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양정웅] 2017년 10월 부산광역시 남포동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부산의 프로스포츠팀에 대해 묻는다면 어떤 답변을 들을 수 있을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단어들을 입에 올릴 것이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는 내홍에 시달리며 2013년 이후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고 프로농구 부산 kt 소닉붐은 전창진 전 감독이 사퇴한 이후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기업구단 최초로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된 프로축구 부산 아이파크는 더 이상 설명할 것도 없다.
하지만 달력을 1999년 11월로 돌려보면 조금 다를 것이다. 부산의 프로팀들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은 조금씩 달랐겠지만 ‘아쉬움’, ‘희망’, ‘기대’와 같은 단어들이 나오지 않았을까. 1999년의 부산 프로스포츠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동시에 호성적을 구가했다. 외환위기 이후 지역기업들의 도산과 생산기지 이전으로 생기가 떨어져 있던 부산에 힘을 주는 성적이었다. 그리고 십 수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보면 다시 없었던 동시 전성기였다.
농구 : ‘허재’없이도 농구’허재’
프로농구(KBL) 첫 시즌인 1997시즌 챔피언에 올랐던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현 울산 모비스 피버스). 실업팀 기아자동차 농구단의 명성을 그대로 이어갔다. (사진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9년 부산 프로스포츠의 시작은 겨울스포츠 농구였다. 1988-89시즌부터 8번의 농구대잔치에서 7번을 우승한 명문 실업팀 기아자동차 농구단은 1997년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로 이름을 바꾸고 프로로 전향했다. 프로 첫 시즌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명가의 건재를 알린 기아는 1997-98시즌에도 챔피언결정전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준우승을 차지했다.
1998-99시즌을 앞두고 기아는 두 가지 큰 변화를 겪었다. 하나는 1991년부터 사령탑을 맡은 최인선 감독이 사퇴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10년 가까이 팀을 이끈, 그러나 프로 전환 후 예전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던 ‘농구 대통령’ 허재가 원주 나래 블루버드(현 원주 DB 프로미)의 정인교와 트레이드된 것이다.
비록 허재가 떠났지만 강동희-김영만-정인교-제이슨 윌리포드-클리프 리드의 베스트 5는 이름값만으로도 무시무시했다. 윌리포드의 출장정지와 리드의 부상, 강동희-김영만의 국가대표 차출 등으로 초중반에는 그 위력이 충분히 드러나지 못했지만 기아는 시즌 막판 9경기를 모두 이기며 31승 14패로 정규리그 2위에 올랐다. 플레이오프에서도 문경은과 이슈아 벤자민이 버티던 수원 삼성 썬더스(현 서울 삼성)를 3승 1패로 꺾고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한다.
야구 : ‘호세’는 ‘허세’대신 실력으로 보여주었다
2013년 기념행사를 위해 모인 1999년 당시의 주요 선수들. 이들은 당시 롯데 역사상 최초의 페넌트레이스 1위를 달성할 뻔 했다. (사진 = 롯데 자이언츠 제공)
1997~1998년 2년 연속 최하위의 불명예를 차지한 프로야구 롯데는 1999년을 앞두고 김명성 감독대행을 정식 감독으로 기용하며 변화를 알렸다. 최기문의 영입으로 포수력이 풍성해졌고 복귀전력 박현승(군 입대)과 손민한(수술)도 기대해볼 수 있는 자원이었다. 거기에 첫 외국인 선수 덕 브래디가 실패한 롯데로서는 메이저리그 올스타 출신의 펠릭스 호세의 가세가 큰 힘이 되었다.
롯데는 시즌을 6연승으로 시작하면서 많은 전문가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롯데 역대 최고의 클린업’을 대라면 빠지지 않는 박정태–호세–마해영은 도합 82홈런 324타점을 기록했고, 문동환(17승)-주형광(13승)-박석진(11승) 삼각편대는 90년대까지 롯데에 붙었던 ‘투수왕국’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게 해줬다.
시즌 내내 1위를 질주하던 롯데는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두산 베어스에 드림리그 1위 자리를 빼앗긴다. 아쉽게 2위로 떨어진 롯데는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명승부를 연출해냈다. 특히 “경기는 삼성 쪽으로 기울”었던 7차전에서 호세의 퇴장으로 인한 분위기 반전과 임수혁의 극적인 홈런에 힘입어 승부를 뒤집으면서 팀 분위기는 최상으로 올라왔다.
축구 : ‘안정환’ 축구 잘 하는거 ‘인정’한다.
1990년대 후반 대우 로얄즈의 선수단. 대우 로얄즈는 ‘국가대표에 차출되는 선수가 하도 많아 리그에서 부진하다’는 웃지 못할 농담을 들을 정도로 강한 팀이었다. (사진 = 부산 아이파크 제공)
1999년 부산의 농구와 야구는 냉정히 말해 하향세였거나(기아) 이제 막 부활한(롯데) 상황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 진정한 부산의 제왕은 단연 프로축구 부산 대우 로얄즈였다. 롯데가 성적부진으로 6~7천명, 기아가 사직실내체육관의 열악함으로 겨우 2~3천명의 평균관중만을 홈구장에 들이던 시절 대우의 홈인 구덕운동장은 경기당 2만명을 전후한 관중들이 찾았다.
대우 로얄즈는 K리그 시즌 시작 전 개최된 대한화재컵 대회에서 준우승을 하며 예열에 들어갔다. 리그가 시작되면서는 당시 K리그의 ‘깡패’ 수원 삼성 블루윙즈 다음 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전년도에 아쉽게 신인왕을 놓친 안정환은 정규리그와 리그컵을 포함한 34경기에서 21골을 넣으며 최우수선수(MVP)에 오른다.
안정환 외에도 마니치, 우성용 등이 건재했고 김주성이 마지막 불꽃을 태웠던 대우는 신윤기 감독대행의 사망, 모기업의 워크아웃 등의 악재에도 정규리그 4위에 올랐고 준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를 무패-무실점으로 마무리하며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한다. 상대는 정규리그 27경기에서 승점 59점을 거뒀고 대한화재컵에서도 대우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 수원 삼성이었다.
야! 2등도 잘한거야!
1999년 부산 프로팀들은 각각의 어려움 속에서도 선전했다. 농구 기아와 축구 대우는 외환위기로 인한 모기업의 어려움, 야구 롯데는 주요선수들의 부상으로 인한 전력난을 겪으면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무리까지 아름답게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부산 프로팀들의 결말은 모두 새드 엔딩이었다.
가장 먼저 결승을 치른 기아는 전 시즌 챔피언결정전 상대였던 대전 현대 다이넷(현 전주 KCC 이지스)을 만났다. 1997-98시즌 허재의 원맨쇼에도 결국 준우승에 머물렀던 기아는 허재가 떠나고 김유택과 외국인선수 윌리포드까지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 1승 4패로 싱거운 패배를 안아야 했다. 강동희와 김영만이 지친 기색을 보인 기아는 조성원(경기당 평균 16.4득점)을 막지 못했다.
10월 22일 한국시리즈를 시작한 롯데는 플레이오프의 피로감을 떨쳐내지 못했다. 상대인 한화 이글스는 플레이오프 4승 무패로 올라온 상황. 포스트시즌 내내 부진했던 문동환이 결국 제 역할을 해내지 못했고 찬스를 만들어줘야 할 김응국과 박정태의 부진은 최강이라던 타선을 제대로 굴러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구대성이라는 선수 한명에게 완전히 당한 것도 컸다.
롯데처럼 하위 포스트시즌을 치르며 체력을 소진한 대우는 최강자 수원에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2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홈에서는 수원에 무패(3승 1무)였던 전적이 무색하게 1차전을 1:2로 패한 대우는 무승이었던(3패) 수원에서는 전적대로 또 다시 1:2로 패했다. 안정환의 MVP는 ‘프로 출범 후 첫 비 우승팀 MVP’라는 씁쓸한 타이틀이 붙었다.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 전성기
안정환(사진 왼쪽)과 마해영. 1999년 부산의 영웅들이었다. 그리고 만신창이가 된 친정팀에 컴백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사진 = 부산 아이파크 제공)
불꽃처럼 뜨거웠고 또 불꽃처럼 빠르게 사라진 1999년의 영광 이후 부산의 프로팀은 많은 좌절을 겪었다. 축구는 2000년 1월 팀이 현대산업개발로 넘어간 이후 2004년 FA컵 우승, 2005년 전기리그 우승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업적을 남기지 못한 채 2015년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되고 만다.
야구는 2000년 와일드카드로 턱걸이 포스트시즌을 경험한 이후 7년 동안 ‘8888577’이라는 치욕적인 순위를 기록하며 무너졌다. 농구는 아예 기아가 팀을 울산으로 이전하며 모비스 피버스로 이름을 바꾸어 이후 여수 코리아텐더가 올 때까지 몇 년 동안 부산을 프로농구팀 없는 도시로 만들었다.
최근 부산의 프로스포츠는 ‘권토중래(捲土重來)’를 모색하고 있다. 프로축구 부산 아이파크는 FA컵에서 만난 K리그 클래식 팀들에 연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프로농구 부산 kt 소닉붐은 지난 시즌 중반 이후 희망을 보이며 ‘탈꼴찌’에 성공했고,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는 5년 만에 가을야구 초대장을 받았다. 과연 1999년 이후 차갑게 식어버린 부산의 프로스포츠는 올 시즌 다시 ‘뜨시게’* 될 수 있을까?
* 뜨시다 : ‘따뜻하다’의 동남 방언
댓글 남기기