승률 .571)의 상승세를 탔고 9월 초반 와일드카드 2위 미네소타 트윈스를 2경기 차까지 추격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같은 지구 팀들을 상대로 5연패, 7연패로 미끄러져 결국 포스트시즌이 좌절되고 말았다.
최고의 선수 – 엘비스 앤드루스
시즌 성적: 158경기 0.297/0.337/0.471 OPS 0.808, 20홈런 88타점 25도루 fWAR 4.1
앤드루스는 2009년 데뷔 후 한 시즌 최다 홈런이 8개(2016년)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 시즌 이미 전반기에만 11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BB/K가 0.38(38볼넷/101삼진)로 데뷔 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긴 했지만 AL 최다안타 3위(191개), 2루타 4위(44개), 득점 7위(100개) 등 여러 부문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팀 타선을 이끌었다. 여기에 여전히 빠른 발을 바탕으로 25개의 도루를 기록, 9년 연속 20+도루와 함께 데뷔 첫 20-20 클럽에 가입했다. 텍사스 유격수가 20-20에 성공한 것은 1977년 토비 하라(27홈런-27도루) 이후 무려 40년 만의 일이었다.
앤드루스는 공격뿐만 아니라 수비에서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 3시즌(2014-2016) 동안 음수를 벗어나지 못했던 DRS(-14/-1/-3)가 드디어 양수(3)로 돌아섰다. 2013년 4월 8년 1억2000만 달러(+1년 1500만 달러 베스팅 옵션)의 대형 장기계약을 맺은 뒤 하락세를 탔던 앤드루스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반등에 성공했고 올 시즌 마침내 정점을 찍었다. 앞으로 5년 남은 계약기간 동안 앤드루스가 올해와 같은 활약을 이어간다면 텍사스의 4년 전 선택은 해피엔딩이 될 가능성이 높다.
가장 발전한 선수 – 알렉스 클라우디오, 조이 갈로
알렉스 클라우디오 시즌 성적: 70경기(1선발) 82.2이닝 4승 2패 8홀드 11세이브 ERA 2.50 fWAR 1.6
2014년 데뷔한 클라우디오는 지난해 39경기 51.2이닝을 소화하며 텍사스의 핵심 불펜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이크 디크먼이 부상으로 이탈한 올 시즌 좌완 셋업맨으로 시작해 시즌 중반 마무리 자리를 이어받아 흔들리는 텍사스 불펜에서 제 몫을 충분히 해냈다.
전임 마무리였던 다이슨과 부시가 평균 시속 95마일의 강속구를 앞세웠다면 클라우디오는 정반대로 리그에서 가장 느린 싱커(평균 시속 87마일)와 체인지업으로 수많은 땅볼을 유도해 냈다. 올 시즌 클라우디오의 GB%는 무려 66.7%로 70이닝 이상을 소화한 메이저리그 전체 투수 가운데 2위에 해당하는 높은 기록이었다(1위 댈러스 카이클 66.8%). AL에서 2번째로 많은 BB/9(3.96개)와 2번째로 높은 WHIP(1.48)로 장작 쌓기를 즐겼던 답답한 텍사스 불펜에서 클라우디오는 정교한 제구를 바탕으로 BB/9 1.63개, WHIP 1.04로 남다른 안정감을 선보였다.
조이 갈로 시즌 성적: 145경기 0.209/0.333/0.537 OPS 0.869, 41홈런 80타점 fWAR 2.9
메이저리그 규정 타석 타자 144명 중 타율 141위(.209)를 기록한 타자가 무슨 발전이냐고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풀타임 첫 시즌을 치른 갈로는 충분히 위협적인 타자였다. 갈로는 올 시즌 홈런 41개(AL 3위)를 포함해 62개의 장타(2루타 18개, 3루타 3개)를 기록했는데 이는 전체 안타(94개)의 약 2/3에 해당하는 엄청난 수치였다. 196개의 삼진(AL 2위)을 당했지만 14.1%의 BB%(AL 5위)로 타율보다 .124나 높은 출루율을 기록한 덕분에 낮은 타율에도 불구하고 팀 내에서 2번째로 높은 OPS .869를 기록했다(1위 애드리안 벨트레 .915). 갈로는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가장 낮은 컨택%(59.1%)만 개선할 수 있다면 텍사스를 대표하는 거포가 될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실망스러운 선수 – 루그네드 오도어
시즌 성적: 162경기 0.204/0.252/0.397 OPS 0.649, 30홈런 75타점 fWAR -1.0
텍사스는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지난해 33홈런을 기록하며 잠재력을 터뜨린 오도어와 6년 4950만 달러(+1년 1350만 달러 옵션)의 장기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오도어의 재계약 첫 시즌 성적은 구단이 실망을 넘어 후회를 할 정도로 끔찍한 수준이었다.
오도어는 올해도 30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2년 연속 30홈런 고지를 밟았지만 그게 다였다. 타율은 .204로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그보다 낮은 타율을 기록한 선수는 호세 바티스타 1명뿐이었다. 낮은 타율에 0.20이라는 극악의 BB/K(32볼넷/162삼진)까지 더해져 출루율 최하위(.252)의 수모를 당했다. 출루율뿐만 아니라 wRC+도 메이저리그 전체 최하위(61)를 기록했고 fWAR은 밑에서 5위(-1.0)로 팀에 민폐만 끼쳤다. 이 정도의 성적이라면 차라리 전 경기 출장을 하지 않는 것이 팀에 더 도움이 될 뻔했다.
기로에 선 텍사스의 선택은?
1961년 창단 이후 아직까지 월드시리즈 우승이 없는 텍사스는 지역 라이벌 휴스턴이 창단 55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휴스턴의 핵심 선수들은 여전히 젊고 계약 기간 또한 충분히 남아 있어 당분간 AL 서부지구 1위 자리는 휴스턴의 차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텍사스로서는 어쩌면 지금이 리빌딩 혹은 리툴링의 적기일지도 모른다.
통산 3000안타 고지를 밟은 벨트레는 부상으로 94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팀에서 2번째로 높은 fWAR 3.1을 기록했다. 그러나 벨트레는 언제 하락세를 타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1979년생, 만 38세)다. 2018년까지 계약이 남은 벨트레는 다르빗슈 트레이드 당시 리빌딩 팀에서는 뛸 수 없음을 밝힌 적이 있다. 텍사스가 ‘윈나우(Win now)’ 노선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벨트레와는 자연스럽게 이별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벨트레뿐만 아니라 이번 스토브리그에서는 추신수 트레이드설, 해멀스의 필라델피아 복귀 가능성 등 베테랑에 얽힌 다양한 소문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당장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존 다니엘스 단장은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누구든지 논의할 수 있다”, “우리는 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충분한 자금력을 가지고 있다”며 자금력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나름대로 괜찮은 공격력을 유지하는 가운데 약점인 투수력만 잘 보강하면 다시 한 번 지구 1위 자리에 도전해 볼 수도 있다. 실제로 텍사스는 선발 자원 덕 피스터를 영입(1+1년 최대 1100만 달러)했고 또 다른 FA 투수 알렉스 콥과 랜스 린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며 전력 보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텍사스는 2020년 신축구장 글로브 라이프 필드(Globe Life Field) 개장을 준비하고 있다. 새로운 구장을 맞이하기까지는 아직 3시즌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한 번 내려놓은 지구 1위 타이틀을 되찾기 위해 전력을 보강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단순히 지구 1위가 아닌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바라본다면 앤드루스, 오도어, 갈로, 노마 마자라 등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2020년을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더 높이 뛰기 위해서는 잠시 내려와 발돋움을 하는 시간도 필요한 법이기 때문이다.
기록 출처: Baseball Reference, Fangraphs, M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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